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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 홍주의사총, 의병의 넋이 깃든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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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민리포터

2020. 8. 4.

 

 

홍성 홍주의사총, 의병의 넋이 깃든 곳 

 역사여행지 애국정신을 느끼는 홍주의사총 

 


 


 
홍성여행길에 홍주의사총(사적 제431호)에 들렀다. 이곳은 1905년 을사늑약이후 홍주읍성전투에서 희생된 의병들의 유해를 모신 묘소로 의병들의 숭고한 넋을 되새기며 애국정신을 고취할 만한 역사여행지가 아닌가 한다.
 


 
홍주의사총은 창의문, 의사총 묘역, 진충문, 창의사, 홍주의병기념탑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진충문과 창의사는 보통 문이 잠겨 있다.
 


 
홍주의병기념탑을 먼저 만나보았다. 기념탑을 건립한 이유는 '내포의 중심이자 충절의 고장인 홍성(홍주)에서 거병하여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산화하신 홍주의병의 숭고한 넋을 기리고, 고인들의 우국충정과 살신성인의 정신을 되살려 후손들을 위한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라고 준공비에 적혀 있다.
 


 
기념탑은 삼재(하늘·땅·사람)를 의미하는 기본도구 위에, 홍주성과 월계천, 홍성천을 형상화 한 기단, 거병년도(1895년·1906년)를 담은 두 개의 탑신, 홍주의병을 상징하는 인물상과 부조, 홍성의 과거와 현재·미래를 소통하는 구와 문주, 홍주 의병사를 기록한 기념비 등을 조형화하여 홍주의병의 호국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홍주읍성전투는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의병들의 항일구국운동 중 제일 규모가 크고 가장 치열한 항전답게 홍주의병을 상징하는 인물상 또한 아주 강렬하게 다가왔다.
 


 
1906년 3월 이조참판을 지낸 민종식을 중심으로 한 홍주의병은 홍주읍성을 공격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같은 해 5월 9일 홍산(현 부여군 내산면)에서 다시 일어나 서천, 비인, 남포, 결성을 차례로 점령하고, 홍주 삼신당리에서 일본군을 크게 이기며, 20일 홍주읍성을 탈환하였다.
 


 
그러나, 일본군의 반격이 본격화되면서 31일 새벽 동문에 이어 북문이 폭파되고, 일본군의 화력에 밀린 홍주의병은 많은 사상자를 내고 홍주읍성에서 물러났다. 이때 홍주읍성과 홍성천 주변에 흩어져 있었던 의병들의 유해는 1949년 이후 뜻있는 사람들에 의해 수습되어 현재의 홍주의사총에 봉안되었다. "홍양일기", "홍양기사" 등의 자료에 따르면, 홍주읍성 전투에서 희생된 전사자는 최소 80여 명 이상 최대 수백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에 애국심을 느끼지 못하다가도 태극기를 볼 때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 의병들이 가슴에 품은 태극기는 얼마나 뜨거웠을까?
 


 
창의문을 지나 마침내 의병들이 잠든 묘역과 마주한다. 옆에는 '병오순난의병장사공묘비'가 있다. 늘푸른 소나무로 뒤덮인 묘역은 의병들의 나라 사랑에 대한 한결같음을 대변하는 듯싶다.

"부디 편히 잠드소서."
 


누구나 아름답고 화려한 여행지를 선호하기에 의병이나 독립투사와 관련한 여행지는 삼일절이나 의병의날과 같은 특정일, 호국보훈의달인 특정달에만 반짝하거나 지나치는 경향이 많다. 오히려 코로나19로 인하여 비대면 여행지를 선호하는 요즈음 같은 때에 묘역을 조용히 둘러볼 수 있어서 좋고, 나라 사랑하는 마음과 역사의식을 더 고취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동안 지나치기만 했다면 다음 홍성여행 때엔 홍주의사총을 꼭 찾아보도록 하자.


*참고자료 - 홍주의사총, 홍주의병기념탑 관련 안내문


홍성 홍주의사총 
-소재: 충남 홍성군 홍성읍 대교리 산1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