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dante 2020. 10. 25. 22:47

오랜만에 시내에 나가 존경하는 윤석남 선생님과

차와 담소를 나누고 행복한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가족들과 평소보다 늦은 저녁식사를 막 마쳤을 때

전화에서 문자 도착을 알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누굴까 기대하며 전화를 여니 부음이었습니다.

 

나흘 전 아파트 동대표회의에서 만나 대화와

미소를 나눴던 아파트 소장님의 부음.

순식간에 머리가 띵해지며 숨쉬기가 힘들어졌습니다.

막 70세를 넘긴 건강한 분이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실 수 있는가, 왜 그분께 좀 더 잘해드리지

못했던가, 의문과 탄식이 이어졌습니다.

 

조금 지나서야, 댁에 화재가 발생했고 소장님이

불을 끄러 들어갔다가 돌아가셨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갑자기 죽음을 맞은 소장님과,

화재를 당하고 남편이자 아버지인 소장님까지 잃은

가족들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요...

 

바로 몇 시간 전 윤석남 선생님과 만난 자리에서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또래 친구 분들 중엔

이제 어서 죽어야지 하는 분들이 있는데 선생님은

그런 말이 나오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죽게 되면 죽겠지만 죽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지금도

그림 그리는 일이 재미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선생님에 비해 형편없는 성취를 이룬

사람이지만, 죽음에 대해서는 저도 선생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죽음이 찾아오면 큰 불평 없이

따라나서겠지만 ‘어서 죽어야지’ 하는 식의 말은

하지 않을 겁니다. 선생님이 그림 그리기를 재미있어

하시듯, 저는 세상 구경과 글쓰기를 재미있어

하니 하는 데까지 하려는 것이지요.

 

오늘 갑자기 돌아가신 소장님에게서도 ‘어서 죽어야지’

하는 투의 말씀을 듣거나 그런 식의 분위기를 느낀 적은

없습니다. 어쩌면 작은 아파트를 관리하는 데서

재미를 느끼셨을 지도 모릅니다. 그 재미를 비롯해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일을 두고 화재로 인해

갑자기 떠나시게 되셨을 수도 있겠지요.

 

소장님, 박구정 소장님,

갑작스런 죽음 앞에 얼마나 놀라셨는지요?

 

천지신명이시여, 소장님의 영혼을 위로하시고

자유와 평안을 주소서.

유가족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소서.

 

홍옥의 계절에 떠나가신 소장님을 기리며

삼가 영전에 '홍옥' 한 알 바칩니다.

소장님, 그동안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3L6IYI-5aII&feature=youtu.be&ab_channel=JimmyStrain

저도 갑자기 1년 후배와 5년 후배를 잃었습니다. 두 사람 다 아팠었지만 이렇게 쉽게 떠날 줄 몰랐는데 여자 후배는 자신의 모친 제삿날 떠났고 남자 후배는 장남 결혼도 못 시키고 떠났습니다. 이렇게 쉽게 갈 줄 알았음 좀더 잘 할 걸 후회했지만 이미......
올 때는 순서가 있지만 갈 때는 순서가 없다더니 정말 그런가 봅니다. 오늘 대하는 모든 이웃과 마지막이라는생각으로 대해야겠습니다. 삼가 박 소장님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