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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탕춘대능선에서 장미공원으로(2020년 4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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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 行 日 記/서울·북한·도봉

2020. 4. 6.

차마고도 끝지점 탕춘대성이 보인다,

탕춘대성(蕩春臺城)은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기 위해 만든 성으로

탕춘대성은 이곳에서 부터 인왕산까지 연결되는 성이다,

탕춘대성은 인왕산 동북쪽에서 시작하여 북쪽의 능선을 따라 내려가다가 사천을 지나

북한산 서남쪽의 비봉 아래까지 연결해 축성한 산성이다. 이 산성의 명칭을 탕춘대성이라고 한 것은

현재 세검정이 있는 동쪽 약 100여m 되는 산봉우리에 탕춘대(蕩春臺)가 있었던 것에서

연유한 것으로, 한성의 서쪽에 있다고 하여 서성(西城)이라고도 했다,

임진왜란과 호란 속에서 서울이 함락되며 갖은 고초를 겪은 

조선왕조는 전쟁이 끝난 후 국방은 물론 유사시에 수도를 방위하기 위한 대비책으로. 

효종(1649∼1659), 현종(1659∼1674)을 거쳐 숙종때는 수도방위에 더욱 치중했다. 

숙종은 재위 30년인 1704년 3월부터

도성 축성공사를 시작했고 이 공사는 6년 후인 숙종 36년(1710)까지 계속되었다.

한양도성 수축공사를 끝낸 숙종은 왕 37년(1711)에는 북한산성을 축성했고

다시 탕춘대성을 축조한다. 이 탕춘대성을 축조하자는 논의는 숙종 28년인 1702년부터

있었어며 그 후 탕춘대성은 숙종 44년인 1718년 윤8월 26일부터 축성하기 시작하여 10월 6일까지

40일간 성 전체의 약 반을 축성하고 일단 중지되였다가 다음해 2월부터 다시 축성하여

약 40일 후에 완공함으로서 탕춘대성은 80일만에 완성된 성(城)이다,

탕춘대성 전체 길이는 약 4km이며. 성내에 연무장(鍊武場)으로 현재의

세검정초등학교 자리에 연융대(鍊戎臺)를 설치했어며 비상시를 대비해 선혜청(宣惠廳) 창고와

군량창고인 상, 하 평창(平倉)을 설치하였다. 그 후 탕춘대성의 축성과 함께 그 성안을

총융청(摠戎廳)기지로 삼고, 군영도 배치했다.

탕춘대성은 축성을 담당했던 관아나 또는

축성 방법, 축성경비 등에 관한 기록은 지금 남아 있는 자료가 없다,

현존하는 탕춘대성은 한양도성이나 북한산성과 같이

주 성벽과 여장(女墻)을 쌓았으며 동쪽에서 서쪽을 향해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일정한 간격으로 성구(城口)를 뚫어 놓았다.

현재는 홍지문도 복원이 되어있고,

인왕산에서 상명대학교 북쪽 향로봉 아래까지 성곽이 남아있다.

지금 걷고있는 이곳은 향로봉 아래에서 상명대 방향이다,

사진에 보이는 여유로운 이 길이 탕춘대성 길이다,

내려가는길 오른쪽에는 탕춘대성이 있고

성 안쪽은 이렇게 넉넉한 길이 조성되여 있다,

오늘 탕춘대성에 대해 이렇게 긴긴 설명을 하는 이유는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저 있어나 탕춘대성에 대해서는

북한산성 일부쯤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서다,

여유롭고 넉넉한 탕춘대 성을 따라 세검정 방향으로

가다보면 암문이 보인다, 이 문은 탕춘대성에서 하나뿐인 탕춘대성 암문이다,

그리고 탕춘대성에는 大門도 있는데 그 문이 홍지문 弘智門 이다,

홍지문은 숙종이 친필로 弘智門이라는 편액을 하사하면서 공식적인

명칭이 돤, 대문(大門)으로 한성(漢城)의 북쪽에 있는 문이기 때문에 한북문(漢北門)이라고도 했다,

또한 북한산성, 북문인 숙정문이 북대문으로서 역활을 하지 못하다보니 실질적인

북대문 역활을 했다,

 

탕춘대성 암문을 지나 상명대학교 방향으로 길게 이어지는 탕춘대성이 보인다,

우리는 이성길을 따라 상명대 방향으로 가지 않고, 탕춘대성암문을 나가서 불광동 방향으로 간다,

상명대 앞 개청에있는 탕춘대성 홍지문은 1715년 숙종 41년에 건축되어

1921년까지 탕춘대성문으로 역할을 했어나 1921년 홍수로 붕괴되어 50여년간 방치되였다가

1977년 서울시에서 탕춘대성과 함께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복원했어며

홍지문 현판은 박정희 대통령이 쓴 것이다,

1921년에 홍수로 유실되었든 홍제천 오간대수문(五間大水門)도

1977년 홍지문 복원 때 길이 26. 72m, 폭 6.8m, 높이 5.23m, 수구 폭 3.76m,

수구 높이 2,78m의 5간의 홍예교(虹霓橋)로 복원했다.

이제는 장미공원으로 간다,

가는길 흐트러지게 피여있는 2020년의 봄

반짝하고 피였다가 며칠후면 꽃이진 자리에 잎이 필것이고

그 잎은 다시 초록의 자연을 선물해 줄것이다,

북한산은 다른 곳 산보다 꽃이 많이 피는 산은 아니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산이라 소나무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도 길가에 피여나는 진달래는

이곳에도 어김없이 피여 있다,

서울 우수조망처라는 안내판도 있다,

조망처에서 바라보는 북한산 비봉능선

향로봉과 비봉, 승가봉

문수봉과 보현봉등이 그림처름 펼처진다,

탕춘대성암문에서 장미공원으로 가는길에 잇는 마지막 비 그늘막?

여기를 지나가면 장미공원이다,

 장미공원이다, 이름이 장미공원이라도 장미는 보이지않는 공원

지금 이 공원을 무슨 공원이라 부르는지는 알수 없지만 오래전부터 장미공원으로 불리든곳이다,

장미공원에서 길을 건너 불광역으로 간다,

한국행정연구원과

한국환경산업기술원

여성정책연구원을 지나면

불광역 2번출구다, 아침에 이곳에서 출발했다가 다시 돌아왔다,

오늘 다녀온 이길은 산과 둘레길을 편안하게 즐길수 있는 북한산 명품코스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