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마산역 무료급식소‘이웃사랑 나눔의 집’박 덕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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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세상

2009. 4. 6.

[인터뷰] 마산역 무료급식소‘이웃사랑 나눔의 집’박 덕조 회장
“숨어서 일하고 소리 없이 봉사할 터”

 

장두원 기자

 

▲ 이웃사랑 나눔의집 일등공신 역활인 부인 윤영순여사와 함께'행자부'장관상을 수상후 기념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인터뷰] 마산역 무료급식소‘이웃사랑 나눔의 집’박 덕조 회장

“숨어서 일하고 소리 없이 봉사할 터”

 

마산역 무료급식소‘이웃사랑 나눔의 집’박 덕조 회장은“이웃과 더불어 살며 나누는 삶을 실천하는 것이 목표다”고 말했다.

 

지난 3월25일 오후2시 마산시청 소회의실에서 2009년 바르게살기 마산시 정기총회에서 마산시 석전1동 바르게살기 박 덕조(59)위원장이 이웃사랑 나눔을 실천한 공로 로 행정자치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박 위원장은 마산시 남성동 어시장에서 『형제식육유통』식육유통 업체를 운영하면서 수익금 대부분을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누고 있으며 특히 마산역에서 7년 전부터 ‘이웃사랑 나눔의 집’을 운영 하면서 매주 토, 일요일 오전 11시부터 노숙자, 독거노인 ,여행객 ,불우이웃 에게 무료급식을 해주고 있다.

 

또한 재 마산 고성군 향우회회장을 비롯하여 경남서로사랑봉사단 공동대표와 각종 사회단체 회장 부회장, 운영위원 홍보대사 등을 맡고 있고 국제봉사단체인 국제 로타리 3720지구 15지역 총재 지역대표를 맡아 회장, 부회장 직함만 30여개 이상이고 또한, 장애인 후원회 ,복지시설의 후원회나 장학회 등 후원금을 내는 소속 단체는 ‘오른손이 하는 일은 왼손이 모르게 한다’며 본인이 밝히지 않은 단체에 숨어서 일하고 소리 없이 선행을 베풀며 왕성한 봉사활동을 펼쳐 ‘마당발’, ‘얼굴 없는 봉사자’라고 부르는 박 덕조 위원장을 만나보았다. 편집자 (主)

 

다음은 박덕조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회장님 먼저 ‘행정자치부 장관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회장님의 활동에 비하면 장관상 수상이 늦은 감이 있네요. 각종사회단체 회장, 부회장직만 30개 이상이며 회장님이 한사코 밝히지 않은 후원회 소속 단체만 수 십 개 이상으로 알려져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회활동을 하게 되었는지요.

 

▶예. 먼저 보잘 것 없는 저를 이렇게 잘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먼저 오늘 제가 있기까지 도와준 저의 아내 윤영순(55)에게 감사드립니다.

 

저는 고성군 상리면 신촌 리 에서 아버지 박 상옥 씨와 어머니 김 옥선 씨와의 사이에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가난한 농촌에서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오직 배워야겠다는 일념으로 15세의 나이에 단돈1000원을 가지고 무작정 부산으로 갔습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객지에서 노숙도 해보았고, 충무동 새벽청과시장에서 수박을 내려주는 일을 했지요. 먼저 숙식을 해결하기위해 빵집에서 일하다 기술을 배우기 위해 당 주방에서 그릇 씻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기술을 배워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주방장이 되어 돈을 더 준다고 해서 전라도 광주로 3년간 계약을 맺고 가서 일하고 다시 부산으로 돌아와 제빵회사의 대리점에서 근무하면서 그 사장님에게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젊어서 떳떳하게 살고 늙어서 곱게 늙어라’라는 말씀을 늘 강조하시면서 “박 군! 너도 객지 와서 고생을 많이 해보았겠지만, 무슨 설움해도 뭐니 뭐니 해도 배고픈 설움만큼 서러운 것 이 없고, 못 배우면 늙어서 후회를 한다.”며 저를 친 동생처럼 보살펴 주시면서 ‘남을 위해 봉사’를 하라고 가르쳐주신 것이 오늘의 제가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럼 봉사활동은 언제부터 하시게 되었는지요.

▶ 제2의 고향인 마산으로 내려와 28살부터 봉사를 했지요. 제가 결혼을 하여 신혼 사림을 변두리인 회원2동에서 달 셋방부터 시작했지요.

인근 회원2동 정자나무근처 노인당에 찾아가 음식을 대접하고 위문을 하게 되었는데 31년 전 이니까 다들 살기가 참 힘들었을 때 음식과 한잔의 술을 드시면서 좋아하시는 그 웃음 띤 환한 얼굴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아 하~ 봉사의 즐거움이 이것이구나.’하고 생각 했지요.

 

내가 여유가 있고 내가 다 먹고 쓰고 난 후 남을 돕는 것 보다 나도 어렵지만 아끼고 절약한 가운데 이를 나보다 못한 이웃을 위해 나누는 것이 진정한 나눔의 봉사라고 생각 하고 이를 실천 하고자 굳게 결심 했습니다.

 

◈그렇습니까. 마산역 앞 ‘사랑 나눔의 집’회장을 맡아 무료급식소를 운영하고 계시는데 운영하시려면 비용이 꽤 많이 드는 걸로 아는데 그 재원은 어떻게 마련하고 계시며 운영은 어떻게 하시고 계시는지요.

▶ 마산역 앞 무료급식소는 제가 전적으로 책임을 맡고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벌써 7년이 되었군요. 원래 마산의 무료급식소는 역전 파출소 앞 가톨릭여성회관에서 먼저 실시하였죠.

하지만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다보니 토, 일요일은 급식소를 운영하지 않아 급식소를 이용하는 노숙자나 어려운 사람들이 밥을 굶는다는 소식을 듣고 제가 토, 일요일 이틀간을 급식을 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전 11시에 배식을 해주고 있습니다. 웬 고하니 급식소를 이용하는 사람들 중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제공하는 점심 한 끼로 하루를 견디는 사람들이 있어요. 얼마나 배가 고프시겠어요. 그래서 배식을 1시간 앞당겨 1식 4찬으로 제공 합니다. 그리고 국은 되도록이면 육식을 제공 합니다.

 

어떤 분은 드시고 나가 뒤에 가서 또 줄을 서시고 하여 네 번을 배식을 받아 드시는 것 을 보고 가슴이 참 아파서 식사는 드시고 싶을 정도로 마음껏 드시도록 합니다.

 

제가‘ 참 이 일을 잘 선택 했구나’ 하는 것을 스스로 보람 있고 자랑스럽게 생각 합니다.

 

◈참 좋은 일을 많이 하고 계시는데 앞으로도 우리 사회를 위해서 더욱 더 좋은 일을 많이 해주실 것을 당부 드리고요, 장시간 인터뷰에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계시다면 한 말씀 하시지요.

 

▶ 저는 이 세상에 태어나 죽어지면 썩어 질 몸을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봉사하며 나누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도록 건강한 몸을 가진데 대하여 천지신명께 감사를 드리고요. 시은부념(施恩不念), 수혜불망(受惠不忘)이라는 말처럼 저는 제가 ‘베푼 것은 잊어버리고 제가 은혜를 입은 것 은 영원히 잊지 않고 갚는다.’는 신념으로 인생을 살 것이며 저는 ‘영원한 봉사자’로서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다가가, 몸으로 봉사’ 할 것을 굳게 다짐 드립니다.

 

법관이 청빈하고, 공무원이 청백리가 되고, 선생님이 모범이 되어야 하듯이 저는 사업가이기 때문에 제가 사업을 열심히 하여 거래처에 신임을 얻고 또 남에게 신용을 잃지 않고 약속을 잘 지키며 제가 거느리고 있는 종업원들과 더불어 살며 가정을 잘 다스려 내 자신부터가 모범이 되겠습니다.

 

항상 감사하고 더불어 사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웃과 사회와 국가를 위해 댓 가없이 조건 없는 봉사를 할 것을 굳게 다짐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약력

현)재 마산 고성군 향우회 회장, 한나라당 마산 을 지구 부위원장, 석전1동 주민자치 위원회 위원장, 낙동강 운하추진운동본부 중앙 집행위원, 마산 복싱연맹 회장, 마산 주민자치위원회 운영위원, 마산 동부 경찰서 보안협력위원회 위원장, 석전동 바르게살기 위원회 위원장, 사)경남 한일 친선교류 예술 분과 위원장, 사)대한 가수협회 마산시 지부장, 석전동 풍물단장, 산수원 애국 산악회 회장, 사)이웃사랑 나눔회 회장, 마산역 무료급식소 운영, 마산시자연보호협의회 고문, 태풍매미추모사업 장학회 상임대표, 경남 서로사랑봉사단 공동대표, 마산 박 씨 종친회 수석대표, 경남대학교 경영대학원 총동창회 이사, 경남대학교 경영대학원 식품CEO과정 제1기 원우회 회장, 경남 고성 공룡 세계엑스포 국제홍보위원, 마산 어시장 상인번영회 6지구장, 국제 로터리 3720지구 15지구총재 지역 대표,형제 식육 유통 대표,

전)국제3720지구 서 마산 로타리클럽 회장, 사)한국 조리사 중앙회 마산지부장, 석전동 발전 위원회 위원장, 경상남도 향토음식 육성위원, 제 4대 마산시의원 출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