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왕대나무 2013. 2. 9. 18:18

♣ 2012.10.7(일)맑음 8000-2030<연인회 안면도 모임 2일차>

 

 

 

□ 김종철 총무국장님께서 제2탄은 왜 아니 보내느냐고 성화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동안 무슨일이 그리 바쁜지 잠시 뒤로 미루어 놓았던 우리들 안면도 모임 제2탄

   2일차 내용을 보낸다.

   관심을 가져 준다는게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일인지 모든것 제쳐놓고 오늘도 미주알고주알 기억을 더듬어 밀린 숙제하 듯 일기장에 기록을 한다.

   종철이 국장님 고맙습니다.

 

▽ 06:14 어젯밤 아니 오늘 새벽까지 광란(?)의 세계에서 헤메이다 새벽녁에야 잠이 들었을 사람들! 또 미친 사람들 등쌀에 일찍 일어나는 서글픈 현상에 직면하게된다. 

   산책이나 갑시다.   

 

▽ 그런데 하나같이 주머니에 손들이...

   니(?4?)사람 말고 또 대여섯명이 뒤에 줄줄이 사탕으로 따라 나선다.

 

▽ 06:20 밧개 해수욕장 도착

   안면도에는 서쪽지역은 모래사장이 동쪽은 뻘땅(?)으로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서쪽은 해수욕장으로 동쪽 지역은 염전이나 또는 간척지로 벼농사를 짓는 농토로 이용하고 있다.

 

▽ 서쪽 지역은 백사장 해수욕장으로부터 북에서 남으로 10여개의 해수욕장이 여름철에 손님들을 맞고 있다.

   그 중 이 밧개해수욕장은 길이가 안면도 해수욕장 중에서는 가장 긴 무려 3.4km에 달하며 물이 쓴 후에는 2~300미터의 넓은 백사장이 해수욕장으로는 천혜의 요새처럼 버티고 있다.  

 

▽ 무슨 얘기들이

 

▽ 지나는 해변가에 텐트 하나가 사랑의 보금자리마냥 정답게 느껴진다.

   어떤 텐트족은 방을 마다하고 집안 마당에 텐트를 치고 생활하고 있다는 말을하기도 했는데 그가 말한 텐트속의 아늑함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참맛을 모를꺼라는 얘기가 갑자기 떠오른다.

 

▽ 밧개독살...

   독살?

   독으로 사람을 죽이는 일?

   아니다. 독살이란 밀물 때 물을 따라 들어온 고기가 썰물 때 그 안에 갇혀 나가지 못하는 원리를 이용하여 고기를 잡는 돌 그믈을 말한다.

   일명 석방렴(石防簾)이라고도 부르며 독살, 돌살, 돌발이라고도 부른다.

   예전에는 바닷가에 그런 독살이 많았으나 거의 다 없어졌는데 이곳 밧개에는 원형 그대로 보존 된 상태에 있어 학계에 큰 관심을 불어넣고 있다.

 

▽ 06:41 오늘 우리는 꽃지 해변까지 간다.

   현위치 밧개...

   꽃지 해변까지는 물경 4.0km

   물론 왕대 혼자의 생각이다.

 

▽ 바로 옆에 전망좋은 바다맛집이란 횟집이 버티고 서있다.

   그 집이 뭔데?

   친구놈 딸이 경영하는 횟집이다.

   언젠가 산악회에서 山友들 데리고 이곳을 찾았었다.

   친구의 딸이 경영하는 횟집이라 대우가 좋고 값이 좀 쌀거라는 판단을 했는데  끝나고 난 후 회원들의 화살을 피해갈 수 없었다.

   값이 통영이나 대천에 비하여 턱없이 비쌌기 때문이다.

   대신 대우는 좋았지.... 

 

▽ 06:42 5코스 노을길...

   우리나라는 지금 자전거 길과 도보길 천국이 되어가고 있다.

   제주도 올레길로부터 시작된 트레킹 코스는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이름도 둘레길, 해변길, 마실길, 해안길 등등등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우리나라 모든 길을 건강이 허락하는한 섭렵하고 싶은 생각이다. 

 

▽ 회장 님 힘드시죠?

  아냐 이건 누워 떡먹기라...

 

▽ 잠시 셨다 갑시다.

   그런데 뒤 따르던 패거리(?)님들은 워디 오능겨?

   철호네 귀여운 식구 개님(?)께서 나자빠져 따라오지 않는다는군....

   어쩌겠나... 델구 와야지.

   종철 국장님과 몇이서 뒤로 빠꾸 찾으러 갔다는군

 

▽ 하늘에 반달이 반갑다고 웃고 있다.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

 

▽ 07:04 두에기 도착

   꽃지까지 3.2km 남았다.

   빨리가자고 왕대가 분위기를 조성하지만 아무도 동조해 주는 자가 없다.

 

▽ 닭살 부부 광채네....

 

▽ 기념사진 한장박구...

   좌로부터 최익환, 홍철호, 김광채, 김영근, 김종철, 남학장님, 김광채 가족, 박종, 황영수, 이영철

 

▽ 오늘의 주인공이 된 홍철호 가족(?) 개님(???)

   말 잘 듣고 영리하고 지능지수가 어지간한 둔재보다 높다고 자랑이 태산이다.

   누가? 홍철호 님 야그(?)가 바로 이 개님(?)

 

▽ 07:08 꽃지 해변까지의 행군은 시간도 없고 다들 마음이 없으니 어찌할껴?

   왕대 혼자의 힘으로는 그들을 당해낼 수가 없다.

   돌아가자.

   가서 아침도 준비해야 하는거 아닌가?

 

▽ 이길은 아까 지나 왔으니 그리고 小路가 아닌가? 군자는 大路行이라고 우리 대로로 가자꾸나.

 

▽ 대로를 지나 다시그 횟집을 지나

 

▽ 오늘 철호네 개님(?) 완죤 신나는 판이다.

 

▽ 한없이 펼쳐진 바닷가...

   예전의 안면도는 참 못살았던 빈촌중 빈촌이었고 한촌 중 한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바닷가에 펜션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한철 벌어 일년을 먹고도 남을 만한 부촌으로 변하였다.

 

▽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던 대한민국....

   하루 세끼만 먹을 수 있으면 부자라고 생각했던 거지나라 대한민국

   그런 나라기 지금 어떻게 변하였나.

   반세기 전 우리와 경제수준이 비슷했던 아프리카의 가나 또는 인도는 우리와는 게임조차 되지 않는 감히 비교조차할 수 없는 나라들이 되지 않았는가?

 

▽ 어제부터 황선생님과 회장님 무슨 할 얘기가 그리도 많은지...

 

▽ 07:42 펜션에 들렸다 승언 장터로 대하 사러 가자

   최초 계획은 오늘 아침은 안면도의 별미인 게국장을 먹고 산책좀 하다가 백사장에서 대하먹고 헤어지기로 했는데 게국장을 알아보니 값만 비싸고 먹어본 사람들왈 별로라는 얘기에 접기로 한다.

   대신 아침을 대하로 바꾸고 점심은 미식가인 영근 님 제의로 수덕사 산채비빔밥이 별미니 그리고 가자는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승언 어시장으로 가자

 

▽ 영근 님 왈 오는 도중에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자기 가게로 오면 싸게 해줄테니 혹 시간 나면 들르라며 위치를 알켜주었다는 얘기이다.

 

▽ 그래서 찾아간 가게

 

▽ 그런데 그 집 주인 낯이 익다.

   신현상.... 맞아 맞아...

   국민학교 동기동창인데 집이 하도 가난하여 하교 다닐 때 출석 날짜보다 결석 날짜가 많았던 친구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공부를 잘했다.

 

▽ 08:21 마트에 들러 몇 가지 더 사가지고

 

▽ 08:41 좋은 아침 펜션 도착

   이집 주인 김종수....

   경찰로 정년퇴직 후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 친구이다. 

   국민학교 중학교 동기동창이다.

   어렸을 적에 그는 이마와 코 중간에 X자의 흉터가 있었다.

   이마 X 코 = 입이라는 별명이 붙었었다. 

   그런데 그 흉터를 지웠다.

   지운 자욱이 유심히 보면 표가 난다. 

   건강이 좋지 않아 건강을 위한 투자를 많이 하고 있단다.

   오늘도 아침에 헬스장에 들렸다 왔다고 한다.  

 

▽ 08:50 오늘의 아침식사

   게국지보다 맛이 있는 대하요리에 다들 뾰온 가삐린다.

   오늘 요리 누가 했나용???

 

▽ 만약 연금법이 개정되지 않았더라면 이중 몇 몇은 거지가 되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 생각만 해도 아찔했던 순간들....

   하늘의 도움이 없이는 정말 불가능했던 일 들

 

▽ 10:15 출발합시다.

   이현숙 선상님은 안산인가 어딘가에 따님이 살고 있다고 그리고 출발.

   홍철호 님과 박종 선생님은 서울로 올라가겠다고  떼를 쓰는 것을

   오늘 수덕사에서 점심 먹고 백제 문화 축제장 들렀다 대전으로 하여 가자고 꼬시고.....

   그런데 이현숙 선생님 사위랑 따님이 수덕사로 모시러 가겠다나 워째따나...

   홍철호 님 박종 선상님 가진 게 시간밖에 없는데 따라나선다.

 

▽ 11:31 수덕사 주차장 도착

 

▽ 11:38 수덕사

   수덕사에 왔으니 수덕사는 어떤 절인지 공부 좀 하고 가자.

   서해를 향한 차령산맥에는 덕숭산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 북으로는 가야산, 서로는 오서산, 동남간에는 용봉산이 병풍처럼 둘러쌓인 중심부 덕숭산에 바로 수덕사가 자리하고 있다. 이 덕숭산 자락에 많은 고승들을 배출한 한국불교의 선지종찰(禪之宗刹) 수덕사... "백제는 승려와 절과 탑이 많다"라고 중국사서(史書)인 '북사(北史)' , '수서(隨書)', '주서(周書)'에 기록되어 있다.

 

▽ 덕숭산 덕숭총림 수덕사

 

▽ 작품명 횃불

 

□ 수덕사에는 많은 고승들을 배출한 절이지만 경허선사, 만공선사, 일엽스님 그리고 방장 원당 스님을 거론하지 않고 지나갈 수 없다.

그들은 누구인가?

 

▽ 경허선사

   본관은 여산(廬山). 속명은 송동욱(宋東旭), 법호는 경허(鏡虛). 법명은 성우(惺牛). 전라북도 전주 출신. 아버지는 두옥(斗玉)이다. 선(禪)의 생활화·일상화로 근대 한국불교를 중흥시켰다.

   태어난 해에 아버지가 죽었으며, 9세에 과천의 청계사(淸溪寺)로 출가하였다. 계허(桂虛)의 밑에서 5년을 보내고, 1862년(철종 13)부터 한학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그 뒤 계룡산 동학사의 만화(萬化)에게 불교경론을 배웠으며, 9년 동안 제자백가를 익혔다.

   그 뒤 천장암(天藏庵)으로 옮겨 깨달음 뒤의 공부를 계속하였다. 1880년 용암(龍巖)의 법통을 이었으며, 스스로 청허(淸虛)의 11대손, 환성(喚惺)의 7대손이라 밝혔다. 1884년 천장암에서 만공(滿空), 혜월(慧月), 수월(水月) 등의 삼대 제자를 지도하였다.

 

 

▽ 만공선사

   본관은 여산(礪山), 속명은 도암(道巖), 법명은 월면(月面), 법호는 만공(滿空)이다. 1871년(고종 8) 태인 군내면 상일리(현 정읍시 태인면 태흥리)에서 출생하였으며, 13세에 출가하였다.

   충남 서산 천장사에서 태허(泰虛)를 은사로 모시고, 경허(鏡虛, 성우 1849~1912)를 계사(戒師)로 하여 사미계를 받았다. 1895년 온양 봉곡사에서 수행한 후 덕숭산 수덕사와 정혜사·견성암을 거쳐 금강산 유점사(揄占寺)에서 3년을 지냈다. 1905년 덕숭산으로 다시 돌아와 참선하며 수행승들을 가르치고, 1914년 서산 간월도리에 간월암이라는 암자를 세웠다.

   1937년 마곡사(麻谷寺) 주지를 지낼 때 조선총독부 회의실에서 조선 31본산(本山) 주지회의가 열렸는데 총독부가 조선불교의 일본불교화를 주장하자 이에 호통을 치며 공박하였다. 주로 덕숭산에 머물며 선불교의 진흥을 위해 힘쓰다가 1946년 전월사에서 입적했다. 사후에 <만공어록 滿空語錄>이라는 책이 편찬되었다.

   만공선사에 대하여 일부는 괴짜스님이니 땡초니하고 악평도 하고 있으나 그의 행적을 보면 그거 어떤 인물인지를 알고도 남을 것이다.

   그의 일화 몇가지만 소개하자.

   어느 날 제자와 함께 고갯길 산마루를 오르고 있었는데 제자가 다리가 아파 더는 못 가겠다고 하자, 만공이 마침 길가 밭에서 남편과 함께 일하던 아낙네를 와락 끌어안으니 그 남편이 소리를 지르며 좇아오는 바람에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고개를 훌쩍 넘었다. 나중에 제자가 "스님, 왜 그런 짓을 하셨습니까?" 하자, "이 놈아, 네가 다리 아파 못 가겠다고 했지 않느냐? 덕분에 여기까지 다리 아픈 줄도 모르고 오지 않았느냐"했다고 한다.

   이 일화는 스승 경허의 일화라고도 하는데, 계율에 얽매이지 않고 호방하며 마음을 중시한 경허와 만공의 선풍을 대변하는 이야기다.

또 하나의 일화가 있다.

1930년대 말, 만공 스님이 충남 예산의 덕숭산 수덕사에 주석하고 계실 때의 일이었다. 당시 만공 스님을 시봉하고 있던 어린 진성사미(오늘의 수덕사 원담 노스님 이라는 설도 있다)는 어느 날 사하촌(寺下村)의 짓궂은 나뭇꾼들을 따라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재미있는 노래를 가르쳐줄 것이니 따라 부르라는 나뭇꾼의 장난에 속아 시키는 대로 ‘딱따구리노래’를 배우게 되었다.

 

저 산의 딱따구리는

생나무 구멍도 잘 뚫는데

우리집 멍터구리는

뚫린 구멍도 못 뚫는구나.

 

   아직 세상물정을 몰랐던 철없는 진성사미는 이 노랫말에 담긴 뜻을 알 리 없었다. 그래서 진성사미는 나중에 절안을 왔다갔다 하며 구성지게 목청을 올려 이 해괴한 노래를 부르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진성사미가 한창 신이 나서 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마침 만공 스님이 지나가다 이 노래를 듣게 되었다. 스님은 어린 사미를 불러 세웠다.

 

“네가 부른 그 노래, 참 좋은 노래로구나, 잊어버리지 말거라.”

“예, 큰스님.”

 

   진성사미는 큰스님의 칭찬에 신이 났다. 그러던 어느 봄날, 서울에 있는 이왕가(李王家)의 상궁과 나인들이 노스님을 찾아뵙고 법문을 청하였다. 만공 스님은 쾌히 승낙하고 마침 좋은 법문이 있은니 들어보라 하며 진성사미를 불렀다.

 

“네가 부르던 그 딱따구리 노래, 여기서 한 번 불러 보아라.”

 

   많은 여자 손님들 앞에서 느닷없이 딱따구리 노래를 부르라는 노스님의 분부에 어린 진성사미는 그 전에 칭찬받은 적도 있고 해서 멋들어지게 딱따구리 노래를 불러제꼈다.

 

“저 산의 딱따구리는 생나무 구멍도 자알 뚫는데….”

 

   철없는 어린사미가 이 노래를 불러대는 동안 왕궁에서 내려온 청신녀(淸信女)들은 얼굴을 붉히며 어찌할 줄을 모르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 때 만공스님이 한 말씀했다.

 

   “바로 이 노래 속에 인간을 가르치는 만고불력의 직설 핵심 법문이 있소. 마음이 깨끗하고 밝은 사람은 딱따구리 법문에서 많은 것을 얻을 것이나, 마음이 더러운 사람은 이 노래에서 한낱 추악한 잡념을 일으킬 것이오. 원래 참법문은 맑고 아름답고 더럽고 추한 경지를 넘어선 것이오.

   범부중생은 부처와 똑같은 불성을 갖추어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뚫린 부처씨앗이라는 것을 모르는 멍텅구리오. 뚫린 이치을 찾는 것이 바로 불법(佛法)이오. 삼독과 환상의 노예가 된 어리석은 중생들이라 참으로 불쌍한 멍텅구리인 것이오. 진리는 지극히 가까운데 있소. 큰 길은 막힘과 걸림이 없어 원래 훤히 뚫린 것이기 때문에 지극히 가깝고, 결국 이 노래는 뚫린 이치도 제대로 못찾는 딱따구리만도 못한 세상 사람들을 풍자한 훌륭한 법문이 것이오.”

 

   만공 스님의 법문이 끝나자 그제서야 청신녀들은 합장배례했다.

 

 

▽ 일엽스님 

   “아무래도 청춘을 사르지 못하면 생사를 초월한 영원한 청춘을 얻을 길은 없습니다. 중생적인 이 청춘을 나머지 없이 불살라 버려야 늙음과 죽음이 없는 만년 청춘을 얻을 것입니다.”

   베스트셀러 수필집 ‘청춘을 불사르고’의 저자, 일엽스님이 자신의 출가 이유에 대해 한 말이다.

   그녀는 신학문을 섭렵한 여류 문인이요, 선각자였으며 출가 후엔 만공 선사의 법맥을 이은 선승(禪僧)으로 불린다.

   일엽(一葉, 1896∼1971)스님의 본명은 김원주(金元周)다. 그는 평안남도 용강군 삼화면 덕동리에서 아버지 김용겸 목사와 어머니 이마대 사이에 5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그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그는 개신교 목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기독교계 학교를 다니며 자연스럽게 신학문을 접했다. 가정환경은 어려웠으나 이화여자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해 일찍이 서구사상을 익혔다. 귀국한 뒤 여성 운동을 전개하며 한국 최초의 여성주의 잡지 ‘신여자(新女子)’를 창간했다.

   혹자는 춘원 이광수와 이루지 못한 사랑의 주인공으로 알고 있기도 한데 사실은 춘원이 그녀의 간결하고 깨끝한 문체에 반하여 하나밖에 없는 여류작가라는 뜻으로 일엽이란 호를 지어준 것 뿐이란다. 

 

▽ 원당스님

   청산은 뭐고 세속은 또 뭐고?

   걸림없이 살다간 이시대 진정한 풍류스님 방장 원당 스님.

   그는 선의 최고 경지에 나아간 선사로 開悟의 경지와 예술의 세계를 마음껏 드나들며 독특한 세계를 선보인 빼어난 예술가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는 당대의 서예가로 자타가 인정하는 경지에 이르렀으며 국제서도전에서 대상을 수여하기도 했고 의제 허백련, 비공 작욱진, 고암 이응로 등 일세를 풍미했던 예술가들과도 어울렸던 재동이기도 했다.

 

 

▽ 덕숭산 수덕사

   백제사찰인 수덕사의 창건에 관한 정확한 문헌 기록은 현재 남아있지 않으나, 학계에서는 대체적으로 백제 위덕왕(威德王, 554~597) 재위 시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수덕사 경내 옛 절터에서 발견된 백제와당은 백제시대 창건설을 방증할 수 있는 자료이다.

 

▽ 11:44 수덕사 선 미술관

 

▽ 조각품이 눈길을 끈다.

   자연회귀

 

▽ 예술은 인간의 영혼

 

▽ 11:45 수덕사 선 미술관

   사진 촬영 금지라는 팻말이 붙어 사진을 찍지 못했다.

 

▽ 11:54 미술관 한바퀴돌고 밖으로 나오다.

 

▽ 수덕사에 대한 공부를 계속하자

   수덕사의 고려시대 유물로는 충렬왕 34년(1308)에 건축된 대웅전과 통일신라 말기 양식을 모방한 삼층석탑, 수덕사 출토 고려자기, 수덕사 출토 와당 등 있다. 임진왜란으로 대부분의 가람이 소실되었으나 수덕사 대웅전은 다행히 옛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수덕사가 중건된 데에는 하나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백제시대에 창건된 수덕사가 통일신라시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가람은 극히 퇴락이 심해 대중창불사를 하여야 했으나 당시의 스님들은 불사금을 조달하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묘령의 여인이 찾아와서 불사를 돕기 위해 공양주를 하겠다고 자청하였다.

 

▽ 수덕사 대웅전과 삼층석탑 앞에서 박종, 황영수 선상님.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물은 무슨 건물일까?

   학교 다닐 때 우리는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으로 배웠다.

  그런데 그후 안동에 있는 천등산 봉정사의 극락전이 더 오래된 목조건물이라고 수정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두 건물은 중창연대를 기준으로 하여 추측한 수치라서 정확한 연대를 알수 없다.

   헌데 수덕사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때인 1308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정확한 기록에 의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은 수덕사 대웅전이라고 말하고 있다.  국보 49호

 

▽ 단청을 벗겨내고 다시 입힐려고 하는지 서까래가 말끔하다.

 

▽ 전설 얘기를 계속하자.

    이 여인의 미모가 빼어난 지라 수덕각시라는 이름으로 소문이 원근에 퍼지게 되니, 이 여인을 구경하러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중 신라의 대부호요 재상의 아들인 '정혜(定慧)'라는 사람이 청혼을 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이 불사가 원만성취되면 청혼을 받아들이겠다고 하는 여인의 말을 듣고 이 청년은 가산을 보태어 10년 걸릴 불사를 3년 만에 원만히 끝내고 낙성식을 보게 되었다. 낙성식에 대공덕주로서 참석한 이 청년이 수덕각시에게 같이 떠날 것을 독촉하자 '구정물 묻은 옷을 갈아 입을 말미를 주소서'하고 옆방으로 들어간 뒤 기척이 없었다.

   이에 청년이 방문을 열고 들어가려하자 여인은 급히 다른 방으로 사라지려 하였다. 그 모습에 당황한 청년이 여인을 잡으려하는 순간 옆에 있던 바위가 갈라지며 여인은 버선 한짝만 남기고 사라지니, 갑자기 사람도 방문도 없어지고 크게 틈이 벌어진 바위 하나만 나타나 있었다.  

 

▽ 오늘 날씨도 좋고 이영숙, 이영철 선상님 기분 좋지라...

 

이후 그 바위가 갈라진 사이에서는 봄이면 기이하게 버선모양의 버선 꽃이 지금까지 피고 있으며 그로부터 관음보살의 현신이었던 그 여인의 이름이 수덕이었으므로 절 이름을 수덕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여인을 사랑한 정혜라는 청년은 인생 무상함을 느끼고 산마루에 올라가 절을 짓고 그 이름을 정혜사라 하였다고 한다.

 

▽ 잘보고 갑니다.

 

▽ 수덕사는 첫 수학여행지였다.

   중학교 3학년 시절의 사진 한장

 

▽ 12:12  빨리 오지 않고 뭐혀??

   이영철 선생님께서 우리를 식당으로 유도하고 있다.

 

▽ 미식가 영근 님께서 추천하여 데리고 온 산촌 식당

 

▽ 맛이 별미이다.

 

▽ 오늘 중식은 산채 더덕 정식

 

▽ 황선생님 맛이 워뜌?

 

▽ 이런 얘기 저런 야그(?)로 시간을 죽이며

 

▽ 13:10 사위! 거기 워디?

   무릉도원입니다요...

 

▽ 장모 사랑은 사위라고 했던가요.

   누군가 우리 사이 좋은 사이라고 했다네요.

   옆에서 듣고 있던 장모 님 왈

   그럼 우리 사위 좋은 사위고 말고

 

▽ 자 킴치 해보세용.

   요사진 콕 누질르면 엄청 크게 나오걸랑요...

   안 나오면 연추회 카페에 올렸으니 들어가 쿡 찌르면 크게 나와요.

 

▽ 이선생님은 사위 차 얻어 타고 북쪽으로 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공주로 향하다.

 

▽ 13:18 출발

 

▽ 14:43 백제 문화재 금강변 주차장 도착

 

백제문화제는 어떤 축제인가?

   백제문화의 유풍을 되살리고 민족문화의 중흥을 다짐하는 취지에서, 1955년 부여군민이 민간 주도로 부여 부소산성(扶蘇山城)에 제단을 설치하여 백제 3충신인 성충(成忠), 흥수(興首), 계백(階伯)에게 제향하고, 낙화암 아래 백마강(금강)에서 수륙제를 열면서 시작되었다. 1957년 삼충사(三忠祠)를 건립하고 제향하였으며, 1965년 도(道) 주최로 이양된 뒤 규모가 커졌다.

 

한편, 공주시에서도 백제의 전성기인 문주왕(文周王), 삼근왕(三斤王), 동성왕(東城王), 무령왕(武寧王)을 추모하는 제례가 공주향교 집전으로 해마다 열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부여의 백제문화제(당시 명칭:백제대제)가 종합축제화되는 데 자극받아, 1967년부터 백제문화제로 명칭을 바꾸어 종합문화축제로 변경·개최하였다.

 

1974년부터 공주와 부여 외에 대전에서도 함께 거행하였으나, 1979년부터는 대전을 제외하고 공주와 부여에서 홀수년과 짝수년에 번갈아 실시하였다. 2007년부터 양 시, 군에서 개최되던 운영방식을 통합하여 공주와 부여에서 동시에 열렸으며, 2010년에는 세계대백제전이라는 명칭으로 개최되어 세계적인 역사문화축제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백제문화선양위원회가 주최하고 문화관광부, 충청남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등이 후원한다. 연평균 출연인원은 약 1만 2000명이고, 문주왕 웅진성 천도의식 및 행차, 사왕(四王) 추모제, 무령왕 즉위식 등의 행사가 해마다 다양하게 펼쳐진다.

 

백제문화제는 매년 공주시와 부여군이 합동 개최하는 종합예술제 성격의 문화제이다. 해방이후 1955년 부여에서 처음 개최하였다. 백제문화제는 제전의식으로 시작하였으며 해를 거듭하면서 지역의 종합문화 행사로 성장하였다.

 

▽ 회장 님 기분이 워뜌?

   행사는 제전행사, 역사 재현행사, 공연 등으로 나뉘어 진행하는데

   제전행사는

      - 백제혼불채화 : 천등산 채화단에서 백제문화제 개막에 맞춰 혼불 채화에 대한 고천제를 지내고 태양열을 볼록렌즈로 받아 홰에 점화하여 부여 금성산 성화대로 봉송

      - 팔충제 : 백제말 팔충신과 황산벌 전투의 오천결사대의 넋을 추모하는 제전의식

      - 삼산제 : 사비백제 6대왕 123년간 국가를 수호하여 온 삼산(일산, 오산,부산) 신령에게 백제문화제 개막을 알리고 화합과 발전을 기원하는 제전의식

      - 백제대왕제 : 사비천도 이후 6대왕의 덕을 추모하는 제전의식

      - 삼충제 : 백제말 삼충신(성충, 흥수, 계백)의 구국충절을 추모하는 제전의식

      - 궁녀제 : 백제말 낙화암에서 몸을 던진 궁녀를 추모하는 제전의식

      - 백제오천결사대 충혼제 : 백제말 황산벌 전투에서 싸운 무명 오천결사대의 넋을 위령하는 제전의식

 

역사재현행사는

      - 백제 성왕 사비정도축제 : 백제 제26대 성왕이 서기 538년 백제중흥을 위해 공주 웅진성에서 부여 사비성으로 천도하고 이를 선왕과 천지신명께 알리는 제전의식

      - 역사문화행렬 : 백제 당시 왕 행렬, 문화생활 등을 거리축제로 재현 구성한 행진이며 고증을 바탕으로 축제요소를 가미한 행사

      - 경축사 신접견 행사 재현 : 백제가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했을 때 국내외 사신들이 백제사비정도를 경축하는 장면을 재현

      - 백제무사선발대회 : 백제 당시 전통무예를 수련하는 훈련장을 재현하고 백제무사 선발대회를 개최 

 

▽ 공연은

   - 전통민속행사국제자매도시 민속공연 : 외국 자매도시 및 백제당시 문물 교류국가의 민속을 초청공연, 국내자매도시 및 백제문화권 자치단체 민속공연

   - 부여전통민속공연 : 내지리 단잡기, 산유화가,은산별신제,용정리호상놀이 등 

 

▽ 16:33 빅종 선생님과 황선생님 대전역으로

 

▽ 대전시내를 지나

 

▽ 17:10 계룡시 엄사리

 

▽ 연료를 충만하고

 

▽ 17:40 집도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