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워

Keep smiling~ 2007. 9. 27. 14:27
루이뷔통 CEO 베르나르 아르노
욕망의 제국 만든 재산 215억달러의 사나이

이런 여성들에게 루이뷔통, 크리스찬 디올, 지방시, 셀린느, 로에베, 라크르와, 펜디, 푸치, 겔랑, 겐조, 쇼메 같은 브랜드를 얘기하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처음 몇 개 브랜드 이름을 듣자마자 가슴이 울렁거릴 사람이 열에 아홉은 될 것이다. 이들 브랜드를 한 손에 쥐고 흔드는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베르나르 아르노(57) LVMH(루이뷔통 모에 헤네시) 그룹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다. ‘명품의 제왕’, ‘세계 패션계의 교황’이라 불릴 만하다. 아르노의 LVMH는 명품 제품에서 화장품, 주류까지 폭넓게 사업을 펼치고 있다. 루이뷔통과 로에베의 가방 가죽제품 액세서리, 크리스찬 디올과 지방시 브랜드의 향수와 화장품, 모에&샹동 샴페인, 헤네시와 하인즈 코냑 등이 그것이다.

아르노는 타고난 마케팅 능력과 혁신적 디자인 등을 잘 결합해 명품 비즈니스계에 뛰어든 지 20년 만에 거대한 왕국을 건설했다. 현재 LVMH와 크리스찬 디올 지분 51%를 갖고 있으며 양 회사의 회장 겸 CEO를 맡고 있다. 경제 경영 월간지인 미국 포브스지 작년 3월호에 따르면 그는 총 215억 달러의 자산을 소유한 세계 7대 부호이기도 하다.

아르노는 프랑스 북부 루베 지방에서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프랑스 최고의 공대인 에콜 폴리테크니크를 졸업하고 가족 비즈니스였던 건축, 부동산 회사 페레-사비넬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기 시작했다. 좋은 학벌에 유복한 집안 배경을 가졌으니 프랑스에서 편안히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1981년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서자 돌연 미국행을 택했다. 아무래도 자유분방한 그의 기질 때문이었던 것 같다. 미국에선 플로리다 팜비치에서 콘도미니엄을 개발해 돈도 많이 벌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프랑스 사회주의 정부가 경제 정책 방향을 보수적으로 바꾸자 그는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당시 그는 뉴욕 교외에 지중해 스타일의 집을 짓고 살았는데 이 집을 이웃이던 미국의 또 다른 부호, 존 클루게에게 팔았다. 클루게는 집을 사자마자 전망을 바꾼다며 집을 엄청나게 뜯어고쳤다. 그가 만든 멋진 집이 사라졌지만 여기서 교훈을 하나 얻었다고 한다. 그는 1997년 포브스지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일을 떠올리며 “어떤 일을 해야 할 때는 바로 시작하는 미국인의 태도였다. 프랑스에선 아이디어가 너무 많지만 실행에 옮겨지는 것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명품 브랜드를 집어삼키는 그의 기업 사냥은 1984년 크리스찬 디올 향수 부문을 인수하면서 시작됐다. 크리스찬 디올의 모그룹인 부삭(Boussac)을 인수하면서 크리스찬 디올의 모든 경영권을 넘겨받을 수 있었지만 그는 가장 유망한 향수 부문만 따로 떼어내 인수하는 용의주도함을 보였다. 마침 프랑스 투자회사 라자드의 파트너인 안톤 베른하임과의 친분이 큰 도움이 됐다. 베른하임은 아르노가 부삭을 인수할 수 있도록 자금조달을 주선해 줬다. 이후 바로 크리스찬 라크르와, 셀린느 등으로 브랜드를 확장해 나갔다.

부삭을 인수하면서 불가피하게 떠안은 기저귀 사업과 직물 분야 사업은 곧 정리했다. 여기서 4억 달러의 현금을 챙길 수 있었다. 이 자금으로 그는 1989년 LVMH 그룹의 지분 24%를 18억 달러에 사들였다. 하지만 루이뷔통의 전 회장이었던 앙리 라카미르와 경영권을 놓고 법정에까지 가는 경쟁을 벌였다. 결국 라카미르를 밀어내고 아르노가 회장에 올랐다. 가족 경영 체제로 운영되던 루이뷔통을 접수한 것이다.

이후 직원들을 정리해고하면서 아르노에겐 잔인한 경영인이란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만족을 모르는 기업 사냥 욕심을 가진 이익만 좇는 경영인이란 평판을 얻었다. 당시 한 해고자는 그를 “침략자이자 프랑스의 도널드 트럼프(1990년 비즈니스위크지)”라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캐시미어 정장을 입은 늑대’이란 비아냥거림도 이때 나왔다.

하지만 그가 명품 왕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비결은 과감한 미국식 합병과 이를 통한 시너지 창출에 있었다는 긍정적 평가도 이어지고 있다. 당시 유럽 명품 브랜드들은 가족 소유와 경영으로 한계를 보여 왔다. 아르노는 어려움을 겪고 있던 브랜드에 미국식 경영 기법을 도입했다. 그동안 명품 브랜드들은 유럽 상류층들을 상대로 맞춤 제작을 해 왔다. 매장도 상류층들이 사는 주거지 주변의 작은 매장이 중심이었다. 아르노는 여기에서 탈피, 대형 백화점 매장과 면세점으로 명품의 유통망을 넓혔다. 상류층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도 돈만 들고 오면 살 수 있게 했다. 명품의 대중화에서 기회를 엿본 것이다.

1990년대 아르노는 수십 개의 명품 메이커들을 사들여 일명 ‘욕망의 제국’을 형성한다. 유럽과 북미는 물론 아시아와 남미에 이르기까지 그의 명성은 자자해졌다. 태그호이어라는 시계 브랜드도 인수했고 세포라라는 화장품 브랜드, 아트 앤드 옥션이란 잡지까지 창간했다. 명품 산업의 수직계열화를 일궈낸 것이다. 최근에는 영화 007 시리즈의 본드카로 주가를 높인 영국의 고급차 제조회사인 애스턴 마틴을 인수할 것이란 소식도 나왔다.

당시 경쟁 업체들은 그의 회사가 너무 거대해지고 있다며 하나의 브랜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들이 많았다. 그러나 웬걸? 얼마 지나지 않아 아르노의 전략을 모방하는 회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의 구치가 그랬고 스위스 카르티에도 그랬다. 그러나 아르노는 2002년 워싱턴포스트와의 회견에서 “그들이 브랜드와 사업을 확대하는 전략이 된다고 보고 똑같이 따라 하려 했지만 실적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문제를 과소평가했다”고 회고했다.

물론 아르노도 예외는 아니었다. 확장 전략이 단기적으로는 수익과 현금을 창출하는데 실패했다. 2000년 LVMH의 영업이익은 26.6% 증가했지만 이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수치였다. 1995년 25%에 달하던 영업이익률이 2000년에 17%로 떨어진 것. 결국 아르노도 인수 확장 전략을 중지하고 수익성 제고에 나섰다. 필립스 경매소도 이때 팔아야 했다.

이처럼 아르노도 순탄한 길만 걸었던 것은 아니다. 2004년에 또 시련이 찾아왔다. 2001년 9·11 뉴욕 테러 이후 세계 각지의 여행객이 줄어들면서 명품 디자이너 브랜드 판매량도 함께 감소했다. 국가별로 나눴을 때 2001년 LVMH 매출의 40%를 차지했던 일본이 2003년 이후 경기 후퇴기에 다시 접어들면서 어려움이 커졌다. 그러나 아르노는 세계 경제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고 명품을 수요할 만한 일종의 부르주아, 중산층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명품 산업도 결국은 전망이 밝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아르노는 또 사업과 예술을 잘 조화한 경영자로 유명하다. 그는 창의적 에너지를 높이려면 기업 매니저들이 예술을 사랑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루이뷔통에 아이디어맨인 마크 제이콥스를 투입했다. 1980년대의 루이뷔통은 품질은 탁월하지만 어머니 세대나 들고 다니는 브랜드로 여겨지고 있었다. 아르노는 마크 제이콥스를 루이뷔통에 데려와 이런 브랜드 이미지를 완전히 탈색시키는 데 성공했다. 아르노의 이런 기질은 아마추어 예술가로서의 배경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어릴 적 이미 피아니스트로서 자질이 없다고 결론 내렸지만 어쨌든 그는 클래시컬하게 교육받고 자랐다. 쇼팽과 리스트, 슈만을 연습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니 말이다.

작년 10월에는 아르노가 파리에 현대예술관을 건립하겠다고 발표해 화제가 됐다. 전시관과 강당, 내부 정원을 갖출 예정이다. 이 아트센터는 스페인 빌바오에 구겐하임 박물관을 설계한 건축가 프랑스 게리가 맡을 예정이다. 그는 2010년에는 ‘루이뷔통 창의성 재단’도 설립할 복안을 갖고 있다. 아르노는 “이 재단은 문화의 영향력을 더 넓게 전파하고 프랑스의 영향력도 확대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아르노는 그러나 아무리 창의적인 경영자라도 성과가 없으면 가차 없이 자른다. 1995년 아르노는 크리스찬 디올 향수의 대표와 지방시의 톱 매니저를 해임하고 패션 업계가 아닌 미국 소비자 브랜드에서 온 경영자를 그 자리에 앉히기도 했다.

집안을 보면 부인 헬렌 메시어와의 사이에 5명의 아이들을 두고 있다. 이 중 딸 델핀 아르노가 2년 전부터 LVMH 이사로 경영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또 로에베의 이사이며 크리스찬 디올 가죽제품을 총괄 책임지고 있다. 아들 안톤 아르노도 2년간 마케팅과 광고 파트에서 일하며 아버지를 돕고 있다. 그는 인시아드를 나온 엘리트다. 똑똑한 아버지 밑에 적지 않은 자식들이 있어 분란만 없다면 후계 구도도 문제는 없을 것 같다. 한마디로 행복한 제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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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책읽다가 이런사람이 있단걸;; 이제서야 ㅋㅋ알았네요 ㅎ

무서운 사람 ㅋ

저의 짧은 견해로는 젤 잘한게 마크제이콥스 투입한거 ㅎㅎ

출처 : 베스트 드레서
글쓴이 : freetempo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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