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dante 2020. 11. 11. 21:07

초록색 상자에 든 ‘빼빼로’를 먹습니다.

11월 11일을 ‘빼빼로 데이’라고 하는가,

‘젓가락 데이’라고 하는가,

혹은 그냥 11월 11일로만 생각하는가.

이런 사소한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도

사람의 태도가 드러납니다.

 

일반적으로 ‘빼빼로 데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중엔

젊은이가 많고, ‘젓가락 데이’라고 하는 사람들 중엔

나이가 좀 든 사람이 많을 겁니다. '빼빼로 데이'는

오늘 날짜의 1111이 '빼빼로' 과자를 닮았으니

그 과자를 먹는 날로 하자는 데서 유래한 명칭이고,

'젓가락 데이'는 1111이 젓가락을 닮았으니

이 날을 올바른 젓가락질을 홍보하는 날로 하자는

캠페인에서 나온 명칭입니다.

그렇지만 두 명칭 모두에 무심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노인들이 젊은이들보다 무심하겠지요. 

 

법적으로는 만 65세인 사람부터 ‘노인’으로 대우하지만

어떤 사람은 훨씬 젊은 나이에 노인이 됩니다.

국어사전 속 ‘노인’은 ‘나이가 들어 늙은 사람’이지만

어떤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늙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이는 노인이 아닐까요?

 

저는 노인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질문이 없는 사람은 젊어도 노인이고

질문이 있는 사람은 늙어도 노인이 아닙니다.

물론 그 질문의 대상은 주로 자기 자신이겠지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진정으로 살아있는가’

‘나는 나아가고 있는가, 뒷걸음질치고 있는가’

‘어떻게 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또 하나의 기준은 ‘노후’에 대한 태도입니다.

노후를 걱정하는 사람은 나이에 상관없이 노인입니다.

‘노(老)’는 특정한 사건이나 시점이 아니고 과정을 뜻하니,

엄밀히 말하면 ‘노후’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65세가 되어 법적으로 노인이 되었다고 해서

노화가 그치는 게 아니고 노화는 계속 진행됩니다.

그러니 ‘노(老)’자에 무엇의 뒤를 뜻하는 ‘후(後)’자를 붙여

‘노후’라고 부를 수는 없고, '노후'는 곧 죽음을 뜻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보면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노후’라는 말은

다분히 사회적 혹은 사업적 단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늙기 전의 사람들을 위협하여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대신 자본주의라는 거대 기계의 부품으로

살게 하는 단어일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유년과 청년을 거쳐 노년에 이르고

노년엔 앞선 두 시대보다 훨씬 현명하고 유쾌한 삶이

가능합니다. 제대로 늙고 있다면 무엇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 잘 알 테니까요.

 

어느새 ‘빼빼로’ 한 봉을 다 먹었습니다.

‘빼빼로 데이’도 ‘젓가락 데이’도

11월 11일도 끝나갑니다.

11월 12일, 내일은 또 어떤 질문이 찾아올까요?

얼마 전까진 11월11일이 농민의 날이라고 무슨 행사도 치르고 언론에 크게 보도도 했는데 언베부턴가 슬그머니 사라지고 이젠 어니데 농 자도 안 보입니다.
작년 빼빼로데이 때는 이웃의 배려로 나눠 먹으면서 좌자 팔려는 상술이라고 꼬집었었는데 올 핸 구경도 못했답니다. 쉽게 코로나 탓으로 돌리기엔 찝찝합니다. 그만큼 연륜이 더한 탓으로 여기니까요~~~^^
김시인님 관점으론 전 아직 노인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직도 망설이지 않고 질문을 해대니까요...ㅋ 자신 보다 남에게 더하니까 문제지만요~~^ 전 아직 몸도 마음도 생물학적 나이에 비해 10년은 젊게 사는 것 같은데 때론 검연쩍게 주위의 눈을 의식해 움츠려듭니다.말씀대로 노후는 없다니 그냥 젋게젊게 살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