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율리우스 2010. 4. 17.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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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작은 카페이지만, 여러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계속해서 꾸준히 성장해 나갈것입니다.

 

 
 
 

나시카님 글

율리우스 2010. 4. 9. 20:01

 

  

건빵은 영어로는 hardtack이라고 합니다.  사실 건빵이라고 번역될 수 있는 영어 단어는 매우 많습니다.  두번 구웠다는 뜻에서 biscuit이라고도 부르고, 단단한 빵이라고 해서 hard bread라고도 부릅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영국군은 이 지겹게 먹던 건빵을 그냥 Tommy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1,2차 세계대전 때 영국군은 독일군을 'Jerry'라고 불렀고, 독일군은 영국군을 'Tommy'라고 불렀습니다만, 뭐 그것 때문에 그렇게 부리지야 않았겠지요.

 

건빵은 맛이 없습니다.  그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여러분들이 군대에서 드셔 보신 건빵이나 수퍼마켓에서 사드시는 건빵은 그런 대로 맛이 있지요 ?  그건 거기에 설탕과 베이킹 파우더가 많이 든, 거의 과자 수준의 건빵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 건빵은 일제 시대 때 일본군의 건빵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전통적인 건빵과는 거리가 좀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 중에서도 미군 전투식량인 MRE (Meal Ready to Eat 또는 Meal Rejected by Ethiopians)를 드셔보신 분이 있을텐데, 거기에도 건빵, 즉 크래커가 포함되어 있지요.  일단 단맛도 전혀 안나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뻑뻑합니다.  즉, 수분이 거의 없다는 것이지요.  사실 그래야 보존성도 더 좋고, 주식으로 먹어도 질리지 않습니다.  미군 MRE에는 나름대로 여러가지 메뉴가 있습니다만, 모든 메뉴에 꼭 들어있는 기본 품목 중 하나가 이 건빵과 땅콩버터입니다.  

 

 

19세기 중반 때부터 대양 항해선에서 애용되던 형태를 현대까지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다는 Carr's Table Water Cracker 입니다.  먹어보면 우리나라 참크래커나 아이비와 거의 비슷한 맛이 나는데, 조금 더 담백하다고 해야 하나 그렇습니다.

 

 

 나폴레옹 시대의 건빵은 이것보다는 훨씬 더 두껍고 또 큼직했습니다.   아래는 1820년대 정도에 침몰했던 영국 군함 HMS Fury 호에서 건져낸 당시의 건빵입니다.  훨씬 두툼하고 또 울퉁불퉁 하지요 ?

 

 

 

그런데 누가 이렇게 맛없는 건빵을 만들어 먹었을까요 ?  바로 군인들과 선원들이었습니다.  왜 만들어 먹었을까요 ?  맛은 분명히 아니고, 바로 보존성 때문이었습니다.  빵보다야 당연히 바싹 마른 건빵이 더 보존성이 좋습니다.  또 부피도 더 작고, 또 워낙 단단하다보니, 창고에 쌓아놓거나 배낭에 쑤셔넣기에 딱 좋지요. 

 

흔히들, 동양에서 먹는 밥보다는 빵이 더 군용 식량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빵은 휴대성이 더 좋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릇이나 스푼같은 식기가 없어도, 손만으로도 먹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빵 만들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빵을 야전에서 만드는 것에는 다음과 같은 어려움이 따릅니다.

 

일단, 재료의 문제입니다.  빵은 밀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밀가루와 효모로 만드는 것입니다.  

 

밀가루라는 것은 만드는 데도 돈과 시간과 노동력이 많이 들어가고, 또 낟알 형태의 밀보다 더 쉽게 상하는 물건입니다.  아마 밀 낟알에 비해 공기나 습기에 접하는 표면적이 크게 넓어지는 것과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근세에 이르기까지, 모든 군대는 대규모로 곡물을 저장할 때는, 밀을 밀가루 형태로 휴대하지 않고, 탈곡하지 않은 밀알의 형태로 가지고 다녔습니다.  가령 알렉산더 대왕이 이집트에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할 때, 측량 기사들이 측량한 선을 긋기 위해 진흙밭에 군량으로 가지고 온 밀알을 뿌렸는데 거기서 싹이 터서 도시의 경계를 표시했다고 합니다.  또 제7차 십자군을 이끌고 이집트 원정을 가던 프랑스 루이 9세가, 식량 보급을 위해 키프로스 섬에 쌓아놓은 밀 더미에서 싹이 터서 마치 풀밭으로 뒤덮인 언덕처럼 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밀을 찧고 키질해서 껍질을 벗기고, 또 휴대용 맷돌로 갈아서 밀가루 만드는 것은 매우 고되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일이었습니다.  몇천명의 부대원이 먹을 밀가루를 빠른 시간 내에 갈아내려면 그 무거운 맷돌만도 몇개를 짊어지고 다녀야 하겠습니까 ?

 

  

(이 그림은 이집트 다미에타에 상륙하는 루이 9세)

 

효모, 즉 누룩도 문제였습니다.  집에서 빵을 구워보신 분들은 아시겠습니다만, 당시에 쓰던 자연 효모라는 것은 베이킹 파우더처럼 다루기 쉬운 물건이 아닙니다.  아마 개신교나 천주교가 아닌 분들도 무교병(unleavened bread)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 있으실 겁니다.  성서의 출애급기에서, 모세가 유대인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빠져나올 때, 너무 서두르다보니 빵을 발효시킬 누룩(효모)을 가져오지 못해 유대인들이 발효되어 부풀지 않은, 납작한 빵, 즉 무교병을 먹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일을 기리기 위한 무교절이라는 명절까지도 있답니다.  아래는 이런 무교절 때 유대인들이 먹는, 현대적인 무교병입니다.

 

 

 

" 너희는 무교절 축제를 지켜야 한다. 이날은 바로 내가 너희 군대를 이집트땅에서 이끌어낸 날이다.너희는 대대로 이날을 영원한 축제일로 정하여라. 정월십사일 저녁까지 너희는 누룩이 없는 빵을 먹어야 한다." (출애급기 12:17~18)

 

총알이 날아다니고 적의 기병대가 우르르 달려오고 하는 전쟁터에서 밀가루 반죽에 효모를 넣어두고 축축한 천으로 덮은 뒤 빵이 부풀기를 반나절 동안 기다리는 것은 좀 무리라는 생각 안드십니까 ?  이 몇천명 분량의 발효 중인 빵 반죽을 보관할 장소도 마땅히 않았을 겁니다. 또 오븐은 ?  빵은 간단한 솥단지에서 구울 수 있는 음식이 아니고, 벽돌이나 진흙으로 만든 오븐이 있어야 구울 수 있는 물건입니다.  게다가 밀가루 반죽은 얼마나 힘든지 아십니까 ?  정말 중노동입니다.  그래서 제과점에서는 모두 기계로 된 반죽기를 쓰지 손으로 반죽은 못한다고 합니다.  결정적으로, 이렇게 애써서 만들어놓은 빵은 그리 보존성이 좋지 못했습니다.  그 시절의 방부제가 없는 밀가루로 구운 경우, 날씨에 따라 다르지만 며칠이나 갔을까요 ? 

 

결과적으로, 병사들은 야전에서는 거의 빵을 먹지 못했습니다.  대개는 '건빵' 또는 '비스킷'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일단 이 분야의 선두 주자가 로마군이었습니다.  물론 요새에 주둔할 때는 제대로 된 빵을 먹었습니다만, 행군할 때는 밀가루에 소금을 약간 넣고 물로 반죽한 것을 그대로 딱딱하게 구운, 건빵을 만들어 먹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행군 중에는 시간이 없었으니까요.  또 이 건빵은 휴대하기도 쉽고, 부피도 작았습니다.  물론 맛은 없었지요.  뭐 맛있는 것을 바라고 군대에 들어온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없었을테니, 그 문제는 심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육상에서도 이 모양이었으니, 배에서는 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특히 대양을 항해하는 배에서는, 빵이든 건빵이든 뭔가 구울 연료를 많이 실을 수 없다는 문제가 더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대서양과 인도양을 항해하던 배들의 주된 식량은 건빵과 함께 염장 쇠고기, 염장 돼지고기였습니다.  염장 육류는 일단 소금기를 빼낸 뒤 삶아야 먹을 수 있는 식품이었으므로, 이것만으로도 꽤 많은 석탄이나 땔나무가 소모되었는데, 매일 먹을 건빵이나 빵을 굽기 위해 소중한 연료를 낭비할 수는 없었습니다.  특히, 오븐에서 빵이나 건빵을 굽는 것은, 솥에 삶는 것에 비해 연료 소모량이 많은 편이었습니다.  따라서 결국 대양을 항해할 선박들은, 미리 구워둔 건빵을 잔뜩 싣고 떠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제가 따로 쓴 글 중에서, 나폴레옹 전쟁 당시 영국 해군의 일요일 특별식으로 더프(duff)라는 일종의 푸딩이 제공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더프라는 푸딩은, 간단히 말하자면 삶아서 만드는 케익같은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배에서는 오븐에 대규모로 케익을 구우려니 연료가 너무 낭비되었으므로, 주로 삶아서 만들 수 있는 디저트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나폴레옹 전쟁 시기의 영국 해군 이야기인 혼블로워 시리즈를 보면, 장교나 수병이나 건빵을 먹기전에 탁자에 건빵을 세게 탁탁 내리쳐서 그 속의 바구미와 구더기를 빼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무래도 당시의 보관 수준으로는 건빵에 이런 벌레가 꼬이고 알을 낳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벌레 뿐만 아니라, 배에 꼭 있게 마련인 쥐들도 이런 건빵 더미 속에서 아주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신선한 고기가 떨어지고 나면, 염장 쇠고기에 질려버린 선원들은 결국 이 쥐를 잡아먹기 시작했는데, 당시 영국 해군에서는 이런 쥐고기를 miller (방앗간 주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렇게 부른 이유 중의 하나가, 이 쥐들은 주로 건빵 가루로 뒤덮힌 채 살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이 건빵의 단조로움에 벗어나, 획기적인 장기보존 식량이 개발되었습니다.  바로 파스타입니다.  건조 파스타는 부피도 작고, 장기 보존도 가능하고, 솥에 삶기만 하면 아주 훌륭한, 야들야들한 식사가 되었으므로 특히 해군에서 크게 환영받았습니다.  당시 영국 해군은 건빵과 럼주를, 이탈리아 해군은 파스타와 와인을 주식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웰빙은 역시 이탈리아죠 ?

 

미국 남북전쟁 당시의 북군 병사의 수기를 보면, 이 건빵에 대해서 원망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무엇보다도 그 딱딱함에 대해 불평하고 있습니다.  농담이나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이 건빵이 너무나 딱딱해서 이빨이 들어가지 않으므로, 총개머리판이나 돌을 이용해서 건빵을 부수는데, 가끔씩은 내리치는 돌이 깨졌다고 합니다. 이것을 그대로는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고, 커피(그래봐야 치커리를 볶은 대용커피)에 적셔야 겨우 먹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 이 북군 병사가 먹은 건빵은 갓 구웠을 때는 먹을 만 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 건빵이 필라델피아의 공장에서 구워진 후 전선의 병사들에게 배급될때까지는 최소 3개월이 걸렸다고 하니, 그 맛과 딱딱함을 짐작하실 겁니다.

 

 

나폴레옹 군대는 프랑스 군대답게, 점령지에서도 꽤 괜찮은 빵을 먹었다고 합니다.  빵을 충분히 부풀릴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급히 굽느라고 수분이 좀 많았다 뿐이지, 프랑스 병사들이 먹는 군용 빵은 비엔나의 사교 파티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었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은 항상 적은 병력으로 다수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서 기동전을 중시했으므로, 그의 군대는 항상 보급 문제에 시달렸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폴레옹은 현지 징발, 말이 좋아 징발이지 간단히 말해 식량 약탈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빼앗아 먹는 주제에  나폴레옹의 병사들은 빵의 부드러운 속만 먹고 딱딱한 빵껍질은 버려서, 식량을 약탈당한 현지 주민들의 분노를 샀다고 합니다.

 

 

 

철도가 발달하면서부터 보급이 원활해졌고, 또 장기화, 고착화된 참호전으로 인해, 1차 세계대전 때에는 양측 병사들이 야전에서도 빵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관련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영국군의 둥글고 납작한 빵이 기차역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현장의 영국 병사가 군화발로 그 빵더미 위에 올라가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딱딱함은 건빵에 버금갔던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나 중국, 일본 등지에서는 주로 밥을 먹었기 때문에, 병사들의 건빵이 주는 고통에 시달리지는 않았습니다.  밥을 해먹자면, 그냥 약간의 땔감에 솥과 물, 쌀만 있으면 되니까 제분에 반죽, 발효, 오븐에 굽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빵에 비하자면 훨씬 간편한 편이었지요.  하지만, 빵이 아니라, 그냥 배낭에서 꺼내 부수어 먹기만 하면 되는 건빵에 비하면, 밥을 지어 먹는다는 것은 매우 번거로운 일이었습니다.  건빵에 해당하는 동양의 전투 식량이 있었을까요 ? 

 

 

사마천이 쓴 사기 열전을 보면, 한무제 시절, 흉노의 8만 기병에 맞서 겨우 5천명의 보병을 이끌고 북쪽으로 쳐들어갔던 젊은 한나라 장군 이릉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히 나옵니다.  이 친구는 결국 중과부적으로 흉노에게 항복하게 되는데, 사마천이 이 친구를 변호하다가 노한 한무제에게 거세를 당하는 형벌을 받기 때문에, 비교적 상세하게 써놓았습니다.  이 이릉이라는 장군이 흉노에게 포위되었을 때, 춥고 지친 병사들에게 휴대식량으로 냉반(冷飯), 즉 얼린 밥을 나눠주며 포위망을 뚫으려 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게 과연 글자 그대로 얼린 밥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때가 추운 겨울이어서 가능한 이야기였을 겁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신라 시대 때 외적이 쳐들어와 동네 장정들이 군대에 소집될 때는, 벽에 걸어두었던 북어 한마리를 허리춤에 푹 찔러넣고 전쟁터로 나갔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말린 북어는 정말 영양가도 많고, 보존성도 좋았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뭐 오래된 역사책 뒤질 것 없습니다.  바로 6.25 사변 때, 중공군이나 인민군이 어깨에 둘러맨 포대에 뭐가 들어있었는지 다들 기억하시쟎습니까 ?  예, 볶은 곡식 가루, 즉 미숫가루만큼 좋은 휴대 식량이 어디 있겠습니까 ?  미숫가루는 고대 그리스에서도 애용되던 휴대 식량이었습니다.  원래 당시 그리스 해군은 좁은 배에 많은 노젓는 수병이 타는 갤리선의 특성상, 식사 때마다 해안가에 배를 대고 해변에서 빵을 구워 먹었습니다.  하지만, 아테네군이 미틸레네 섬에 급전을 보내기 위해 쾌속선을 보낼 때는, 선원들이 밀가루와 보리가루에 포도주 및 올리브 기름을 섞어 반죽한 것을 먹어가며 노를 저었다고 합니다.  또 아테네의 장군인 니키아스가, 시칠리아 섬으로의 원정 중에 행한 연설 내용 중에는, 준비해야 하는 보급품 목록도 나오는데, 그 중에는 볶은 보리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볶은 보리라... 제 생각에는 그걸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미숫가루 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되시지 않나요 ?

 

출처 : Nasica의 뜻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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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시카님 글

율리우스 2010. 4. 9. 19:59

 

 

Sharpe's Eagle by Bernard Cornwell (배경 : 1809년, 스페인) --------------

 

푸른색과 주홍색이 섞인 군복을 입은 기병대원들이 무기공(armourer) 옆에 줄을 지어 서있었다.  샤프는 그들이 칼을 다 갈때까지 기다린 뒤, 그의 커다란 군도를 꺼내어 숫돌바퀴로 가져갔다.  이것은 샤프가 전투에 나가기 전에 항상 하는 의식과도 같은 것이었다.

 

...중략...

 

무기공은 마치 애무를 하듯 칼날의 위아래를 숫돌바퀴에 대고 날카롭게 갈고나서, 칼등 끝부분의 6인치 정도도 날카롭게 갈았다.  그는 기름을 묻힌 가죽 조각으로 군도를 닦았다.

 

"독일제 칼을 장만하시지요, 대위님."  클링겐탈 (Klingenthal)제 검이 영국제보다 더 좋은지 여부는 아주 오래전부터 계속되어온 논란거리였다.  샤프는 머리를 저었다.  "난 이걸로 독일제 칼을 여러개 잡아먹었다네."

 

무기공은 킬킬 웃으며 이빨이 다 빠진 잇몸을 드러내보이고는, 칼날을 따라가며 검사를 했다.  "여기 있습니다, 대위님.  이놈을 잘 돌봐주세요."

 

샤프는 숫돌바퀴대에 동전 몇개를 올려놓고는 서쪽하늘의 마지막 석양빛에 칼날을 들어보았다.  칼날에서는 새로운 번뜩임이 보였다.  그는 칼날을 엄지손가락으로 만져보고는 무기공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클링겐탈제 칼은 이렇게 날카롭게 안될 걸 ?"

 

무기공은 아무말 없이 등 뒤에서 경기병용 군도를 하나 꺼내어 샤프에게 건네주었다.  샤프는 칼집에서 굽은 군도를 꺼내 들었다.  그 검은 마치 샤프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았다.  검의 균형이 정말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완벽했고, 붉은 석양빛에 빛나는 칼날은 전혀 무게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웠다.  그는 칼날을 만져보았다.  그 칼날은 프랑스 기병대의 흉갑을 잘라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단도 깔끔하게 자를 것처럼 날카로왔다.

 

"독일제인가 ?"  샤프가 물었다.

 

"예, 대위님. 우리 대령님 거지요."  무기공은 칼날을 다시 받아들었다.  "게다가 이 칼은 아직 날을 갈지 않은 상태랍니다."

 

샤프는 웃었다.  그 군도는 아마 200기니(당시 영국군 소위 연봉의 3배정도, 현재 원화 가치로는 약 7천만원 정도 - 역주)는 나갈 것이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언젠가, 언젠가는, 그도 그런 칼을 하나 장만할 것이라고.  죽은 적병의 시체에서 �앗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이름이 새겨진 그런 칼을, 그의 키에 맞게, 그의 손아귀에 딱 맞도록 균형이 맞춰진 군도를 하나 장만하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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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전쟁 당시 장교들의 무기나 군복은 모두 장교가 개인적으로 돈을 주고 구매해야 했습니다.  당연히 돈많은 장교는 좋은 말과 좋은 군복을 장만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것까지는 좋습니다만, 무기의 질까지도 장교 개개인의 호주머니 사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은 좀 그렇지요 ?

 

사실 장교의 무기는 어떤 것이더라도 그 군대의 전투력과는 큰 상관이 없었습니다.  웰링턴이 소설 속 주인공 샤프에게 망원경을 선물하면서 하는 말이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명심하게.  장교의 눈은 장교의 검보다 훨씬 중요하다네."  즉, 요즘도 그렇습니다만 당시도 장교가 최전방에서 칼부림을 하거나 권총을 쏘는 것은 그렇게까지 중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삼국지와는 많이 다르지요.  하지만 그 망원경까지도 다 개인 돈으로 사야 했다는 것은 정말 좀 그렇습니다.  요즘으로 따지면 K1A1 전차장이 자기 사비를 털어서 야간 투시 장치를 장착한다는 이야기네요.

 

  

 

여기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저 클링겐탈이라는 곳 이야기입니다.  저 위에서의 대화 내용을 들어보면, 클링겐탈은 독일의 어느 도시거나 공장 이름처럼 보입니다.  사실 클링겐탈이라는 단어 자체가 독일어지요.  저는 독일어를 모릅니다만, klingen은 칼날, thal은 계곡이라고 하더군요.  무협지로 따지면 "검곡(劍谷)"이네요.

 

하지만 이 클링겐탈은 프랑스 땅입니다.  여기가 그 '마지막 수업'으로 유명한 알사스 지방이거든요.  서정원이 뛰었던 스트라스부르 (Strasbourg) 근처에 있다고 합니다.  스트라스부르나 클링겐탈이나, 모두 독일 이름인 것은 맞습니다. 

 

클링겐탈 검의 시작은 루이 15세인가..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프랑스 군대에 독일제 검이 판을 치자, '자주 국방'의 중요성을 통감했던 프랑스 정부에서 독일인 검 장인들 수십명을 초청하여 대규모 검 워크샵을 만듭니다.  그런데 당시 알사스 로렌 지방은 철과 석탄의 산지였던데다가, 결정적으로 그 지방 주민들은 독일어가 모국어인지라, 이 독일인 검 장인들을 살게 하기에 딱 좋았던 것이지요.  그래서 저 위에서 클링겐탈 군도를 보고 독일제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분위기가 '칼하면 독일제' 라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은데, 사실 이런 경향은 지금까지 내려오는 편이지요 ?  각종 기계류는 독일제가 최고라고들 흔히 말합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이랬을까요 ?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확실한 것은 중세 초기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월터 C. 스캇 경의 '아이반호'라는, 12세기초 영국을 배경으로 한 기사 소설의 대표작에는, 로빈 훗도 출연을 합니다.  검은 기사로 신분을 감춘 사자왕 리처드가 로빈 훗과 함께 어떤 귀족의 성을 공격하는데, 로빈 훗이 화살을 날려 성벽 위의 기사의 투구 얼굴 가리개를 맞추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그 화살이 투구 안면을 뚫지 못하고 튕겨져 나오자, 로빈 훗이 이렇게 투덜거립니다. 

 

"틀림없이 스페인제 강철이군.  영국제였으면 뚫었을텐데."

 

요즘 스페인제 공산품이 유명하다는 소리는 못들었는데, 당시에는 이야기가 틀렸나보지요 ?  그 이유에 대해 눈치빠른 분들은 이미 아셨을 것입니다.  예, 당시 스페인에는 아직도 이슬람 세력이 있었습니다.  당시 강철검으로 가장 유명했던 것은 시리아의 다마스커스에서 만들어지는 것들이었습니다.  담금질 과정에서 칼날에 자연적으로 생기는 다마스커스의 물결 무늬는 상당히 유명한 것이었습니다.  이슬람의 기술이 스페인으로 건너갔기 때문에, 당시 스페인의 강철 기술은 상당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오리지널 다마스커스 웨이브...)

 

자, 요즘의 검은 어디 것이 가장 유명할까요 ?  일단 요즘은 검을 뭐 쓸 일이 거의 없지요 ?  칼덕후나 조폭 형님들 빼고는요.  하지만 정말 좋은 칼을 써야 하는 분들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유명 주방장과 외과 의사 슨상님들이지요.  주방장들께서는 그 스웨덴제인가 독일제인가 하는 무슨 '쌍동이표' 칼이 가장 유명하다는 소리를 들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외과 수술실에서는 정말 일제 메스가 가장 인정받는다고 하더군요.  흠... 약오르지요 ?  저도 약오릅니다.  하지만 이공계 출신은 비전없다고 다들 뇌까리고, 특히 숙련공 알기를 뭣처럼 아는, 우리나라 사회 분위기를 더 탓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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