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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과 접경, 지중해 3대 물목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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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차이야기

2010. 8. 3.

 [통섭과 접경, 지중해 3대 물목을 가다] <7> 동서 문화의 가교, 보스포루스 해협  모스크 벽면 속 예수, 스타벅스 속 터키 커피

  

  일명 '블루 모스크'로 불리는 터키 이스탄불의 '술탄 아흐메트 자미'. 오스만이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을 점령 후 기독교 세력의 아야 소피아 성당 코앞에 건축한 이슬람 사원이다. 

 

    일명 '블루 모스크'로 불리는 터키 이스탄불의 '술탄 아흐메트 자미'. 오스만이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을 점령 후 기독교 세력의 아야 소피아 성당 코앞에 건축한 이슬람 사원이다.

[통섭과 접경, 지중해 3대 물목을 가다] <7> 동서 문화의 가교, 보스포루스 해협 

아야 소피아 성당의 2층 회랑 벽면에 그려진 기독교 상징인 예수상.

[통섭과 접경, 지중해 3대 물목을 가다] <7> 동서 문화의 가교, 보스포루스 해협    스타벅스 로고가 선명한 터키 커피. 이는 커피 종주국인 터키가 자본의 제국인 미국에 그 자존심을 송두리째 빼앗긴 상징처럼 느껴졌다.

[통섭과 접경, 지중해 3대 물목을 가다] <7> 동서 문화의 가교, 보스포루스 해협 

토프카프 궁전에서 내려다 본 보스포루스 해협. 멀리 보이는 다리가 보스포루스 대교이고 다리 왼쪽이 유럽, 오른쪽이 아시아 대륙이다.


[통섭과 접경, 지중해 3대 물목을 가다] <7> 동서 문화의 가교, 보스포루스 해협     

 

지중해는 아랍권에서 '백해'로 불렸다. 흰 바다라는 얘기다. 그러니 붉은 바다인 홍해와 흰 바다인 백해를 이어준 것이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이고, 그 백해와 검은 바다인 흑해를 연결한 것이 터키 이스탄불의 보스포루스 해협일 테다. 삼색의 바다는 그렇게 유유히 역사 속으로 흘러 때때로 접경을, 때때로 통섭의 문화를 창조했다.


그곳에 섰다. 희고 검은 두 바다의 갈림길과 아시아와 유럽의 두 대륙이 맞닿은 곳, 터키 이스탄불의 보스포루스 해협과 그 다리. 왼쪽으로 유럽 대륙의 신도시가 펼쳐졌다면 해협 오른쪽은 틀림없이 아시아 대륙이렷다.


그랬다. 부산에서 자동차로 경부고속도로를 달려본 사람이라면 안다. 고속도로 곳곳에 설치된 'AH'(아시안 하이웨이) 교통 표지판. 그 하이웨이의 마지막 거점 도시가 이스탄불이고 그 도시의 대륙 간 가교가 바로 보스포루스 다리였다는 사실을. 이스탄불은 그렇게 접경과 소통의 선율로 낭랑히 흐르고 있었다.


· 이스탄불의 옛 이름, 콘스탄티노플

이스탄불의 정치와 경제 중추는 신도시로 옮겨졌지만 여행자의 중심 동선은 여전히 구도시에 있었다. 오스만 튀르크의 거점인 토프카프 궁전과 아야 소피아 박물관(성당), 술탄 아흐메트 자미(이슬람 사원), 그랜드 바자르(전통시장)가 죄다 구도시 유적이기 때문이었다.


금방이라도 눈이 펑펑 내릴 것 같은 잿빛 하늘. 황급히 터키산 실크 스카프를 구입해 목에 두른 뒤 '아야 소피아'로 향했다. 아야 소피아는 공식적으로 박물관이지만 사실 성당으로 더 유명한 기독교와 이슬람의 복합 유산이었다.


성당은 크고 웅장했다. 붉은 외벽과 푸르고 둥근 돔형 지붕이 먼저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진가는 밖이 아니라 안에서 드러났다. 약간 어두운 조명에 익숙해지면서 시나브로 발견된 천장과 벽면의 장식들. 금색과 검정색이 혼합된 이슬람 문양과 칼리그래피(한자처럼 모양을 낸 그림 문자)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아름답고 화려했다. 푸른 제복의 키 작은 여성 안내인은 이 칼리그래피에 대해 "알라와 모하메드, 4명의 칼리프 이름을 조합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안내를 받고 비밀통로 같은 회랑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니 우연처럼 속절없이 성당의 속살이 드러났다. 말로만 듣던 이슬람 속 기독교 유산들. 덧칠이 벗겨지고 이슬람의 모자이크가 떨어져나가면서 모습을 드러낸 예수와 요한, 성모 마리아 벽화였다. 순간 눈이 감기고 시간은 거꾸로 흘렀다. 오스만 튀르크에 점령되기 직전의 이스탄불, 기독교 세력의 심장부였던 1453년 콘스탄티노플의 한 풍경이 오브랩됐다.


· 콘스탄티누스 결국 전사

"튀르크의 주력부대가 성벽을 넘었다. 콘스탄티누스11세는 최후의 힘을 짜내어 반격했으나 결국 전사하고 말았다. 콘스탄티노플은 마침내 튀르크의 도시가 되었다. 고대 전쟁의 끝. 콘스탄티노플 함락으로 로마 제국은 확실하게 막을 내렸다. 오스만 제국은 이곳에 수도를 정하고 거기에서 세력을 뻗쳐나가 발칸 반도와 동유럽의 상당 부분을 다스렸다."(윌리엄 위어의 '세상을 바꾼 전쟁' 중에서)


오스만 튀르크의 술탄 메메드 2세가 그날 점령군의 권리로 보무당당하게 걸어 들어간 곳이 바로 '아야 소피아 성당'이었다. 스페인 그라나다에 남은 이슬람 유산인 알람브라 궁전과 반대로 이슬람 제국에 차압된 가톨릭 성당은 같은 방식으로 파괴 대신 능욕의 덧칠을 당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숱한 세월이 흐른 1931년, 성당 벽화의 덧칠이 벗겨지면서 이슬람 문양에 가려졌던 예수와 마리아 상이 그 찬란한 모습을 드러냈고, 이에 세상은 두 문화의 아슬아슬하고 절묘한 동거에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스페인이 그랬듯이 오스만 제국도 예수상의 덧칠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성당 코앞에 이슬람 양식의 거대한 이슬람 사원을 따로 건축했다. 일명 '블루 모스크'로 불리는 '술탄 아흐메트 자미'였다. 6개의 거대한 첨탑과 35개의 크고 작은 돔은 각종 여행서의 요란한 설명보다 훨씬 더 위압적이고 아름다웠다. 특히 파란 색조의 내부 벽면 타일은 정교한 기하학 무늬와 색감, 모자이크 장식 등으로 수려함의 극치를 드러냈다.


술탄의 보금자리였던 토프카프 궁전은 여느 이슬람 궁성처럼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두 대륙이 한꺼번에 조망되는 흥취는 분명히 토프카프 궁전만의 차별화된 볼거리였다. 70만㎡의 광활한 궁전은 하렘(술탄의 여성 주거지)이라는 독특한 금남(禁男) 구역과 함께 한때 1천200명의 요리사를 상주시킨 '마트바흐 아미레'(주방)로 눈길을 끌었다. 그 중 압권은 일반 관광객이 즐겨 찾는 하렘이 아니라 주방이었다.


· 터키 커피는 더 짙고 검었다

제국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절, 그 주방에는 전 세계로부터 조달된 각종 향료와 음식 재료가 넘쳤다. 그 중 가장 극진한 대접을 받은 것은 커피였다. '커피 대신'이라는 고관직이 존재했을 정도로 술탄의 커피 기호는 각별했다. 그리고 그 커피는 '터키 커피'라는 별칭으로 귀족과 상민들에게 대중화됐고 이후 유럽을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됐다.


커피나무가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에서 처음 발견됐지만 이를 음료로 만들고 그 식문화를 세계에 전파한 주역은 터키의 옛 제국, 오스만 튀르크였던 것이다.


"1517년 이스탄불에 처음 들어온 커피는 40년이 되지 않아 대중화됐고 그로부터 한 세기가 막 지나갈 무렵 유럽은 카페라는 문화를 싹틔우기 시작했다.(스튜어트 리 앨런의 '커피 견문록' 중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엔나커피도 사실은 그 단초를 오스만 튀르크가 제공했다. 1683년 오스만 제국이 기독교 세력의 맹주인 합스부르크 왕조의 오스트리아 빈을 침공하는 데 실패했을 때 함께 가져간 커피를 자루째 남겨 놓았고, 그것이 나중에 잘 숙성된 꿀과 우유로 섞여진 비엔나커피가 됐다.


그러나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했던가. 막상 터키 커피를 찾으려니 좀처럼 발견되지 않았다. 이스탄불 어디에서나 쉽게 마실 수 있을 줄 알았던 것도 사실은 착각이었다. 카페에서는 인스턴트커피를 종류별로 메뉴판에 열거했고 레스토랑은 아예 커피 대신 차를 내놓았다.


이리저리 얻은 최소한의 정보를 밑천 삼아 이집션 바자르(시장)를 뒤졌다. 그리고 여러 갈래의 골목길 중 하나의 모퉁이에서 운 좋게 그윽한 커피 향을 맡을 수 있었다. 그 향을 내뿜은 상점은 '쿠르카흐베시 메흐메트 에펜디 마흐둠라리'(Kurukahveci Mehmet Efendi Mahdumlari). 꽤 긴 상호를 우리말로 대충 번역하면 이랬다. '갈고 볶은 메흐메트 에펜디의 커피 도매상점'. 여기서 '갈고 볶은'은 일반적인 수식어이자 메흐메트 에펜디 가문의 애칭이었다.


(메흐메트 에펜디 닷컴-www.mehmetefendi.com 참조)


· 죽음처럼 진하고 사랑처럼 달콤하여라

도매상은 활기가 넘쳤다. 구매자들은 향긋한 커피 향에 중독된 듯 줄을 서 차례를 기다렸고 종업원들은 주문받은 무게 단위의 누런 종이봉투에 커피를 부지런히 담았다. 볶은 가루 커피 값은 50g당 1TL(터키 리라). 우리 돈으로 780원 가량이니 비싼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시음은 도매상과 같은 골목에 위치한 터키 커피 전용카페에서만 가능했고 결코 싸지 않았다. 에스프레소 커피 잔 크기의 한 잔에 3.5TL. 그럼에도 맛과 향은 국내의 원두커피나 인스턴트커피와 확연히 달랐다. 문득 터키 속담 하나가 떠올랐다. "커피는 지옥처럼 검어야 하고, 죽음처럼 진해야 하며, 사랑처럼 달콤해야 한다." 그랬다. 질 좋은 담뱃진처럼 터키 커피는 색이 진했을 뿐 아니라 걸쭉한 찌꺼기도 잔뜩 남겼다. 옛날에는 그 찌꺼기를 바닥에 부어 흩어진 모양을 보며 점을 쳤다고 했다.

 

메흐메트 에펜디의 한 점원은 "이스탄불에서 터키 커피를 구할 수 있는 곳은 이제 우리 도매상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이스탄불 최대 번화가인 탁심 거리의 스타벅스에서도 터키 커피는 메뉴에 올라 있었다. 물론 서구화된 터키 청년들에게 전통적인 터키 커피가 그다지 인기를 얻는 것은 아닌 듯했지만. 그럼에도 스타벅스의 이스탄불 입성은 세계 커피사에서 볼 때 큰 변화임에 틀림없었다. 16세기 이후 400년 이상 커피 종주국과 카페 문화의 발상지라는 명예를 굳건히 지켜온 터키의 입장에서, 그것은 이미 다 무너진 오스만 튀르크 제국만큼이나 치명적인 굴욕처럼 느껴졌다.


하인리히 E. 야콥의 저서 '커피의 역사'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커피와 와인은 각성과 수면의 관계다. 커피의 궁극적인 효능이 잠에서 깨어 있게 하는 것이라면 와인은 그와 반대로 쉽게 잠들게 하는 효능을 가졌다. 이처럼 커피콩에서 '각성'을 추출해내고, 이를 달여 마력을 지닌 음료로 만들어 전 세계에 퍼뜨린 것은 이슬람 교도였다. 유럽이 술에 깊이 취해 있을 때 이들은 무의식과 어둠에 대항해 싸웠고 결국 중세를 장악했다."


이슬람은 그렇게 한 시절을 풍미했다. 그리고 그들의 영광스러운 역사는 또 다시 반복될 것이다. 지중해는 그런 반복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볼 테다.

 

출처; 부산일보 이스탄불(터키)=백현충 기자 choong@busanilbo.com 후원=지중해지역원 부산외국어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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