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칼럼

dante 2013. 2. 26. 11:33

요즘 자꾸 네 생각이 나. ‘성적은 땅값 순’이라는 기사를 보았을 때도, 현직 법관 중에 외국어고등학교 출신이 급증한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도. 낙엽 떨어지는 송죽길에서 우연히 만났던 게 벌써 몇 해 전이지? 외국어고등학교와 과학고등학교에 진학한 쌍둥이 아들들의 안부를 물었더니 풀죽은 목소리로 대답했지? 괜히 보냈다고, 거기만 가면 외국어 전문가와 과학자가 될 줄 알았는데, 그냥 대학가는 공부만 한다고, 돈이 없어 아이들이 상위그룹 스터디그룹에 끼지 못한다고.

작년 초던가, 그 길에서 또 만난 게? 쌍둥이들은 대학에 다닌다고 했지? 하나는 군대에 가고 하나는 휴학 중이라고, 고민을 많이 하는데 도와줄 방법이 없다고 서늘하게 웃더니 서둘러 가던 길을 갔지. 성당에서 주관하는 아기 돌보는 곳에 자원봉사를 하러 간다고 했지.

영란아,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시를 읽던 고등학교 땐 그래도 삶이 평등해보였어. 그때도 학교는 일류, 이류, 삼류로 나뉘고 돈 있는 소수는 과외를 했지만 학원은 재수생만 가는 곳이었고, 우린 그런대로 자유로웠어. 가끔은 은행잎이 폭신한 운동장에 앉아 수업시작 종소리마저 놓치곤 했지. 얼굴을 붉히며 교실 뒷문으로 들어서면 선생님이 “이 자식들!” 하며 눈을 부라리셨지만 무서운 엄포 속에 숨은 사랑을 아는지라 겁나지 않았어.

공부 잘하던 네가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대학에 가지 못할 때, 참 마음이 아팠지. 포기하지 말라고 너를 닦달했지만 그땐 몰랐어, 가난을 대물림 받을 땐 패배의식도 물려받기 쉽다는 걸. 네 아들들이 공부를 잘해 외고로 과고로 갈 땐 내 일처럼 기뻤지. 그 아이들이 너를 옭아매고 있던 무거운 사슬을 끊어주리라 생각했거든. 우연히 잠깐 만난 자리에서 네가 외고의 운영에 대해 불평할 때도 난 별로 동의하지 않았어. 자랑하고픈 아들을 둔 엄마의 엄살일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요즘 언론에 오르내리는 외고 얘기를 들으니 이제야 그때 네 맘을 알 것 같아. 영란아, 미안해.

마침 네가 사는 서대문구 출신 국회의원 정두언 씨가 지난주에 특수목적고인 외고를 특성화고로 바꾸자고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내놓았대. 교육과학기술부 일각에선 외고를 국제고로 전환한다고 하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일반고로 전환해야 한다고 하고, 청와대와 전국 시도교육감들은 외고를 그대로 두고 문제점만 개선해야 한다고 한대.

최근 새로 임용되는 판사들 중에 외고 출신들이 급격히 늘고 있대. 2000년 판사 임용자 중에 9.2퍼센트가 특목고와 강남 3구 출신이었는데 그 비율이 계속 높아져서 올해는 37퍼센트나 되었대. 현직 법관 중엔 대원외고 출신이 58명으로 제일 많고, 경기고와 광주일고가 각각 38명과 32명인데, 앞으론 격차가 더 심해질 거래. 외국어 전문가를 키워낸다는 특수 목적을 가지고 출발한 외고가 판사를 키우는 학교로 변질되었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아.

조선일보 기사를 보니 대원외고는 올해 유학반 94명 전원이 미국 명문대에 합격했대. 대원외고 신입생의 절반(49.8%)이 소위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 출신이고, 강남3구를 뺀 서울지역이 30.4%, 지방은 19.8%이라니 ‘성적은 땅값 순’이라는 말이 맞긴 맞나봐. 대원외고 국제반 3학년생 99명 가운데 유학이나 연수 경험이 없는 학생은 15명뿐이라니 미국엘 갔다 와야 합격할 수 있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닌가 봐. 그러니 유학도 연수도 못 보낸 아들이 외고에 다닐 때 네가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을까. 대원외고엔 최근 5년간 수능에서 언어, 수리, 외국어 등 3개 영역에서 모두 1등급을 받은 학생이 887명이나 되었대. 그런 학생을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학교가 1,357개교나 되었다니 엄청난 차이지.

엊그제 서울에서 일반고 교사로 평생을 보내고 있는 친구를 만났어. 우수한 아이들이 외고, 과고, 자립형 사립고, 비평준화 지역 고교로 빠져나간 학교에서, ‘2x+3x=5x’도 이해 못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괴롭다고 했어. 그나마 성적이 좋은 아이들은 거의 다 경쟁에서 이기는데 혈안이 된 이기적인 아이들이라고 하더군. 그 친군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과 못 하는 아이들을 한데 모아 가르쳐야 교육이라고 했어. 못하는 아이들은 잘하는 아이들에게서 자극을 받고, 잘하는 아이들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며 세상엔 자기보다 머리나 운이 나쁜 사람도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는 거야.

미국 명문대학을 가는 것도 좋고 판사가 되는 것도 좋지만, 가장 중요한 건 어떤 인간이 되는가이겠지. 학력 높고 경제력 있는 부모에게서 태어나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유학이나 연수를 다녀오고, 외고에 진학해서 수월성을 북돋는 교육을 받고 명문대학을 나와 판사가 된 사람이, 젖은 땅은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사람이, 자신의 삶과 전혀 다른 삶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을까? 사회의 부조리를 피부로 느끼고 그걸 개선하기 위해 진력할 수 있을까?

머리는 있어도 가슴은 없는 법조인들이 양산될지도 몰라. 8세 어린이를 잔인하게 성폭행하고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게 한 범죄자에게 12년 형을 내리고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법관과 검사 같은 사람들, 용산 철거민 참사에서 아버지를 잃은 사람에게 오히려 책임을 물어 6년형을 선고한 판사 같은 법조인들이 자꾸 많아질지 몰라. 국제적인 경쟁력을 키워 나라와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라고 만든 특수목적고가 이기적 삶의 향유를 위한 발판이 된다면, 과연 그런 학교가 존재해야 할까?

난 외고는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해. 1992년 외국어고등학교들이 첫 신입생을 뽑을 때 가졌던 특수 목적 -외국어 실력으로 무장한 글로벌 시대의 주역 배출-이 사라졌기 때문이야.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엔 외국어에 노출된 학생이 많지 않았어.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전혀 달라. 유치원과 초등학교부터 영어를 배우니 외국어를 잘하는 학생을 키우기 위해 따로 전문고교를 운영할 필요가 없어.

꼭 어학 전문고교를 운영해야 한다면 영어 빼고 소수의 학생만을 대상으로 제2외국어 전문학교를 만들거나, 국어 혹은 한국학 전문고교를 만드는 게 좋다고 생각해. 요즘 우리말과 글을 제대로 구사하고, 나라의 역사와 전통을 아는 학생들이 갈수록 줄고 있으니 말이야. 세계화도 좋지만 제 나라가 없으면 세계화할 나라 자체가 없는 것이니 제 나라와 나랏말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영란아, 쌍둥이들은 어떻게 지내니? 혹시 벌써 판사가 된 건 아니니? 네 아들 같은 사람이 판사가 되면 정말 좋을 텐데. 넌 요즘도 아기들을 돌보고 있니? 늘 그랬듯이 어려운 상황에서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려 애쓰고 있을 것 같아. 나가봐야겠어. 황혼녘 송죽길에서 아기 돌보고 돌아오는 너를 만나고 싶어. 또 한 번 우연히 만나 단풍든 홍옥 한 봉지 사주고 싶어.

 
 
 

자유칼럼

dante 2013. 2. 23. 12:31

오랜 친구들과 송년모임을 합니다. 나이도 다르고 살림규모도 다르고 종교도 다르고 지지하는 정당도 다릅니다. 지금은 다 자란 아이들이 중학생일 때 어머니 모임에서 만난 친구들은 어른 되어 친해진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예의를 갖추고 서로의 다름을 부각시키는 종교나 정치 얘긴 하지 않습니다. 무심코 그런 얘기를 했다가 서먹했던 경험이 있어 더욱 조심하는 중이지만 오늘만은 다릅니다. 저의 왼발 때문입니다. 아니 오세훈 시장 덕이라고 하는 게 옳을 겁니다.

날짜까지 바꿔가며 참석을 종용하니 안 갈 수가 없어 왼발을 절며 가니 “왜 그랬어요?” “어디서 그랬어요?” 동정어린 인사가 이어집니다. 하는 수 없이 엉망으로 놓인 보도블록 위에서 넘어져 발의 인대가 늘어났다고 이실직고합니다. “서울시 때문이에요. 사람들이 다니는 길을 다닐 만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일은 일한 티가 안 나니까 안하고, 티 나는 일만 하려고 하니까!” 한 친구가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모두 한 목소리로 제게 서울시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하라며 서울시에 대한 불만을 쏟아냅니다.

“저 광화문 망쳐놓은 것 좀 봐요! 궁전에 계셔야 할 왕을 길바닥에 앉혀 놓질 않나, 칼 찬 장군이 대왕에게 등을 보이고 서 있게 하지를 않나.” “어디 스케이트 타고 스노우보드 탈 곳이 없어서 차도 한 복판에다 얼음판을 만든대요?” “스노우보드대회 끝나자마자 ‘서울 빛 축제’라나 뭐라나 한다는데 오 시장이 유독 빛과 분수에 집착하는 이유가 뭐에요?”

어떤 친구는 청계천식으로 복원된 홍제천 옆 산기슭의 전광판(시티비전) 때문에 홍제천변을 걷기가 싫어졌다고 합니다. 풍광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전광판을 2억 7천만 원이나 들여 달아둔 이유가 무엇일까 볼멘소리를 하는데, 동네에 있는 작은 다리에 수십 개의 막대 형광등이 설치되어 밤 풍경이 어수선해졌다고 다른 친구가 툴툴거립니다.

친구들의 얘기를 듣다보니 웃음이 나옵니다. 오세훈 시장의 블로그에서 “불치이치(不治而治) 무위지치(無爲之治), 일하지 않는 것처럼 조용히 일하는 것, 그것이 훌륭한 행정이다.”라는 말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오 시장이 “조용히 일하”지 못하는 자신을 경계하기 위해 이 말을 블로그 문패로 삼은 걸까요? 아니면 무엇이 “훌륭한 행정”인지는 알지만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오 시장은 지난 10일 ‘광화문광장의 스노우보드와 서울브랜드마케팅’이라는 제목의 긴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려, 광화문광장에서 스노우보드월드컵 대회를 개최하기로 한 것은 이 대회를 도심 한복판에서 개최한 유례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유례가 없는 일은 ‘뉴스’가 되는 법”이라 서울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했습니다. ‘유례없는 일’을 해서 ‘뉴스’가 되면 좋은 건지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오 시장은 서울이 글로벌경쟁력을 가지려면 ‘서울’이라는 브랜드를 전 세계에 널리 알려야 하기 때문에, 2007년을 ‘서울 브랜드마케팅의 원년’으로 선포하고 그때부터 다양한 홍보를 해왔다고 합니다. 해외에서 CF를 방송하고, 뉴욕 타임스퀘어에 광고를 내걸고, 파리와 도쿄 거리를 다니는 버스에 서울 홍보물을 입혔다고 합니다. 자신이 서울시 브랜드마케팅에 “미쳐” 노력한 덕에 2006년 44위이던 서울의 도시브랜드가 2008년에 33위로 뛰어올랐다고 합니다. 맨체스터유나이티드 축구팬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2008년 14%였던 서울에 대한 인지도가 올해 38%까지 상승한 것도 자신의 브랜드마케팅 덕이라니, 박지성 선수가 들으면 뭐라고 할지 궁금합니다.

오 시장은 이런 성과들이 서울의 관광객 유치로 이어져 올해 처음으로 관광수지 흑자를 기록했다며, 자신이 2006년 7월 시장으로 취임하기 전 602만 명이던 관광객이 올해는 780만 명 정도로 증가할 거라고 했습니다. 세간에서는 환율 특수 때문이라고 하지만 자신은 서울시의 투자와 홍보마케팅 덕분이라고 확신한다며, 자신이 6개월 앞으로 다가온 시장 선거에 재출마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모든 일이 표를 의식한 행보로 비판을 받는다고, “그래서 지금은 재선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의 답답한 심정”이라고 했습니다.

오 시장이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난 사흘 후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이 자신의 블로그에 반박문 비슷한 것을 올렸습니다. 두 사람이 시장 자리를 두고 싸울 후보자들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원 의원의 글을 읽어봅니다. “스노우보드대회는 오세훈 시장의 전시행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서울을 세계에 알리겠다’는 걸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그런데 왜 개최장소가 광화문광장이어야 합니까..도심 한복판에 가설무대가 설치되고 철거되는 동안 서울시민은 극심한 교통 불편을 감수해야 합니다..광장의 주인은 시민입니다..그러나 지금의 광화문광장은 서울시가 철저히 통제합니다..서울시가 주인 노릇을 합니다..그러다보니 광화문광장은 서울시 홍보만을 위한 가설무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원 의원이 왜 마침표를 두 개씩 찍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원 의원의 글엔 주변에서 들리는 얘기가 많이 담겨 있습니다. 오 시장은 역대 어느 시장보다 많은 홍보예산을 썼지만 홍보비 많이 쓰고, 요란한 행사 많이 연다고 관광객이 몰려오는 건 아니다, 브랜드마케팅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서울시 살림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서울시장이 디자인과 마케팅에 빠져 민생을 소홀히 하면 서울시민의 삶은 날로 어려워진다, 등의 주장입니다.

원 의원이 열거한 통계를 보면 서울시민의 삶이 어려워지는 건 분명합니다. “서울의 실업률은 4.8%로 전국에서 가장 높습니다..출산율은 1.06명으로 두 번째로 낮습니다..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 41년을 저축해야 서울에서 집장만이 가능합니다..3년 전에 비해 평균 10.7년이 늘어난 것입니다..소규모 점포는 종업원 인건비도 못 낼 정도로 어렵습니다..재래시장에 손님 발길이 끊긴지도 오랩니다..세계적 경제위기 한파가 도시 서민의 삶을 더욱 옥죄고 있습니다..”

원 의원은 지금 서울이 당면한 최대의 문제는 시장이 디자인과 마케팅에 ‘미쳐’ 있는 것이라며, 서울시 디자인위원회는 올 한해에만 회의를 76번이나 했지만 민원조정위원회나 분쟁조정위원회는 3년간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 시장은 그동안 갈등의 현장을 회피해왔습니다..이명박 시장시절 지정된 뉴타운은 거의 진척이 없습니다..반면 본인이 발표한 개발지역은 무리하게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그 결과가 용산참사로 이어졌습니다..용산참사가 벌어진지 1년이 다 되도록..오 시장은 장례식도 치루지 못한 유족들과 어떤 합의도 이뤄내지 못했습니다..왜 용산참사 현장에 가서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냐고 비판했더니..오 시장은 ‘참사 당일 현장에 갔다’며 증거사진도 있다고 되받아 치더군요..‘문제해결을 위해 직접 나서지 않았다’는 비판에 동문서답을 하고 있습니다..용산참사 한 건을 두고 오 시장을 싸잡아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제가 국회의원으로 있는 양천구의 쓰레기 소각장 분쟁, 지하상가 운영권 분쟁 등등..오 시장은 갈등이 있는 곳은 철저히 회피하는 시정을 해왔습니다..”

원 의원은 이명박 시장 재임시절 줄었던 서울시의 부채가 오 시장 재임기간 중 2조4천억 원으로 두 배 이상 늘었는데도 연말과 새해 초에 1조6천억 원의 채권을 더 발행하려 한다며, 이러면서도 4억 원 넘는 돈을 들여 만든 광화문광장의 플라워카펫을 두 달 만에 뒤집고 17억 원이 넘는 돈을 들여 스노우보드 점프대를 만드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합니다.

지금 원 의원의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 모두가 내년 선거에서 원 후보에게 표를 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저 분이 시장을 한 번 더 하면 우리 서울시는 시민의 삶과 거꾸로 가는 거대한 이벤트 공연장이 될 것 같아 참으로 걱정”이라고 생각하는 시민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6개월은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오 시장이 남은 임기 동안 자신의 노력과 성취를 몰라주는 사람들에 대해 서운해 하는 대신, 그들의 비난 속에서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들을 끄집어내기 바랍니다. 두 발로 걸어 다니다가 한 발을 절룩이게 되니 평소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입니다. 서민이 아닌 사람이 서민의 삶을 알고 철거민이 아닌 사람이 철거민의 상황을 알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니 시장 재선은 물론 언젠가 대권에 도전할 꿈까지 꾸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일깨워주는 이들에게 오히려 감사하며 경청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제 친구들과 제가 오랜만에 다름을 극복하고 완벽한 합의에 이룰 수 있게 해준 오 시장에게 감사합니다.

*올 일 년 동안 ‘동행’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리며, 새해에도 많은 기쁨과 보람 거두시길 기원합니다.

어찌다 또 다치셨나요?
허약하신 체질에 부상까지 당하셨으니...
시정이든 국정이든 사람 중심이어야 하는데 여기서 비켜서면 고장이 나고 마니까요.
오늘, 향린교회에서 모처럼 고국에 나오신 아연님을 뵐 수 있어서 무척 좋았습니다. 아들 문제로 아연님을 소개시켜 주신 김 시인님도 함께라면 좋았겠다는 욕심이 들더군요.
오늘,분단조국에 대한 가장 예의바른 사람들이 전국에서 모여 동강난 허리를 이어보자고 한 해를 결산하는 총회를 했더랬습니다. 해마다 가슴 아픈 것은 월 40만원 활동비도 밀려서 받는 헌신적인 실무자들로 꾸리는데도 적자는 2천만원을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취직도 안되는 대학인데도 어렵게 모은 쌈지돈을 쾌척하는데 세계 유일의 분단국 대한민국의 통일을 위하는 일엔 왜 이리도 냉담한지 고개를 숙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분수를 알아얀디 아직도 꿈을 깨지 못하는 오세훈씨 같은 분이 계시다는게 우리의 불행이고 서울의 아픔인 것 같습니다. 지난 대선을 보며 서울시민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다음 시장선거도 걱정이 됩니다!
선생님,

심려를 끼쳐 송구하오나 다치지 않았습니다.^^
옛날에 쓴 글이 다시 올려져 오해하시게 했네요.
죄송합니다.
환절기... 건강하시길 빕니다.

 
 
 

자유칼럼

dante 2010. 9. 24. 08:32

   
엊그제 오랜만에 시내에 나갔다가 혜원씨가 이곳을 아주 떠났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신문에도 당신의 부음이 실렸다는데, 하필이면 내가 신문을 아예 펼치지도 않은 몇 날 중 하루였나 봅니다.

가을 햇살 양양한 거리에서 가슴을 후려치는 벼락을 맞았습니다. 가슴이 순간에 굳어 숨쉬기도 힘들었습니다. 왼쪽 가슴에 주먹질을 하며 당신을 생각했습니다.

당신을 만난 건 내가 미국대사관 문화과에서 근무할 때였습니다. 당신은 그때 예술(가)을 후원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교보생명이라는 큰 회사의 여주인답지 않게 으쓱대지도 않고 억지로 우아하지도 않았습니다.

미국 외교관들이 당신을 만나면 만날수록 좋아했던 건 당연한 일입니다.
호기심과 장난기로 반짝이던 당신의 두 눈, 위트와 유머로 웃음을 자아내던
말솜씨도 생각납니다.

일로만 가끔 만나던 당신과 내가 개인적 접촉을 하게 된 건 하필 아름다운 저 세상을 뜻하는 <Timbuktu>라는 제목의 중편 소설 덕이었습니다. 우연히 둘이 다 좋아하던 미국 작가 폴 오스터 (Paul Auster)에 대해 얘기하다가, 내가 그의 신작 <Timbuktu>를 언급하자, 당신이 읽어보지 못했다며 빌려 달라고 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당신이 빌려간 책을 돌려주지 않기에 돌려달라고 전화를 했더니, 당신은 재미있게 읽었다는 메모와 함께 우리나라 작가가 쓴 장편소설을 이자삼아 함께 보내주었습니다. 오래지 않아 나는 대사관을 떠났고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3년 겨울인가 집에 들어 앉아 있던 내게 당신이 전화를 걸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당신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성매매 여성들을 돕기 위한 재단을 만들고 싶다"고 했습니다. 오랫동안 시아버님을 모시고 살다가 아버님이 별세하셨다고, 그동안 아버님을 위해 최선을 했으니 이젠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남편의 격려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당신은 내게 재단의 이사가 되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 분야 일도 모르고 내가 할 일이 따로 있어 재단 일을 도울 수 없다고 말했지만, 당신은 이사로 이름만이라도 올려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당신의 열정에 감복하여 이름을 빌려주고 말았습니다.

당신은 이름만 빌려준 나와는 참으로 달랐습니다. 하루 온종일 성매매 여성들을 어떻게 도울까만 생각했습니다. 마침내 2004년 4월 봄빛여성재단 창립 발기인회와 이사회가 개최되었습니다. 그 때에야 당신이 나와 같은 대학의 같은 과를 졸업한 2년 후배임을 알았습니다. 당신이 참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웠습니다.

재단은 당신의 남편, 교보생명보험주식회사 신창재 회장이 출연한 5억 원 (기본재산 3억 원)으로, 성매매 여성들이 그 일을 벗어나게 하고, 그들을 위해 일하는 활동가들에게 재충전할 기회를 주며, 교육을 받고 싶어하는 성매매 여성과 활동가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등 갖가지 활동을 펼쳤습니다.

당신은 진정한 크리스천답게 당신이 하는 일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런 당신이 시간이 흐를수록 존경스러웠습니다. 당신은 온 몸과 마음을 재단 일에 쏟았습니다. 늘 과로하는 당신이 걱정스러웠지만 나는 당신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2008년 3월 재단으로부터 "그동안 감사했다"는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그 메일을 받으니 마음이 홀가분했습니다. 그동안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면서 '이사'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게 남의 물건을 갖고 있는 것처럼 불편했으니까요. 그러면서 오랜만에 당신을 보겠구나 생각했습니다. 돈이 많거나 힘이 있는 사람에게 연락하기를 꺼리는 성격 탓에 먼저 연락하진 못하고 당신이 연락해주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선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이제 와 돌이켜보니 그때 이미 당신의 몸이 당신의 열정과 헌신을 견디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지칠 줄 모르는 정신력이야말로 때로는 육신의 가장 큰 적이니 말입니다. 누구보다 감수성이 풍부하던 당신이 성매매 여성들의 현실을 목도하며 하루라도 편한 잠을 잘 수 있었을까요.

재단을 시작하기 전 당신이 말했습니다. 기나긴 기도의 응답으로 세 차례나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었으며, 그분이 꼭 성매매 여성들을 위한 일을 하라고 하셨다고, 그러나 그 일을 해낼 수 있을지 겁이 난다고.

존경하고 사랑하는 혜원씨,

당신의 하나님이 당신을 불러 올린 건 당신이 그 일을 해냈기 때문일 겁니다. 아름다운 그곳 "Timbuktu"에서 부디 마음 편히 밀린 휴식 취하기를 기원합니다. 당신을 언제까지나 기억하겠습니다.

선생님, 얼마 전 자유칼럼그룹 쪽으로 연락드렸던 The Ewha 담당직원입니다.
좋은 글 게재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많은 분들이 故 정혜원 님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newsletter.ewha.ac.kr에서 글이 실린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 자주 이 공간에 들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