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 픽션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20. 4. 23. 19:47

 

 

 

 

 

 

 

 

작년 10월1일부터 지난 2월 28일까지 4개월동안 대구에 있는 한국민들레장애인협회에서는 '제22회민들레문학상 공모전'을 개최했다. 참새가 어찌 방앗간을 지나치겠는가! 문경아제도 단편소설, '남간재 아리랑' 을 투고 공모전에 응모했다.

 

3월20일 심사결과가 발표된다고 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많이 늦어졌다며 엊그제 심사결과가 발표되었다. 전화로 개별통보된 뒤 카페에 떴다. 문경아제의 소설, '남간재 아리랑'이 대상 다음인 가작으로 당선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시와 동시는 스승이신 선배작가의 추천으로 등단할 수 있었지만 소설만은 홀로서기를 하고싶었다. 격이 높은 문학사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에 당선되어 당당히 등단하고 싶었다.

사회적 기부로 운영되는 한국민들레장애인협회는 재정이 열악하다고 했다. 해서 당선자에게 주어지는 상금도 넉넉하지 못하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만족한다.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활을 하는 가난한 사회적 기업에서 주최한 공모전에 입상하여 소설가의 꿈을 이루었음을.

축하드립니다. 제 일처럼 기쁘네요.
순하고 무던하며 정겨운 글 많이 남기셔요.
블로그를 개설하고 다가오신 블친님이 양평땅 강촌님과 땅끝마을 해남땅 풍경소리님이었습니다.
축하해주셔서 진정 고맙습니다. 가까이 사신다면 시상식날 자리를 함께 하고 싶습니다만 대구와 해남은 너무 멀지요.
밤이 깊었습니다.
블친 풍경소리님,
이밤 편히 쉬세요.
경하드립니다.
더 많이 좋은 작품 기대합니다.





안녕하세요?


┃▶◀4월 29일은 88년 전 상해 홍구공원에서 윤봉길 의사가 단행한 역사적 의거일▶◀┃


윤봉길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일찍 교포 김해산(金海山)의 집에서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 김구(金九) 단장과 함께 아침식사를 했다. 그는 식사가 끝난 후
수통으로 위장된 폭탄 1개와 도시락으로 위장된 폭탄 1개를 김구 단장으로부터 받아
하나는 어깨에 메고 하나는 손에 들었다.

그리고 윤봉길 의사는 자기가 찬 새 시계와 김구 선생이 찬 헌 시계를 바꾸어 갖고,
사용하고 남은 의거 준비금을 김구 단장에게 돌려주었다.

드디어 역사적인 11시 50분경, 윤봉길 의사는 도시락으로 된 자살용 폭탄을 땅에 내려놓고
어깨에 걸메고 있던 수통 형 폭탄의 덮개를 벗겨 가죽끈이 붙은 그대로 오른손에 쥐고 왼손으로
안전핀을 빼면서 앞사람을 헤치고 2미터 가량 전진하여 17미터 내외 떨어진 중앙 단상 위로
힘껏 투척하였다.

상해침략의 원흉인 총사령관 육군대장 시라카와(白川義則)는 전신에 24개처의 탄편을 맞아
신음하다 5월 24일 사망하고, 해군총사령관인 제3함대 사령관인 해군중장 노무라(野村吉三郞)는
실명하였으며 제9사단장 육군중장 우에다(植田謙吉)는 다리를 절단하였다.
그리고 주중공사 시게미쓰(重光葵)는 다리가 부러져 절뚝발이가 되었고
거류민단장이며 상해사변의 민간 원흉인 카와바다(河端貞次)는 창자가 끊어져 즉사하였다.

당시 중국 장개석 총통은 "중국군 10면 명이 하지 못할 위대한 의거"였다고 감탄했습니다.

윤봉길 의사 의거 88주년을 맞아 우리는 다시 한 번 그날을 기억하고 독립투사들의 숭고한
애국 정신을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선조들의 숨결어린 문화재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은 애국심입니다
존경하는 헤리티지 김종문 선배님,
우리는 언제부턴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제와 맞서 싸우시다 순국하신 애국열사, 의사들의 고귀한 희생을 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선배님,
밤이 깊었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저도 그만 쉬어야겠습니다.
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