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물따라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20. 8. 27. 16:27

 

 

 

 

 

 

 

 

 

며칠 전 시내(市內)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길에 휴천동 성당에 들려봤다. 주일도 아닌 평일이었다. 성당(聖堂)은 하느님이 머무시는 거룩한 곳, 성소(聖所)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아멘" 성호를 그은 뒤 두 손을 합장하고 고개를 숙였다. 참으로 오랜만에 드리는 기도였다.
성당에 안나 간지가 까마득하다. 그래도 가물에 콩 나듯 성당을 지날 때엔 간혹 들린다.
기도 양식이 맞지 않을지라도 맘 쓰지 않는다. 하느님께서 받아들이시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기도하는 순간 나는 허공에 있다.
하느님, 탕자의 기도를 받아주소서.
휴천동 성당의 길주소는 영주시 지천로 194번 길이다.


안녕하세요?

최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진인(塵人) 조은산'이란 사람이 올린
'시무 7조'가 화제가 되고 있다는데요 '임금에게 아뢰어 청한다'는 뜻의
주청(奏請)이라는 말을 제목에 썼습니다.

시무(時務)란 당대에 중요하게 다뤄야 할 시급한 일을 뜻합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란 뜻의 '사의(事宜)'와 비슷한 말이지요.

시무의 역사는 신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신라시대 최치원이 진성여왕에게 '시무 10조'를 올린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 내용은 남아있지 않고, 그의 증손인 최승로가 고려 초
불교계를 비판하는 '시무 28조'를 왕에게 올린 것이 지금까지 전해져
옵니다.

1583년 율곡 이이는 선조에게 10만 군병을 양성해야 한다고 충언했습니다.
율곡은 함경도를 침공한 여진족을 물리친 뒤 "앞으로 10년 내에 나라가
무너지는 큰 화가 있을 것이니 10만 병졸을 미리 양성해 한양 도성에
2만명, 각 도에 1만명씩 두고 변란이 일어나면 그 모두를 합쳐 나라를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십만양병설'을 담은 상소가 '시무 6조'지요
율곡은 상소를 올린 이듬해 숨졌고 선조는 이 진언을 무시했습니다.
그로부터 9년 뒤 1592년 임진왜란이 터져 온 나라가 피바다가 됐습니다.

이처럼 시무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신하가 왕에게
올리는 소(疏)의 일종이었습니다.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 온 '시무 7조'는 문체야 왕조시대 임금에게
올리는 극진한 경어투이지만 내용은 정권의 무능과 부패, 내로남불,
혹세무민을 일곱 가지로 나눠 낱낱이 질타하고 있답니다.
청와대는 이를 게시판에서 숨겼다가 비판이 일자 공개로 전환했지요.

◀ 선조들의 숨결어린 문화재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은 애국심입니다"
예, 존경하는 헤리티지 김종문 선배님!
건강하시지요?
이땅의 문화재가 있는 곳이라면 그 어느 곳이든 선배님이 계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요. 정치는 입이 아닌 몸으로 하는 것이지요. 뜨거운 가슴으로 하는 것이 정치이지요.
댓글부대 앞세워 하는 게 정치가 아니지요. 쓴소리도 소화시켜야 하는 게 정치인의 덕목이지요. 내로남불이란 네글자 속엔 오늘의 정치현실이 오롯이 배어있는 것 같습니다.
선배님, 환절기 감기조심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컵라면에 물을 붓고 기다리는 3분 동안
눈 둘 곳 찾지 못한 편의점 창가에서
삼각김밥 풀어 보는 낭만도 이제는 코로나의
위세에 먼 이야기가 되려합니다.

고운님!
평안하신지요?
세태흐름이 두려움과 절망을 안겨주지만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는
열정으로 우린 삶을 이어가야 하겠지요.

올리신 작품 앞에 눈길 멈춰 봅니다
아름답고 멋지다는 생각입니다.
늘,
평강과 동행하시길 빕니다.
사랑합니다.

2020 9월에 초희드림
어수선한 시절이 가슴을 촉촉히 적셔주던 그 귀중한 낭만을 뺏어갔습니다.
그러니 어쩐답니까? 힘은 들지만 우리 모두 지혜를 모아 슬기롭게 대처해야지요.
이젠 아침저녁으론 선선합니다. 풀벌레울음소리도 들립니다.
고운님! 환절기 감기조심하세요.
평화를 빕니다.

* ♥ *''밀양 백중놀이를 보며:"

안녕하세요?

태풍피해는 없으셨는지요?

대개 음력 7월 15일이 백중이어서 올 해는 지난 9월 2일이었습니다.

백중의 유래에 대해서는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불가의 중들이 재를 올리고 불공을 드리는 큰 명절이지요.
《형초세시기(荊楚歲時 記)》에 이날은 승려, 도사, 속인들이 모두 분(盆)을 만들어 절에 바친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 ♥ *'농가에서는 백중날 머슴들과 일 꾼들에게 돈과 휴가를 주어 즐겁게 놀도록 하였는데요,
이것을 '백중돈 탄다' 고 했답니다.
백중날은 농사에 시달렸던 머 슴이나 일꾼들이 마냥 즐길 수 있는 날이지요.
지역에 따라 이 날 농신제(農神祭)등 집단놀이가 행해지는데 이를 '백중놀이'라고 했습니다.

▶ㅣ◀이러한 백중날 세시풍속은 이제 전설로 남아 그 원형을 찾기 어렵게 됐는데요,
노인들의 백중 추억도 그 분들이 돌아가시면 영원한 전설로 남게 될 것임에 틀립없습니다.

▶이른바 머슴들이 사라지면서 백중놀이도 사라졌는데요, 다행히 '밀양백중놀이'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지금도 머슴놀이가 전승되고 있습니다.

◀ 선조들의 숨결어린 문화재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은 애국심입니다"
존경하는 헤리티지 김종문 선배님,
오늘도 선배님께 우리네 조상들께서 남기신 습속 잘배웠습니다.
그래요. '단오'와 '백중' 모두가 이젠 추억속의 명절이 되어버렸지요. 아는 사람들만 아는, 그런 명절이 되어버렸지요.
선배님, 농경문화가 낳은 아름다운 풍속들이 하나 둘 알게 모르게 사라져갑니다. 서글픈 일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