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dante 2021. 1. 18. 11:27

어제 저녁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KBS 신년음악회를 감상했습니다.

비록 처음부터 보진 못했지만 트로트 일색이던 방송 프로그램에서

오랜만에 클래식음악을 접하니 참 반가웠습니다. 트로트 중에도

좋아하는 곡들이 있고 토로트 가수 중에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지만

온 방송국이 트로트 일변도로 돌아 피곤하던 차였습니다.

 

KBS교향악단은 손꼽히는 실력의 악단이지만 한동안 연주회엘

가지 못했는데, 텔레비전으로나마 접하니 좋았습니다.

관악기를 제외한 모든 악기 연주자들이 마스크를 쓰고 연주하고

관악기 주자들 사이엔 침방울 퍼짐 방지용으로 보이는 투명

아크릴 판이 있었습니다. 

 

연습 또한 마스크를 쓰고 했을 테니, 이번 연주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땀과 고생의 결과였으리라 생각합니다.

지휘자를 비롯한 모든 연주자들에게 깊이 감사합니다.

 

그런데 왜 제가 이 글의 제목에 '유감'이라는 단어를 썼을까요?

방송을 보며 느낀 몇 가지 문제점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지휘자의 이름과 협연자의 이름을 알 수 없었습니다.

 

모든 시청자가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보는 것이 아니니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사회자가 지휘자와  협연자의 이름을 얘기했다

하더라도, 연주가 계속되는 동안 내내 화면 위 한쪽에 그들의 이름을 보여주는 것이

상식이고 예의입니다. KBS에서 하는 신년음악회이니 KBS교향악단이라고

짐작할 수는 있지만 모두가 그렇게 짐작할 수는 없는 일이고

때로는 다른 악단을 초빙해 연주할 수도 있으니 악단의 이름도 써 주어야 합니다.  

 

지휘자, 악단, 협연자의 이름을 써 주는 것은 그들의 노고에 대해

감사를 표현하는 최소한의 배려입니다. 이름을 알아야 그들의 예술적 기량에

좀 더 깊은 찬사를 보낼 수 있고 건설적 비평도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연주한 다른 작품을 찾아보고 싶을 때도 이름은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KBS신년음악회 프로그램에서는 그런 예의를 볼 수 없었습니다.

시작할 때부터는 보지 못했지만 적어도 2, 30분 동안,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연주를 보고 들었지만 끝내 지휘자의 이름은 알 수 없었습니다.

같은 교향악단이라도 지휘자에 따라 아주 다른 음악을 만들어냄을 생각할 때,

즉 지휘자의 절대적 영향력을 생각할 때, 지휘자의 이름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KBS의 행태는 무례와 무지를 드러낸 것으로,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방송이 끝난 후에 인터넷을 검색해본 후에야 이 신년음악회가 지난

1월 6일 예술의전당에서 무관객 연주회로 진행되었던 것이며,

지휘자는 여자경 씨, 피아니스트는 김선욱 씨임을 알았습니다.

두 분께 깊이 감사하며, 두 분이 KBS의 무례를 용서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동행

dante 2021. 1. 17. 10:50

공성훈 작가의 이름을 처음 들은 건 인디뮤지션 지미 스트레인에게서였습니다.

그림을 좋아하고 직접 그리기도 하는 지미가 우연히 들른 전시회에서

공 작가를 '발견'하고 큰 반가움과 기쁨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지미의 말을 들으며 언젠가 공 작가와 그가 함께 작업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부박한 시대와 상관없이

생의 본질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니 둘이 함께 하는 작품이 기대되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11일, 공 작가가 별세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1965년 생이니 제 막내동생보다도 젊은 나이인데...

 

이 뛰어난 화가의 이른 귀천이 참으로 마음 아프고

그로 인해 이루어지지 못한 공 작가와 지미 스트레인의 협업이 

안타깝습니다. 

 

삼가 공 작가의 명복을 빌며

그의 가족과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깊은 위로를 보냅니다. 

 

김지연의 미술소환]예술가의 영점 조정

김지연 전시기획자·d/p 디렉터

 

공성훈, 바닷가의 남자, 2018, 캔버스에 유채, 116.8×80.3㎝

 

며칠 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공성훈의 작가노트를 보았다. “과거에는 미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미술가와 미술대중 사이에 암묵적인 합의가 가능했지만, 오늘날에는 미술의 역할과 정당성에 대해 작가 스스로가 정의를 내리고 그 결단을 바탕으로 작업을 꾸려나가야 하는 실정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참으로 오랫동안 영점 조정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상에서 한 30㎝쯤 떠서 다닌 것 같던 학창 시절을 지나, 어디에 발을 딛고 서야 할지 막막한 현실로 내려서야 했을 때, 그는 눈앞의 뜬구름을 걷어내고 현실을 비추며 파고드는 길을 선택했다. “땅을 디디고 있는 발바닥의 감각이 고개를 들어 멀리 별을 보게 만드는 근거”가 되기를 바란 화가는 그저 아름답고 목가적인 풍경이 아니라, 그 풍경 안에 삶의 단면을 은유적으로 담고 싶었다.

 

스산한 날씨, 폭설, 세찬 파도가 몰아치는 장면 안으로 들어간 화가가 포착한 자연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 앞에서, 관객은 삶을 좌지우지하지만 어디로부터 오는지도, 왜 오는지도 모를 거대한 힘과, 그 힘을 대면하며 살아야 하는 우리의 현실을 짐작한다. “불안정한 삶의 한가운데에서 불확실한 운명이 휘두르는 힘을 지켜봐야 하는 무력감, 어디에 저항해야 할지도 모를 만큼 생의 방향을 잃어버린 상실감, 동지가 없고 철저하게 혼자 서 있는 것 같은 고독감”이 파도를 향해 선 이의 등 뒤에 새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대해서 독립적 인간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천칭의 양쪽 접시에 세계와 내 존재를 올려놓으면 균형을 이룰 거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남겨진 그림은 화가의 당부를 전한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1160300025&code=990100#csidx16dd7beac84ed3b94dfa6be2237c301 

 
 
 

오늘의 문장

dante 2021. 1. 14. 12:01

어젠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밥을 먹고 말을 하고 눈 녹은 길을 걷기도 했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과 같았습니다.

심장이 멈춘 듯했습니다.

 

심장이 뛰지 않으려 하는 건 가끔 있는 일입니다.

한의사이신 황 선생님은 제 심장이 '태업'을 하려 한다고

말씀하셨지만, 저는 심장에 녹이 슬었거나 때가 낀 거라고 생각합니다.

 

볼 필요가 없는 것들을 보고 들을 필요가 없는 소리를 듣고

갈 필요가 없는 곳들을 다니며 마음 쓸 필요가 없는 일들에

마음을 쓰는 바람에 녹이 슬고 때가 낀 것이지요.

가슴에 문이 있다면 그 문을 열고 서랍 속 물건을 꺼내듯

심장을 꺼내어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고 싶습니다.

 

언제였던가, 다이 호우잉 (戴厚英)의 소설 <사람아 아, 사람아>를 보며

깊이 감동하고 아파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이 호우잉은 그새 

저 세상 사람이 되었고 제 심장은 더욱 녹슬었습니다.

 

우연히 집어든 <사람아 아, 사람아>에서 심장을 씻는 손 유에를 만났습니다.

그러고 보니 내일은 이 책을 번역하신 신영복 선생이 돌아가신 지

꼭 5년이 되는 날이네요.  심장이 필요없는 세계로 가신 두 분을 생각하며

다시 두 분의 문장을 읽습니다.

 

"나는 내 심장을 꺼내서 구석구석까지 조사해 보았다. 돌기된 부분에 한 군데

상처가 나서 심하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곳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수도꼭지로 갖고 가서 깨끗이 씻었다.

     '상처를 어떻게 하면 좋아?' 나는 물었다.

     '원래 있던 곳에 그대로 놔두면 자연히 낫게 돼.' 호 젠후의 심장이 대답했다. 나는 심장을 가슴 속에 다시 집어넣었다. 어무런 상처도 남지 않았다

나는 싱글벙글하면서 그에게 말했다. '어때요? 나, 멋지요. 자, 당신 심장도

씻어 줄께요.' 나는 과도를 그에게 갖다 댔다.

그는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뭐라구? 내게 심장이 없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거야? 당신은 인정도 없나?'

나는 깜짝 놀랐다. '그럼 당신의 심장은?...'

(하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