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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라 2014. 6. 10. 12:03



한 리그에서 득점왕을 차지하는 공격수가 수준이 낮은 리그로 간다고 해서 득점왕을 차지할 수 있다고 장담하기도 힘들고, 수준 낮은 리그에서 높은 리그로 이적한다고 해서 득점왕을 차지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선수 개인과 소속 구단, 그리고 리그 스타일 간의 상성이 복합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가까운 예로는 프리미어 리그에서 제자리를 못잡았지만 K리그에 돌아와서 득점왕 및 선수 생활 막판에 클래스를 과시하고 있는 이동국과 K리그에서 득점왕을 차지하고 사우디 리그로 이적해서 컵대회 득점왕을 차지하고 두번째 시즌이 되어서야 리그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던 유병수처럼 말이죠. K리그에서 뛰었던 외국 선수들 중에는 2003시즌 안양 치타스에서 한 골도 넣지 못하고 정리되었던 에디날도 그라피테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K리그에서 존재감이 없었던 그가 보다 수준 높은 분데스리가의 볼프스부르크에서 08/09시즌 득점왕에 오르는데 성공했지만, 11/12시즌 K리그보다 수준이 더 낮은 UAE리그의 알아흘리로 이적한 후에는 리그 상위권의 득점포를 가동하고 있으면서도 2시즌 연속 득점 2위에 만족했을 뿐, 3시즌 동안 단 한번도 득점왕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앞을 가로막은 선수는 바로 알아인과 가나 국가대표의 주전 공격수인 아사모아 기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행보는 박주영과도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선수 모두 1985년생 동갑나기 공격수이고, 프랑스 리그 앙에서 실력을 검증받아 영국 프리미어 리그로 이적했으며, 프리미어 리그에서 제자리를 잡고 있지 못하던 시절 같은 시기에 "알아인"으로부터의 정식 오퍼를 받아 한솥밥을 먹을 뻔한 인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사모아 기안은 알아인에서 한 시즌 임대생활을 거친 후 정식 이적 오퍼를 받았고, 박주영은 바로 오퍼를 받았다는 점과 두 선수가 각기 다른 선택을 했다는 점은 달랐지만요.


프랑스 스타드 렌에서 10/11시즌을 앞두고 선덜랜드로 이적했던 아사모아 기안은 시즌 33경기에서 11골을 기록하는 준수한 활약을 펼쳤지만, 11/12시즌이 시작된 후 4경기 동안 한 골도 기록하지 못한채 선덜랜드에서 받던 4배의 급여를 받고 알아인으로 시즌 장기임대를 떠났습니다. 알아인이 제시한 오퍼는 선덜랜드에게나 아사모아 기안 본인에게나 살림살이를 펴게할만한 거부할 수 없는 오퍼였다고 하네요. 그리고 그는 알아인에서의 첫 시즌 18경기에서 22골을 넣는 폭발적인 득점력을 과시하며 그보다 먼저 알아흘리에 이적하여 3경기를 더 뛴 에디날도 그라피테를 6골차로 누르며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습니다. 자신의 프로생활 첫 득점왕이기도 했지요. 그의 활약에 감탄한 알아인은 시즌이 끝난 2012년 7월 5년 장기 계약을 맺으며 임대생이었던 그를 원소속팀인 선덜랜드로부터 완전 영입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아사모아 기안으로서도 연봉도 연봉이지만, 자신이 실력을 과시하며 마음껏 뛰놀 수 있는 무대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겠죠. 명분보다는 실속을 챙긴 셈이죠.


리그 득점왕으로 검증된 아사모아 기안의 완전 이적을 마무리지은 알아인은 시즌 임대를 마치고 알힐랄로 복귀한 야세르 알 까흐따니를 대체할 아시아 쿼터 선수로 11/12시즌을 앞두고 AS모나코에서 파장을 일으키며 아스날로 전격 이적한 후 벤치를 달구고 있었던 박주영 영입에 관심을 갖고 아스날과의 이적 협상에 나섰습니다. 이는 수원 삼성에서 현역 시절을 보냈던 코스민 올러로이우 감독이 알아인을 새롭게 맡으면서 박주영에게 적극 러브콜을 보냈던 것으로 알려졌었죠. 만약 박주영이 알아인으로부터의 오퍼에 응했다면 우리는 알아인에서 아사모아 기안과 박주영이 투톱을 이루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박주영은 이미 잘 알려진대로 더 많은 급여와 주전 자리를 확보할 수 있는 알아인행을 마다하고 결국 셀타비고 임대행을 택했습니다. 실속보다는 명분?을 챙긴 셈이랄까요.


비록 아사모아 기안은 임대 생활을 통해 알아인을 1시즌 경험해서 시작은 조금 달랐지만, 공교롭게도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서 주전 확보에 실패한 동갑내기 두 선수에게 12/13시즌을 앞두고 정식 이적 오퍼를 던졌던 알아인. 


실속을 쫓아 알아인의 오퍼를 수락한 아사모아 기안과 명분을 쫓아 거절한 박주영은 선수경력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엄청나게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알아인에서 전성기를 맞이한 아사모아 기안은 13/14시즌까지 세 시즌 연속 경기당 1골 이상을 넣는 폭발적인 골감각을 꾸준히 과시하며 리그 득점왕 3연패를 달성했고, 올시즌 아챔에서는 8강을 눈 앞에 둔 현재까지 득점 선두를 달리며 기량을 맘껏 뽐내고 있는 반면, 박주영은 라 리가의 셀타비고에서도, 영국 2부 리그의 왓포드에서도 제대로 뛰어보지 못한채 결국 애증의 아스날로부터 방출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비록 리그의 수준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11/12시즌부터 13/14시즌까지 세 시즌동안 UAE리그 알아인에서 풀타임 주전이자 세 시즌 연속 득점왕에 오르며 현역생활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아사모아 기안과 같은 세 시즌동안 아스날에서 사실상 전력 외로 분류되며 임대 생활을 전전한 박주영의 기량차는 가나의 4대0 대승으로 끝난 오늘 평가전에서도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자신의 발끝에서 시작된 찬스로 가나의 첫번째 골과 세번째 골을 이끌었고 역습 상황에서 우리 수비진을 농락하며 두번째 골을 직접 넣으면서 네 골 중 세 골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했던 아사모아 기안과 달리, 단 한차례의 슛팅만 기록한 박주영은 원톱 공격수로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으니 말이죠.


K리그 10경기 연속 공격포인트라는 신기록과 함께 득점 3위, 어시스트 1위에 오르며 올시즌 K리그에서 가장 돋보인 선수였지만 국대의 부름을 받지 못했던 이명주는 결국 알아인행을 선택했습니다. 골과 어시스트 능력을 겸비한 이명주가 직접 골을 넣거나, 그의 어시스트를 받은 아사모아 기안이 골을 넣는 새로운 공격루트를 선보이게 될 알아인의 14/15시즌이 벌써부터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명주가 정상적으로 UAE리그에 적응하여 최상의 케미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아사모아 기안은 자신의 네번째 UAE리그 시즌에서 네시즌 연속 리그 득점왕에 오르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선수생활의 전성기를 누리기 시작해야 할 20대 중반 명분?을 쫓아 제대로 활약하지도 못한 채 세시즌의 방황 끝에 결국 프리 에이전트가 된 박주영은 이번엔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요?


유럽 대신 상대적으로 수준이 떨어지는 중국, 중동리그행을 선택하는 좋은 선수들에 대한 팬들의 안타까움과 이를 넘어선 비난이 공존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이런 시각이 반영된 듯 이번 국대는 수준이 조금 낮더라도 맹활약을 펼친 선수들보다 명성을 쫓아 수준 높은 리그에서 제대로 뛰어보지 못한 선수들을 택했습니다. 리그 수준을 평가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선수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건 아닌데도 말이죠. 이상적으로 수준 높은 리그에서 뛰면야 가장 좋겠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면 자신이 마음껏 플레이할 수 있는 리그에서 뛰는 것도 선수에겐 좋은 선택기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 축구계의 살아있는 레전드가 된 차범근이나 박지성처럼 모든 선수가 최고의 리그에서 최고의 기량을 뽐낸다는 건 불가능한 것 역시 현실이고, 수준 낮은 리그에서 뛴다고 모두가 리그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는건 아니니까요. 


같으면서도 달랐던 동갑나기 공격수 아사모아 기안과 박주영의 현재 모습은 선수의 진정한 가치는 속해 있는 리그나 팀이 아니라, 결국 자신이 온몸을 던져 뛰고 있는 피치 위에서 제대로 빛을 발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한번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최고의 글, 추천합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