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합동기독신학

믿음의 노래 2015. 3. 14.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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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신조학

Ⅰ. 신조학

1. 신조의 명칭과 정의

2. 신조의 기원

3. 신조의 권위

4. 신조의 가치와 용도

5. 신조의 분류

Ⅱ. 에큐메니칼 신조

1. 사도신경

2. 니케아 신조

3. 켈케돈 신조

4. 아타나시우스 신조

Ⅲ. 로마교회 신조

1. 가톨릭교회와 로마교회

2. 트렌트회의 신조

Ⅳ. 복음주의교회들의 신조

1. 프로테스탄트 사상과 로마교회 사상

2. 복음적인 신앙고백

3. 루터파 신조와 개혁파 신조

Ⅴ. 복음적인 루터교회 신조

1. 루터교회 및 루터교회신조 개요

2. 아우구스부르그 신앙고백

3. 아우구스브루그 신앙고백의 변증서

4. 루터의 요리문답

5. 스몰칼드신조

6. 일치신조(Formula Concordioe)

Ⅵ. 복음적인 개혁주의교회의 신조

1. 개요

2. 개혁파신조들의 특징

3. 쯔빙글리적 신조

4. 쯔빙글리와 불링거의 신조

5. 칼빈주의 고백서

Ⅶ.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

1. 차이점

2.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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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신조학

1. 신조의 명칭과 정의

(1) 신조(Creed, Rule of Faith, Symbol) - 공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신앙고백 또는 신앙 내용을 언어 형태로 표현하여 그것에 특별한 권위를 부여한 것.

(2) 신조란 공적 사용을 위한 믿음의 고백이요, 구원을 위해 또는 기독교 교회의 유익을 위해 필요하다고 작성자들에 의해 간주되는 확실한 믿음의 내용들을 권위를 갖고 공포한 말들의 형태.

(3) 신조는 그 시대에 대한 신앙의 구체화요 종교적인 논쟁 속에 얻어진 값진 부산물이다.

(4) 신조는 시대의 상황을 반영한다.

1) 대중적인 형식- 사도신경, 니케아 신조

2) 학문적- 종교개혁 시대와 그 이후, 목회자나 교사들을 위함

3) 신조는 역사적 발전이 있다. 성경적, 신학적 지식의 발전과 관계있다.

2. 신조의 기원

(1) “나는 믿는다. 그러므로 나는 고백한다”

(2) 최초의 신앙 고백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이다.

(3) 서방교회 - 사도신경

동방교회 - 니케아신조

개신교 - 아우구스부르그 신앙 고백

3. 신조의 권위

성경

신조

1) 하나님의 것

1)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인간의 답변이다.

2) 신앙의 규범(the rule of faith)

2) 교리의 규범(the rule of doctrine)

3) 신적(神的)이며 절대적인 권위를 갖는다.

3) 교회적이고 상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을 따름이다.

따라서 신조주의는 일종의 우상 숭배이다.

4) 성경은 목사와 평신도의 믿음과 행위를 지배한다.

4) 신조는 교회정치, 예배 의식, 찬송가 등과 관련되는 교회의 헌법과 교헌과 같은 교회 직분자들의 공적인 가르침만을 지배한다.

4. 신조의 가치와 용도

(1) 신조는 사도들이 믿었고 가르쳤던 내용을 요약한 것으로서, 신조는 성경 자체가 아니라 성경에 대한 해설에 불과하다. 따라서 신조의 권위를 이보다 더 높이 보면 로마 가톨릭 교회의 오류로 된다.

(2) 신조(信條) 없이는 신앙과 생활의 순결을 지켜 나갈 수 없다.

(3) 성경의 교훈을 요약. 올바른 이해에 도움을 주며, 성경을 가르치는 자를 하나로 묶어주고, 거짓교훈과 생활을 막아내는데 공적표준으로서 방패가 된다. 그러나 신조 만능주의 또한 경계해야 한다. 교회는 신조와 더불어서 성령님과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할 때 참된 부흥을 할 수 있다.

5. 신조의 분류

(1) 에큐메니칼 신조

(2) 로마교회의 신조

(3) 복음주의교회들의 신조

(4) 복음적인 루터교회 신조

(5) 복음적인 개혁주의교회의 신조

(6)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

Ⅱ. 에큐메니칼 신조

신조와 신경, 그리고 신앙고백이라는 용어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신조(Article of Faith)는 기독교 신앙의 근본적인 표현이며, 신경(Creed)은 기독교의 교리의 핵심을 요약한 공식적, 권위적 진술이며, 신앙고백(Confession of Faith)은 개인의 신앙을 대외적, 공식적으로 표명하는 것이다.

에큐메니칼 신조는 사도신경, 니케아 신조, 칼케돈 신조 및 아타나시우스 신조이다.

1. 사도신경

< 본 문 >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1) 형성 및 수용과정

1) 저자는 미상이며 사도신경(The Apostles' Creed, Symbolum Apostolicum)은 주후 약 100년 경에 널리 인정되고 있던 신학적 교리들을 전달하는 신앙 조목들을 포함하고 있다. 삼위일체 순서 따라 배열되었고 처음에는 질문형식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A.D. 4세기에 긍정문으로 바뀌고 ‘죄의 용서’라는 구절이 첨부되었다.

2) 215년경에 쓰인 히폴리투스의 『사도적 전통』(Apostolic Tradition)의 '질문형식신조'(Interrogatory Creed)에 다음과 같은 사도신경의 원시형태가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을 '로마신경'(Symbolum Romanum, The Old Roman Creed)이라고도 한다.

당신은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까?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까?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령에 의하여 나셨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시고(그리고 장사되어)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하늘에 오르사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을 믿습니까? 당신은 성령과 거룩한 교회와 (몸의 부활을) 믿습니까?

이 로마신경은 약 2세기 말, 주후 170-180년경 로마에서 발전하고 있었으며, 사도신경은 이 ‘로마신경(The Old Roman Creed)’의 증보판이라고 할 수 있다.

3) 현재의 내용과 문장대로는 아니지만 일찍부터 이 신경의 전신들이 있어서 세례 문답에서도 고백된 것이 틀림없다.

4) 서방교회에서 최초로 라틴어 사도신경의 본문을 작성하고 거기에다 주석을 덧붙인 사람으로 루피누스(Rufinus)가 있는데, 그가 404년에 소위 '루피누스의 신조'(Creed of Rufinus)를 작성하였다. 이 신조는 아퀼레이아(Aquileia) 교회에서 사용되었다.

5) 오늘날의 사도신경 본문이 확정된 것은 7-8세기로 본다. 이것을 범교회적으로, 범국가적으로 사용하게 한 것은 샤르망(Charlemagne, 742-814, 찰스)대제 때였다. 사도신경은 모든 신조와 신앙고백 가운데서 역사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신조이다.

(2) 내용 및 구조

1) 이 로마신경과 대동소이한 것으로 340년에 나온 마르셀리우스(Marcellius of Ancyra, 336-341)의 신조(헬라어로 되어 있음)를 들 수 있는데, 마지막 부분에 가서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이 첨가되어 있다.

2) 시르미움 회의(359년)에서는 “음부로 내려 가셨다”(descendit ad inferna) 가 첨부 되었다. 회의 참석자인 마르쿠스(Markus von Arethusa)는 이 표현의 첨가를 제안하면서 그리스도의 진정한 죽음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서방에서는 이것을 승리의 음부행 내지 지옥의 정복으로 풀이하게 되었다.

3) 「사도신경」이라는 명칭은 교황 시리키우스(Siricius)에게 보낸 밀라노 회의(390)의 서신에서 처음으로 나타났다.

4) 개신교의 역사에 있어서도 사도신경은 결정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루터는 1529년 대소요리문답(The Small & Large Catechism)을 작성할 때 사도신경, 주기도, 십계명의 순서로 풀이하였다. 칼빈의 ‘기독교강요’도 구조적으로 사도신경의 순서를 따랐다. 곧 성부, 성자, 성령 그리고 교회의 순서를 취한 것이다.

(3) 한국교회의 사도신경 번역과 음부행 삭제

서구교회 사도신경과 한국개신교회 사도신경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음부에 내리신지'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로마 가톨릭 교회의 사도신경에는 이 부분이 '고성소(古聖所)'로 표기되어 있다. 성공회에서도 음간(陰間)으로 표기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 개신교회에서는 음부행을 삭제하였다.

(4) 음부행(descendit ad inferna)에 대한 신학적 의미

1) 로마 가톨릭교회는 음부를 세례 받지 못하고 죽은 구약성도들이 가 있던 곳 곧 고성소(古聖所, Limbus Patrum)로 이해한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그리스도께서는 삼일동안 고성소에 가서 세례를 베풀어 주심으로 거기에 있던 구약의 성도들이 천국에 이르도록 하셨다고 한다.

2) 한편 영국 성공회는 음부를 낙원으로 해석한다. 그리스도께서 낙원에 머물던 구약성도들에게 복음을 충분하게 강론하셨다는 것이다. 루터 교회는 음부를 지옥으로 해석한다. 그리스도는 지옥에 가서 불신자들에게 자신의 승리를 선포하셨다는 것이다. 지옥에 내려가신 것은 그리스도의 승리의 첫 단계라고 주장한다.

3) 칼빈과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이 곧 지옥의 경험이라고 본다. 칼빈은 제네바 요리문답 65항에서, 예수께서 음부에 내려가신 것을 "육신과 영혼의 분리인 자연적인 죽음만을 겪으신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 성 베드로가 죽음의 고통(행2:24)이라고 부르고 있는 놀랄만한 고민 가운데 그의 영혼이 갇힌 것"이라고 하였다. 제 66항에 의하면, 예수님은 죄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고 그 무서운 고뇌를 당하셨으며,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셨습니까" 하고 울부짖었던 것이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44항은 이것을 이렇게 말한다. “우리 주 되신 그리스도께서 나를 지옥의 고뇌와 고통으로부터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그의 영혼으로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고뇌와 고통과 두려움을 당하셨음을 확신하게 되기 때문이다.”

4) 바르트는 이것을 두 가지 관점에서 이해한다. 하나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시련의 비참함으로 이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을 위한 신적인 승리의 사건으로 이해한다. 전자는 마가복음 15:34의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의 의미이고, 후자는 벧전 3:19의 '저가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셨느니라' 및 계5:5의 '유대지파의 사자가 이기었느니라'의 의미라는 것이다.

4) 판넨베르그는 예수의 음부행에서 예수를 지옥의 고통을 당한 자로 해석하는 것과 지옥의 고통에서 승리자로 해석하는 것은 서로 배타적으로 보이지만, 구원의 보편성과 연관되어 있다고 해석한다. 예를 들면 예수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구원 가능성, 복음을 접해 보지 못한 사람들의 구원가능성 또는 복음을 듣기는 들었으나 믿지 못한 사람들의 구원가능성에 대하여, 예수의 지옥행은 ‘저가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벧전 3:19)하기 위함이니 예수를 결코 알지 못하던 이들도 역시 우리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구원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5) 웨스트민스터 신학자들은 ‘죽음’의 완전한 경지를 나타내는 말로서 ‘장사지낸 바 되시고’의 연장으로 보았다.

(5) 의의

1) 어거스틴(St. Augustine of Hippo, 354-430)

“가장 어휘가 적으나 가장 의미가 깊은 신앙의 규범이다.”

2) 루터(Luther,1483-1546)

“기독교 진리가 이렇게 짧고 분명한 진술로 표현될 수 있는가? 이 사도신경은 우리가 만들지 않았고 생각해 내지 않았다. 우리의 조상들도 그러하지 못했다. 마치 한 마리의 벌이 여러 아름답고 생생한 작은 꽃에서 꿀을 모으듯이 이 신앙고백은 위대한 사도들의 책에서, 즉 모든 성경으로부터 어린이들이나 단순한 신자들을 위하여 교묘하고 간결하게 신앙을 총괄하여 알게 하였다.”

3) 칼뱅 (Jean Calvin 1509∼1564)

“우리의 믿음의 전 역사가 그 속에 간결하고도 명확한 순서로 정리되어 있으며, 또한 성경의 순전한 증거들로 보증되지 않는 것은 하나도 거기에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4)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22문 그러면 그리스도인이 믿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답: 복음에서 우리에게 약속한 모든 것을 믿어야 하는데, 우리의 보편적이며 의심의 여지가 없는 기독교 신앙의 조목들(즉 사도신경)이 이것을 요약하여 가르쳐 줍니다.

5) 필립 샤프(Philip Schaff)

"기독교의 모든 시대와 모든 분파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띠와 같다“

2. 니케아신조(The Nicene Creed, 325) : 하나님

< 본 문 >

325년 7월 25일 니케아 공의회에서 채택된 신경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한분 하나님을 믿는다.

그는 전능하신 아버지이시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을 만드신 창조자이시다.

그리고 한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아버지로부터 나신 자이시며,

독생자이시다.

아버지의 본질로부터 나오신 자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하나님이시며,

빛으로 나오신 빛이시며,

참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참 하나님이시다.

낳으신 자이시고 만들어진 자가 아니시다.

아버지와 한 본질이시며

그를 통해서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모든 만물이 존재케 되었다.

그는 사람들과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로부터 내려오셨고,

성육신하셨고, 인간이 되셨으며,

고난당하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으며,

하늘에 오르셨다.

그리고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을 믿는다.

그리고 성령을 믿는다.

그러나 아들이 계시지 않았던 때도 말하는 자들,

탄생 전에는 아들이 계시지 않았다고 말하는 자들,

아들은 무에서부터 지음을 받았다고 하는 자들,

하나님의 아들은 상이한 본질 혹은 본체를 가졌다고 주장하는 자들,

혹은 아들이 피조 되었다든지

혹은 변화될 수 있고 바뀔 수 있다고 말하는 자들을

가톨릭교회는 저주한다.

(1) 저자

니케아에서 A.D. 325년에 소집된 이 에큐메니칼(The First Ecumenical Council)회의에서 당시 5교구(로마, 알렉산드리아, 예루살렘, 안디옥, 콘스탄티노플)에서 318명의 감독들이 참석하여 삼위일체 교리를 확정지었다.

(2) 논쟁점

1) 아리우스(Arius) 장로의 주장

① 예수는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계시지 않았을 때도 있다’.

② 성자는 시작이 있으나 성부는 시작이 없다.

③ 성자는 변화하며 심지어 죄를 지을 수도 있는 존재이다.

④ 예수는 가장 최초의 피조물로서 로고스에 지배된 자이며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을 가진 자가 아니라, 인간도 아니고 신도 아닌 제3의 그 무엇이라 하였다.

2) 아다나시우스(Athanasius, 296-373)감독의 주장

① 성자 성부 동일본체

(3) 니케아 신조의 채택

기독교 공의회가 약 70년에 걸친 논의를 통해 Athanasius의 ‘세 인격 안에 한 하나님’과 갑바도기아 3학자의 ‘한 하나님 안에 세 인격론’을 수용하게 되었다.

1) 아리안 이단에 대한 승리로,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표현이 분명,

2) 동질, 동등(호모우시우스), 창조이전의 발생, 참 하나님의 참 하나님. 발생되고 피조 되지 않으심.

3) 동방신조는 이단과 싸움을 하던 중에 신조(信條)를 만들었기에 신조가 형이상학적이고 논쟁적이고 완만한 표현을 가짐, 서방신조는 단순하고 실제적, 정적.

4) 필리오퀘(filioque, 그리고 아들)

5) 교황의 권위 문제 다음으로 동서 기독교를 갈라지게 한 가장 큰 요인.

6) 희랍교회는 성부의 유일한 신성과 신성의 본체를 의미하는 monarchia를 강조함으로써 성령이 오직 성부에게서만 발출되었다는 주장하는 단순발출을 가르쳐 삼위의 내재적 영원발출을 위한 길을 열어 놓음. 성부와 성자에 의한 지상사역을 명확하게 했다.

7) 라틴교회는 성자와 성부가 동등함에 관심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발출(processio)을 넓은 의미로 해석, 어거스틴 이후로 성령이 성부와 그리고 성자에게(filioque) 발출했다는 이중 발출 교리를 동방교회와 협의 없이 신조 속에 포함시켰다.

제 3차 톨레도 회의 589년에 필리에퀘 등장.

8) 381년의 니케아-콘스탄니노플 신조에서 보완된 후 동방 교회 내지는 희랍 정통교회의 고전적 신조가 되었고, 서방 교회가 애용하는 사도신경에 해당된다.

‘성령론’을 확장시킬 뿐만 아니라, ‘교회론’과 ‘하나의 세례’에 대한 고백까지 포함시켰다. 150명의 교회 대표들이 모여 결정한 후 보편교회의 수의과정을 거쳐 확정되었다.

서방교회에서는 586년에 ‘그리고 아들에서도(filioqe)’라고 하는 구절을 덧붙여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1991년 WCC 산하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에서는 본래의 본문을 사용하고 있다.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381년)>

* 콘스탄티노플 신조라고 약칭하기도 하고, 니케아 신조를 수정한 것이기 때문에 그냥 니케아 신조라고도 한다.

<본문>

우리는 한 분 하나님,

전능하신 아버지,

하늘과 땅과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만물을 만드신 자를 믿나이다.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하나님이 독생자시오,

모든 세대 이전에 아버지로부터 나신자요,

빛으로부터의 빛이시요,

참 하나님으로부터의 참 하나님이시요.

나시되 만들어지신 것은 아니며,

아버지와 동일본질이시니라.

이를 통하여 만물이 생겨났으며,

그는 우리 인간들을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오시사

성령과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육신하시였고,

사람이 되시었고,

우리를 위하여 본디오 빌라도에게 십자가에 못박히시었고,

고난 받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시었다가

성경대로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시어

하늘에 오르사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시니라.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 위하여 영광으로 다시 오실 것이며

그의 나라는 무궁하리라.

또한 성령을 믿사오니,

이는 주 되시며

생명을 주시는 자이시니,

아버지로부터 발출하시며,

곧 아버지와 아들과 더불어 함께 경배받으시며,

함께 영광을 받으실 분이시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여 오신 분이시니라.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인 사도적 교회를 믿나이다.

우리는 죄의 사유를 위한 한 세례를 고백하나이다.

우리는 죽은 자의 부활과 오는 세상의 생을 바라고 있나이다.

아멘

3. 칼케돈 신조(451)

< 본 문 >

<칼케돈 신조>: 예수 그리스도

그러므로 거룩한 교부들을 따라서 다음과 같이 가르치기로 우리는 만장일치로 결정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한 분 동일하신 하나님이시며,

신성에 있어서 동일하게 완전하시고,

인성에 있어서 동일하게 완전하시고,

참 하나님이시며,

참 인간이시고,

이성적 영과 몸을 동일하게 가지신다.

그는 신성에 있어서 아버지와 동일하시고

인성에 있어서 우리와 동일본질이시나

죄를 제외하고 우리와 똑같다.

그는 신성에 있어서 시간 이전부터 아버지로부터 낳으시고,

동일하신 분이 마지막 날에 우리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으니,

그의 인간성에 대해서는 동정녀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이다.

우리는 한 분 동일하신 그리스도,

아들 주님을 독생자로 인정하며,

두 본성이 혼돈이 없고,

변화도 없고,

분리도 없고

별거도 없는 연합체로 알려졌으나

두 본성의 차이가 연합으로 인해서 결코 없어지지 않았으며

각 본성의 속성은 한 위격과 한 본체 안에 다 같이 보전되고 함께 역사한다.

두 위격으로 나누이거나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한 분 동일하신 아들로서 독생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이시며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옛 선지자들이 예언한 대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자신에 대해서 우리에게 가르쳤으며

우리에게 전달된 교부들의 신조가 그렇게 가르친다.

(1) 저자

A.D. 451년에 약 520명의 감독들이 모여 기독론을 확정하였다.

(2) 기독론의 두 흐름

(기독론의 논쟁 과정표)

기독론 논쟁 과정표

Alexandria학파 Clement와 Origen은 그리스도를 logos로 간주함.

Alexandria 학파 Apollinarius는 로고스 육체기독론을 주장함.

Nestorius -(Antioch 출신)

Cyril -(Alexandria의 감독)

기독론

신성(神性)과 인성(人性) 양성의 연합설

Apollinarius를 지지하여

신성(神性)만 가졌다.

마리아

그리스도의 어머니

하나님의 어머니

감정의 발단

콘스탄티노플의 대감독인 Nestorius가 황제의 의뢰를 받아 Alexandria 감독인 Cyril를 조사함.

Cyril이 여기에 불쾌한 감정을 갖고 Nestorius를 죽이는 일에 힘을 쏟았다.

방법

Cyril은 ‘하나님의 어머니’파를 책동하여 Nestorius의 ‘그리스도의 어머니’파를 이단으로 지목하고, 로마의 총주교, 황제, 황녀들과 황후, 황태후에게 편지를 보냄.

431년 에베소 종교회의(158명 참석)

* Antioch의 68명의 항의가 있었다.

* 후착한 Nestorius와 Antioch의 대표들은 Cyril을 파문함

* 황제 테오도시우스는 Nestorius를 수도원으로 보내고,

* 선착한 Cyril과 Alexandria학파는 Nestorius를 파문 결정함.

* 교황의 사절들은 시릴과 합세하여 Antioch측을 파문함.

* Cyril을 옥에 가둠

433년-통합신조

* Antioch측은 Nestorius를 포기함.

* Nestorius는 이단으로 정죄되어 교회로부터 추방당하고 페르시아 지역 아세아 지역으로 교회를 세웠다.

양성론을 받아드림

Alexandria의 한 수도원장인 Eutyches의 주장-신인혼합의 단일성(신도 인간도 아닌 제 3의 인물)

448년(콘스탄티노플 대회)

콘스탄티노플 감독 Flavin은 Eutyches를 정죄함

Alexandria의 감독 Dioscorus는 Euteches와 합세하여 Flavin을 공격함

449년(에베소 회의)

Flavin은 로마의 교황의 힘을 빌렸다.

* Dioscorus는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의 힘을 빌려 긴급회의를 소집하였다.

* 병졸을 회의장에 배치하고 반대자들을 협박하였다.

* Euteches의 단성론을 확인하고 Flavin을 정죄하였다.

교황 레오 1세

* 교황 레오1세는 이를 강도회의라 불렀다.

* Euteches의 이단을 논박함

*테오도시우스가 사망하자 칼케돈 회의를 소집함

451년(칼케돈 회의)

* 그리스도의 양성(兩性) 교리를 채택하여 새로운 서방 신조로 채택함.

1) 안디옥 학파와 알렉산드라 학파 간의 신학적 정치적 투쟁을 계속하다가 칼케톤 공의회(451년)에서 교황 레오1세의 이론을 강화하여 그리스도의 양성론을 종합적으로 규정하였다.

2) 그리스도의 이성교리(신성과 인성)를 완성, 네스토리우스와 유티코스의 잘못된 사상을 배격.

4. 아타나시우스 신조

이 신조의 저자가 아타나시우스가 아니며 작자 미상이다.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of Alexandria, 296-373년) 사후인 451년에 작성된 켈케돈 신조의 기독론과 420년경 어거스틴이 체계화한 삼위일체론이 반영되이 있는 점과 589년 톨레도 종교회의에서 서방교회가 채택한 성령의 이중발현설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아 7세기 초 작품으로 추정된다. 아리우스를 강력히 반대했던 아타나시우스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붙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본문>

"구원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먼저 보편적인 신앙을 확고히 가져야 합니다. 누구든지 이 신앙을 완전하고 손상됨 없이 지키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멸망 받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보편적인 신앙이란 이런 것입니다.

1) 누구든지 구원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것 이전에 먼저 이 신앙을 소유해야 한다.

2) 누구든지 이 신앙을, 완전하고 순결하게 지키지 않으면, 틀림없이 영원한 멸망을 받을 것이다.

3) 이 신앙이란 다음의 것들이다. 삼위(三位)자체가 일체(一體)이시고, 일체(一體)자체가 삼위이신,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4) 이 삼위는 혼합한 것도 아니요, 그 본질을 나눈 것도 아니다.

5) 왜냐하면 아버지의 한 인격(위)과 아들의 다른 인격(위), 또한 성령의 또다른 인격(위)이 계시기 때문이다.

6) 그러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신격은 모두가 다 하나요 그 영광도 동일하며 그 위엄도 함께 영원한 것이다.

7)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그 자체로 존재한다.

8) 성부께서 창조함 받지 않으신 것 같이, 성자도 창조함 받지 않으셨으며, 성령도 창조함 받지 않았다.

9) 성부께서 다 이해할 수 없는 분이신 것 같이, 성자도 다 이해할 수 없는 분이시고, 성령도 다 이해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10) 성부께서 영원하신 것같이, 성자도 영원하시며, 성령도 영원하십니다.

11)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세 영원한 분들이 아니시며, 한 영원한 분이십니다.

12) 창조되지도 않았고 우리의 이해를 초월한 세 하나님이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되지도 않고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 단 한 하나님만이 계실 뿐이다.

13) 성부께서 전능하시듯이 성자와 성령도 전능하시다.

14) 그러나 세 하나님의 전능자가 계신 것이 아니요, 오직 한 하나님의 전능자가 있을 뿐이다.

15) 성부가 하나님이시듯이 성자도 성령도 하나님이시다.

16) 그럼에도 세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한 하나님만이 계실 뿐이다.

17) 성부께서 주님이시듯이 성자도 성령도 주님이시다.

18) 그럼에도 주님이 세 주가 아니라 한 주이실 뿐이다.

19) 우리는 이 각각의 삼위(三位)께서 그 스스로 하나님이시오,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기독교의 진리로 받는 바이다.

20) 따라서 세 하나님이 계시며 세 분 주님이 계시다는 말은 참 기독교인으로서 금한다.

21) 성부는 그 무엇에서 만들어지지지 않으셨으니, 곧 창조함 받지도 않으시고, 나지도 않으셨다.

22) 성자는 성부에게서만 나시며, 지음을 받았거나, 창조되신 것이 아닙니다.

23)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보내지셨으나 지음을 받았거나 창조되었거나 발생된 분이 아니시고, 나오신 것입니다.

24) 따라서 세 분 성부가 아닌 한 성부, 세 분 성자가 아닌 한 분 성자, 세 분 성령이 아닌 한 성령만이 계실 뿐이다.

25) 이 삼위에 있어서 그 어느 한 위가 다른 한 위의에 앞서거나 뒤에 계신 것이 아니며, 어느 한 위가 다른 위보다 크거나 작을 수도 없다.

26) 다만 삼위가 함께 영원하며 동등하다는 것이다.

27) 따라서 앞서 말한 대로, 이 모든 것에서 삼위(三位)가 일체(一體)이시며, 일체(一體)가 삼위(三位)인 하나님께서 경배를 받으셔야 할 것이다.

28) 그러므로 구원을 받으려는 이는, 삼위일체에 관하여 이와 같이 믿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29) 동시에, 영원한 구원을 얻는 데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에 대하여 올바로 믿어야 한다.

30) 올바른 믿음이란 하나님의 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시오 동시에 인간이라는 사실을 믿고 고백하는 것이다.

31) 그는 성부의 본질에서 나신 신이시며, 이 세상이 생기기 전에 나신 자요, 동시에 인간으로서는 그 어머니의 본질로부터 이 세상에서 나신 분이시다.

32) 완전한 하나님이시오 또한 완전한 인간으로서 이성있는 영과, 인간의 육신으로서 생존하신다.

33) 신성으로서는 성부와 동등되나 그의 인성으로서는 성부보다 낮으신 분이시다.

34) 비록 그는 하나님이시며 인간이 되시긴 하나 둘이 아니요, 한 분 그리스도이실 뿐이다.

35) 하나됨에 있어서는 그의 신성이 육신으로 전환된 것이 아니라(육신화 함으로서가 아니며) 인간의 몸을 취한(그의 인성을 신성 안에 받음으로써) 하나님이 되시는 분이시다.

36) 온전히 하나인데, 그 본질이 혼합된 분이 아니라 품격의 통일성으로 하나되신 분이시다.

37) 한 인간이 영혼과 육신을 가졌듯이, 한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시오 동시에 인간이 되신다.

38) 그 분은 우리를 위해 고난 받으시고 음부에 내려가셨다가 삼일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셨다.

39) 그는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곧 성부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며

40) 거기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이다.

41) 그가 오실 때에 모든 사람들은 육체로 부활할 것이며,

42) 자신들의 행위에 따라 판단을 받을 것이다.

43) 그리고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영생으로 나가고 악을 행한 자는 영원한 불에 들어갈 것이다.

44) 이것이 교회의 참 신앙이며, 이를 신실하게 믿지 않는 자는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아멘.

Ⅲ. 로마교회 신조

1. 가톨릭교회와 로마교회

프로테스탄트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로마 가톨릭교회(Catholicism)와 로마교회(Romanism)의 차이점을 알아야 한다.

가톨릭교회는 로마교회이건 희랍교회이건 프로테스탄트이건 모든 신자들을 다 포함하고 있으나 로마교회는 지엽적이고 분파적이며 배타적이다.

(1) 로마 가톨릭 교회

전 세계의 공식적인 그리스도인 중 절반 이상인 1억 8천만 명의 신자를 가진 교회이다.

(2) 로마교회

주로 라틴계 민족이 있는 남부 유럽과 미주에서 주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로마에서 순교를 당한 베드로와 바울로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데, 다른 어떤 교회보다도 예배, 교리, 정치면에서 탁월하다. 로마교회는 지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무오한 대리자로서 로마의 감독을 영적 조직의 절대적인 정점으로 하고 있다. 로마교회는 자기들만이 그리스도의 교회이고 다른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의 울타리 밖에 있는 분리주의자들이며 이단이라 여기고 있다.

2. 트랜트신조(1563)

로마교회는 1563년 종교개혁 운동에 맞서 교리적 논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목적과 교회 자체의 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 로마교회의 전통과 신학을 공식적으로 교의화 및 체계화 하였다.

(1) 교의화

① 전통과 성경의 이중 권위

② 외경과의 인정과 벌게이트 성경의 절대성

③ 교회의 유일한 성경 해석권

④ 원죄의 교리

⑤ 신앙과 행위의 칭의

⑥ 공로적 선행

⑦ 화체설

⑧ 죽은 자를 위한 미사

⑨ 고해성사와 사제의 사면권

⑩ 종부 성사

⑪ 연옥의 존재

⑫ 성체 숭배

(2) 교황의 무오설을 만듬

(3) 면죄부 판매, 성직자의 교육과 도덕, 수도원의 제도의 개혁을 감행하였다.

Ⅳ. 복음주의교회들의 신조

1. 프로테스탄트 사상과 로마교회 사상

로마 교회

프로테스탄트

신앙의 객관적 원리(하나님의 말씀)

성경과 전통

오직 성경

칭의

믿음과 선행

오직 믿음

사회적 원리

오직 사제만을 제사장으로 인정

모든 신자의 만인 제사장으로 인정

권위의 종교

자유의 종교(갈5:1)

* 객관적- 개개인을 교회의 지체에 끌어 넣는다.

* 교회의 증거를 기초함(요4:42)

* 주관적-개개인의 관심을 집중함.

* 개인적 체험에 근거한 믿음

율법주의, 금욕주의, 성직주의, 의식주의 종교

복음적이고 영적 단순성을 가진 종교

감성과 사색에 호소

지성과 양심에 호소

외면적인 모습

내재적인 모습

성경 해석권

사제들만 성경을 이용하고 전통에 지배를 받는다.

개개인이 성경을 이용하고 전통에 지배를 받지 않는다.

기도

교회의 중보를 통해서 교통함. 동정녀와 성자들의 중재를 통해서 기도함.

개개인이 그리스도에게 직접적인 교통을 함

2. 복음적인 신앙고백

복음적인 신앙고백은 대개가 16세기(1530-1577) 프로테스탄트 사상이 일어났던 때의 산물로서 로마교회의 트렌트회의 표준문서들과 거의 같은 시기에 나왔다. 이 때는 종교적인 논쟁의 시기였기 때문에 복음적인 신앙고백은 극히 신학적이고 논쟁적이다.

정통적인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신앙고백은 에큐메니칼적 요소, 어거스틴적 요소, 복음적 요소가 있다.

(1) 에큐메니칼적 요소

신론과 기독론에 있어서 희랍교회나 로마교회의 견해와 일치한다. 사도신경과 니케아 신조와 일치한다.

(2) 어거스틴적 요소

인간론, 즉 죄, 은혜, 예정, 성도의 견인 교리

(3) 복음적 요소

성경적 원리나 이신칭의 사상과 맞지 않는 로마교회의 교리들과 항거하고 있다. 교황제도, 미사의식, 화체설, 연옥설, 면죄부, 공로교리, 성자(聖者)의 형상 또는 성혼숭배 사상을 전적으로 부정하였다.

제 4차 에큐메니칼회의 때까지(325-451)의 교리적 결정들과 삼위일체와 성육신에 대한 어거스틴 사상을 요약.

저주문은 조화미를 잃게함(삼위일체와 성육신을 반대하는 자는 영원히 멸망을 받으리라고 저주, 이단의 위험을 경고)

3. 루터파 신조와 개혁파 신조

루터파 사상과 개혁파사상의 교리적인 차이점은 성만찬 시 그리스도의 임재 방식과 역사가 시작하기 이전의 예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의 범위 문제의 두 항목에 국한되어 있었다.

Ⅴ. 복음적인 루터교회 신조

1. 루터교회 및 루터교회신조 개요

(1) 루터교회

루터교회는 독일에서 1517년 10월 31일 면죄부 판매에 대한 말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의 '95 개조 논제' 발표를 계기로 시작된 종교개혁에 의해 형성된 최초의 프로테스탄트 교회(개신교)이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한 이름 없는 수도사였던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제성기념일 전야에 "95개조 논제"를 비텐베르크성 교회의 문에 붙인 것으로부터 촉발된 작은 개혁의 물결이 전체 서방 기독교 세계로 퍼지게 되었다. 개혁의 주체였던 루터와 그의 동료들은 "믿음만으로, 은총만으로, 성서만으로"라는 3대 기치를 내걸고 바른 교회로 돌아가기 위하여 투쟁을 하였다.

이에 로마 가톨릭은 그들을 루터란(Lutheran)이라고 불렀다. '루터란'(Lutheran)이란 말은 '루터를 따르는 놈들'이라는 말로서 로마가톨릭 교도들이 붙여준 것인데 결국 교회의 이름이 되었다. 루터교회는 신구약 성서를 신앙과 생활의 절대규범(Norma Normans)으로 믿으며 세계적 보편 신조인 사도신조, 니케아 신조, 아다나시우스 신조를 제2의 신행규범(Norma Normata)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개신교로서는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루터교회는 종교개혁이 발생한 독일과, 루터교를 국교로 하고 있는 대부분 북부 유럽의 여러 나라들(독일,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아이슬랜드, 에스토니아 등의 나라는 루터교가 국교이다)을 비롯해 북미와 아시아 등 세계 전역에 걸쳐있다.

한국이 루터교와 인연을 맺은 것은 독일 루터 교인으로 자유 선교사였던 칼 귀츨라프(1803-1851)가 1832년 7월 한반도의 서해안에 들러 1개월간 한자어로 된 전도지를 돌린데서 비롯된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한국에 루터교가 들어와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한국동란이 끝난 1958년부터이다. 몇 년간의 준비기간이 끝난 뒤 미국의 미조리 의회(LCMS)가 파송한 세 명의 선교사〔(바트링(L.B. Bartling) , 도로우(M.W. Dorrow), 보스(K.E. Voss)〕는 1958년 1월13일 서울에 도착하여 선교를 시작하였고, 9개월 뒤에는 지원용 박사가 귀국하여 선교팀(KLM)에 합류하였다.

한국의 루터교회는 초교파적인 입장에서 방송선교, 문서선교 그리고 성서연구 프로그램에 힘써 왔다. 기독교 한국 루터회는 루터교회라는 교회 이름보다 루터란 아워, 컨콜디아사, 기독교 통신강좌, 베델 성서연구 등 초교파적인 프로그램들로 더 잘 알려져 있다.

(2) 루터교회 신조

복음적인 루터교회가 인정하는 신조는 9개가 있다. 즉 사도신경, 니케아신조, 아다나시우스신조, 멜랑히톤이 작성한 아우구스부르그 신앙고백(1530)와 신앙고백의 변증서(1530), 스몰칼드신조, 루터가 작성한 신앙고백서(1537)와 두 개의 요리문답(1529), 6명의 루터파 신학자들이 작성한 일치신조(1577)이 있다.

루터파와 칼빈파의 차이점은 신론, 기독론, 인간론, 구원론, 종말론에 비슷하지만, 성례의 성질과 효능, 특히 성만찬에서의 그리스도의 임재 방식에 관한 교리에서 차이가 난다.

2. 아우구스부르그 신앙고백(1530)

(1) 저자

루터의 조언을 받아 멜랑히톤이 작성함으로써 최초의 저자는 루터요 두 번째 저자는 멜랑히톤이라 볼 수 있다.

(2) 기원과 역사

아우구스부르그 신앙고백서가 처음에는 박해를 받던 초대교회의 습관을 따라 변증서라고 불렸었다. 이 고백서는 내적으로는 복음적인 신앙을 신조화 하려는데 있었다. 그리고 외적으로는 독일황제 찰스5세가 루터파에 속한 방백들을 아우구스부르그에 있는 바바리안 도시에 회의를 소집하고 종교적 논쟁을 가라앉힘과 동시에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에게 공동의 적이었던 터키족을 막아내는 전쟁에서 서로 협력을 하게 하기 위해서 신앙의 진술서를 만들라고 명령함으로써 생겨났다.

프로테스탄트의 최초의 신조 혹은 신앙 고백문으로 1530년 6월 25일 아우그스버그의 국회 앞에서 색소니의 부(副) 대법관인 바이어(Christian Beyer)에 의해 낭독된 것이다. 이 문서는 루터가 교리적인 문제를 정초했고, 멜랑크톤이 작성하여 7인의 제후들에 의해 승인되었다. 이 신앙 고백문은 2부로 되어 있는데 제 1부는 신앙 21개조로 되어 있으며 제 2부는 개혁을 요구하는 중요한 7가지 악습을 싣고 있다. 이 신앙 고백문은 1580년 콩코오드서(the Book of concord)에 기재되었으며, 따라서 이것은 지금도 루터 교회 신도들에게 권위를 가지고 있다.

1530년 아우구스부르그회의 이전에 발표되어 1531년 햇빛을 보게되었던 비개정 신앙고백서는 지금 원본이 남아있지는 않다. 아우구스부르그 신앙고백서는 본래 라틴어로 작성되었으나 회의석상에서는 독일어로 낭독되었다. 이 두 필사본은 모두황제에게 보내졌는데 모두 없어지고 말았다. 지금까지 현존하고있는 22개의 필사본은 공공도서관과 사설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지만, 결함이 많고 정확하지가 못하다.

루터는 스몰칼드신조가 공인을 받은 이후에도 손수 그것을 교정했다. 그리고 멜랑톤도 이 고백서를 확고 불변한 신조로 여기지 않았다. 다만 교황주의자들을 반대하는 기초요 보다 더 밝은 빛을 통해 계속 전진해 나아가려는 움직임을 표현한 것으로 여겼을 뿐이었다. 따라서 그는 새로운 내용들을 대할 때마다 공개적으로 그리고 솔직하게 수정하였다. 그래서 1540년의 개정판은 초판과는 크게 달라졌다.

(3) 아우구스부르그 신조의 배경

아우구스부르그 신앙고백서는 루터파 교회의 신앙고백서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의의를가지고 있다. 1529년 여름 (7월26일- 9월 14일)에 이미 쉬바바흐 신조 (Schwabacher Artikel)라고 알려진 교리 해설문이 루터와 멜랑히톤 등에 의해 준비되어 그해 10월에 제출된 일이 있었다.

그후 추가로 비텐베르그 신학자들인 루터, 멜랑히톤, 요나스, 부겐하겐에 의해 1530년 3월 27일 톨가우 신조(Tolgau Artikel)가 작센의 선제후 요한에게 제출하여 인준을 받게 되었다. 거기에다 말부르크의 15개 조문이 참조되었다. 그후 모든 루터교회를 위한 공동신조가 될 수 있는 신앙고백문을 작성하기로 작정하였는데 이에 앞서 로마 교회 신학자 요한 엑크의 "404조 논제"라는 것이 공개되어 개혁자들의 입장을 불리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정황 속에서 멜랑히톤은 개혁자들의 변증으로서 28개 조항의 아우구스부르그 신앙고백서를 만들게 되었다.

이 "아우구스부르그 신앙고백서"는 그 내용상으로 보아 쉬바바흐 신조가 그 첫 부분의 골자가 되었고 톨가우 신조가 둘째 부분의 중요 내용이 되었다. 루터는 당시 파문을 받은 중이었으므로 의회에 참석할 수 없었고 코부르그 (Coburg)성에 머물러 있으면서 서신으로 멜랑히톤의 자문에 응하였다. 비록 루터 자신이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고 또 직접 쓰지는 않았으나 루터 자신의 입장과 신학을 잘 말해주는 글이다.

멜랑히톤은 1530년 6월 25일 칼 5세 황제에게 이 신앙고백서를 정식으로 봉정하기 바로 직전까지 교정과 수정을 가하였다. 일곱 명의 제후들과 자유도시 대표들에 의한 서명으로 비로소 이 고백서는 하나의 공적인 신앙고백서로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4) 특징

아우구스부르그 신앙고백서는 다음과 같은 특색이 있다.

첫째, 루터의 강조점이 되었던 신앙에 의한 의인 (義認)으로서 얻을 수 있는 구원의 강조, 자유의 소중성, 초대 기독교 정신의 계승이다.

둘째, 내용상으로 보아 결코 어떤 새로운 교리는 논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 여러 세기를 걸쳐 교회가 가르쳐 온 기독교 신앙의 중심,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앙에 의한 의인 (義認)의 가르침과 성서의 기본적 교의 (敎義)를 재 강조한 것이다.

셋째, 모든 항목의 시작은 우리는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es wird gelehret)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철저히 방어적이다. 그래서 본래의 명칭이 변증서이다. 이 고백서는 가능한 한 로마교회와 화해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그래서 로마교회의 사상과도 잘 조화를 이룬다.

루터파 신학자들은 마르부르그에서 쯔빙글리파와의 모든 관계를 끊어 버리고 카톨릭과의 화해를 원했지만 카톨릭교회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로마교회와 대립하고있는 다른 프로테스탄트 교회들도 루터파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5) 아우구스부르그 신조의 내용

아우구스부르그 신앙고백은(서론과 결론을 제외하고) 두 부분으로 되어있다. 첫째 부분은 적극적인 교리부분으로 주로 교리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리고 둘째 부분은 소극적인 논쟁 부분, 즉 주로 의식과 조직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첫째 부분은 제1조 하나님으로부터 제21조 성자숭배에 이르기까지 21조항으로 서술했다. 이 부분은 복음적인 루터파가 로마카톨릭과 일치하는 점, 어거스틴파와 일치하는 점, 로마교회와 다른 점, 쯔빙글리파나 재침례파와 다른 점을 분명하고도 차분하며 간결한 교리형태로 진술하고 있다.

①. 아우구스부르그 신앙고백은 "하나님의 본질의 통일과 세 위(位)에 관하여 니케야 회의에서 정한 신조는 참된 것이므로 의심 없이 믿어야 한다. 즉 영원하시며, 형체가 없으시고, 분리되지 않으시고, 무한한 능력과 지혜와 선하심을 가지시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만물의 창조자와 보존자이신 하나님의 유일한 신적 본질이 존재한다.

그러면서도, 같은 본질과 능력을 가지시고, 아울러 함께 영원하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세 위가 있다. 이러한 조항에 반대하는 마니교, 발렌티누스파, 아리우스파, 유노미어스파 그리고 마호멧교도들을 정죄하여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은 축복받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 났으며 한 위격 안에 분리될 수 없는 두 본성인 신성 (神性)과 인성 (人性)을 가지고 계신다. 이 한 분 그리스도께서는 참 신이시고 참 인간이시다. 그는 성부 하나님과 우리 인간들을 화해시키시고 원죄뿐만 아니라 인간들의 모든 실제적인 죄로 인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음부에 내려가셨다가 삼 일만에 확실히 부활하셨다.

그 후에 그는 아버지의 우편에 앉으셔서 영원히 통치하시고 그를 믿는 자들의 마음 가운데 성령을 보내어 악마와 죄의 힘에 대항하여 그들을 지키게 하셨다. 사도신조에 나오는 것처럼 그리스도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기 위하여 다시 오실 것이다"고 한다.

아우구스부르그 신앙고백은 신론과 기독론에서 하나님의 단일성 교리와 3위교리(1조) 그리고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교리(3조) 있어서 초대교회 신조들 때부터 내려오는 옛 카톨릭 신앙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유니테리언이나 아리안주의 같은 이단은 정죄한다.

* 유니테리언(Unitarianism)

18세기 등장한, 이신론의 영향을 받은 종교이다. 이들은 신은 하나라는 유일신 신앙 즉, 단일신론(Unitheolism)을 주장하여 예수를 하나님이라고 믿지 않기 때문에, 삼위일체 신앙을 갖고 있는 기독교와는 교리적으로 차이가 있다.

한 분의 하나님과 하나님의 단일성에 대한 믿음.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모범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

신앙과 이성, 합리적 사고, 과학, 철학의 평화 공존.

종교의 도움과 함께 인간은 책임을 감당하는 자유 의지와 건설적이고 윤리적인 태도를 실천할 능력이 있다.

현재 상태에서 인간 본성은 원래부터 타락한 것(원죄)이 아니지만, 하나님이 의도한 대로 선과 악 모두를 행할 능력이 있다는 믿음.

어떠한 종교도 성령이나 신학적인 진리를 절대적으로 독점할 수 없다는 고백.

비록 성서의 저자들이 하나님에 의해 영감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인간이었고 그렇기에 인간적인 오류를 저지를 수 있었다는 믿음.

예정설, 영원한 저주, 그리스도의 속죄에 대한 보상설이나 대속(대신 희생함)과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임무와 진정한 본성을 가리우거나 하나님의 본성을 해치는 내용을 지닌 전통적인 교리에 대한 거부.

(6) 가치

루터파 교회의 기본적인 신조로 받아들여졌다. 독일의 종교개혁 사상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

(7) 사본

현존하는 필사본이 22개나 된다. 멜랑히톤은 이 고백서를 확고부동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고 루터 역시 손수 교정을 하였다. 따라서 여러 개정판이 나왔다.

멜랑히톤은 절대예정에 대한 그의 입장을 포기하였고 또한 성만찬의 임재설을 양보하였다. 그러나 쯔빙글리의 상징설이나 칼빈주의의 영적 임재설을 반대하면서 기념설을 취한 것 같다.

3. 아우구스브루그 신앙고백의 변증서(1530-1531)

로마 가톨릭이 제기한 ‘반박문(Confutation)’과 맞서 아우구스브루그 신앙고백을 옹호하기 위해 작성한 것으로 루터파 신조들 중에서 최고의 학적 수준을 가지며 프로테스탄트사상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해주는 내용이다.

4. 루터의 요리문답(1529)

루터의 소요리문답서는 작으면서도 매우 위대한 책이다. 한 단어 한 단어가 머리에만 아니라 가슴에까지 강한 자극을 준다. 루터의 종교적 탁월성이 나타나 있다. 루터 자신도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 것을 빼 놓고는 이보다 더 훌륭한 택을 쓰지 못했다.

교회가 교인을 받아들이기 전에 예비적인 종교교육을 실시한 역사는 기독교 그 자체만큼이나 오래되었다.

초기 300-400년 동안(오늘날도 선교사들이 이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은 언제나 세례 예비 교육이 있었다. 알렉산드리아 같은 곳에서는 세례를 받으려 하는 사람들을 위한 특별 문답학교가 있었다. 그러나 교육 내용은 오늘날과 같은 요리문답은 아니었다. 전통적인 신앙의 규범인 사도신경이었다.

공적 예배도 세례를 받기 위해 준비과정 중에 있는 자들을 위한 '미사 카떼쿠메노룸'과 세례를 받은 정식 교인들을 위한 '미사 피펠리움' 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콘스탄틴 대제 이후 교회와 국가가 하나로 되자 일반적인 유아세례 교육과 요리문답 교육은 세례를 받은 신자들에게도 부과되어 안수 또는 최초의 교제를 나누기 위한 준비로 활용되었다.

이 교육은 주로 교리와 그 해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니 ①. 십계명 ②. 신조(서방교회의 사도신조와 동방교회의 니케아신조), 때로는 아다나우스신조와 테 데움, ③.주기도문 등이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 내용들에다 여러 가지 죄와 악행, 성례, 기도에 관한 내용들이 추가되었다.

(1) 루터의 요리문답 개요

교회 방문 길에 나선 루터는 1527부터 28년까지 삭소니 지방의 교회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시찰하는 동안 교인들의 영적 무지를 발견하고 충격을 받았다. 사람들은 더 이상 카톨릭으로 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복음의 자유가 부여하는 도덕적 책임을 깨달으며 지내는 것도 아니었다.

평소부터 종교 개혁 이후의 새로운 교리를 어린 시절부터 가르쳐야 된다고 생각했던 루터는 방문에서 돌아온 후 교인들의 교육을 위해 1529년 독일어로 된 두 개의 요리문답서를 작성했다.

첫 번째 것은 대요리 문답이고 두 번째 것은 소요리문답 이었다. 대요리문답은 요리 문답서라기보다 장황한 해설을 나열한 것이었다. 문답의 형식으로 구분되지도 않은데다 지나치게 루터의 손안에서만 작성되었기 때문에 젊은이들과 교육에는 시작부터가 잘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루터는 곧 소요리문답서를 만들고 이를 개론서(Enchiridion)라고 불렀다. 이 소요리문답은 세례 준비교육, 청소년 신앙교육용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목회자, 교사 상당한 학식이 있는 학생들이 계속해서 사용했다.

(2) 루터 요리문답의 특징, 가치, 결점

루터는 자신의 보수적인 성향에 따라서 십계명(라틴어의 구분방식을 따랐다), 사도신조, 주기도의 세 부분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여기에다 보헤미아 형제단을 본 딴 세례와 성찬에 대한 교육을 추가했다.

따라서 루터의 요리 문답은 다음 다섯 부분으로 나눠진다. ①.십계명 ②.사도신경 ③.주기도 ④세례 ⑤.성찬, 대요리문답은 『일치의 서』에 원형 그대로 삽입되었다. 소요리문답은 제2판에(기도가 첨가되어) 수록되었다.

'대요리 문답서’는 루터 자신이 썼었던 교의학적 기본 문제들을 가장 포괄적으로 개관하고 있다. '소요리 문답서'는 루터가 자신의 다른 책들은 다 불태워져도 좋지만 '노예 의지론’과 함께 예외라고 할 정도로 애지중지하였다.

그러나 루터의 소요리문답은 다음과 같은 몇까지 심각한 결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로, 십계명을 축소된 형태의 본문에서 취했다.(대요리문답도 마찬가지이다.) 이 때문에 루터는 로마교회가 하는 것처럼 잘못된 구분방식을 따르게 되었고, 제2계명을 모두 생략해 버렸으며, 십계명을 둘로 나누어 그 숫자를 변조했다.

둘째로, 신조의 해설에 단지 9개의 문답만이 배정되었다. 그러나 성례는 다른 세 큰 항목과 동일한 위치에 놓음으로 부당하게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심지어는 개인적인 고해와 사죄를 세번째의 성례나 되는 것처럼 올려 취급함으로써 그 존엄성을 부당하게 높여 놓았다.

셋째로 이 문답서에는 많은 중요한 항목들이 빠져 있다. 특히 성경에 대한 교육이 없다.

5. 스몰칼드신조(1537)

(1) 개요

스몰칼드신조는 교황 바오로 3세가 종교개혁 운동에 대처하기 위해 로마 가톨릭 교회 공의회를 소집하는 내용의 칙서를 내리자 이에 대응하여 준비되었다.

삭소니의 루터파 선제후 요한 프리드리히 1세는 로마 가톨릭과 타협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결정하기를 원했다. 그는 루터에게 이전에 개혁자들이 작성한 신앙 진술을 검토하여 믿음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결정하도록 요청했다. 멜랑톤이 교황권에 대해 너무 유화적으로 글을 쓴다고 생각한 루터는 그의 입장을 따르지 않고, 교황이 소집한 공의회가 임박했을 때 자신의 비타협적인 스몰칼드 신조를 썼다(1537).

루터는 조문을 준비한 후 몇 명의 개혁자를 비텐베르크로 초청하여 토론을 벌였다. 약간의 수정을 거친 후 8명의 신학자가 서명한 뒤 이 문서를 1537년 1월에 선제후 요한 프리드리히 1세에게 보냈다.

(2) 내용

스몰칼드 신조는 3부분으로 나뉜다.

첫 부분은 사도신경과 아다나우스신조의 교리들을 4개 항목으로 나누어 매우 간략하게 재확인한다. 하나님의 통일성·삼위일체·성육신·그리스도를 다루고 있는데, 루터는 이러한 주제들에서는 로마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사이에 심각한 차이가 없다고 믿었다. 아우구스부르그 신앙고백서로 말하면 제2항과 제 3항에 해당된다.

둘째 부분은 핵심적인 부분으로."그리스도의 직분과 사역, 즉 우리의 구속"에 관한 것을 다루면서 구속의 참된 교리를 왜곡시키거나 방해하고 있는 미사, 연옥, 성자들에 대한 기도, 수도원 제도, 교황제도를 논박한다.

셋째 부분에서는 프로테스탄트들이나 '학식과 상식 있는 사람들(즉 총회 안에 있던 가톨릭신자들, 이들은 교황과 달랐다. 그러나 이들은 양심을 저버리고 오직 황금, 명예, 권력에만 전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사이에서 피차 논란이 있을 수도 있는 죄, 율법, 회개, 성례전, 고백, 성직, 교회의 정의(定義) 등 15개 항목을 다루고 있다.

멜랑톤은 스몰칼드 수도원에서 모인 회의의 요청에 따라서, 아우구스부르그 신앙고백과 그 변증서에서는 침묵을 지켰었던 교황의 권세와 지상권 문제를 다룬 부록을 마련했다. 당시의 신학적 걸작품이었던 멜랑히톤의 부록은 조용하고 온건하며 학자적인 용어로 기록되었다. 그는 여기서 성경과 초대교회의 역사를 들어가면서 다음 세 가지 교황의 주장을 "거짓되고, 불경스럽고, 포악하며, 극도로 해로운 것" 이라고 논박했다.

① 교황은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므로 전체 기독교 세계의 감독들과 성직자들을 지배할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

② 교황은 양 날 가진 칼, 즉 임금들을 즉위 또는 폐위시키며 세속적인 일들을 주관할 권세를 신으로부터 부여받았다.

③ 그리스도인들이 영원한 구원을 받으려면 이 사실을 믿어야 한다. 멜랑톤은 성경과 제롬의 글을 인용하여, 감독들의 권세와 지배권이 다른 목회자들보다 능가하다고 보는 것은 인간들이 만들어 낸 사상이라고 하면서 교황주의의 전제주의를 크게 비난했다.

스모칼드신조는 루터파를 로마교회로부터 갈라서게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스몰칼드 신조는 그 부록과 함께 루터교회신조들에 들어갈 수 있었고, 훌륭한 교리서 '꼬르뽀라 독드리네스'(Corpora Doctrines)로 인정받았으며, 이 조항들은 마침내 일치서("협정서"라고도 한다.) Book of Concord〉(1580)에 수록되었다.

6. 일치신조(Formula Concordioe, 1577)

(1) 개요

일치신조(Formula Concordioe)는 루터교회 안에서 30년 동안 뜨겁게 일어났던 일련의 교리논쟁 때문에 생겨났다. 이 신조는 오랫동안 쓰라린 논쟁을 격은 루터교회들이 교리적인 연합과 평화를 이루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일치신조는 루터파 신조들 중에서 가장 늦게 1577년에 작성되었고 1580년에 처음 출판되었다.

(2) 일치신조 요약

일치신조는 개요(Epitome)와 확고한 진술과 선언(Solids Repetitio et Declaratio)이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 동일한 내용을 12조항으로 진술하고 있다.

①. 제1항. 원죄에 대하여

원죄는 도덕적인 본체나 실체 또는 인간의 본성(플라시우스는 원죄에 대하여 옛날 마니교에서 가르친 것처럼 이렇게 가르쳤다.)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이 적극적으로 부패해진 것으로써, 이 세상에서는 완전히 도말 할 수 없다.(펠라기우스나 반펠라기우스 이단의 주장을 반대한다.)

②. 제2항. 자유의지에 대하여

아담의 타락의 결과로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한 인간은 영적으로 소경, 무능력자, 죽은 자이며, 심지어는 하나님을 대적하기까지 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기 스스로는 자신의 회심을 위하여 어떠한 공로도 이룰 수가 없다. 다만 은혜의 방편이 되는 성령의 사역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③. 제3항. 이신칭의에 대하여

그리스도는 신성이나(안드류, 오시안더) 인성만으로(스탄카) 우리의 의가 되신 것이 아니라 신성과 인성으로 우리의 의가 되셨다. 하나님은 과거, 현재, 미래의 행위나 공로를 보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순종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시키는 순전한 은혜로 우리를 의롭다 하신다. 그리스로를 영접하는 유일한 도구요 매개체는 신앙이다. 칭의는 법정적 또는 선포적 행위이다. 칭의는 죄가 사해졌다는 선포이지 의의 주입이 아니다.(Osiander)

④. 제 4항. 선행에 대하여

참된 신앙은 항상 선행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러나 선행은 구원에 필수요건도 아니요 구원에 지장을 초래하는 위험물도(Amsdorf) 아니다. 구원은 오직 값없이 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을 뿐이요 믿음으로서만 깨달아진다.

⑤. 제5항. 율법과 복음에 대하여

율법의 목적은 죄를 책망하여 회개를 촉구하는 것이요 복음은 (그 독특한 의미에서) 모든 죄에 대한 그리스도의 속죄와 만족을 전파하는 기쁨의 메시지이다.

⑥. 제6항. 율법의 제3의 용도에 대하여

이 말은 세속적이나 정치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교육적이고 도덕적인 질서의 유지와 죄의 확신을 위해 신자들에게 율법이 의무로써 부여된 것을 가리킨다. 신자들은 비록 율법의 저주와 속박으로부터 구속을 받았다 할지라도 자원하는 마음과 단 마음으로 율법에 순종해야 한다. 반 율법주의는 배격되어야 한다.

⑦. 제7항. 성찬에 대하여

이 문제는 일치신조가 작성될 때 가장 중요한 논쟁거리였다. 이 때문에 이 신조의 작성이 시작되었으므로, 제2부는 이 문제를 길게 취급하고 있다. 이 조항은 공재설(로마교회의 화체설과 구분하여 흔히 이렇게 불리운다), 즉 분명히 다른 두 성(性)이 성찬 시에 불가분리의 실체로 공존한다고 하는 교리를 분명하고도 자세하게 말하고 있다.

Ⅵ. 복음적인 개혁주의교회의 신조

1. 개요

종교개혁 기간에 창설된 개신교의 교파를 나누면 루터교회(Lutheran Church), 개혁교회(Reformed Church), 성공회(Anglican Church), 재세례파(Anabaptist)를 들 수 있다. 개혁교회는 츠빌글리나 칼빈의 사상과 신념에 바탕을 둔 종교개혁 교회를 의미한다. 보통 영미의 영어권에서는 장로교파(Presbyterian Church)라 하고, 네델란드, 독일, 프랑스에서는 개혁교회(Reformed Church)라고 칭한다.

개혁교회 신조들은 17세기 이후에 영국교회 신조, 도르트신조, 웨스민스터신조들과 같은 표준문서들이 각기 나름대로 형편에 따라 만들어 졌다. 개혁교회는 루터교회보다 교회의 전통 중시 사상을 더욱 많이 탈피하고 있다. 개혁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의 범위 안에 그리고 그 말씀을 굳게 붙잡기만 하면, 어떠한 형태의 교리나 신학사상이든지 자유롭게 발전시킬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개혁교회 안에는 모두 30개 이상의 신조들이 있다. 아우구스부르그 신앙고백이 루터교회 안에서 절대적 지지를 받는 정도의 신조는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널리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는 하이델베르그 신조,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도르트신조 등이다.

2. 개혁파신조들의 특징

(1) 여러 지역과 나라들에서 자기들의 교리와 교회정치의 표준을 위한 신조를 만들었다.

(2) 개혁파의 신조는 루터파보다 교회의 전통을 중시하지 않고 더 성경 중심적 특성을 지닌다.

(3) 성경 범위 안에서 여러 형태의 교리나 신학사상을 자유롭게 발전시킬 수 있도록 허용함

(4)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개혁교회의 신조들은 본질적인 신앙의 내용에서 루터파의 신조들보다 더 많이 일치하고 있다.

(5)개혁파 신조는 쯔빙글리적인 것과 칼빈적인 것으로 나눌 수 있다. 후자가 더 발전적이고 성숙한 형태를 보이고 있으며 칼빈주의 체계를 나타낸다.

3. 쯔빙글리적 신조

신앙과 조직과 관례의 모든 문제에서 교회의 전통이 아닌 오직 성경을 의지, 올바른 해석을 위하여 일반적인 양식과 역사적 전망을 인정한다. 성만찬은 상징설.

4. 쯔빙글리와 불링거의 신조

(1) 1523년의 취리히 67개 조문(쯔윙글리) 시작으로, 제1조는 교회의 권위 보다 성경의 권위를 말함.

(2) 1528년 베른의 10개 결정은 제 2조에서 성경의 권위를 강조함

(3) 1534년 바젤의 제 1 신앙고백- 쯔빙글리 사상으로 작성, 성서를 유일한 규준.

(4) 1560년 스코트랜드 신앙고백에 영향- 하나님만 섬긴다는 고백.

(5) 1536년 제 1 헬베틱(스위스) 신앙고백 혹은 바젤의 제 2 신앙고백

- 거국적 스위스 신앙 고백서,

- 민족적 권위를 가진 것으로 첫 번째 개혁교회의 신앙고백.

- 첫 5조항은 성서관과 해석. 루터교회와 스위스를 연합시키려는 의도에서 부처와 카피토가 작성

(6) 1549년 취리히 일치신도-불링거와 칼빈의 신학적 일치를 보임.

성경권위 강조, 성찬-영적 실재에 대한 단순한 상징.

칼빈의 사상을 불링거가 약간 수정함. 루터파에게 큰 도전을 줌

(7) 제 2 스위스 신앙고백(불링거)

1566년 독일의 프레드릭이 제국회의에서 공인된 문서로 제출,

1567년 헝거리가 사용,

1571, 프랑스와 폴랜드가 받아들임.

제 1조는 성경의 권위와 그 문맥에 비추어 해석할 것 말함.

이 고백서는 쯔빙글리와 칼빈의 입장을 결합한 것.

신학적 장점에서 으뜸, 실용적인 면은 약함.

논리적인 명확성과 정밀도에서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뒤짐.

5. 칼빈주의 고백서

(1) 개요

칼빈주의는 루터파보다 더 널리 전파됨.

그 교리의 형태가 보편성이 있음이 역사적으로 증명.

민족적 차이를 넘어, 모든 곳에서 삶의 경향을 승화시킴,

종교적, 일반적 문화에 대한 열의를 줌.

칼빈의 신학사상이 많은 신앙고백서를 만들게 하였으며, 그것들이 칼빈의 신학체계와 유사하고 상호간에도 유사하다. 이런 사실은 칼빈의 신학사상의 체계가 독창적인 매력과 힘을 잘 증거한다.

(2) 특징

1) 성경의 권위와 해석방법

2) 하나님의 영원하고 절대적인 섭리, 예정론.

3) 영적 임재의 성만찬

4) 교회 정치는 장로들의 회의에 의한 통치.

이 네 가지는 실제적인 동기에 의해 형성되고 성경과 잘 일치된다.

5) 그러나 그의 예정론은 모든 사람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 어거스틴을 따라 타락 후 예정론을 주장했기 때문이며. 이중예정론을 설파했다.

(3) 기독교강요

‘기독교강요’는 절대적인 영향을 신앙고백서들에게 줬다. 이것은 신앙 고백과 교리문답을 해석해 주는 원천이 되었기 때문이다

* 1536년 판- 여섯 장, 루터의 소요리문답에 영향받음

① 율법

② 신앙(사도신조)

③ 기도(주기도문)

④ 세례와 성만찬

⑤ 예식의 참된 성격

⑥ 그 리스도인의 자유, 교회의 권한, 정치적 행정.

* 1559년 판- 1권은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 성경관

2권은 구속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 율법과 복음.

3권은 그리스도의 은총,

4권은 그리스도와 교재, 교회. 세속통치.

(4) 스위스와 프랑스의 신앙고백서

1) 1536년 제네바 교리문답- 칼빈이 작성, 시민이 서명함.

2) 1545년 취리히 신앙고백.

3) 1549년 취리히 일치신조.

4) 1552년 래티아 신앙고백. 칼빈과 쯔윙글리의 입장이 결합.

5) 1552년 제네바 일치신조-

목회자들의 서명을 받은 신조.

피기우스와 볼섹이 칼빈의 예정론를 비판한 후에 칼빈이 대답한 것으로, 다소 논쟁적.

예정론은 믿는 자에게는 위로와 의지가 된다고 함

6) 1559년 프랑스 신앙고백-칼빈의 파리교회를 위해 작성

(1557년 것에 근거하여 그의 제자 앙투안느가 작성. 라 로시엘 신 앙고백이라고 부른다.

7) 1675년 스위스 일치신도-

이 신조를 작성, 공표함으로써 종교개혁으로 인한 교리논쟁의 종지부 를 찍었다.

-소뮈르의 칼빈주의자들의 혁신적 사상을 정죄한 신조

- 하이데거가 게르늘로와 투레틴의 도움으로 작성

-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주장하며 성경 외에는 그 어떤 신조도 절대적 권위와 무오성을 주장하지 않는다.

6. 독일 신앙고백서

(1) 1554년 프랑크푸르트 외국인 공동체의 신앙고백

(2) 1563년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 -

① 우루시누스와 울레비아누스가 프레드릭 3세의 도움으로 작성함.

② 성례관의 올바른 인식을 위해

③ 루터파의 온화함과 인간성 그리고 칼빈의 정확성과 포괄성을 결합, 통 일성과 연속성이 뛰어남.

④ 80문은 가톨릭의 미사를 우상숭배로 강하게 비판했기 때문에 이 교리 문답서가 한때 사용되지 못하였다.

⑤ 특징 : 축복으로의 선택 이외에는 예정론 생략

80문-미사란 그리스도의 단번에 드린 희생제와 수난을 부인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니며, 정죄할 만한 우상숭배라고 진술.

⑥ 트랜톤 회의-성만찬에서 지금 사제들의 사역을 통하여 같은 분을 지금 도 드리시는 것이다.

- 성례와 그리스도의 두 본성은 쯔윙글리와 칼빈의 입장

협동설에 반대는 루터와 칼빈의 입장

기조가 따뜻하고 인격적 신뢰와 중도적인 천재성이라는 점은 멜랑톤의 입장

⑦ 영향 : 세계 개혁교회에서 거의 사용,

미국 화란 개혁파 사용, 1870년 미국 장로교회에서 공인 받음.

7. 벨기에와 화란(네델란드) 신앙고백서

(1) 1561년 벨직고백서를 프랑스어로 기록, 1559년 프랑스 신앙고백의 내용과 순서를 따름.

* 로마카톨릭교회에 자극을 주지 않음,

* 37개 조항, 삼위일체, 화육, 교회. 성례들의 교리를 확대, 재세레파와 구별함.

(2) 1566년 안틉르프 대회에서 라틴어로 개정(칼빈의 제자인 프란시스 유니우스), 1619년 도르트 대회에서 불어, 독어, 라틴어로 개정, 화란과 남아공화국,벨기에의 교회의 공식적인 신조.

(3) 1610년 항의서(Remonstrance- a protest) - 41명이 서명한 알르미안신조로 5개항의 엄격한 칼빈주의 비판.

① 하나님의 은혜 보편성과 인간의 자유의지 주장, 원죄론 약화 은총을 거절할 수 있다. 견인반대.

(4) 1619년 도르트신조(Dort)-

알미니우스주의자들의 항론파들에 대한 정통 칼빈주의자들의 대답으로 5대강령을 제정한다. 최고의 학자들과 많은 국가에서 대대적으로 참석(프랑스는 왕이 허락하지 않아 참석치 못함),

1) 특징 :

- 철저한 변증법과 신학적 정밀성과 경건한 어조를 지닌

교의적 형태로 진술.

- 타락후 선택설을 주장.

- 예지예정론(豫知豫定論)을 배격하고 이중예정론(二重豫定論)을 채택함.

- 두 파가 스콜라 신학적인 논쟁이 아닌가 하는 비판이 있다.

- 화란인의 정신이 있다. 독립 투쟁. 계시의 설명에 있어서.

2) 칼빈주의 5대 교리로 구성됨

① 전적타락(Total Inability or Total Depravity)

②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③ 제한적 구원(Limited Atonement)

④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

⑤ 성도의 견인(Perseverane of the Saints)

8. 영국 신앙고백서

(1) 1595년 렘버드고백과 1615년 아이랜드 고백서

(2) 1560년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

1) 낙스가 스위스 신앙고백서와 제네바 신앙고백에 근거하여 나흘만 에 만듬.

2) 특징 :

-스코틀랜드이 민족적, 토착적 신앙고백이다. 그 시대의 격동기의 정신을 보여준다.

- 신학적이 아닌 실제적, 논쟁적이 아닌 설득적이다

Ⅶ.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

루터의 소요리문답(1529),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1563),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1647) 이 세 요리문답은 프로테스탄트사상이 낳아 가장 널리 사용한 요리문답서들로 아직까지 교회들에서 그 사상을 고수하고 있다.

1. 차이점

(1) 두 요리문답과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과의 차이점

루터, 하이델베르그

웨스트민스터

사도신경

교리해설의 기초로 삼음

부록으로 첨부함

주객관성

주관적이며 자신의 체험이나 장래 소망을 말할 수 있도록 하였음.

객관적이고 비인격적임

용어 사용

일상적인 용어 사용.

많은 포용력을 지닌 주관적인 요리문답임

스콜라적인 교리용어 사용.

정의의 간결성, 명확성, 정확성에는 이 둘을 능가한다.

(2)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과 루터의 요리문답의 차이점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루터의 소요리문답

특징

* 자세하고 철저하게 하여 어른들에게 적함함.

* 139문답으로 되어 있고 사도신경 해설에는 단 3문만으로 배정됨.

* 성례론에 대하여서는 과대한 배려를 해둠.

* 간결하고 단순하여 어린아이들에게 적합함

* 40문답으로 되어 있음.

십계명

출20장의 내용을 기록하였고,

간략한 십계명만을 적었고 제2계명이 빠지고 제10계명이 둘러 나누어진다.

율법관

* 율법은 죄에 대한 지식을 제공해 준다.

* 십계명은 신앙생활의 영구적인 규범으로 해설한다.

* 율법은 유대인들에게나 필요한 것이며, 사람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해주는 몽학선생으로서 교육적인 의미만 갖는다.

*

교회관

그리스도의 거룩한 공회

공회(Catholic)을 빼고 그리스도의(Christian)만으로 대치시킴.

주기도문

‘우리 아버지’를 사용함

‘아버지 우리(Father Our)’라는 표현을 사용함.

2.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1) 신앙고백서중의 군계일학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감사하게도 우리 개혁주의 신앙선배들은 16-17세기를 통해 30여개의 좋은 성경교리지도를 우리에게 유산으로 남겨주었다. 이 중에서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성경의 세계를 여행하기 위한 가장 포괄적이고, 가장 웅장하고, 가장 정교하고, 가장 정확한 성경 교리안내서라 할 수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잉글렌드 목사 121명, 평신도 대표 10명, 하원의원 20명, 총 대표 151명과 스코트랜드 참관인 목사 4명, 장로 2명, 계6명이 참가하여 1643년 7월 1일에 개회하여 1,163회의 회의를 거쳐 5년 7개월 22일만에 작성된 고백서이다.

이는 스코틀랜드와 영국과 아일랜드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통일된 신앙고백의 내용이었다. 그 이후 세계 여러 나라의 장로교회들은 이 내용을 성경에 계시된 기독교 신앙의 표준적 진술로 인정한다.

(2) 구성

제 1장 - 성경에 관하여

제 2장 - 하나님과 성삼위일체에 관하여

제 3장 -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 관하여

제 4장 - 창조에 관하여

제 5장 - 섭리에 관하여

제 6장 - 사람의 타락, 죄, 형벌에 관하여

제 7장 - 사람과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에 관하여

제 8장 - 중보자 그리스도에 관하여

제 9장 - 자유의지에 관하여

제10장 - 효력 있는 부르심에 관하여

제11장 - 의롭다 하심에 관하여

제12장 - 자녀로 삼으심에 관하여

제13장 - 거룩하여짐에 관하여

제14장 - 구원적 믿음에 관하여

제15장 - 생명에 이르는 회개에 관하여

제16장 - 선행들에 관하여

제17장 - 성도들의 끝까지 견딤에 관하여

제18장 - 은혜와 구원의 확신에 관하여

제19장 - 하나님의 법에 관하여

제20장 -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에 관하여

제21장 - 종교적 예배와 안식일에 관하여

제22장 - 합법적 맹세와 서원에 관하여

제23장 - 국가의 위정자에 관하여

제24장 - 결혼과 이혼에 관하여

제25장 - 교회에 관하여

제26장 - 성도들의 교제에 관하여

제27장 - 성례들에 관하여

제28장 - 세례에 관하여

제29장 - 주의 만찬에 관하여

제30장 - 교회의 책벌들에 관하여

제31장 - 대회들과 협의회들에 관하여

제32장 - 사람의 죽은 후 상태와 죽은 자들의 부활에 관하여

제33장 - 마지막 심판에 관하여

참고 도서

박용규, ⌜초대교회사⌟, 서울: 총신대학교출판부, 2004.

서요한, ⌜초대교회사⌟, 서울: 그리심, 2003

이성웅, ⌜헌법교리론⌟,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10.

이형기, ⌜신앙고백서⌟,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03.

자카리아스 우르시누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해설⌟, 원광연 옮김, 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06.

필립 샤프, ⌜신조학⌟, 박일민 편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