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서

dante 2011. 11. 30. 12:57

11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를 바라보다가 '살아가는 일'을 생각합니다.

삶은 어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나날의 기록일지 모릅니다. 그 일은 자기 밖에서 일어날 때도 있고 자기 안의 일일 때도 있습니다.

 

지난 달에 나온 제 번역서 <필리파 페리 박사의 심리치료극장>은 자기도 모르게 절도를 하는 변호사가 심리상담가를 찾아가 상담받는 과정을 만화 형식으로 보여줍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때로는 변호사의 입장에서, 때로는 상담가의 입장에서 자신을 관찰하게 됩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일'이 우리를 보다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첫걸음이라면 이 책을 읽고(보고) 자신을 바라보게 되는 독자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책 말미에 실린 '역자 후기'를 옮겨둡니다.

  

 

누군가의 행동을 보고 ‘저 사람 왜 저러지? 왜 저런 짓을 하는 거야?’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폭력적인 사람, 거짓말하는 사람, 훔치는 사람... 사랑이 넘치는 사람, 남에게 칭찬받을 일만 골라 하는 사람... 사람의 종류는 얼굴의 수만큼 많고 그들이 하는 행동도 그만큼 다채롭습니다.

 

정보와 지식의 홍수 속에 상식이 사라지고, 집 안팎에서의 교육이 ‘사람의 도리’보다 ‘일등과 성공’을 지향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눈에 띄게 많아졌습니다. 2, 30년 전만 해도 숨어있는 학문이던 심리학이 갑작스럽게 각광을 받게 된 것은 바로 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의 급격한 증가 때문일 겁니다.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지그문트 프로이트나 스위스의 심리학자이며 정신과 의사인 칼 융이 꿈이나 무의식에 대해 쓴 책에 빠져드는 사람들이 많은데, 재미있는 건 심리학에 관련된 책을 읽거나 심리학 공부를 하는 이들이 자주 범하는 오류입니다. 자신의 심리학 지식으로 타인을 재단하고 분석하는 거지요. 제가 아는 이 중에도 프로이트의 사도라 할 만한 사람이 있습니다. 사소한 부부싸움 중에 ‘리비도’와 ‘콤플렉스’를 들먹이며 배우자를 ‘분석’하여 싸움을 키우곤 합니다.

 

좀 더 생각이 깊은 사람은 자신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나는 왜 그때 그렇게 행동했을까?’ ‘그런 짓은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는 대신 이렇게 했어야 하는데 왜 그런 상황에선 늘 그렇게 행동할까?’ 자신이 하는 말과 행동 중에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많아지면 어떤 이들은 정신과를 찾고 어떤 이는 상담실을 찾습니다. 자신으로 하여금 그렇게 행동 --말도 넓은 의미의 행동에 포함됩니다--하게 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입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으면서도 정신과나 상담실 안에서 어떤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책은 그 모든 사람들을 위한 ‘친절한’ 안내서입니다. 글만 있으면 이해하기 어려울 심리상태를 그림과 해설을 

곁들여 설명해주니 친절합니다. 게다가 상담가와 내담자의 대화뿐만 아니라 각자의 머릿속에서 전개되는 생각까지 보여주어 두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기 쉽게 해줍니다.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책은 한 번 이상 읽는 것이 좋습니다. 처음엔 그냥 ‘책’으로 읽고, 다음엔 등장인물에 자신을 투영시키며 읽어봅니다. 법을 집행하는 변호사이면서도 자신의 도벽은 어쩌지 못하는 제임스의 고민과 그가 

살아온 역사를 읽다 보면 그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을 제임스의 위치에 놓고 자신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자신이 무심코 했던 행동들, 특히 하고 나서 후회했던 행동들의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책에서 정보나 지식을 얻는 것은 최소한입니다. 좋은 책은 읽는 이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도와줍니다. 

이 책은 돌아보는 방법까지 알려주는 친절한 책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모르면서 앞으로만 내닫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나는 누구인가’ 알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 덕에 정신과와 상담실을 찾는 사람의 수가 줄었다는 불평 아닌 불평을 듣고 싶습니다.

 

 

 

 

 

 

 

 

 
 
 

번역서

dante 2010. 7. 30. 08:52

제가 번역한 책들 중에서도 <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을 특별히 좋아합니다.

무엇보다 표지를 이루고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이 너무도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제목과 같은 제목의 그림입니다.

 

출판사에서 표지에 정성을 들인 덕에 책을 읽기 전에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런데 언젠가 시립도서관에서 표지가 벗겨진 이 책을 만났습니다.

보관의 편의를 위해 하드커버로 된 책의 겉표지는 벗겨낸다고 했습니다. 기가 막혔습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책을 다루는 곳에서 이렇게 야만적인 행위가 일어나고 있다니...

 

그때 생각했습니다. 도서관에서 빌려 보는 것도 좋지만 좋은 책은 반드시

사 보아야겠구나 하고. 지금 제 작은 방이 이렇게 엉망이 된 건 그때의 깨달음 탓이

큽니다. 

 

요즘 부쩍 젊은 어머니들을 자주 보았습니다. 자신들은 책을 읽지도 않으면서

자녀들은 여름방학 동안 적어도 몇 권의 책을 읽히겠다고 결의가 대단했습니다. 

즐거운 책 읽기를 지겨운 의무로 만들려는 어머니들, 책을 모욕하는 또 다른 야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어머니의 요구와 상관 없이 좋은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지식을 늘리고 통찰력을 키워, 어머니든 누구든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할 때,

낮은 목소리로 예의바르게, 그러나 단호하게 그 요구를 거부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은 그런 학생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줄 겁니다.

 

십오 세기의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이십육 세기의 소년 마리오를 만나 펼치는

흥미진진한 상상의 세계가, 숨 막히는 현실로부터의 자유를 느끼게 해줄 겁니다.      

 
 
 

번역서

dante 2010. 5. 31. 23:22

출판사에서 반가운 전화가 왔습니다. 작년 11월에 초판 1쇄를 찍은 '바람을 길들인 풍차소년'의 4쇄를

찍게 되었다고 합니다. 번역료를 인세로 받지 않고 한 번에 받는 원고료로 받았으니, 책이 잘 팔린다고 해서 제게 이익이 되는 건 아니지만, 좋은 책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니 기쁩니다.

 

이 책은 이제 막 이십 대에 들어선 아프리카 말라위의 젊은이 윌리엄 캄쾀바의 자서전이며, 원제는 'The Boy Who Harnessed the Wind'입니다. 어른들의 욕망이 시키는 대로 동분서주하는 우리나라의 십대들, 소위 스펙을 쌓느라 자신을 돌아보기 힘든 우리의 이십대들이 윌리엄처럼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의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건 만남일 겁니다. 만남은 사람을 바꾸고 사람의 행로를 바꿔 세상까지도 바꿉니다. 이 책을 만나는 사람들이 책의 주인공에게서 숨겨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오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6월, 초록이 무럭무럭 도시의 회색을 지우는 6월이야말로 세상을 바꾸기에 더없이 좋은 때입니다. 1987년 6월 당시의 젊은이들은 전국적인 시위를 주도하여 나라의 민주화를 이루었습니다. 2010년 6월 우리의 이십대는 자신들의 삶, 인간다운 삶을 찾기 위해 나서지 않으면 안됩니다. 스펙을 쌓지 않으면 윤택한 삶을 살 수 없다, 네 친구가 바로 네 적이다, 이렇게 속삭이며 젊음을 길들이는 신자유주의적 목소리에 귀 막고, 무엇이 옳은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는가, 생각해야 합니다. 

 

내일 당장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투표장에 가는 것입니다. 투표하러 갈 시간에 영어 단어를 외우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 날씨가 좋으니 들로 산으로 나가겠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다수인 한, 청년의 삶은 기득권을 가진 세대에게 아양거리는 주변인의 삶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부디 내일 전국의 모든 청년들이 정치적 냉소주의를 버리고 투표장에 나가 자신들의 삶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기를 기원합니다. 2010년 6월 2일이 이십대가 주도한 

'무혈혁명'의 날로 기록되길 바랍니다.

 

아래의 글은 '바람을 길들인 풍차 소년'의 말미에 수록된 '옮긴 이의 말'입니다.

 

'열네 살 소년이 할 수 있는 일'

 

가난 때문에 학교를 그만둔 열네 살 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슬픔에 빠져 멍하니 앉아 있기? 하기 싫은 공부를 안 해도 되니 잘 되었다고 즐겁게 놀기? 세계에서 가난한 나라로 손꼽히는 아프리카 말라위의 소년 윌리엄 캄쾀바는 열네 살에 세상을 바꿨습니다. 세상을 바꿔야지, 하고 마음먹고 바꾼 것이 아니라 궁금한 것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윌리엄은 고픈 배를 동여매고 농사일을 했습니다. 큰 포부를 품고 중등학교에 들어갔지만 수업료를 내지 못해 곧 

쫓겨났습니다. 새벽부터 옥수수 밭에서 일을 하면서도 언젠가는 학교로 돌아가리라 마음먹고 자신이 졸업한 

초등학교 도서관을 드나들었습니다. 그곳에서 과학 책을 읽고 풍차로 전기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돈이 없어 전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가족을 위해 집에 전기를 놓기로 결심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장비도 돈도 없는 상황에서는 전기를 만들겠다는 생각조차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윌리엄은 주위에 있는 고물 자전거와 남들이 버린 물건들을 이용했습니다. 쓰레기장을 뒤지다가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아도 결코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풍차를 완성해 가족과 이웃에게 전기를 공급하게 되었고, 세계적으로 유명해져 

현재는 아프리카 53개국의 뛰어난 젊은이들과 함께 차세대 지도자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어느 곳, 어느 부모에게서 태어나든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일보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다른 곳에 태어났다면, 부모님이 달랐다면 내 인생이 훨씬 살 만한 것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윌리엄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면 자신은 물론 가족과 이웃사람들의 삶, 나아가 세상까지 바꿀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이 책을 읽는 사람 모두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기를 바랍니다. 부유하든 가난하든, 좋은 부모를 만났든 그렇지 않든 자신의 삶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임을 확인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윌리엄과 함께,

3초에 1명씩 굶어죽는 지구촌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바꾸는 데 다 같이 힘을 모았으면 좋겠습니다. 

자, 우리 모두 파이팅!

 

 

 

"만남은 교육에 선행한다."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세상의 변화는 자기 자신의 변화를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바라보는 시야로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