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정의 가을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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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꼬리가 처진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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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2. 5.

엷은 속쌍꺼풀 작은 눈에 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말은 보통사람의 1.3배속 정도로 빠르고 단호한 어투다.


젊은 시절의 나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 어떠하던지 상관없이 그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하고 행동하였다.

사납다라던가, 정없어 보인다라던가, 가끔은 똑 부러진다 등의 평가를 받았지만 때론 핀잔이려니, 칭찬이려니 그때그때 해석을 달리하며  남에게 해된것 없고 올곧게 살면

되는거지 라고 생각했었다.

어느날 친구들과 철학(역학)을 공부하시는 분과 담소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이 날더러 안경을 써보라고 권유를 하셨다.

맹랑하게 "왜요" 했더니 "눈꼬리가 올라가고 눈동자가  또렷해서 잘나 보이는데 사람들과의 사이에서는 친근감이 없어, 그러니 눈을 가려"하신다.

"잘나 보이는 사람은 타인의 입장에서 어려워, 네가 사람을 좋아하는 것 만큼 그 사람이 널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리 철학을 하셔도 그렇지. 어떻게 저렿게 상처 주는 말을 계속 하시는지 참으로 섭섭하였지만

웃는 낯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네 네 하며 듣고 있으니

"수상의 부족한 점은 관상으로 매꿀수 있고 관상이 부족한 부분은 심상으로 메꿀수 있다.

수상도 관상도 나쁜것을 알게 되었으면 심상을 바꾸면 된다. 너는 수상이나 관상보다 심상이 이쁘다. 그 심상이 더 들어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그날 이후 거울을 볼 때 문득문득 그 말이 생각났다.

안경을 쓰라고, 눈을 가려야 사람과 편하게 지낼 수 있다고, 곱씹어 생각하고 되뇌어 보았다.

철학관이나 점집을 찾아가 본적이 없는데 어쩌다 나눈 담소 속 말들이 나를 붙잡고 있는게 슬쩍 화가 나기도 했다.

어차피 사주나 팔자나 그런것 믿지도 않는데 굳이 갖다 붙이자면 관상이라고 할 것도 못되는 말이지 하며 비켜 놓았다가도

누가 지나는 말로 잘났어라는 말만 해도 안경을 써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었다.

결국 안경을 맞추었다.

난시도 있고 눈이 예전보다 나빠진 핑계삼아 그 권유를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마음으로는 눈꼬리가 처지기를 바래 일부러 손가락으로 눈꼬리를 내려보기도 했고 말도 속도를 늦춰서 천천히 하는 연습도 해보았다.

천성이 쉬이 고쳐질리는 없지만 사람을 좋아하고 그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기를 바라니 노력은 당연히 필요했다.

그런 일이 있고 이제 15년이 지났다.

여전히 거울을 본다.

어느 순간 눈꼬리가 내려가 있다. 요즘 유행한다는 시술이라도 해서 눈꼬리를 올려야 할 판이다.

여전히 말의 속도는 빠르다 하지만 남의 말에 귀기울이는 경우가 조금 많아졌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사이를 유지하고 싶어서 눈꼬리가 처지기를 바랬던 그 소망이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래 이루어졌다.

철학을 하시는 그분의 충고를 귀담아 들은 덕에  눈꼬리라 처져도 슬프지 않은 시절을 살고 있고 또 귀찮은 안경은 평소엔 벗어 두었다가 책볼때나 글씨를 써야 할 때만 코언덕에 걸쳐 놓고 있으니 기적까지는 아니여도 참으로 기쁜 일 이기는 하다.


매일글쓰기 10.  주제는 내 인생에 어떤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는가? 인데 기적보다는 기쁨이 좋아서~ 주저리 주저리 씀 2월 5일

(저는 크리스찬입니다. : 이말도 꼭 해야 할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