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살던 고향 ◇─/마을유래비

황인홍 2018. 10. 8. 11:54
















서금리 (서구미 / 서기미) 마을 유래


소백산맥의 명산 민주지산 자락과 백화산 자락의 금강 상류가 발원하여 월유봉 하령천을 지나 박달산을 감돌아 수백 길 베루날망을 지나면 서금을 유수하고 우측은 국토의 대 혈맥인 경부선의 양대 철로 철마가 왕래하는 우리 부락은 신라 박혁거세의 46세인 조선조 밀양 박씨 휘 인석 공 병조판서 일가의 산소가 마을 뒤 산에 자리 잡고 있어 400년 이상 된 마을 이었음을 가름하며 본래 신라 고려 시대에는 상주의 관할이었다가 조선 태종 13년(1413년) 충청도에 이속이 되어 영동현 서일면의 대표적 마을로 서구미/서기미 등으로 불리게 되었다가 서금동 서금리로 불리게 되었다 한다.

일제시대 1905년 경부선 철도가 계통이 되고 심천리가 면소재지로 지정이 됨에 1914년 일정의 통합정책에 의하여 심천리 서금부락으로 병합이 되었고 1984년 다시 행정구역조정에 따라 심천2리에 속하게 되었으나 역사와 문화를 존중하고 독립적인 마을로 다시 태어 나야 한다는 모든 주민의 열망으로 주민 모두의 부단한 노력에 2018년 1월 드디어 독립 행정리인 서금리로 다시 태어 났다.

본래 밀양 박씨의 씨족부락이었다가 1900년 초순경 부터는 여흥민씨 재령강씨 이천서씨 울산박씨 현풍곽씨 강릉유씨 등이 어울려 살며 한때 300여명이 사는 큰마을이었으나 산업화의 발전으로 인하여 주민의 수가 급감하여 현재의 작은 부락으로 남게 되었으며 최근에는 평해황씨 인종장씨 김해김씨 광산김씨 밀양변씨 단양이씨 등이 합류하여 살기 좋은 인심 좋은 동네 귀촌, 귀농하고 싶은 동네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최근에는 검찰부이사관(박세호)와 민선 6,7기 영동군수(박세복) 형제를 배출한 영광스런 마을이며 농토는 비옥하여 예로 부터 특용작물을 재배하여 풍요로운 마을로서 인신 좋고 살기 좋은 동네로서 예로 부터 내려오는 전통과 예의를 존중하고 상호 협조와 상부 상조의 정신을 오래 오래 기리고 계승하고자 이 비에 새겨 후세에 남기고자 한다.



2018년 9월 

서금리 주민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