칼 럼(상담.치유)

우림과둠밈 2018. 10. 17. 01:23



안시성과 양만춘에게 배우라

 

 

영화 ‘안시성’을 아는가. 당나라 태종 이세민이 20만 대군을 몰고 고구려를 정복하러 온다. 그때 고구려의 성들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버리고 만다. 이제 평양성만 치면 고구려를 멸망시킬 수 있는데 평양성으로 가기 위해서는 안시성을 지나가야 한다. 그때 안시성 성주 양만춘과 그의 부하들은 목숨을 걸고 결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군대는 5000명에 불과했다. 20만 명 대 5000명. 도저히 싸움이 되지 않는 전쟁이었다. 게다가 양만춘은 왕을 죽이고 권력을 찬탈한 연개소문에게 굴복하지 않고 저항하다 역도로 몰려 고구려군의 지원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마디로 내부로부터 불신과 공격을 받은 것이다. 오히려 연개소문은 ‘사물’이라는 첩자를 보내 양만춘을 암살하려 한다.

 

그런데 양만춘은 그를 따뜻하고 온유하게 대하며 오히려 자신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대장기를 들게 한다. 양만춘은 만나기만 하면 티격태격 싸우는 부월수장과 환도수장을 비롯해 군사들을 화해시키며 이렇게 격려한다.

 

“우리가 하나가 되면 못할 일이 없다. 함께 힘을 뭉쳐 싸우면 반드시 이길 수 있다.”

 

군사들에게도 호소한다.

 

“사실 나도 두렵다. 그러나 나는 물러서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안시성 사람들, 저들을 지키기 위해 싸우자.”

 

이런 양만춘의 모습을 보고 사물이 감동을 받아 진정한 그의 신복이 돼 함께 싸운다. 양만춘이 죽음의 위기를 당했을 때 구해준 인물도 바로 사물이다. 우대를 비롯해 토굴꾼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바쳐 이세민이 쌓은 토산을 무너뜨린다. 전쟁의 클라이맥스에서 양만춘은 주몽의 신궁을 가져다 이세민의 눈을 맞히고 이세민은 결국 피눈물을 흘리며 퇴각한다.

 

변방의 자그마한 안시성이 고구려를 지킨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목회자라면 양만춘 같은 리더십을 행사해야 하지 않을까. 교회도 안시성 같은 저력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한국교회는 급속하게 밀려오는 반기독교적 정서와 문화, 입법 등에 둘러싸여 위기를 맞고 있다. 영국과 미국교회가 그랬듯이 반기독교적 정서와 문화가 확산되고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는 악법이 통과되면 교회는 급속히 쇠퇴하고 소멸하게 된다. 이러한 때 한국교회가 안시성과 같은 교회가 되고 목회자들이 양만춘과 같은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우리가 너그럽고 온유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인자수성’(仁者守成), 즉 ‘어진 자가 성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예수님도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차지한다고 하지 않으셨던가. 양만춘도 온유함과 따뜻함으로 사물과 장수들의 마음을 얻음으로써 안시성을 지킬 수 있었다. 우리는 너무 사욕과 교권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지 않은가. 그래서 서로 적대감을 갖고 정죄하며 분열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우리도 먼저 온유의 품성과 리더십부터 배워야 한다.

 

둘째, 무조건 연합해 하나가 돼야 한다. 아무리 개교회가 열심히 하고 어느 개개인이 톡톡 튀는 퍼포먼스를 해도 한계가 있다. 스포츠에서도 아무리 훌륭한 선수라 할지라도 팀을 이기는 선수는 없다고 하지 않는가. 화려한 개인플레이를 선보이는 스타플레이어보다 중요한 것이 팀플레이다. 양만춘의 무예가 아무리 출중했다 해도 독불장군으로 어떻게 막아내겠는가. 한국교회 지도자도 연합의 마인드를 가지고 팀플레이를 하고 ‘네트워크 플레이’를 해야 한다. 나는 지금도 연합기관이 여러 개로 존재하는 게 마음 아프고 심히 우려된다.

 

셋째, 진심을 다해 희생해야 한다. 그 영화에도 어쩔 수 없는 희생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희생을 영광으로 생각했다. 오늘 우리 한국교회도 마찬가지다. 현실에 안주하려 하고 내 교회가 아무 문제없으면 희생의 전선에 뛰어들지 않으려 한다. 어떻게 희생 없이 한국교회를 지킬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우리의 희생을 반드시 갚아주시고 보상해주신다. 한국교회여, 안시성과 양만춘을 통해서라도 오늘 우리의 미션을 배우라.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

 




아멘!!!
감사드립니다.~~샬롬~~
목사는 전부 쓰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