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dante 2020. 12. 3. 08:13

오늘 전국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실시됩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대학진학률이 높은 나라인 만큼

수능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대단합니다.

 

그러나 21세기의 대학은 20세기의 대학과 다릅니다.

20세기에는 대학 교육이 곧 사회에서의 성취,

즉 교양, 취업, 사회적 인정 등으로 이어졌지만

이제는 대학을 졸업한 무교양자와 실업자가 차고 넘칩니다.

 

인터넷의 발달로, 굳이 대학을 가지 않아도 대학을

나온 사람 못지않은 지식을 쌓을 수 있고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이 대학 졸업자보다 

큰 성취를 이루는 일도 많습니다.

 

어쩌면 지금 대학에 가는 것은 두려움 때문일지

모릅니다.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는 부모들,

즉 20세기 사람들의 두려움이지요. 부모들은

자녀들에 대해 잘 모르지만 알려 하지 않고

걱정만 합니다.

 

부모와 상관없이 젊은이들 스스로

자신이 왜 대학에 가려하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대학에 관해서도 그렇지만 부모들을 비롯한

어른들은 젊은이들에게 충고하기를 좋아합니다.

자신이 살아온 시대와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아갈 사람들에게

왜 자신의 경험과 지식이 여전히 유효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제가 피곤할 때 읽는 책 <호밀밭의 파수꾼>에는

바로 그런 어른들이 나옵니다. 하 하! 

 

 

 

P. 54-55. 16세 주인공 홀든 콜필드는 뉴욕으로 가는 밤기차에서 자신이 막

퇴학당한 기숙고등학교 학생 어네스트 모로우의 어머니를 만납니다.

모로우란 놈은 샤워한 후에 젖은 수건으로 남들의 엉덩이를 갈겨대며

복도를 활보하는  형편없는 놈인데, 녀석의 어머니는 아들과 달리

매우 매력적이고 교양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자기 아들이

‘너무 예민해서(very sensitive)’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할까봐

걱정이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홀든이 속으로 생각합니다.

 

Sensitive. That killed me. That guy Morrow was about as sensitive as a goddam toilet seat. I gave her a good look. She didn’t look like any dope to me. She looked like she might have a pretty damn good idea what a bastard she was the mother of. But you can’t always tell—with somebody’s mother, I mean. Mothers are all slightly insane. T

 

예민하다고? 죽여주는군. 그 모로우란 놈이 예민하다면 아무나 앉는 변기만큼 예민하겠지.

모로우의 어머니를 찬찬히 살펴보았지만 바보 같지는 않았다. 자기 애가 얼마나 형편없는지

잘 알고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엄마들은 참 알 수가 없다. 다들 살짝 미쳐 있으니까.

 

P. 56. You take somebody’s mother, all they want to hear is what a hot-shot their son is.

엄마들은 누구나 자기 아들이 얼마나 대단한지만 듣고 싶어한다. 

 

P. 169. But you don’t have to be a bad guy to depress somebody—you can be a good guy and do it. All you have to do to depress somebody is give them a lot of phony advice.

나쁜 사람만 사람을 우울하게 하는 게 아니야. 좋은 사람도 그럴 수 있어.

말도 안 되는 충고를 늘어놓기만 하면 사람을 우울하게 할 수 있으니까.

 

 
 
 

동행

dante 2020. 11. 30. 10:51

지난 27일에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의 '내 인생의 책 -- 맹자집주'를

소개했는데, 오늘 또 한 권 위 대사의 '내 인생의 책'을 소개합니다.

바로 <죄와 벌>입니다. 지난 번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그의 글에서

만난 한 줄 때문입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의

이름 중 '라스콜'이 '이견'을 뜻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글을

읽기 전까지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십대의 어느 날 이 소설을 만난 후 욕심 많은 사람들을 볼 때면

저들이 살아 있는 게 이 세상에 어떤 도움이 되는가, 저들이 죽어

없어지는 게 세상에 더 좋은 일이 아닌가 하는 식의

라스콜리니코프적 사고에 빠지곤 했습니다. 

 

위 대사는 러시아에 근무할 때 도스토옙스키가 태어난 곳과 죽은 곳을

가보았다고 합니다. 저는 1990년인가 러시아로 출장을 갔었지만

도스토옙스키의 흔적을 만나진 못하고 왔습니다. 

그렇지만 제 기억 속 모스크바는 제가 본 세계의 도시 중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남아 있습니다.

 

 

[위성락의 내 인생의 책]⑤죄와 벌 - 도스토옙스키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서울대 객원교수)

가난, 세상에 대한 반감, 이단적인 생각, 이에 기반을 둔 살인, 양심의 딜레마, 사랑, 속죄, 그리고 구원이라는 다소 통속적일 수도 있는 플롯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이 반향을 일으킨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이야기 전개 과정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을 등장시켜 그들의 욕망과 집착, 죄악과 대가를 기본 플롯과 잘 교직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에는 부도덕한 사람, 무도덕한 사람, 잘못된 도덕에 꽂힌 사람이 등장하여 갈등을 이룬다. 잘못된 도덕에 꽂힌 사람이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이다. 이름부터 시사적이다. 라스콜은 이견을 뜻한다. 그는 편벽된 확신으로 살인을 정당화하지만, 심적 갈등을 이기지 못하다가 신앙심 깊은 여인의 사랑으로 속죄하고 구원을 얻는다.

 

<죄와 벌>은 인간과 세상과 종교에 대한 생각을 되돌아보게 하였다. 19세기 러시아 사회에 대한 이해도 넓힐 수 있었다. 정교한 심리 묘사와 긴장감 넘치는 글쓰기는 덤으로 한 공부였다. 도스토옙스키는 이 소설을 시베리아 유형에서 돌아와서 썼다. 반체제 활동으로 10년 유배를 갔던 그가 기독교적인 구원을 통해 인간성을 회복한다는 주제를 택한 점이 특이하다.

 

필자는 러시아에서 근무하는 동안 작가들의 유적지 탐방을 취미로 삼았다. 도스토옙스키가 태어난 곳과 죽은 곳도 찾아갔다. 러시아 문학의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대문호와 그의 작품이 쓰인 현장에 대해 호기심이 있었다. 그는 아주 기이한 사람이었다. 간질병에 도박벽이 있었고, 돈에 쪼들려 쫓기듯 글을 썼다. 그는 적막한 심야에 진한 차를 마시며 집필했다고 한다.

 

도스토옙스키의 책상과 침실을 둘러보며, 작품의 배경이 된 거리를 찾아가면서, 도스토옙스키가 고통스러운 삶을 통해 인류에게 남겨놓은 귀한 선물에 대해 감사하였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1192054005&code=960205#csidx2060b8b7edafd3c91ac6d7adbb88dd7 

 
 
 

동행

dante 2020. 11. 27. 08:34

경향신문에는 '내 인생의 책'이라는 코너가 있습니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돌아가며 자신에게 큰 영향을 준

책들을 소개합니다. 어떤 사람의 '인생의 책'은 

편협한 독서일기 같고 어떤 사람의 책 소개는 저를

부끄럽게 하고 어떤 사람의 '인생의 책'은 감동을 줍니다.

 

소개된 책 덕에 감동하기도 하고 필자의 문장에

감동하기도 하는데, 아래에 소개하는 글의 마지막

문장도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노년에 이상주의를 잊으면

추해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상을 잊고 추해진 노년을 여럿 보았기에 

이 문장에 크게 공감한 것이겠지요.

 

위성락의 내 인생의 책]②맹자집주 - 주희

위성락 | 전 주러시아 대사(서울대 객원교수)

맹자에게 배운 이상 정치

대학시절 한학자를 모시고 한문을 공부한 적이 있었다. 거기서 <맹자>를 읽었다. 맹자는 중국 전국시대 혼란기에 서로 쟁패하던 제후들이 앞다퉈 부국강병책을 구할 때, 패도 정치를 비판하고 왕도 정치를 제창한 것으로 유명하다. 대표적으로 ‘양혜왕’ 장에 양혜왕이 “내게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고 묻는 대목이 나온다. 맹자는 “왜 이익을 말하는가, 오직 인과 의를 찾으라”고 답한다. <맹자>는 전형적인 이상주의적 정치론을 담고 있다.

 

이탈리아 전국시대 경세가인 마키아벨리와 대척점에 서있는 이상론이다. 맹자의 관점에서 보면 마키아벨리는 패도 정치에 가깝다. 흥미롭게도 마키아벨리나 맹자 모두 제후로부터 쓰임을 받지 못하였다. 맹자의 경우는 그의 이상론이 제후들의 현실적 수요에 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마키아벨리는 현실 정치가 작동하는 과정에서 운이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자는 <맹자>를 통해 이상적 가치에 기초한 정치를 공부할 수 있었다. 맹자 특유의 빈틈없는 논리와 압도적인 논쟁술에 매료되었다. <맹자>를 세 번 읽은 사람과는 시비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설득력 있는 논리 전개가 가득하다. ‘등문공’ 장구에 나오는 대장부 관련 부분은 유독 마음에 들어 책상머리에 적어두기도 했다. 전에는 ‘대장부’ 장 중 호연지기가 뿜어 나오는 부분이 끌렸으나, 이제는 “뜻을 얻으면 백성과 더불어 그 도를 해 나가고, 뜻을 얻지 못하면 혼자서 그 도를 행한다”는 부분이 더 끌린다.

 

<군주론>이 현실주의에 눈뜨게 한 책이었다면, <맹자>는 이상주의가 마르지 않게 해준 책이었다. 퇴직 후, 짐 속에 있던 옛날 책들을 정리하다가 누렇게 된 <맹자집주>(주석을 붙인 맹자)를 찾아냈다. 이후 간간 읽는다. 노년에 이상주의를 잊으면 추해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1162056005&code=960205#csidxab2f24855688608879dd9dd91ed441a 

초국적 자본주의하에서 이상론은 장식에 불과하고, 코로나 정국에서도 국가권력은 자본의 통패합,극대화에 포장만 뉴그린으로 위장해서 국민들을 속이고 있네요~~~ 이 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자본이 아니라 정의와 공정인데 코로나의 가르침에도 본질을 파악치 못하고 허둥대고 있으니 어쩌죠? 노쇠하면 이상주의에서 멀어지듯이 자본주의도 막장이라서 마지막 발악을 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개인의 자유와 이익을 중시했다면 이제는 더불어 함께 가는 공동체적 삶을 추구해야 할텐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