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보

마루치 2010. 12. 1. 12:57

경주 최부자

[대한민국 제1호] 해방 후 고액기부 첫 사례 
 

 여러 학자들에 의하면, 대한민국의 첫 고액기부자는 '경주(慶州) 최부자' 집안의 마지막 최부자로 기록된 최준(崔浚·1884~ 1970) 선생으로 기억되고 있다.

조선시대 최고의 부자로 불렸던 경주 최부잣집은 300년간 만석꾼을 지내면서 어려운 이웃을 돕고 독립운동을 후원해 큰 존경을 받았다. '사방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문의 지침과, 어려운 사람들이 손을 집어넣어 잡히는 만큼 쌀을 가져가도록 구멍을 뚫어 놓은 '구멍 뒤주'는 최부잣집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고위층의 사회적 책임)' 정신을 대표하는 일화이다.

▲ 광복 후 최준 선생은 그때까지 남은 전 재산을 처분해 대구대학교를 설립했다.
광복 후 최준 선생은 그때까지 남은 전 재산을 처분해 대구대학교와 계림학숙을 세웠고(1947년), 이 두 학교가 합쳐져 현재의 영남대학교가 됐다.

예종석 한양대 교수는 "최준 선생과 더불어 1970년대엔 유일한(柳一韓) 선생이 사회고위층의 책임의식을 보여준 모범 사례로 귀감이 됐다"며 "그러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기부자도 여럿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했다.

유한양행을 설립한 유일한(1895~1971) 선생은 1970년 개인주식 8만3000여주(현 시가로 311억원 상당)를 사회에 환원했는데, 이는 손녀딸의 유학자금 일부 등을 제외한 전 재산을 내놓은 것이었다. 이 기금으로 유한재단이 설립됐고, 현재까지 교육 장학사업 등을 이끌어 오고 있다. 아버지의 정신을 이어 1991년 선생의 외동딸 유재라 여사도 전 재산(시가 200억원 상당)을 유한재단에 기증했다.

▲ 유한양행을 설립한 유일한(1895~1971· 오른쪽 사진 왼쪽에서 두번째) 선생.

강철희 연세대 교수(사회복지학)는 기업에 속한 재단이 아니라 자산으로 운영되는 '독립재단 1호'로 중부재단(이사장 이혜원)을 꼽았다. 그는 "중부재단이 현대적 의미의 기부를 제대로 실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의 남편인 김항덕 중부도시가스 회장이 자산 30억원을 출연해 어려운 이웃과 사회복지기관을 지원하는 중부재단을 세웠고, 부부는 매년 회사 수익금 등 10억원 상당을 재단에 내놓고 있다. 강 교수는 "꾸준히 자기 자산에서 얼마간을 떼어내 기부해온 중부재단은 '중간 부자들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모범 사례"라고 말했다.

최근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 민간 기부기관이 속속 등장하고, 기업체에서 사회적 공헌을 중시하면서 연간 수백억대의 기부를 하는 기업도 많아졌다. 이런 '초고액 기부'의 시발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삼성으로 기억한다. 김효진 공동모금회 홍보실장은 "1999년 12월 삼성그룹에서 100억원을 기부했는데, 당시엔 공동모금회의 연간 모금액 목표가 213억 정도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 민간협력과 윤희성 사무관은 "최근엔 기부자들의 선행이 잘 알려지고 있지만, 해방 이후 1980년대까지 여러 독지가의 기부는 개인적으로 이뤄져 역사 속으로 묻힌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김경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