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탐구

우림과둠밈 2020. 5. 17. 01:37

 

 

섬김의 옷, 잊힘의 옷

 

 

(창 40:5-23) “5. 옥에 갇힌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두 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니 각기 그 내용이 다르더라 6.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지라 7. 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신하들에게 묻되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 8.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9. 술 맡은 관원장이 그의 꿈을 요셉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10.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고 11. 내 손에 바로의 잔이 있기로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노라 12. 요셉이 그에게 이르되 그 해석이 이러하니 세 가지는 사흘이라 13.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의 전직을 회복시키리니 당신이 그 전에 술 맡은 자가 되었을 때에 하던 것 같이 바로의 잔을 그의 손에 드리게 되리이다 14.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15.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 16. 떡 굽는 관원장이 그 해석이 좋은 것을 보고 요셉에게 이르되 나도 꿈에 보니 흰 떡 세 광주리가 내 머리에 있고 17. 맨 윗광주리에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음식이 있는데 새들이 내 머리의 광주리에서 그것을 먹더라 18. 요셉이 대답하여 이르되 그 해석은 이러하니 세 광주리는 사흘이라 19.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을 나무에 달리니 새들이 당신의 고기를 뜯어 먹으리이다 하더니 20. 제삼일은 바로의 생일이라 바로가 그의 모든 신하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 때에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그의 신하들 중에 머리를 들게 하니라 21.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매 그가 잔을 바로의 손에 받들어 드렸고 22. 떡 굽는 관원장은 매달리니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함과 같이 되었으나 23.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두 관원장이 감옥에서 며칠을 보내던 어느 날 밤, 두 사람이 각각의 꿈을 꾸고는 근심에 빠집니다. 감옥 안에서 근심이 없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라면 이 감옥 안에서 ‘근심의 빛’이 얼굴에 가득해야 할 사람은 요셉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자기 근심에 빠져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다른 사람의 근심을 살피고 알아보는 자가 돼 있었습니다. 자신은 말할 수 없는 인생의 상처를 입은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남의 상처를 살피는 사람이 됐습니다.

 

두 사람은 각자가 꾼 꿈을 요셉에게 들려줍니다. 그리고 요셉은 그들의 꿈을 해몽해 줍니다. 요셉은 혹시라도 꿈 이야기를 듣고 나서 꿈을 해석해 주지 못할 것에 대해 염려하거나 근심하지 않습니다. 주저하지도 않았습니다. 자신의 꿈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면 자신의 인생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고 믿은 것입니다. 요셉은 두 관원장의 꿈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면 그 꿈 또한 하나님께서 해석해 주시리라 믿었습니다.

 

요셉의 해석대로 술 맡은 관원장은 머리를 들게(복직) 됐습니다. 요셉의 해석대로 왕의 떡 맡은 관원장은 그의 몸에서 머리를 들어내게(사형당하게) 됐습니다. 두 사람이 같은 감옥에 갇혀 같은 날 꿈을 꿨고, 두 사람의 꿈도 비슷해 보였지만 결말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이 모든 꿈과 해석의 중심에 요셉이 있었습니다. 그를 통해 선악이 판별됩니다. 그를 통해 죽고 사는 문제가 예측됩니다. 그를 통해 하나님의 메시지가 알려집니다.

 

요셉의 믿음과 고백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이,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하신다는 것이, 하나님께서 요셉을 형통케 하신다는 것이 ‘해몽의 실현’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요셉이 갇혔던 감옥이라는 구덩이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누군가는 원래의 자리로, 누군가는 죽음의 자리로, 누군가는 더 높은 자리로 옮겨가게 될 잠깐의 정거장이 되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복직될 징조의 꿈을 꾼 관리에게 훗날 일이 잘 풀리면 자신을 ‘기억하고 건져 달라’ 부탁했습니다. 사흘 후 자유의 몸이 되어 감옥을 나서는 술 맡은 관리는 배웅하는 요셉에게 약속하고 또 약속했을 것입니다. 조금만 기다리라고. 그러나 그는 곧 요셉을 잊어버렸습니다. 아버지에게 죽은 사람이라 여겨 잊혔던 그 시간에 이집트에서 종으로 살아야 했던 요셉은, 이제 도움을 준 사람에게도 ‘죽은 사람’ 취급받으며 ‘잊힌 사람’으로 감옥에서 2년을 더 살아야 했습니다. 요셉은 주목받지 못하고 돌봄 받지 못하고, ‘철저하게 잊혀진’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기억하고 계셨고 붙들고 계셨고 그를 위해 일하고 계셨습니다.

 

기도 : 하나님, 마땅히 받아야 할 사례도 받지 못하고, 누군가로부터 잊힌 존재가 되었다고 느낄 때도 나를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성실히 살아가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정명호 목사(서울 혜성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