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dante 2020. 12. 28. 17:32

며칠 전 어머니 댁에서 어머니의 증손자들을 보았습니다.

어린 오빠와 동생이 소파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

인형보다 예쁜데, 어찌된 일인지 그 모습이 제 마음에

슬픔을 일으켰습니다

 

"안녕? 오랜만에 보니 많이 컸네! 아주 소녀가 되었어!"

작은 소녀에게 말하자, 소녀가 어깨를 으쓱 올려

자신을 키우려 애썼습니다. 그 모습이 어여쁜 만큼

슬픔도 커졌습니다.

 

그의 앞에 펼쳐질 긴 시간과, 그 시간 동안

그가 겪을 일들에 대한 쓸데없는 예상이 빚어낸

슬픔이겠지요. 그러니 그 슬픔은 오롯이 저의 것,

내색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와, 어깨를 올리니 키가 더 커지네!" 추임새를 넣으니

소녀가 살짝 웃어주었습니다.  그의 귀여운 발을

어루만지며 그 발이 걷게 될 인생의 여로를 축원했습니다.

 

2020년은 그 어느 해보다 두려움과 슬픔이 만연했던

한 해입니다. 준비되지 않은 죽음이 이토록 많았던

해는 없었습니다. 

 

갑작스런 재앙과 예상치 않았던 사별 앞에서 허둥댄

사람들, 임종은 커녕 장례식 전에 화장을 해야 했던

상주들도 많았습니다.  

 

이 비극적 한 해는 우리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삶은 무엇이며 죽음은 무엇이고,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고,

헤어진다는 것은 무엇이며 슬퍼한다는 것은 무엇이냐고,

삶이 죽음으로 완성된다면 죽음은 무엇으로 완성되느냐고...

 

질문은 사람과 책 사이에 놓인 다리 같은 것.

아래는 에리히 레마르크(Erich Remarque)의 소설 <개선문>에서

주인공 라비크가 자신의 사랑 조앙에게 하는 말입니다.

 

"..(생략) 내가 알고 있는 한 친구는, 아내가 죽은 순간부터 장례가

끝날 때까지 방문을 잠그고 들어앉아 체스 문제를 연구했어.

주위 사람들은 그를 몰인정한 사람이라고 수군거렸지. 그러나 나는

그 친구가 자기 아내를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그 친구는 달리 어떻게 해야 할지 전연 몰랐던 것이지. 그 일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낮이고 밤이고 장기의 문제를 풀었던 것이오."

 

"또 한 사람 아는 이가 있었는데, 그 사람 역시 아내가 죽었소. 그런데

그 친구는 침대에 누워서 이틀간이나 꼬박 잠만 잤지. 그 친구가

그랬다고 해서 죽은 아내의 어머니는 펄펄 뛰며 화를 냈지. 하지만

인간이란 여러 가지 모순된 행동을 하면서 동시에 완전히 절망할 수

있다는 것을 그 어머니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지. 불행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에티켓이 고안되어 있나를 생각하면 참

이상한 느낌이 들어! (하략)"  

 

2020년을 살아내고도 누군가의 삶의 방식에 대해, 누군가의

슬픔의 방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평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주 어리거나 어리석은 사람이겠지요...

누구도 상대방을 다 안다고 말할 수 없댔죠?
왜냐면 자신이 완전히 상대방의 처지에 놓일 수 없으니까. 그러니까 아무리 상식에 어긋나는 행태를 보여도 그 겉모습만 보고서 말하는 것은 절대로 맞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죠. 저도 이 런 경우를 매우 피상적으로 인지하고 있었는데 지인의 전혀 다른 모습을 대하면서 비로소 이해 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로 이제까지 가졌던 이웃들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넓게 대하기로 했습니다, 더 좋은 모습 보다는 더 악한 모습이 언제 튀어 나올지 조바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