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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큐레이터 2010. 12. 12. 21:05

 

 

#1 고집쟁이 목사님에 대한 추억

 

목사님의 부음소식을 들었다. 오랜동안 폐암으로 투병하시며 수척해진 모습, 뵙지도 못하고 있었다. 글을 쓰는 지금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고등학교 2학년 올라가며 처음 만났다. 목사님 덕분에 이사 후 교회를 옮기면서 초대교회 생활을 시작했다. 나를 따라온 엄마를 포함 8명의 멤버가 '세상의 작은 모퉁이돌'이 되자며 모였다. 이름하여<한모퉁이 교회>, 초겨울의 신산한 기운이 번지는 반 지하 교회당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아빠를 따라 항상 대형교회만 출석했었다. 부티나는 명품교회에서 편하고 유복하게 신앙생활을 하던 나는, 목사님의 만남을 통해 가장 낮은 곳으로 영혼의 이주를 해야했다.

 

개척교회 생활로 많은 걸 배웠다. 작은 다락방에서 계란을 한바구니 쪄 함께 온 이들과 나눠먹기도 하고, 예배 후 돌아가며 국수당번을 하며 성도들에게 점심을 낸다. 그때나 지금이나 교회국수는 왜 그렇게 맛있던지. 설겆이가 끝나면 시작되는 유년부 아이들 간식 먹이고, 성가대 연습시키고, 5시가 되면 찬양팀 준비를 한다. 1인 7역을 하며 살았다. 교회살림이 넉넉치 않아 그 당시 유행하던 '문학의 밤' 이런 건 꿈도 꾸지 못했고, 성탄절이 다가오면 대형교회를 다니는 친구들을 찾아가 교보재를 빌리던 시절이다. 노회에선 교회 이름이 운동권 교회 같다며 소속도 안시켜주고 지원도 전무했다. 이 당시 괜히 쪼매난 교회 댕겨서 먼 고생인가 하는 '웃기지도 않는' 한탄을 했다.

 

최순남 목사님. 최고로 순한 남자라고 별명을 붙여주었다. 최씨 성에 옥니에 곱슬머리, 고집의 세기를 평가하는 모든 요소를 다 갖추었다며 자평하던 목사님은, 실제로 기존의 목회자들과 다른 생의 궤적을 참 '고집스럽게' 그리며 사셨다. 대형교회의 부목사로 가지 못해 안달하는 이들이 부지기수일 때, 그는 상계동 철거민촌을 택했다. 내게도 '이곳에 온 이유를 잘 깨달았으면 한다'고 조언하셨지만, 사실 철거민이란 단어가 뭔지 모르던 고등학생이었다. 생계를 꾸려가기도 어려운 판에, 돈 나올데 없는 가난한 동네에서 시작한 목회는, 목회자 자신의 육체적 노동을 한 없이 요구했다. 매일 못질하고 수선하는 목사님 모습을 보는 건 예사였다. 설이나 추석이 다가오면 먹을 거리를 포함한 생필품을 목사님 댁에 선물처럼 배달하던 시절이다. 참 어렵게 살았지만 대못같던 훤칠한 목사님을 보면 항상 기분이 좋았다.

 

# 희망을 그리면 현실이 된다

 

문화운동에 관심이 많았던 목사님은 이 분야로 상당한 업적을 남기셨다. 대학진학 후 이후 한모퉁이교회와 멀어졌지만 엄마를 통해 교회소식은 항상 들었다. 목사님은 여행을 좋아했다. 세상을 돌아보며 조형자의 지문을 하나씩 찾는 일을 하셨다. 사진집을 봤는데 목사님이 이렇게 사진을 잘 찍는지도 몰랐다. 알고 지낸지만 오래지 아는게 별로 없는 것. 의외로 인간의 관계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더욱 죄송하다. 그는 큰 불이 되길 꿈꾸지 않았다. 거창한 교회를 희망하지도 않았다. 문화운동에 투신한 목사님 답게 백지에 '이런 교회를 지을것'이라며 드로잉으로 손수 교회의 모습을 그렸다. 지하에는 가난한 이들의 생활여건이 마련될 때까지 준비된 거처와 최소의 자본금을 모을 수 있는 희망가게를 차리는 것. 예배당 위엔 커피집을 내어 일반사람들이 편하게 책도 읽고 쉴 수 있도록 한 곳이었다. 가난한 교회살림에, 목사님이 스케치북에 그린 교회 모습은 꿈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꿈을 오랜동안 그리면 사람의 생은 그 꿈을 닮아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놀랐다. 언덕위의 단아한 교회가 세워졌을 때, 어쩜 스케치북 속의 그림과 너무나 똑같은 것이. 작은 모퉁이 돌이 되고자 했던 목회자의 꿈을 그때서야 알았다. 우리는 비루한 모퉁이돌보단, 화려하고 멋지게 깍인 연석과 파사드를 좋아하지 않는가? 토대가 된다는 것은 의외로 외롭고 힘든 일이었다. 난 늦게나마 목사님의 큰 뜻을 안 셈이다.....

 

# 하늘로 점프한 소년

 

목사님은 폐암을 앓으셨다. 오랜동안 투병생활을 하셨다. 그 와중에도 성도들과 함께 여행을 했고, 아프리카와 세계의 빈민촌을 누볐다. 죽음을 앞에 두고도 당당하셨다. 성도들에게 마지막 선물로 자신이 지금껏 찍은 사진과 아들의 글을 묶어 <하늘 점프>란 책을 장정해 주셨다. 읽으면서 또 놀랜다. 믿음은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계시를 일상에서 살아내는 것이라 말에 동의한다. 목사님은 그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꿰어차고 계셨다.

 

생각해보면 목사님은 너무 일찍 많은 에너지를 소진하신게 아닐까 싶다. 인간에게 주어진 힘은 결국 세월의 결에 따라 조금씩 나눠써야 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말이다. 고집불통의 목사님은 이런 의사결정을 하기엔, 세상 속에 펼쳐진 신의 지문을 빨리 찾고 싶어했던 탐색자였다. 열정과 고집으로 똘똘 뭉친 목회의 시간들을 보냈다. 그는 세상을 프레임에 다 담고 싶어했고, 그 속에서 자연을 보며 시를 지었다. 어른이 되어서야, 이런 면면이 눈에 들어왔지만 한번도 감사의 말을 드리지 못했다. 항상 빚진 마음이다. 뭐라 달리 표현할 길도 없다. 하늘로 점프하고 싶었던 그의 소망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향기롭게 스러지기 위해서,

떠나는 자들은 고요히 떠난다. 그 고요는 웅변보다 훨씬 더 많은 말을 남긴다.

생의 이편에 남아서, 떠나는 자들을 배웅하는 자들은 그들의 고요한 뒷모습에서 새벽안개

냄새를 맡는다. 그들도 언젠가는 그렇게 새벽길을 떠날 것이다. 믿거니와, 우리는 어두움을 향해

길을 떠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살아서 너무나 어두웠던 우리는, 사는 것으로 어두움에서

진 빚을 다 갚는 것이다. 삶 아닌 다른 지옥이 또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지 않는다.

우리는 빛을 향해 간다. 우리는 빛의 아이들이다.

 

김정란의 <귀환, 멈칫거림, 몇잎의 꽃이파리> 중에서

 

참.....고맙고 감사했던 분이다. 이제 하늘에서 치열했던 삶의 열기를 벗고, 자유롭게 소요유하시길 소망한다. 목사님.....안녕히계세요. 그곳에서 뵈어요. 아니 그 곳에서 뵙도록 이 지상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갈게요......개구진 시절의 모습만 기억하고 계실 목사님이지만 더 나은 모습으로 찾아 뵐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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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으로 비까지오는 지금,
목사님에대한 홍기님의그리움의 눈물같아
함께 마음이 싸아해옵니다..

살다가,살다가
어느순간 정말이지 비눗방울이 사라지듯이
그렇게 사라져버리는것이라 느꼈습니다.

불과 두어달전 가르치던 아이가
천사되어 날아감에 한동안 힘이들었더랬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모두가 만남이 예비되어있음에...

홍기님 힘내세요...
모두의 만남이 예비되어 있다는 말을
믿기로 했습니다.

어디서든, 또 언제든
예비된 만남을 위해 오늘도 얼굴도 가꾸고
영혼도 가꾸고, 신체도 가꾸고 그렇게 시간이 남으면
내가 남을 가꾸어주며 살자고요.......
신의 계시를 일상에서 살아낸다는 말에 마음이 울립니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기는 커녕 지옥으로 만들어가며 천국과 지옥으로 협박하는 이들은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요..

언젠가부터 스스로 '무교회주의자'를 자처하며 살아왔건만.. 삶을 이렇게 천국으로 만들어갔던 신앙인들을 보고 있노라면 여전히 이기적이고 편함에만 천착하려하는 제 자신을 보게 됩니다.

하늘로 올라가신 이의 행복을 빕니다.
저도 만만치 않은 무교회주의자입니다.
우찌무라 간조를 좋아하고, 대형교회의 획일화된
정치화된 입장을 싫어하죠. 그러나 피하진 않습니다.
그렇게 한명씩 한명씩 대면하지 않고 피한다면, 지상을 위해
신이 예비한 계시를 말해줄 이들이 없어지기 때문이겠죠.
홍기님도 목사님의 영향을 받으셨겠군요.
최목사님 같은분 뵙기가 쉽지 않은데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어찌보면 목사님을 따라
가난한 동네의 교회를 경험한 것이
오랜 미약한 신앙의 토대가 된 것 같습니다.
영혼의 멘토를 멀리 떠나 보내셨지만 홍기님 기억속에 오래 머무르실것 같습니다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감사합니다.....입관식을 마치고
이제 편안하게 보냅니다. 행복한 나날만이
펼쳐지시길.
공릉에 아가페라는 아름다운교회를 세우셨던데,고인의뜻을 이어 세상의 빛과소금 역활하는 교회되길 기원합니다.자꾸 정신적스승이자 멘토되는분들이 이땅을 떠나는 추운 겨울이네요.
앞으로 이어가실 분께서 잘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참 훌륭하신 목사님입니다. 낮은 곳에 임해서 좋은 일 많이 하셨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입관을 마치고
이제 행복한 여행을 떠나셨네요.
안녕하세요?

전 다른 블로그에서 김홍기님 블로그 소개해 놓으 것을 보고
오늘 첨 방문함다~~
저도 전공과 다른 그림과 영화를 좋아해서요
김홍기님 수준은 아니고...그냥 좋아합니다

내일은 책방가서 '하하 미술관'을 사볼까 하고요
글과 그림과 게다가 나의 전공을 살릴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죠?

글구~~
고인께서 좋은데 가셨을 거예요

전 여행을 통해서 배운게 하나있지요
머무는 것은 짧고... 늘 떠나는 법을 배우지요
위로가 되셨음 합니다..

굿밤 되셔요
저도 여행을 좋아합니다.
성경 중에 좋아했던 표현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나그네란 것
잠시 이 대지에 우거하다가 빛으로 사라질 나그네라고 성경을 말하죠.

우리 안의 욕망, 소유....
이런 모든 것들 조금씩 내려놓는 준비, 더 길고 멋진 여행이
우릴 기다릴테니, 짐을 쌀때 무겁지 않도록, 필요한 사랑만 담고 갔으면 합니다.
아하~ 상쾌하고 멋진 목사님!! 안녕히 가세요.
선생님 전시 준비 잘 하고 계시죠?
벌써 한해가 저무네요.....뭘 하고 있었는지
제대로 인사 한번 못드린 거 같아 죄송하기만 합니다.
목사님 너무 오랜동안 투병하셨어요. 오늘 입관했습니다.
부디 행복만 가득하시길 빌고 있어요.
아...이런 목사님이 계셨군요.
읽어내려가니 가슴이 저려오고 콧등이 시큰해집니다.

저도 20여년을 개척교회 봉사를 해온지라
김홍기님의 목사님에 대한 사랑이 공감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너무나 사랑하셔서 빨리 불러올리셨을까요?
눈물이 없는 아름다운 곳,
그곳 주님의 품에서 편안한 안식을 누리고 계실겁니다.
루비님도 개척교회 봉사를 하시는군요
어쩐지 포스가 후덜덜했습니다. 강력한 느낌의 모습이......
목사님 보내고 며칠 흔들릴 거 같습니다. 하지만 다시 일어서야죠.
지난 여름에 상계동 산동네에 가 봤습니다.
하늘과 맞닿은 듯 좁은 골목은 높은 등성을 향해 계속 이어졌고,
다닥다닥 붙은 작은 문들에는 누군가가 살아가고 있다는 신호로 자잘한 생필품이나 이름들을 걸어 놨더군요.
공터에는 연탄 몇 장이나 버려진 낡은 의자 같은 것들 위로 고양이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이 두서없이 들어서 말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 곳에도 뾰족한 교회 지붕이 있었습니다.
어느 선한 목회자가 가난한 이웃들의 든든한 느티나무가 되어주는 모습이겠구나 생각했더랬습니다.

처음뵙는 모습이지만 목사님의 저 욕심없어 보이는 맑은 미소가 이제 추억으로 남았다고 생각하니 함께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비록 낯선 사람이라 할지라도 살아간 삶의 그 고운 빛살이 낯선이의 마음도 이렇게 적시는 것,
그나마 목사님께 선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숙제 다 끝낸 홀가분한 걸음으로 평온히 하늘나라로 걸어들어가셨기를 빕니다.

그러나 여전히, 안타까운 맘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내려보시겠지요.
느티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소요유할 목사님이 그리워지네요.
저도 이곳에서 남은 날들을 최선을 다해 살아야지요
가신님의 평안한 휴식을 기원합니다. 그러고보면 일상에서 누군가들이 떠나는 것은 멀리 있는 일이 아니란 것을 되새기게 하는 것 같습니다.()
아란도님.....
감사해요 올해도 마무리 되는 군요
이렇게 한해가 가기 전에 한번 쯤 뵈어야 할텐데
어떻게든 시간 한번 만들어서 또 뭉쳐요.
이 세상 한모퉁이에 최순남목사님 같이 아름다운 분이 계셨군요. 훤출하신 키에 외롭지만 고결하셨을 인품의 향기가 느껴집니다. 돌담에 기댄 모습에서 선명히 보이는 목줄 3가닥은 아마도 그 분의 타고난 숭고함과 고집스러움 그리고 단명의 운명을 타고나셨다고 보여집니다. 짧고 굵게, 선명하게 살다가신 목사님의 생에 깊이 존경을 드리며 명복을 빕니다. 돌아가셨듯이 돌아오셔서 못다하신 소금과 빛의 소명을 다 하시리라고 믿습니다. ()
소명을 위해 너무 부지런히
모든 힘을 빨리 써버린 듯한 느낌.
그것이 목사님에 대한 제 생각이었죠. 아쉽고 아리고 아픕니다.
아....귀하고 귀한 우리 시대의 사무엘과도 같은 "Judge"들이 한 분 한분....
하나님 계신 곳으로 가시는 군요...세상의 눈에 띄지 않은 채, 예수 닮기
하신 분들.....분명 지금 이순간 "그곳에서" 너무나 행복하실 거라고 믿어요...
그곳에서 많이 행복하실거에요......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마음이 어떠한지 너무나 공감합니다..그때 어떤분이 그러셨지요..하늘나라에서 꼭 필요해서 일찍 데려간 것이라고..
이젠 울지않습니다.우린 소망이있기에..그리고 나를 철들게하고 아프고 힘든 이웃을 위해 기도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제 저도 그 마음을 알것 같습니다.
몸소 아름다운 꽃을 피우시다 가신거라 믿습니다. 못다피운 꽃은 우리들의 몫이지 않을까요. 그렇게 믿고 가셨기에 행복하실거예요.
기도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꽤 인상 깊었던 방이여서 제 뇌리에서 오랫토록 기억되어
모쪼록 들려 이것 저것 감상하다 이곳에 머물러 고인이 되신 목사님의 명복을 빌어봅니다.
멋지게 사시는 홍기님의 따뜻한 심성이 느껴져서 감동입니다.
늘 건강하시고,행복하셨으면 하고 기원합니다.

고운밤 되세요..^^
목사님~~ 이곳에서 뵙게되네요.
오늘 문득 최순남목사님이 그리워져서 인터넷 검색창에 이름을 올렸고 이 글을 읽었습니다.
지금은 가끔 아가페교회를 갑니다만 구석구석 목사님의 흔적들이 잊히지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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