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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삶 2009. 10. 23. 15:51

다 지나간 이야기이지만

한번 음미해볼만한 내용이라고 생각되어 게시해봅니다.

 

아래 글과 관련된 사건은 2003년까지 진행되었던

소비자보호원과 풀무원간의 소송과정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GMO에 대한 표기제를 시행하면서 

2002년부터 콩을 수입할 때 정부차원에서

생식용 콩- 콩나물, 두부, 된장, 청국장, 콩가루 등을 목적으로 하는 콩에 대해서는

GMO가 아닌 제품으로 구분하여 수입하고 있습니다.

(물론 비의도적인 혼입률인 3%의 GMO 는 섞일 수 있습니다. 또한 생식용이 아닌

간장용, 식용유용, 사료용에 대해서는 GMO를 구분하여 수입하고 있지 않습니다. )

 

그러므로 현재의 시중의 두부들은 '수입산' 콩으로 만들었다고 할지라도

이 사건이 일어났을 때처럼 GMO 두부는 아닌 것이지요.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말입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2기 강의 자료집의 GMO 관련 파트를 참고하세요)

 

다만, 당시 풀무원이라는 기업이 어떤 식으로 소비자를 속여왔고

GMO에 대해 어떤 대응을 해왔는지 알 수 있는 생생한 자료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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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백6억원짜리 GMO 두부 소송과 줄타기

 

■글/하정철<한국소비자원 식품미생물팀> ■그림/이우정

 

대학원 졸업을 두 달 앞둔 1995년 말, 나는 A회사 식품연구소 연구원으로 사회의 첫발을 내딛었다. 열심히 근무하던 나는 회사 도서관에서 ‘소비자시대’라는 잡지를 운명적으로 만났다. 그 잡지를 보면서 한국소비자원의 시험 검사 업무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1996년 11월경이었다. 그 당시 유행하던 피씨통신을 통해 한국소비자원 직원모집 공고를 본 순간 나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입사 지원서를 썼다. 도서관에서 만난‘소비자시대’와의 인연이 결국 나를 한국소비자원 가족으로 이끈 것 같다.


한국소비자원에 입사한 지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입사 이후 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남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겁도 없이 뛰어들었던 것 같다. 처음 발령 받은 시험검사소 식품독성실험실에서는 활용이 되지 않고 방치돼 있던 미량원소분석장치(TEA)를 요긴하게 쓸 수 있게 만들었다.


시중에 판매되는 두부 22종 중 18개 제품에서 GMO 검출

이듬해 세균위생실험실에 배치 받고 처음 시작한 사업이‘유전자 조작 식품(GMO, 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검출 기법 확립’이란 연구 과제였다. 이후 한우 시험법, 알레르기 유발 식품 시험법, 광우병 사료의 시험법을 새로 개발하고 모니터링 사업을 수행했다. 나는 규격 시험보다는 주로 관리의 사각 지대에 있거나 국내외적으로 시험 방법이나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아 소비자 안전에 심각하게 우려가 될 만한 품목을 전문으로 시험해 왔던 것 같다.

 

이런 분야의 시험 검사는 영화‘왕의남자’에서 줄을 타는 광대인‘장생’처럼 조금만 방심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고 조그마한 틈만 보이면 기업이나 관할 부처로부터 공격 받기 십상이다. 하지만 우리원 시험 검사 기능이 나아가야 할 길이고 존재의의인 것만은 분명하다.

 

가장 기억에 남고 드라마틱했던 줄타기는 역시 GMO 소송 이야기다. 우리나라에는 1996년부터 이미 유전자 조작 콩이 수입되고 있었다. 유럽에서는 유전자 조작 콩의 안전성문제로 시끌벅적했고 모라토리움을 선언한 나라도 있었지만,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답게 너무 조용했다. 우리원은 1999년 GMO 시험법을 개발하고 시중에 유통 중인 두부 22종을 구입해 시험 결과를 발표함으로써 국내최초로 유전자 조작 식품 문제를 제기했다. 22개 제품 중 18개 제품이 GMO인것으로 나타났다. 국산 콩 두부 중 에서는 자연촌과 풀무원두부에서 GMO가 검출됐다.

1999년 11월 3일, 시험 결과가 보도되자 언론은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일간지마다 연일 사설을 실었다. 방송은 특집 프로그램까지 제작하며 GMO의 안전성과 표시 제도의 도입 필요성을 역설했다. 며칠 뒤 국회에서는 관련법안이 제출됐고 당시 농림부장관은 ‘GMO 표시 제도’의 조속한 도입을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풀무원은 막강한 자금력으로 1백여억원의 손해 배상 청구 소송 제기 맑고 깨끗한 기업 이미지로 성장일로에 있던 (주)풀무원은 창사 이후 가장 큰 시련에 부딪쳤다. 환경 단체에서는 불매 운동을 선언하며 연일 회사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였다. 급기야 일부 소비자는 풀무원을 사기죄로 손해 배상 소송을 청구하기에 이르렀다.

 

풀무원이 언제부터 GMO 콩 두부에 국산 콩 표시를 붙여 팔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실험 결과와 원료의 원가만을 따져보면 소비자의 눈을 속여 가며 막대한 부당 이익을 챙긴 셈이다. 사면초가에 몰린 풀무원은 이미지 하락과 매출 감소를 이유로 1999년 11월 18일 우리원을 상대로 1백6억원의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통해 사건의 본질을 희석시키고 시간을 끌면서 소비자의 망각을 유도하는, 기업 윤리에 반하는 정면 돌파를 선택한 것이다.


풀무원은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 국내 굴지의 법무 법인에 이 소송을 맡겼다. 또한 부장 판사 출신의 변호사를 책임자로 하여 여러 명의 변호사로 한 팀을 꾸려 이사건을 전담시켰다. 우리원은 무료 변론을 자청한 시민 단체 소속 권종칠 변호사가 맞섰다. 과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소송의 대상조차 되기 힘든 간단 명료한 사건이지만 풀무원의 소장을 받아본 순간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험자의 입장에서 보면 전혀 맞지 않는 궤변이었지만 일반인이나 재판장이 읽어보면 그쪽 주장이 모두 맞게 보일 정도로 논리가 일목요연해 보였다.


나는 그때 비로소 법정 싸움은 진실 게임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약간의 두려움을 느꼈다. 상대 변호사는 실험 과정뿐만 아니라 사소한 절차까지 파악하고 있었고 어떤 점을 쟁점으로 부각시키면 사건 전체를 반전시킬 수있는지를정확히알고있었다. 결국 소송의 승패를 좌우할 핵심 요소는 우리측 권종칠 변호사를 얼마나 빨리생명 공학 분야의 전문가로 만들 수 있느
냐 하는 것에 달렸다고 판단됐다.

솔직히 이 부분을 해결하는 것이 소송과정을 통틀어 가장 힘든 일이었고, 우리원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동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권종칠 변호사는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뿌리를 내린 토박이다. 게다가 의정부에서 가장 많은 사건을 수임하는, 한마디로 잘 나가는 변호사다. 이런 사실이 아이러니하게도 소송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권 변호사 입장에
서는 우리 소송은 자기가 맡은 많은 소송 중 하나에 불과했다. 실험 담당자인 나는 당시 소송 실무 담당 직원과 함께 틈만 나면 권종칠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소송 초기 몇 달은 일주일에 두세 번 의정부에 있는 권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갔다. 최종 선고일 며칠 앞두고 재판부의 회합 주선으로 변론 재개재판 기일과 준비 서면 제출 기일이 다가오면 변호사 사무실로 바로 출근하기도 했다. 권 변호사의 업무가 비는 시간에 같이 토론하고 준비 서면 작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몇 개월간의 고생 끝에 유능한 권 변호사는‘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생명 공학자’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유전자 조작 식품 전문가로 거듭난 것이다. 공익을 위한 업무의 정당성과 정확한 시험 결과와 이를 법률적으로 풀어내 공격과 방어를 적절하게 구사할 줄 아는 변호사를 갖춘 이상 소송에서 질 이유가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때부터 소송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법정에서 20여 차례 이상 공방이 오고 갔다. 우리원은 수천 페이지에 이르는 준비 서면과 50여개의 증거 자료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재판이 시작되고 2년이 흘러 2001년 9월 6일 드디어 판결 날짜가 잡혔다. 그런데 선고일을 불과 며칠 앞두고 재판장이 갑자기 원고인 풀무원과의 회합을 주선하며 변론을 재개했다. 재판부는“풀무원두부에 GMO가 함유돼 있다면 소비자원이 승소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지만 풀무원두부에 GMO
성분이 얼마나 함유돼 있는지도 밝혀서 만약 그 결과가 아주 미량이라면 풀무원 의 도덕성을 회복할 수 있는 여지를 부여하는 것도 재판부의 역할이다”라는 취지였다.

우리원은 내부 실험을 통해 풀무원두부의 정량 분석 결과를 가지고 있었고, 동일한 외부 의뢰시험 결과도 이미 확보하고 있었다. 그 당시 미국의 GMO 재배 면적이 약 40%였는데 풀무원두부의 GMO 함유량 역시 40%에 육박했다. 즉 풀무원은 GMO 수입 콩으로 두부를 만들고 국산 콩 표시를 붙여 비싸게 팔았던 것이다. 이미 정답을 알고 있던 우리원이 재판부의 마지막 요청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재판부를 통해 공개 의뢰 시험을 할 경우 새롭게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을 것이고 풀무원은 소송을 이용해 부도덕성을 은폐하려던 죗값을 달게 받을 것이라고 생각해 적극 찬성했다. 한마디로 꽃놀이패였다.

이후 쉽게 진행되리라 생각했던 공개의뢰 시험은 자꾸 지연됐다. 풀무원측은 자신들의 영향력이 미칠 수 있는 학회나 민간 

연구 기관을 우선 추천했다. 우리원은 신뢰할 수 있는 국내외 정부기관이나 공공 기관을 추천함에 따라 서로의 주장이 대립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조차 재판부의 의뢰시험 요구를 거부하자 우리원과 풀무원은 미국에 있는 민간 GMO 검증 회사인 진스
캔(Genescan) 사와 제네틱아이디(Genetic ID) 사 두 곳에 시험을 의뢰하기로 최종 합의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2003년 5월, -80℃로 냉동고에 꽁꽁얼려 보관하던 풀무원두부 시료를 들고 미국으로 떠나기 며칠 전 풀무원측에서 갑자기 소 취하를 제의해 왔다. 소 취하 제의를 전해들은 나는 강하게 반발했다. 시험검사소뿐만 아니라 우리원 전체 직원의 정서를 봐서도 그 시점에서 도저히 받아 줄 수 없는 제안이었다.

 

이후 풀무원측 담당 변호사와 사장이 몇 차례에 걸쳐 우리원을 방문해 소 취하 동의를 간곡하게 요청했다. 풀무원측의 소 취하 요청 받아들여 치열한 법정 공방 허무하게 막 내려 결국 당시 최규학 원장이“GMO 표시 제도 도입이라는 순수한 공익적 목적
을 이미 달성했고, 민간 기업이 먼저 소 취하를 간곡하게 요청하는데 공공 기관이 제의를 끝까지 거부하는 것도 옳지 않다”는 이유로 소 취하에 동의하는 결단을 내렸다.


당시 우리원 1년 예산에 육박하는 1백 6억원의 손해 배상 소송으로 우리원의 신뢰도와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었던 3년 6개월간에 걸친 GMO 두부 소송 이야기는 이렇게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풀무원의 소 취하서에는“소송 과정을 통해 한국소비자원의 실험 방법이나 실험내용에 아무런 잘못을 발견할 수 없었다” 라는 문구가 삽입돼 있다. 우리측 권종칠 변호사는“풀무원이 소를 취하했다는 것은 법률적으로 풀무원이 전부 패소한 것과 같은 결과다. 왜냐하면 풀무원이 패소했다면 그 판결은 우리원이 풀무원에게 한 푼도 배상할 필요가 없다는 내용일 것이므로 패소 판결과 소 취하의 결과는 결론적으로 똑같은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또한 소 취하와는 별개로 허위 표시에 대한 우리원의 행정 처분 건의 결과, 2004년 6월 풀무원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행정 처분을 받았다. 아울러 일부 소비자가 집단으로 제기한 다른 소송에서 풀무원은 소비자 1인당1백만원씩의 정신적 위자료를 배상하라는 합의 권고까지 받게 된다. 하지만 진실을 알고 싶어 했던 대다수 소비자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대변하지 못했다는 사실과 일개 기업이 천문학적인 손해 배상금을 청구하며 소비자의 권익을 대변하는 우리원의 신뢰도와 운명을 좌지우지했다는 사실은 진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결코 짧지 않은 3년 6개월 동안 우리원 실험 담당자와 소송 실무자들이 대의와명예를 위해 열악한 조건에서도 힘겹게 싸웠던 점을 감안하면 2% 부족한 결말이 아니었나 싶다.

 

 

출처 : 식품안전교육창고
글쓴이 : 현승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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