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돼지고기

네버랜드 2010. 3. 9. 15:42

 

절대적으로 잠이 부족하다.

버스나 배, 기차를 타고 밤이동을 하는 동안에 설잠을 자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치자.
잠을 자도 깨어 있는 것이고, 자도 자도 졸립지만 몸은 피곤하고 정신은 몽롱하다.

그렇다면, 멀쩡하게 방에서, 침대에서 자면서도
잠을 설치고, 자주 깨고, 밤늦게 자서 아침 일찍 깨어나는 건 도대체 무슨 연유에서일까.
몸은 피곤해 천근만근 늘어지는데
정신은 늘 수면과 각성의 중간 상태를 유지하며
숙면의 상태로 떨어지도록 날 내버려두질 않는다.

트리니다드 토바고에 도착하고 처음 3주간
난 아주 쾌적한 독방을 홀로 쓰면서도
하루 평균 수면시간이 다섯시간을 넘지 못했다.
물론, 낮잠도 자지 않는다.

그렇게 몇달간 수면부족의 상태가 이어지니, 가장 치명타를 입는 건 피부.
까칠까칠, 푸석푸석, 우둘투둘, 쪼글쪼글이다.
피부를 생각해서라도 좀, 진짜 좀, 자고 싶은데 잠이 들지 않는다.
왜 그럴까.

우선은 커피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꼭 그것만이 원인은 아닐 것이다.
피곤하면 몸에 카페인이 아무리 쌓여도 곯아 떨어지던 나였으니까.

더 가능성 있는 한가지 가설로,
내 안의 무언가가 잠을 거부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봤다.
잠을 자고 있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고,
뭐, 공부를 한다거나 건설적인 일에 시간을 보내는 것도 아니면서
왠지 이 아까운 시간에 깨어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나로하여금 수면거부의 상황을 만들어내게 하는 것은 아닌지.

아직 하고 싶은 일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고,
해야할 일도 많은데, 시간은 자꾸 가고, 나이는 자꾸 먹고.
무언가에 쫓기는 기분으로 지금의 시간들을 살아가고 있는게 아닌지.

그리고 여기 온지 3주만에, 이틀동안 평균 열두시간을 잤다.
이제 완전히 정상수면의 상태를 회복한 것이 아닌가 잠시 기뻐했지만,
상황은 다시 악화되어, 나는 다시 네시간 반 혹은 여섯시간의 수면상황을 유지하고 있다.

잠 좀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