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습작-끄적끄적

신류 2010. 2. 20. 10:30

 

지금 구상중인 이야기가 있는데, 어느정도 진행되다가 난관에 부딪쳐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야기란것도 자신이 알고 있거나 경험 한 만큼만 쥐어짜지는 것 같다. 이럴 때는 풍부하지 못한 내 상상력이 아쉬울 따름이다.  

 

앞으로는 연재형식으로 '굿모닝 예삐'를 계속 진행시킬 여건이 안 될 것 같다.

우선은 나의 천성적인 게으름 때문이고 한편으로는 이런 작업이 별 의미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래서 총 8화 분량으로 예정되었던 내용을 그림 없이 텍스트로만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마무리 지을 까 한다.


 

 


잠깐의 싸늘한 정적이 흐르고 난 뒤...

화가 치밀어 오른 도끼눈 행보관이 젖먹이 강아지 까망이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소각장 쪽 언덕을 오른다. 까망이는 마치 가방이나 물건처럼 행보관의 손에 매달려 아무렇게나 흔들린다.

언덕을 오르던 행보관이 2.4종 창고 뒤 2m가 넘는 높이의 절개지 끝에 쪼그리고 앉더니 다시 까망이를 얼굴 가까이 가져와서는 노려본다.


"이놈이, 주인도 몰라보고 손가락을 물어~!"


말을 알아들을 리 없는 까망이는 여전히 딴청이다. 그러자 도끼눈이 휙~ 하고 까망이를 2m가 넘는 언덕아래의 허공을 향해 던져버린다.


"깨갱~"


털썩하고 언덕아래 땅바닥에 떨어진 까망이가 비틀거리며 힘겹게 몸을 일으킨다. 그러자 행보관이 언덕을 내려오더니 까망이의 목덜미를 잡고는 다시 언덕을 오른다. 이리저리 몸을 바둥거리는 까망이. 그리고는 절개지 끝에서(이번에는 선채로) 다시금 까망이를 언덕 아래로 내던진다.

털썩~ 이번에는 까망이가 연신 비명을 내 지른다


"깨갱~깨갱~ 깽~~"


하지만 땅바닥에서 몸만 부르르 떨 뿐 좀 전처럼 몸을 일으켜 세우진 못한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고만 있는 예삐와 그 새끼들...

다시 행보관이 언덕을 내려와서 까망이의 목덜미를 붙잡고는 언덕을 오른다. 축 늘어진 까망이.

기어이 숨통을 끊어놓을 작정인가보다.

행보관이 상기된(아니,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 한 번 까망이를 언덕 아래로 내던진다.

털썩하는 둔탁한 소리와 동시에 '깽!'하는 짧은 비명이 들리는가 싶더니 까망이에게서는 더 이상의 비명도, 더 이상의 떨림도 감지되지 않았다.


언덕을 내려온 짜리몽당한 행보관이 지퍼달린 군화발로 까망이를 툭툭 건드려 본다. 아직 희미하게 숨은 붙어있지만 몸은 꿈쩍도 않는다. 행보관이 취사장 쪽을 바라보더니 멍하니 서 있는 김광동병장을 보고 말한다.


"광동아, 이거 갖고 가서 소각장 뒤에 묻어라! 그라고 무덤 앞에 '주인도 몰라보는 배은망덕한 개새끼'라고 써서 비석도 하나 세워줘라~ 알것냐?"


행보관이 넋이 빠진 표정을 하고 있는 예삐와 그 새끼들을 한번 쓱 쳐다보더니 언덕이 아닌 계단을 올라 중대막사 쪽으로 사라진다.

김광동병장이 까망이에게로 다가왔을 때까지만 해도 미약하게나마 숨은 붙어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숨소리마저 잦아들었다고 한다.

세상에 나와 5주가 조금 넘는 시간을 보낸 까망이의 짧은 생은 그렇게 끝이 났다.


난 예삐랑 그 귀여운 새끼들과 장난칠 요량으로 작업장에서 복귀했고, 5마리 새끼 강아지 중에 아침까지만 해도 보였던 까망이가 보이지 않음을 이상히 여겨 숙영지 작업사병들에게 물어본 후 박상민과 김성호상병에게서 이런 사정을 전해 듣게 되었던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나자 내가 직접 눈앞에서 그 광경을 목격한 것처럼 장면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_*_*_*_*_*_*_*_*_


소각장 뒤편 양지바른 곳에는 아무런 표식 없이 동그란 봉분만 덩그러니 놓인 작은 무덤이 하나 만들어졌고,

 (그날 밤, 거처에서 예삐는 제 새끼들의 발톱과 이빨을 모조리 갈아 없애거나 부러뜨려버렸다고 한다. 오금이 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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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음날, 예삐는 내색하지 않고 평소와 다름없이 아침을 맞았고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했다.

미련하거나 멍청한 것일까

그 속내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제 새끼의 죽음을 슬퍼하거나 애통해 하지도 않고 금새 잊어버린 듯 한 것이 영락없는 미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행보관이 부를라치면 꼬리를 흔들어 쫄랑거리며 달려오는 것이 아무리 짐승이라지만 보기에도 한심하고 어이가 없었다.

까망이의 죽음을 벌써 잊은 걸까...? 중대에서 버려지는 짬밥이나 얻어먹고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는 건가...? 그렇다면 세상을 너무 정확하게 알아버린 예삐....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예삐도 행보관을 몸서리쳐질 정도로 두려워하고 있고 멀리서 행보관의 목소리만 들려도 꼬리를 내리고 실실 피하거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을...

왜 안 그렇겠나. 대낮에, 그것도 눈앞에서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던 자신의 금쪽같은 새끼가 무참히 척살을 당했는데

그런 예삐의 모습을 보고 있는 행보관의 뇌리에는 자신이 까망이를 죽였다는 기억 따위는 어느새 지워져 버리고 없는 것 같았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행보관과 예삐를 비롯한 중대 전체는 다시금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간 듯 보였다.

바로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

남아있는 네 마리 새끼들은 이제 젖을 다 떼고 짬밥을 받아먹으며 저마다 영내를 활보하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고 까망이의 작은 무덤봉분도 비바람에 깎여 자세히 살피지 않고는 까망이의 무덤이 어딘지 분간하기조차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사실, 소운동장 울타리를 넘어 소각장으로 굴러 온 공을 주우러 오는 사병들이나, 작업을 나가기 위해 무덤 곁을 지나는 사병들도 무심코 지나치기 일쑤였다.


어느 야심한 새벽. 나는 불침번근무를 서던 중이었는데, 취사장 쪽에서 인기척 같은 게 들려서 가 보니 취사장 옆 공터에서 예삐가 중대에 거주하는 모든 강아지들을 불러모아놓고 무슨 말을 주고 받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내가 지켜보고 있음을 알아차린 예삐랑 강아지들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각자의 거처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는 우리가 미물이라고 생각하는 짐승이나 동물들도 어쩌면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게 의사소통을 하고 감정을 전달하는 게 아닌가 생각 되면서 대체 그들의 집회에서는 어떤 말들이 오고 갔을까? 궁금하기도 하였다.


그 일이 있은 후 3일동안 예삐가 사라지는 일이 있었다.

며칠 동안 예삐가 보이지 않았지만 이를 알아차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강아지들 밥을 담당하던 사병은 상병휴가를 나갔고 중대원들은 고사목 제거작업으로 눈코뜰 새 없이 바빴기 때문이다.


예삐처럼 몸집이 작은 강아지는 취사장 뒤편 철조망 밑으로 나 있는 배수구(하수구)를 통해 밖으로 얼마든지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예삐는 정확히 3일 후에 다시 돌아왔다.

(이 부분은 후에 따로 떼어서 '예삐의 여행'이라는 제목의 짧은 이야기로 만들 예정이었는데 일이 틀어져버렸다. 예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철책 밖 바깥세상으로 자신만의 여행을 떠나게 된다. 어쩌면 살면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3일간의 세상나들이. 세상을 두루 담을 수 있는 지도를 새로 만든다며 전국을 떠돌고 있는 배낭여행자와 함께 밤하늘 아래서 야영을 하기도 하고 논두렁을 따라 고속도로 너머 읍내로 나가 떠돌이 강아지들을 만나 세상소식도 전해 듣고,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보리밭의 푸른 파도며, 가까이 있는 바닷가의 짠 내음까지 두루두루 눈에 담아올 수 있는 여행이었다.)


까망이 일이 있고 처음 얼마 동안은 미안한 기색이 있었던지 예삐를 각별히 대하는듯한 행보관이었다. 하지만 이런 모습도 예삐의 이상한 행동과 함께 얼마 지나지 않아 끝이 나 버리고 만다.


행보관은 자신의 하얀색 다마스를 비좁은 중대막사 앞이 아닌 지금은 기자재창고로 쓰고 있는 언덕 위 구막사 앞 공터 나무그늘아래에다 항상 주차 해 놓는다.

이유기가 지나 새끼들로부터 자유로워진 예삐는 여유를 즐기려는 듯 한적한 행보관 차 아래에서 자주 목격이 되었다. 아직 한여름도 아닌데 벌써 더위를 피해 시원한 그늘을 찾는 것일까

어쨌건 행보관 다마스 밑에서 기어 나오는 예삐의 모습이 중대원들에게, 특히 차에 오르려는 행보관에게 자주 목격되곤 하였는데, 그럴 때마다 행보관은 귀찮다는 듯이 발로 예삐를 걷어 내거나 멀찍이 내쫓아버리곤 하였다.

한번은 다마스 뒷바퀴에 예삐가 깔릴 뻔 한일도 있었는데 그 이후로는 행보관이 예삐를 차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게 했다.

하지만 예삐는 행보관의 눈을 피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다마스 밑으로 기어들어가곤 하는 것이었다.

그늘나무아래에 주차 된  다마스 밑이 예삐에게는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쉴 수 있는 명당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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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거진 끝나 갈 무렵. 그날도 행보관은 퇴근을 하려고 구막사 언덕에 올라섰다.

막 차에 오르려던 행보관이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차 밑을 살피더니 예삐를 발견하고는 화를 내며 예삐를 내쫓는다. 놀란 예삐가 꼬리를 내린 체 부리나케 차 밖으로 뛰쳐나오고 열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다마스 쪽을 돌아본다.

차에 시동을 건 행보관이 다마스를 몰고 언덕길을 내려간다. 중대막사 옆을 지나고... 언덕아래 커버길에 가까웠을 때 다마스의 타이어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터져버린다.

순간 브레이크를 밟던 행보관의 안색이 급변한다.


"어, 차가 왜이래~"


다마스의 브레이크를 수차례 밟던 행보관의 말이 체 끝나기도 전에 행보관을 태운 다마스는 커브길 정면에 있는 BOQ현관기둥을 그대로 들이받고 나서야 멈추어 선다.

쿵! 하는 충돌음에 중대에 있던 사병들이 하나 둘 내다보다가 황급히 BOQ쪽으로 달려온다.

핸들에 얼굴을 꼬라박은 채 엎드려 있던 행보관이 가까스로 힘겹게 얼굴을 치켜든다. 머리숱이 없어 휑한 이마는 피범벅이 되어있고 이내 다시 정신을 잃고 핸들위로 고개를  떨구어버린다.


언덕 위, 구막사 앞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예삐가 그제서야 입 안에 머금었던 피와 침이 뒤섞인 핏물을 토해낸다.

예삐의 이빨은 모조리 부러져있고 잇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연신 피가 흐르고 있다.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는 언덕아래의 흰색 다마스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던 예삐가 묘한 미소를 머금으며 씩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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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한 행보관은 다행히 목숨은 건질 수 있었고 다마스는 폐기처분 되었다.

이빨과 잇몸이 모두 망가진 예삐는 먹이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아니, 김광동병장이 몰래 만들어 준 죽 같은 건 먹을 수 있을 텐데도 일부러 마다하는 듯 보였다) 어린 까망이가 세상을 살다 간 5주 정도를 시름시름 앓다가 소각장 뒤편 언덕 까망이의 무덤 옆에 나란히 묻혔다.

 

 

 

 

 


 
 
 

웹툰습작-끄적끄적

신류 2009. 11. 7. 06:45

 

 

 

 

 

 

 

 

 

 

 
 
 

영화이야기

신류 2009. 10. 30. 09:58

2006년의 '카','게드전기'

2007년의 '천년여우 여우비', '철콘 근그리트', '시간을 달리는 소녀', '라따뚜이'

2008년의 '페르세폴리스','월-E','벼랑위의 포뇨', '바시르와 왈츠를'

그리고 올 해 개봉 한 '코렐라인 비밀의 문'과 '업', '썸머 워즈'까지...

 

해마다 성수기나 여름시즌이면 극장에서 장편애니메이션을 몇 편 정도는 만날 수 있다는 게 애니메이션을 업으로 삼는 나에게는 반가운 일임에 틀림이 없지만...

이 땅에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도 극장에서 자주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런 아쉬운 마음은 잠시 뒤로하고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2008년에 국내에서 개봉한 '갓파 쿠와 여름방학을'이란 애니메이션에 관한 이야기다.

소장하고픈 마음에 DVD마저 질러버리게 만들었던 작품으로,작년 여름에 썼던 글을 그대로 옮겨적어본다.

 

 

갓파 라는 이국의 낯선 캐릭터에다 평범한 그림체, 그리고 138분이라는 애니메이션으로서는 좀 부담스러운 러닝타임까지...
처음에 포스터를 보고서는 여름 한 시즌을 겨냥한 그저그런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이 또 한 편 나왔구나 생각했었고 그닥 보고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본 이 애니메이션은 여러모로 흐뭇한 미소와 감탄을 자아내게 만드는 요소를 충분히 지니고 있었고 여지껏 내가 본 가장 인상깊었던 애니메이션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전체적인 내용의 줄기는 E.T라던가 기존의 영화들에서 흔히 봐 왔던 구조여서 새로울 게 없었고 그런 한계를 안고 출발한 이 애니메이션은 나름대로 아기자기한 에피소드와 일상적이고 친근한 캐릭터들을 중심으로 구조적 한계를 멋지게 뛰어넘어 전혀 다른 분위기의 애니메이션으로 거듭나고있다.

 

가장 놀라웠던 건 그 동안의 애니메이션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등장 인물(캐릭터)들의 애드립스러운 섬세한 연기(?)였다.
보통 일일이 손으로 그리는 2D애니메이션에서는 캐릭터들이 내용전달을 위한 최소한의 행위만을 하게 되기 쉽다. 그래서 실사영화에서 가능한 섬세한 연기도 2D애니메이션에서는 간과하고 지나가버리는 경우가 많다.
디테일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런 연기를 넣어주면 그만큼 작화분량이 늘어나고 이는 곧 제작비와도 직결이 되기 때문인데, 하지만 '갓파 쿠와 여름방학을'은 달랐다.
시종일관 이런 디테일들이 넘쳐났고 사소한 부분들까지 놓치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는 화면 한쪽으로 비켜나 있는 인물(특히 고이치의 여동생)들 까지 세심한 제 나름의 연기를 하고 있었다.
이 애니메이션에서 만큼은 실사영화의 배우들에게 통용되는 '연기'라는 단어를 써 주고 싶은 마음이다. 이런 요소들이 평면적인 그림체의 캐릭터들을 한층 풍성하고 실감나게 만들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제작기간 5년이 빈말이 아닐것 같다는...)

 

그리고 튀지 않고 애니메이션의 상황과 잘 버무러진 음악도 좋았고 성우진도 좋았는데, 특히 캐릭터와의 싱크로율 100%를 선보인 '쿠'역할 성우의 목소리 연기는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영화평을 보면 환경문제에 주된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듯한 설명이 많은데, 내가 볼 때는 지브리 작품들이나 다른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다뤄져 왔던 인간에 의한 환경문제는 부차적인 소재일 뿐이고 그 보다는 무리와 단절되어있는 존재가 무리와 어울리려는 과정에서 느끼게 되는 외로움과 소통의 단절이라는 문제와 성장에 더 촛점이 맞추어져 있는 듯 하다. 

 

가정, 학교, (군대), 회사... 사람의 성장에는 어떤 무리의 구성원으로 들어가게 되는 진입과정이 매번 존재하는데 '쿠' 역시 고이치의 가족구성원이 되면서 이런 과정을 겪게되지만 모르는 부분들도 함께 배워가야하기에 언제나 순탄할 수 만은 없고 이는 키쿠치가 학교와 친구들사이에서 겪는 일들도 마찬가지다.
사무라이 관료와의 소통이 원할하지 못했기에 오해를 사서 '쿠'의 아버지는 비참한 죽임을 당했고 이는 갓파의 멸종과 함께 과거와 현재의 단절로도 이어진다. ('쿠'를 봉인시키기 위해 필요했을 지진이라는 설정과 그것이 갖는 의미도 일맥할테다.)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는 늪을 매꿔 논을 만들고 도시를 만들듯이 과거를 현재로 덮어버리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 상황에서 느닷없이 현대에 튀어나온 과거의 산물격인 갓파는 가방에 갖혀있거나 택배상자로 가려야 할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쿠'는 머리위에 있는 접시에 물이 마르면 힘이 약해져 죽게된다. 갓파를 연명케 하는 '물'은 누군가의 지속적인 관심이자 애정을 의미한다.

갓파의 처지와 마찬가지로 '과거' 역시 진부하고 고리타분한 것이라는 편견에 휩싸인 사람들의 무관심속에서 현재에 묻혀 점점 그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그리고 대화가 거의 없는 키쿠치 역시 학교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에 가까운 소외를 당한다.

 

이런 상황에서 단절된 상태의 '쿠'를 자신의 가족에 받아들이고(어린왕자 이후, 이름을 지어준다는 행위의 의미가 새삼스럽게 다가온 경우) 왕따소녀였던 키쿠치에게 먼저 말을 건내 마음을 열게 한 고이치의 역할이 중요할 수 밖에 없는데 이런 일들을 겪는 고이치 역시 한번도 가 본적이 없는 미지의 공간인 노도를 향한 혼자만의(사실 '쿠'도 함께 하지만) 첫 여행, 그리고 전에는 잘 몰랐던 갓파들의 세계에 대해 하나 둘 알아간다는 진입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탐욕과 이기심으로 뭉쳐진 사람들과 일시적이고 표면적인 흥미거리에만 열을 올리는 언론을 향한 질타에 가까운 풍자도 이 애니메이션은 빼먹지 않고 있다. 사실 환경문제를 포함한 이 모든것이 이 작품에 드러나는 인간군상을 나타내는 단면들이긴 하지만....

 

 

 

 

마지막에 '쿠'와 키쿠치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있던 곳을 떠나 전학과 이주라는 새로운 진입과정을 겪게 된다. 고통이 따르지만 반드시 필요한 그런 과정들은 여느 성장영화의 주인공들처럼 '쿠'와 키쿠치, 그리고 이를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 고이치 모두를 세상앞에 한층 더 견고한 모습으로 만들어 주리라...

 

처음엔 이상하고 낯설게 느껴졌던 갓파 '쿠'라는 캐릭터도 애니메이션이 전개되는 동안 너무 친근하고 귀엽게(한편으로는 가엽게) 다가왔다. 상영시간 138분동안 내 감정이 그렇게 바뀌어버린 것인데,  이것이 바로 이 애니메이션이 지닌 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힘이 있는 애니메이션~

 

결말부분에서 쿠가 택배박스에 담겨 한적한 시골의 아저씨집에 도착할때까지 관객들은 근 10분 동안 쿠의 모습을 화면에서 볼 수가 없다. 그동안 고이치와 더불어 화면을 독차지하듯 누비며 이 애니메이션의 확실한 주인공으로 자리매김을 해 왔던 '쿠' 였는데 말이다.
화면에 보이는 박스 안에는 쿠가 들어 있는게 분명하지만 관객들은 직접 눈으로 그 모습을 볼 수가 없고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대단원을 향한 여정에서 이럴 때 찾아오는 낯설고 쓸쓸한 느낌이란...
실재가 아닌 환영이라는 정체성을 지닌채 탄생한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는 때문에 이성보다는 감성적인 측면에 호소하는 부분이 더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마지막에 쿠가 시골의 키지무나(도깨비아저씨)집에 도착한 후 아버지의 팔을 들고 숲속의 냇가에 서서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는 저 유명한 '레옹'의 마지막 부분에서 새로운 학교에 전학간 마틸다가 레옹이 남긴 화분을 교정 한편에 심어줄 때와 비슷한 심상마저 느껴졌다.

 

"레옹.. 이제 우리 여기서 살아요~"
"아빠, 미안해. 사람친구가 생겼어."

 

그러면서 '쿠'는 인간과의 화해와 함께, 안주보다는 다음에 있을 또 다른 여정(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2008.08.31

 

 

 

 

 

  

 

p.s DVD스페셜부록에 담겨있는 감독 인터뷰장면에서 본 하라 게이이치 감독의 얼굴이 요즘은 활동이 뜸한 국내 모 배우와 많이 닮았다는 느낌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알고보니 하라 게이이치 감독은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중에서 개인적으로 최고로 꼽는 극장판 제9편-'태풍을 부르는 모레츠!'와 제10편- '태풍을 부르는 앗파레!, 전국대합전'의 감독이기도 했다.

짱구는 못말려를 보면서 눈시울을 붉히게 되리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못하겠지만... ㅜㅠ

극장판에서 만난 짱구는 우리가 아는 그 짱구가 아니었다. 어쨌거나....

 

작품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게 된 하라 게이이치 감독은 사람의 마음을 움질일 줄 아는 감독이 아닌가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