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산행기

종 고 산 2007. 11. 6. 16:08

  

고산의 흔적이 있는 격자봉과 가족여행 2005.01.16

 

여러 군데를 둘러보기 위해서 일요일 새벽에 출발하는 것 보다는 토요일에 출발하여 완도에서 하루 밤을 자는 것이 좋을 것 같아 토요일 오후에 출발하여 완도읍에서 숙박을 하는데 완도에도 눈이 약간 내려 귀향길이 걱정되었지만 남부 지방이라 눈이 많이 오지 않겠지 하고 생각을 해보았다. 숙소로 가는 길에 배가 출항하는 화흥포로 가는 도로를 눈 여겨 보았다.

보길도로 가는 첫배인 6시 50분 배를 타기 위하여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나서니 6시가 되었다. 낯선 도로를 따라 다행히 화흥포 선착장에 도달하니 이미 차들이 한 줄로 길게 늘어서 있었다. 우리도 보길도에서 시간을 줄이기 위하여 승용차를 가지고 가야 되었기에 무턱대고 늘어선 차들 뒤에 주차 시키고 나와서 대합실에 들어가서 물어 보니 노화도, 소안도, 보길도로 가는 차들이 서는 줄이 따로 있다고 하였다. 아스팔트에 그 행선지가 쓰여 있었다. 보길도는 우리 차가 제일 선두에 있어 확실하게 차를 실을 수 있었다. 이미 문을 연 간이 식당에서 컵라면과 김밥을 사들고 배에 승선하였다.

 

 

 

 

(보길도에서)

1시간 10여분 만에 보길도 선착장에 도착하니 매서운 찬 바람이 불고 있었다. 곧장 고산 윤선도가 머물렸던 세연장으로 출발하였다.

세연장에 도달하니 이른 시간이라 매표소 직원도 나와 있지 않았다. 이 세연정은 고산이 부용동에 인공호수와 정자를 지어 놓고 시를 지으면서 보낸 곳으로 큰 바위에 어부사시사를 적어 바위가 있었다.

고산이 살았다는 낙서재와 곡수당으로 가보았는데 그곳은 건축물은 없고 지금 발굴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보길도에서 가장 높은 격자봉(433m)을 오르기 위해서 등산로를 찾았지만 찾지 못하였는데 마침 집에서 일하는 사람을 발견하여 물어 보아서 길을 찾았는데 그곳은 높은 나무 위에 붉은 천이 펄럭거리고 있다.

 

등산로 들머리 ;9시 22분

등산로는 아주 길이 확연하게 좋았다.

 

 

 

정상(433m) ;10시 8분

격자봉으로 표시 되어 있었고 어디에서는 적자봉이란 용어를 썼는데 이곳에서는 적자봉이란 용어는 없었다. 최선호 선배님에게서 들었었던 1500산을 순례하는 김정길님 리본이 반가웠다. 정상에서 보는 바다는 아름다웠지만 다시 승용차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 하산하기 시작하였다.

 

 

 

 

 

 

 

(완도읍에서)

완도읍 대산리 소세포에 있는 해신에서 “청해진 포구 마을”를 재현 시킨 세트장은 다행히 도로 근처에서 가까운 곳이라 주차장이 만원이라도 도로에 차를 주차시키고 구경할 수 있었다. 이 세트장은 1만 6천여평 부지에 선착장, 선박, 객관, 저잣거리 ,군영 막사, 망루등 42동의 건물이 완공되어 있었고 지금도 다른 건물들을 짓고 있었다.

 

 

 

 

 

 

  

완도군 군외면 불목리 원불교 완도 청소년 훈련원 1만 6천여평에 건립되어 있는 또 다른 해신 세트장은 들어가는 도로가 1차선이어서 상당히 들어가고 나오는데 힘들었지만 이곳은 “신라촌”을 재현 시킨 곳으로 본영 ,객사 ,민가, 중국거리 ,상인 숙소 등 40여동의 기와집과 특이한 수로시설은 볼 만 하였다.

 

 

 

(강진에서)

강진을 거쳐 오면서 다산초당을 들러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