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돼지고기

네버랜드 2010. 10. 4. 16:05

힘들어서라고,
한국 들어온지 너무 오래 되어 그런 거라고,
날이 추워져서라고.

나는 계속 핑계거리를 찾고 있다.
그래, 갑갑하다. 미칠 것 같다.
당장이라도 배낭을 짊어지고, 인천공항으로 달려가
아무데나,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곳으로 비행기표를 사서
훌훌 날아가버리고 싶다.

여행은, 늘 도피였지만, 지금 또 그럴 순 없다.
무엇 하나 답이 보이지 않는 지금,
문제를 풀고, 답을 해결하는게 귀찮아 또다시 도망갈 순 없다.

하늘이 파랗다. 은행나무는 노랗게, 단풍은 빨갛게 변해간다.
그렇게나 그리워하던 한국의 가을 속에 지금 내가 있지만,
어쩐 일인지, 나는 행복하지 못하다.

에고! 씩씩한 현정씨가 센티해 있는 것 같네요. 기운 내시고 그렇게 그리워 하던 한국의 가을을 즐겨 보세요. 집사람, 륜이와 인천에서 배타고 제주도 올레길 걸으려 이번주 금요일 제주에 갑니다.
부럽습니다. 저는 살짝 서울에나 다녀올까 싶습니다.

 
 
 

삶은 돼지고기

네버랜드 2010. 9. 21. 14:49

최근 십여년간, 한국에서, 집에서 보낸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일본으로 떠나면서부터는 집보다는 밖이, 한국보다 외국이 더 편해지기도 했다.
한곳에 늘 머무르기보다,
달팽이처럼, 모든 짐을 등에 짊어지고 이곳저곳 옮겨다니기를 고집해 왔다.

나라고 왜, 정착하고 싶은 욕망이 없겠는가.
다만 비교할 뿐이다.
정착을 했을 때와 이동할 때, 내가 느낄 자유와 불편함.
결국 다시 이동을 택하게 된다.

가끔 집에 들어오면, 내가 정착하고 싶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
삼십년이 넘도록 읽고 모아온 내 책들.
아무나 쓰는 내 방의 책꽂이와 의자들 위에서 뒹굴고 다니는 책들을 보면
하루빨리 저것들의 자리를 만들어 줘야할텐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빨 빠진 대하소설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에 사라져버린 책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대학 입학하면서 집을 떠나 살던 7년 동안
이사할 때마다 눈에 띄게 불어난 것이 책이었고,
일하는 동안, 술값 다음으로 많은 돈을 투자한 것 역시 책이었다.
일본에서의 생활 끝에 돌아올 때에도 가장 큰 돈을 들여 가져온 것도 책이었다.

내 공간을 갖게 되면 우선 저 책들을 폼나게 좌악 늘어놓고,
여행 중에 사 모은 것들도 멋지게 전시해 놓고...

아직 여행이 부족한가 보다.
저 책들을 굳이 내가 고이 간직해야할 이유는 무엇이며,
폼나게 늘어놓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지...
좀 더 돌아다녀, 맘 속의 욕심을 다 버리는 것까지 배워와야겠다.
나는 아직 멀었다.

책꽃이에 보면 지금도 전혀 보지 않지만, 앞으로도 보지 않을게 뻔한 아주 오래된 책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책장을 더 구입해야 되겠다는 생각은 할 망정 안보는 책 버릴 생각은 못하게 되더군요. 저 같은 경우도 책에 대해 다소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요새는 책 보고 나면 다 잊어 버리는데 1주일도 안걸리는 것 같습니다. ㅋㅋ
전 읽으면서도 앞의 내용이 기억 안날 때도 있어요. ^^

 
 
 

삶은 돼지고기

네버랜드 2010. 9. 12. 16:51

추석이 되기 전에 떠날 작정이었다.
나 같은 사람에게 추석을 집에서 보낸다는 건, 사실 좀 괴로운 일이니까.
하지만 추석 시즌엔 비행기표가 없거나 아주 비싸다.
그리고, 얼마 전 내 사주를 봐 주신 스님께서
조상님께 좀 잘 하라는 말씀을 하신 것도 생각이 나고..
8년만에, 한국에서 추석을 보내기로 했다.

미리, 성묘를 다녀왔다.
시골 산 속 산소들을 다니면서 걸으니 옛날 기억이 살아났다.
그래, 우리 시골 산들엔 밤나무가 많았다.
가을이면 떨어진 밤송이들을 헤집으며 남아있는 밤을 줍다가
철갑을 두른 지렁이처럼 생긴 밤 벌레들에 질겁을 하며 소릴 지르곤 했었다.

할아버지가 깻묵으로 민물새우를 잡아주시던 저수지도 그대로였고,
미꾸라지를 잡던 도랑 옆을 지날 땐, 그 시절의 모습이 영화처럼,
강아지풀과 함께 지나갔다.

옛날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시던 집은 옛모습을 거의 남기지 않고
다른 사람이 들어와 살고 있다.
무화과 나무도 석류나무도 베어져 없어지고,
감나무만 한그루 남아 있었다.
가을이면 나를 즐겁게 해주던 나무들..

멱을 감곤 하던 도랑은, 멱을 감을 수 없는 도랑이 되어 있었다.
멱을 감을 수 있는 도랑으로 남아있다 해도,
멱을 감을 수 없는, 변해버린 내가 거기에 있었다.

우리는 끊임없이 변할 수 밖에 없는 존재 아니겠어요. 왠지 변한 자신의 모습에 씁쓸해하는 뉘앙스라서.... 추석 잘 보내세요 현정씨
끊임없이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진 못했나봐요. 선생님도 넉넉한 추석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