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돼지고기

네버랜드 2010. 9. 12. 16:51

추석이 되기 전에 떠날 작정이었다.
나 같은 사람에게 추석을 집에서 보낸다는 건, 사실 좀 괴로운 일이니까.
하지만 추석 시즌엔 비행기표가 없거나 아주 비싸다.
그리고, 얼마 전 내 사주를 봐 주신 스님께서
조상님께 좀 잘 하라는 말씀을 하신 것도 생각이 나고..
8년만에, 한국에서 추석을 보내기로 했다.

미리, 성묘를 다녀왔다.
시골 산 속 산소들을 다니면서 걸으니 옛날 기억이 살아났다.
그래, 우리 시골 산들엔 밤나무가 많았다.
가을이면 떨어진 밤송이들을 헤집으며 남아있는 밤을 줍다가
철갑을 두른 지렁이처럼 생긴 밤 벌레들에 질겁을 하며 소릴 지르곤 했었다.

할아버지가 깻묵으로 민물새우를 잡아주시던 저수지도 그대로였고,
미꾸라지를 잡던 도랑 옆을 지날 땐, 그 시절의 모습이 영화처럼,
강아지풀과 함께 지나갔다.

옛날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시던 집은 옛모습을 거의 남기지 않고
다른 사람이 들어와 살고 있다.
무화과 나무도 석류나무도 베어져 없어지고,
감나무만 한그루 남아 있었다.
가을이면 나를 즐겁게 해주던 나무들..

멱을 감곤 하던 도랑은, 멱을 감을 수 없는 도랑이 되어 있었다.
멱을 감을 수 있는 도랑으로 남아있다 해도,
멱을 감을 수 없는, 변해버린 내가 거기에 있었다.

우리는 끊임없이 변할 수 밖에 없는 존재 아니겠어요. 왠지 변한 자신의 모습에 씁쓸해하는 뉘앙스라서.... 추석 잘 보내세요 현정씨
끊임없이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진 못했나봐요. 선생님도 넉넉한 추석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