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패션 큐레이터 2012. 9. 3. 05:00


페북에 컨셉코리아를 위해 한국을 대표해 나가시는 최복호 선생님의 

컬렉션을 걸어놓았다. 멋진 패션 전문가분들이 함께 대화에 참가해 이야기를 나누신다. 

옆에서 열심히 좋아요 버튼만 누르고 있다. 색은 마치 금강경에서 이야기 하는 인디라의 구슬같이

서로를 비추는 거울같다. 나에겐 유치한 것이, 어느 나라 다른 이에게는 환희가 되고

내게 우울한 상징이었던 색은 또 다른 나라 누군가에겐 생의 엄정함을 비추고 

반영하는 빛이 된다. 색의 얼굴은 과연 몇 개인 것인지 놀랍기만 하다.



내 서재에는 미셀 파스투로란 미술사가가 개별 색의 역사에 대해 쓴 

                                                          문화사 시리즈들이 꽂혀있다. 블랙, 블루, 레드 등등 그 중 블루는 번역이 되어있다. 

                                                    색은 한 시대를 풍미하는 이념처럼 사람을 사로잡는다. 그래서 기존의 색과 새로 부상하는 색

                                             그 색을 생산하고 만들어내는 이들은 일종의 시각의 문법을 둘러싼 치열한 전쟁을 
벌이곤 했다. 중세에 

벌어진 레드와 블루의 싸움처럼 말이다. 몇년 전 아프리카 케냐를 여행하다가, 그곳의 토양의 

색이 내가 외우고 있던 펜턴칩의 규정과, 먼셀 색상환의 규정과 확연히 다르다는 걸 

알았다.  토양이 환경의 변화 속에서 일조량과 순정품의 바람에 따라 색의 

내면을 토하듯철분이 함유된 토양의 빛도 시시각각 변했다. 그때 알았다. 

색을 공부한다는 건 백면서생처럼 책으로 공부하는게 아니란 걸. 



                                                                              어찌보면 색은 온 도처에 있는지 모르겠다. 살아숨쉬는 

                                                                        이들의 표정에서, 거리에서, 전화기를 입에 대고 깍깍대며 
남자

친구와 싸우는 여자아이의 얼굴에서, 그렇게 색은 추출되는 것이이라

올 봄, 인도에서 열린 봄맞이 축제, 홀리(HOLI)의 장면들을 찍은 로이터 사의 

사진 도록을 보고 있다. 홀리는 말 그대로 찬연한 색채를 위한, 색채에 의한 축제다. 

생의 치열함을 감내하며 겨우내 언 땅의 눅눅한 기운에 입맞추었던 모든 이들은

이곳에 들러 축제에 동참한다. 사람들에게 색 덩어리 파우더와 페인트를 

뿌린다. 이 축제는 원래 북 인도를 중심으로 벌이는 페스티벌이다. 



이번 포스팅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적어도 색을 테마로 3회에 걸쳐 글을 올려보려고 한다. 색의 인류학과

그것이 문화권에 따라 어떤 변화를 사람들의 마음 속에 불러 일으키는지도 궁금

하다. 이번 컨셉 코리아에 나가는 디자이너 최복호 선생님의 작업이 바로 이 색을 갖고 

노는 작업이다. 본인의 말대로 하면 '색의 놀이'다. 마음껏 이 땅의 전통이나 이념적인 바탕에 

의한 색의 선택을 넘어, 오방색이든, 먼셀 색상환이든 마음껏 직물 위에서 색이 춤추게끔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 작품을 분석하기 위해, 색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1일부터 열린 국제 바디 페인팅 

자료들을 살펴보다가 결국 색이란 주제로 글을 풀게 되었다. 



홀리에 동참하는 이들의 표정을 봤다. 로이터의 사진 기자들에게

포착된 그들의 표정은 생의 찬연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중세 카니발에서 

사람들이 계층과 계급을 넘어, 넘쳐나오는 육욕과 섹슈얼리티, 진한 인간 본연의 

감정을 거리낌 없이 투사했듯, 홀리에서는 카스트로 묶여있는 철저한 계급사회의 얼개가

벗겨지고, 서로가 색을 통해 뭉치고 환호하며, 얼키고 설킨다. 색은 그들의 마음을

열고 동화를 이끌어 내며, 상처를 봉합하는 일종의 봉합사로 역할한다. 



힌두에는 3 주신이 있다. 우주를 창조한 브라마와 이것을 유지

보존하는 비슈누, 그리고 우주를 파괴하고 다시 재창조하는 시바가 있다.

홀리는 비슈누와 관련을 맺는 축제다. 우주를 유지하기 위해 이 땅에 내려온 그는

처음에는 동물로, 이후에는 인간으로 화하여 강림했는데, 인도 마투라 지역에는 이를 증명하는

사원이 실제로 있다고 한다. 이 비슈누의 화신 중 하나인 크리슈나는 여인들과 함께 

색을 던지며 놀았다고 전해지며 이 축제는 바로 이러한 이야기에 기인한다.



이 때가 되면 힌두의 월력에 따라 또 다른 이벤트가 열린다.

바로 홀리까라 불리는 힌두의 악마를 화형하는 의식이다. 이 홀리까는 

원래 비슈누신에 의해 죽은 히라냐까시뿌의 자매다. 히라냐까시뿌에겐 프라흐라다란

아들이 있었는데 그가 비슈누 신을 찬미하자, 홀리까가 자신은 불에 타지 않는다며 그를 징벌키

위해 불에 들어갔는데, 자신만 타고 프라흐라다는 화상을 입지 않고 살아나는 기적이 

발생하게 된것. 이후로 이 홀리는 홀리까란 악마를 태움으로써, 계절의 순환에

따른 생명의 재탄생과 축복을 기원하는 축제로 자리를 잡게 된다. 



색에 관한 많은 책을 읽었지만, 여전히 오리무중일 때가 많다.

전자회사에서 상품기획을 하면서 초기에 여성용 제품을 만든답시고 

분홍으로 갓 금형을 뜬 제품에 채색을 해서 페어에 나간적이 있다. 바이어들은

즉각 여성용이냐고 물었지만, 하나도 구매하지 않았다. 소비재와 달리 자동차에 내장되는

제품이기에,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색이 아니라고 믿었던 모양이다. 여성과 남성의

감성에 따라 색이 갈리지만, 색은 사용상황에 따라서도, 혹은 특정 색에 부여

하는 나라별 가치관에 따라서도 이렇게 문화적 코드의 값이 달라진다.



색은 어찌보면 우리내 삶을 가장 적나라하게 투영하는 거울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여성을 탐하는 것을 여색을 탐한다고 말하는 것, 색은 여기에서 곧 '식음' 행위

와도 연결된다. 그러나 그 식음을 통해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원초적인 에너지를 얻듯, 우리를

둘러싼 모든 색의 이름에는, 혹은 그 연원에는 가장 말단의 욕망들이 녹여져 있다. 한 벌의 옷에 사용할 색을 

고르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은 문제임을, 중층적인 문제임을 배우게 된 것 그 때문일 것이다. 당신의 색은 어떤 색인가? 

인생이란 전쟁터에서, 당신을 지키는 영혼의 방패와 갑옷의 빛깔이 유독 궁금한 요즘이다. 그 색이 다르다고 

타인을 비판하고, 나와 동일한 색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정치와 문화를 이끈다. 그러니

동색을 가지라고 억압하고 누른다. 이제 그 색을 강압하기 위해, 불심검문도 불사하겠다는

정부가 아닌가 말이다. 그들에게 색이 전쟁터임은 확연히 드러난 셈이다. 


Photo Courtesy By Reu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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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라는 축제 참 멋지군요. 색을 입히며 소통하고 즐긴다는게 좋아 보여요.
저도 어릴때부터 색을 좋아해 물감이나 색연필 또는 파스텔등 닥치는대로 사고 모으고 했었거든요. ^^
물론 그런 인위적인 색도 예쁘지만 이젠 자연에서 보여지고 느껴지는 무한하게 변하는 그런 색감이 좋아지네요.
가끔씩 하늘이나 바다 또는 나무가지에 걸린 햇살을 유심히 지켜보면 시시각각 변하는게 참 경이롭고 아름답잖아요.
최근 인도 현지 촬영하는 영화의 의상을 맡아서 생각을 하다보니
이런 저런 생각에 빠졌습니다. 색에 대한 생각들도 그렇고요. 그래서 오늘 글을 쓴거 같아요
'색은 곧 욕망이다' 라는 표현이 참 와닿네요.. ^^ 사람마다 색깔이 다르다는 건 그 사람이 지향하는 욕망이 다르다는 뜻도 되겠네요.
욕망의 색이 너무 짙어져서 문제겠지요. 요즘같은 대선정국에선 더더욱 이런 마음에 빠져볼 수 밖에요
사진들이 너무나 매혹적이어서 눈길이 떨어지지않는군요.
사실, 지금까지 색에 대한 텍스트들이 오리무중이라는 말씀에 끄덕여집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형태에 비해 색은 너무나 감성적이고 감각적인 부분이기도하고,
심리를 건드리는 민감한 그래서, 획일화된 조직은 다양한 색감을 누리는 것에 대해 저어하기도하죠. 그리고, 색감자체도 자연스레 많이 대하지않으면, 그 감각이 둔해지기도하고, 특히 색은 배운다고 저절로 익혀지는 게 아닌 듯 합니다.

색이 전쟁터이기보다는 저 사진 속 풍경처럼, 다채로운 조화 속에 개인 개인의 삶 속에서 자연스레 배어나온 저마다의 빛깔로 어우러지는 한 바탕 축제로 그 무대에 함께 놀면 참 좋겠다 하는
생각이 크게 다가오는 글입니다. 에효~ ^^

선명한 자신의 빛을 발하면서도, 그 빛이 뿜어내는 선들의 긴장을 아슬아슬 타면서도,마침내 조화로움의 길을 찿을 수 있도록. 욕망의 색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저도 이 사진들을 보면서, 정말 이 페스티벌에는 꼭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욕망의 색을 넘어, 내 자신의 색을 드러낼 수 있는 날을 위해 오늘도 노력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