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

극락조 2013. 7. 12. 08:15

 

 

청성서원에서 연어헌을 찾아 달리다 보니

좌측으로 시원스럽게 낙동강이 눈에 들어온다.

 

 

 풍산읍은 동쪽으로 서후면과 송하동, 남서쪽으로 풍천면, 서쪽으로 예천군 호명면,

남쪽으로 남후면, 북쪽으로 예천군 보문면과 접한다.

 

 

 또한 낙동강 좌안에 있으며, 유역 일대에 비옥한 풍산평야가 전개되어 있다.

낙동강 지류인 매곡천(梅谷川)이 시가지 서쪽을 북에서 남으로 흘러내리며,

조운산에서 발원하는 상리천(上里川)이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흐르고 있다.

안동의 산수는 낙동강과 더불어 청량산, 여산, 청성산이 아름답다.

   

 

 막곡동은 낙동강을 끼고 풍산대교 쪽으로 가는 도로 옆에 있는 마을로

도로 좌측으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우측으로는 청성산 산자락이 계속된다.

 

 

청성산(靑城山, 251m) 기슭에는  학봉 김성일(金誠一, 1538~1593)의 

석문정사(石門精舍)와 송암(松巖) 권호문(權好文, 1532~1587)의 연어헌(鳶魚軒),

막곡동 고려시대의 삼층석탑(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10호)이 있어 그곳을

가 보려고 도로에 잠깐 차를 세우고 진원사 안내판이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연어헌은 송암이 자연과 벗하며 거처하던 곳으로, 송암이 연어헌을

지은 것은 서른다섯살 때였으며, 이곳에서 만년까지 은거하였다 한다.

스승 퇴계 이황은 그를 가리켜   소쇄산림지풍(瀟灑山林之風)이 있다고

하였고,  벗 류성룡도 강호고사(江湖高士)라 칭하였다.

 

 

 연어헌 대문을 들어서자니 사람손이 가지 않은 듯

마당에 풀이 수북히 나고 거미줄이 쳐진 것이

 1960년대에 새로 지었다고 하는데 많이 퇴락해 보였다.

 

 

연어헌은 『중용』에서 이른  "어약연비(魚躍鳶飛)의 뜻을 취한 것이라 한다.

연어헌 현판은 신재 주세붕(周世鵬, 1495~1554)이 쓴 글씨라 하며,

연어헌 안쪽에는 무민재(無憫齋), 유정재(幽貞齋) 현판과

연어헌기와 시판이 달려 있다.

 

 

연어헌 위 청성산 중턱에는 학봉 선생의 석문정사가  있다.

학봉과 송암은 동문수학한 벗으로 청성산에서 만년을 보내자고

했는데 학봉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연어헌이 있는  진원사는 전통민간신앙을 행하는 곳으로,

제비원 성주풀이 안택굿 보전회 회장댁이라고 한다.

청성산 산자락에는 굿당들이 많이 자리를 잡은 모습이었다.

 

 

석문정사를 찾아 산으로 오르니   자연암반 위에 석불상이 있는데   

 

 

석불상은 머리와 몸통 일부만 남아 있는데  코는 훼손된 모습이다.

 

 

석문정사와  막곡리 삼층석탑의 위치는  진원사 산위에 있지만

 입구는 법수사에서 올라가야 한다고 하였다.

 

 

진원사에서 내려가 석문정사를 찾아 법수사 쪽으로 다시 올라갔다.

 

 

 오르막길을 힘들게 오르니 법수사가 나오는데 옛절은 아닌 듯 하다

 법수사에 주차를 할 수가 없어 조금 내려가서 차를

 주차해 놓고 법수사 대웅전을 지나 우측으로 석문정사를 찾아 걸어갔다.

 

 

석문정사를 찾아가는 길

 

 

법수사에서 조금 걸었더니 석문정사가 보이기 시작했다.

 

 

석문정사 입구에 문같이 생긴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가 석문으로 바위에는 '石門'이라 새겨져 있다.

 

 

 석문정(石門亭,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4호)

안동시 풍산읍 막곡리

 

이 건물은 조선 선조(宣祖) 20년(1587)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 1538~1593)

선생이  50세 되던 3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8월에 완공한 정자이다.

 

 

'석문'이란 당호(堂號)는 정자 서쪽에 바위 둘이 마주보고 서 있는데

골짜기가 마치 문과 같으므로 이름지은 것이다.

이 건물은 '석문정' 과 '석문정사'란 편액이 각기

대청내부와 바깥쪽 도리에 걸려 있다.

 

 

 이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ㄴ'자형이며, 처마는 홑처마이고

지붕은 정면 '-'자 부분은 팔작지붕이며, 뒤쪽 돌출부분은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자연과 벗하며 유유자적(悠悠自適)하면서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전력하고자 했던 학봉은 자연경관이 뛰어난 이곳을 매우 좋아했다.

동왕 22년 12월 일본통신부사(日本通信副使)로 뽑혀 이듬해 사신길에 오르기 전

그는 이곳에서 '....(사행을 성공적으로 마친)뒤에 고향에 돌아와 내 죽도록 이 산에 은거하는

사람이 되리[然後賊歸來 永作山中人]라는 〈제석문 정사(題石門精舍〉 시 한수를 적고 떠났다.

그러나 이곳에서 말년을 보내려 했던 그의 바램은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이루어지지 못했다.

 

 

석문정에서 100m 정도  들어가면 막곡리 삼층석탑을 만날 수 있는데

풀 때문에 갈 수 없어서 그냥 내려오고 말았다.

막곡리 삼층석탑은 자연 암반 위에 2층의 기단과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으로, 높이 1.72m인데 탑신이 북쪽으로 기울어진 상태이다.

 탑이 있는 주위는 청성산 성산사(城山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주위를 살펴보니 나무가 울창하고 고즈녘하여 공부가 저절로 될것 같았다

 

 

석문정사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낙동강 물줄기가 훤히 눈에 들어온다.

 

 

 

 

 

석문정사에서 나가는 길에 법수사 대웅전 건물이다.

 

 

대웅전을 지나 법수사 윗쪽으로 올라가보니 진원사와 같은

 산신당이 있고 그 뒤로 큰 바위가 병풍처럼 쳐져 있다.

 

 

안동 예천 간 34번 국도를 가로질러 낙동강을 따라 풍산읍에 이르는

지방도로로 들어서면 풍산읍 막곡리 오른편에 낙타 등처럼 생긴 산이 청성산이다.

청성산(252m)은 『영가지(永嘉誌)』에 따르면 산성이 있었으므로

성산(城山)이라고도 하며, 성산(星山). 청산(靑山)이라고도 한다.

정상은 사방이 트여 조망하기에 좋고 정상에서 남쪽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면

 크고 네모난 바위들이 기괴한 형상을 하고 있으며, 참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연어헌의 새로운 정보에 감사드리면서 좋은 하루 되세요
비가 내리는 금요일 오후이네요
편안한 저녁시간 보내세요.
석불상이 인상적이네요
바위를 깍아 만든것인지
바위를 깍아 붙여 만든 것인지
특이한 석불상입니다.
문화재로 지정된 석불상은 아닌 듯 하네요
편안한 밤 되세요 논정님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