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와지붕의 선이 무척 아름다운 '영동 소석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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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2013. 12. 4.

 

 

 

마을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소석고택은

멀리서 바라봐도 금세 알아볼 수 있는 선이 아름다운 지붕을 하고 있었다.

이곳 소석고택은 주변 산이나 언덕이 배경이 아닌 평지에 자리잡고 있어서인지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눈에 띄게 잘 보였고 언뜻 봐도 멋스러운 기와지붕의 선이

이 동네에서 큰 부잣집으로 보였다.

 

 

 

 

 

소석고택(중요민속자료 제132호)

 

이 고택은 기와에 새겨진 글에 조선 고종 22년(1885)에 지어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충청도와 경기지방 일부에서만 글이 새겨진 기와를 가끔 사용했다는 것이다

건물은 남쪽을 향하고 있고, 안채에 수직축을 맞춰 전면에 H자 모양의 사랑채를 배치하고 있다.

한마당 동쪽에는 곳간채를 배치하였는데, 안채와 사랑채와의 사이에 있었던

행랑채, 광채 등은 1920년대에 없어졌다는 안타까운 이야기였다. 그대로 보존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문화재 지정을 위한 조사 당시(1984)에 이미 많이 낡고 퇴락해 있었으나 남아있는 것만이라도

보존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학술적인 가치가 인정되어 지정·보존되고 있다.
지정 당시 명칭은 '영동송재문가옥(永同宋在文家屋)'이었으나, 가옥을 지은 송병필의 호 ‘소석'을 따라

‘영동 소석 고택’으로 지정명칭을 변경(2007.1.29) 하였다. 

 

 

 

 

대문에 '화목토 개통'이라고 적혀있으며, 관리하시는 분의 전화번호가 적혀있다.

이곳을 답사할 계획이 있는 분은 화,목,토에 방문하는 것이 좋겠다.

그나마 문이 잠긴 곳과는 달리 이렇게 안내를 하고 있어서 찾아가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곳 소석 고택에도 멋과 풍류를 집안으로 들였다고 보면 되겠다.

누마루가 있는 집, 바라만 봐도 멋스럽다.

보통 정자와 누각은 경관이 수려하고 사방이 트인 곳에 지어놓고 자연을 감상하는

풍류를 즐기던 선조들의 멋이 깃들어 있다

이런 정자와 누각을 한꺼번에 집으로 들여놓은 누마루가 있는 고택이었다.

누마루를 사랑채에 두어 누마루를 중심으로 기둥만 세워 삼면이 트인 구조를 하고 있다

이 사랑채의 특징이 누마루를 갖고 있고, 옆으로 방이 함께하고 있는 구조였다.

사랑채는 남성의 생활공간이면서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이며

누마루는 글을 읽거나 자연을 벗 삼아 명상을 즐기는 공간이기도 하고

손님맞이로 차나 술을 나누는 공간으로도 이용되었다고 한다.

 

 

 

 

 

 

이곳 고택에서 느끼는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던 지붕의 선이 보였다.

우리나라 건축물 중 특히 한옥의 지붕은 그 선이 아름답고 자연미가 넘친다는 것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자연스러운 곡선미는 정말 아름답다.

고무줄을 늘어뜨린 듯 자연스러운 곡선,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선, 약간 추어 올린 추녀마루의 맵시는

정말 예쁜 버선코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 고택은 정말 터가 넓었다

건물은 사랑채 안채 광채뿐이었지만 정말 넓은 터를 보면서

거대한 부자였음을 짐작하게 하였고

관리인 말에 따르면 어릴 적에 이 마을에서 가장 부잣집으로 불렸다고 했다.

 

 

 

 

 

 

 

 

안채 전경


안채는 전면 6칸의 전 후퇴 집이다. 조선시대 후기로 들어가면 실의 쓰임새가 늘어나면서 홑집에서 전퇴집

그리고 후기에 들어서면서 앞뒤에 퇴를 가지는 전 후퇴 집으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전 후퇴 집은 다양한 평면구성을 가능하게 한다.

전후로 트여놓아 두 칸 크기의 방을 만들기도 하고 앞에는 퇴를 두고 뒤에 골방을 둔 칸반 규모의 방을 만들기도 한다.

 따라서 대청도 후반기에 들어서면 깊이가 두 칸이 되는 대청이 만들어져 집의 규모가 전반적으로 커진다.

 


이 집도 19세기 말에 지어진 집답게 전 후퇴 집이다

안채는 건넌방과 부엌의 전퇴부분은 툇마루를 깔지 않고 후퇴하여 평면을 구성하였다.

부엌은 후퇴된 퇴칸과 처마 밑은 활용하여 비가 올 때도 밖에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건넌방 쪽은 아래쪽에 아궁이를 설치하고 상부에 다락을 설치하다 보니 전면에서 볼 때 창이 보이지 않고

 다락의 벽과 부뚜막이 직접 보여 집의 완성도로 조금 떨어져 보이는 것이 아쉬운 부분이라고 했다.


 

 

 

 

 

건축연대가 20세기 초로 알려진 건물인데.. 광채로 지어진 것으로 보였다.

넓은 대지 한쪽에 우두커니 서 있는 광채가 특이해 보였다.

나는 처음에 광채인지 뒤주인지 궁금했지만 광채로 불린다고 하니 광채인가 보다 했다.

이러한 시설은 우리나라 중남부 내륙 지방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농가의 시설물 중 하나라 보면 되겠다.

초가지붕을 하고 있는 이 광채는 고풍스러웠지만

사진에서처럼 지붕이 허물어져 있어 바라보는 마음은 언짢았다,

넓은 마당 한 쪽에 외롭게 있는 광채...

특이하게 보이기도 했지만 관리가 허술해 보여 마음이 그랬다.

그냥 사진도 흑백처리 하고 말았다.

 

 

 

 

 

 

 

소석고택을 돌아보면서 아쉬운 점은 복원 할 때 1920년 집이 소실되기 전 모습을 되살렸더라면 하는 점이다.

지금 부지 크기에 비해 집들이 너무 적게 남아 있어 전체적으로 휑한 모습이다.

중간행랑채가 있고 또한 중문이 살아 있었다면 사랑채에 설치된 문의 성격도 분명해지고 소석고택을 초창하였던 분이

이 집에서 지향하는 바를 조금 더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점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고택을 돌아보고 마을 골목으로 들어가 보았다.

풍광은 건물 주변이 드넓은 평지여서 그런지 마을 집들만 보였다.

아직 김장을 하지 않은 배추밭 풍경도 보이고... 넉넉한 마음으로 골목길을 누비는데

예쁜 고양이 한 아이가 나에게 달려든다.

예쁘게 사진에 담아주려고 카메라만 들이대면 달려드는 고양이가 참 신기했었다.

달려드는 고양이를 빠르게 담았지만 잘 담기지 않았다.

잘 자라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왔다.

 

 

 

 

 오래된 전통 고택을 거닐어 보는 그 여유로움이 좋았다.

그 오래전 사람들의 생활상이나 그때의 느낌을 살짝 엿보는 시간 또한

여행길에서 만난 특별한 기회가 아닌가 싶었다.

부디 잘 보존되어 언제고 찾아가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