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돌 소식/갯돌 광대

극단 갯돌 2013. 7. 21. 13:44

목포야 놀자…역사의 현장들 찾아 ‘갯돌’이 굴러간다

등록 :2013-07-21 20:01수정 :2013-07-21 21:52

지난 18일 오후 목포시 대의동 옛 일본영사관 앞 계단에서 목포 극단 갯돌 손재오 상임연출 등 단원들이 활짝 웃고 있다. 목포/정대하 기자
지난 18일 오후 목포시 대의동 옛 일본영사관 앞 계단에서 목포 극단 갯돌 손재오 상임연출 등 단원들이 활짝 웃고 있다. 목포/정대하 기자
32살 된 마당극 단체 ‘갯돌’
뚝심과 실험정신 무장한 단원들
13년째 페스티벌 지휘봉 잡아

올핸 일제 수탈·근대화 현장에서
야심작 ‘한여름 밤의 꿈’ 등
국내외 단체, 25~28일 공연
현장 쏙|목포세계마당페스티벌 준비하는 사람들

국도 1호선의 시발점 전남 목포는 서남해안 다양한 문화의 집결지다. 인구 30만 소도시에 창단 33돌에 이른 극단 ‘갯돌’이 있다. 수탈과 근대화 역사를 굿·소리·민요 등을 융합시킨 연회로 표현해온 전라도 광대들이다. 단원 13명이 13년째 목포세계마당페스티벌을 열어왔는데….

“뒤쪽에 82m짜리 굴이 있어요. 조선 사람들의 피와 땀이 배어 있는 곳이지요.”

전남 목포에 둥지를 튼 극단 ‘갯돌’의 손재오(49) 목포세계마당페스티벌 예술감독이 16일 오후 목포시 대의동 옛 일본영사관 건물 뒤쪽 동굴(높이 2m, 너비 3.3m)의 유래를 들려줬다. 1940년대 초반 미군 공습에 대비해 일제가 한국인들을 동원해 파놓았다는 동굴 주변은 적막했다. 이 동굴 안에선 오는 26~27일 현대적 의미의 씻김 공연이 열린다. 일본 마임과 부토춤(땅을 밟고 추는 춤)판을 펼친다. 대금과 기타로 ‘목포의 눈물’과 재즈곡도 연주한다. 동굴 밖에선 멕시코 마리아치 라틴밴드가 전통 농부들의 거리음악을 들려준다. 25~28일 목포 일대에서 올해로 13년째 여는 ‘목포세계마당페스티벌’의 하나다.

갯돌은 목포 원도심 13곳에 기획 이슈 7개, 공식 행사 2개, 국외 초청공연 5개국 11팀, 국내 초청공연 36팀, 전남네트워크 공연 28팀, 부대행사 6개 등 모두 96개 프로그램을 배치한다. 무안동 목포와이엠시에이(YMCA) 회관 앞 광장에선 여느 해처럼 국내외 연희패들이 마당극과 연극, 노래공연 등을 선보인다. ‘한여름 밤의 꿈’이라는 주제로 옛 일본영사관과 옛 동본원사(1907년 세워진 일본 불교사원) 등 목포의 근대역사문화공간 7곳(그래픽 참조)에서 열리는 공연은 올해 특별기획무대다. 기획공연은 목포세계마당페스티벌의 ‘별미’로 마련하는 것이다.

옛 일본영사관 건물은 작은 병영마을이었던 목포가 1897년 10월1일 개항 이후 일제의 식민 수탈 창구와 근대도시로 변모했던 과정을 상징한다. 르네상스 양식을 따라 붉은색 벽돌로 지은 2층 건물은 1900년 12월에 완공됐다. 4~5년 전 목포문화원이 옛 호남은행 목포지점 터로 옮겨간 뒤 빈 채로 남아 있다. 개항 이후 수탈을 위해 항구가 확충됐고, 주요 공관 주변엔 금융기관과 상가가 형성됐다. 중앙동·유달동은 일본인이 살았던 신시가지가 됐고, 조선인들은 북교동·남교동·온금동·서산동·만호동·양동·신창동에 몰려 살았다.

유달산 자락 아래 옛 일본영사관 건물 앞에는 원도심 풍경이 낡은 수채화처럼 펼쳐져 있다. 옛 일본영사관 앞에 국도 1호선이 시작되는 기점을 표시한 돌이 서 있다. 국도 1호선(1911년·목포~신의주)과 호남선 철도(1914년·목포~서대전)는 식민지 수탈과 근대적 개발의 표상이다. 국도 1호선 도로 원표 옆 우체국에선 전주 예술인 한영애씨의 굿 퍼포먼스와 ‘이름 없는 공연팀’의 통일 영상전이 벌어진다. 국도 1호선 개통 뒤 조선의 노동자들이 선창으로 왕래하던 길목이 목포 오거리였다. 한때 목포 예술·상업의 중심지였던 오거리 길은 외곽에 새도시가 생기면서 점차 활기를 잃어 원도심 퇴락의 상징이 됐다. 올해 페스티벌 기간에 옛 동본원사(1907년 문을 연 일본 불교사원·현 오거리문화센터) 뜨락에선 나눔과 소통의 장터가 펼쳐진다. 1924년 목포청년회가 모금운동을 펼쳐 건립한 청년회관(현 남교소극장)에선 온라인 소통모임 ‘목포사람들’이 서울 성미산공동체의 삶을 담은 영화 <춤추는 숲>을 상영한다.

“다른 한편으로 목포는 신분제가 철폐된 뒤 가난한 사람들이 돈을 찾아서 왔던 희망의 땅이었어요.”

손 감독은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이 살던 온금동으로 가는 길에, 수탈과 근대화라는 양면의 역사 속에 밴 목포의 문화적 개방성을 풀어냈다. 1910년대 볕이 많이 들어 ‘다순구미’라고 불렸던 온금동 보리마당에서도 굿판이 열린다. 개항 이후 먹고살려고 도시로 왔던 서민들이 둥지를 틀었던 마을이다. 26일 저녁 7시 신안 유점자 굿 명인(전남도 예능보유자)이 씻김굿을 올린다. 촘촘하게 붙어 있는 작은 집들이 철거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기대가 교차하는 산동네에서 여는 이별식이라는 의미가 있다. 산동네 유년의 추억을 되새겨줄 서커스판도 준비한다. 목포 앞바다에 석양이 비칠 무렵 재즈 공연도 연다. 주민 최월배(68)씨는 “기초생활수급자 노인이 많은 동네여서 공연장에 갈 만한 형편이 못 되는 분들이 많아 공연을 기다리신다”고 말했다.

인구 30만의 소도시에서 단원 13명에 불과한 극단 갯돌이 13년째 국내외 마당극·무대극 등으로 풍성한 목포세계마당페스티벌을 이어온 ‘뚝심’의 비결은 무엇일까? 극단 갯돌은 1981년 대학 탈패들이 목포와이엠시에이 회관에 모여 만든 극회 ‘민예’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민예가 창단 기념작으로 일제강점기 암태도 소작쟁의를 다룬 <나락놀이>는 전라도 마당극의 전형을 보여줬다는 평을 들었다. 회원들은 당시 직접 섬에서 한달 동안 살면서 굿과 소리, 뱃노래와 노동요 등을 작품에 융합시켰다. 민예는 청년와이엠시에이 놀이패 갯돌(1985년), 놀이패 갯돌(1987년), 문화패 갯돌(1988년), 목포민족문화운동연합(1990년)을 거치면서 1995년 극단 갯돌이라는 전문연희집단으로 거듭났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인형공장 노동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일이 끝나면 극단에 가서 연기를 배웠던 손 감독은 85년 고향으로 돌아와 갯돌에 합류한 뒤, 지금껏 갯돌의 정신적 주춧돌 구실을 해왔다. 문관수(45) 갯돌 대표 등 6명은 1994년 겨울 선배 단원들이 떠나 한때 해체 위기에 몰렸을 때 고하도 섬으로 합숙을 떠나 한달 동안 난방도 하지 못한 채 상모판 굿, 설장구, 마당극을 익혀 재기의 발판을 만들었다.

2013 목포 마당페스티벌 기획이슈 ‘한여름 밤의 꿈’
2013 목포 마당페스티벌 기획이슈 ‘한여름 밤의 꿈’

“마당극은 시대 연극이어서 중심 뼈는 공동체를 살리는 것이지요.”

손 감독은 “마당극은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좋지 않은 기운(살)을 씻어 보내고, 놀려 보내는 한판의 굿”이라고 말했다. 70년대 초반 전통 민속극(탈춤)과 전통 연희 양식에 서구의 여러 극 양식을 가미해 만들어진 ‘마당극’은 80년대엔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민중문화의 꽃이었다. 극단 갯돌은 전라도 특유의 몸짓과 재담, 소리, 민요 등을 풍부하게 융합시켜 지역의 역사를 마당극과 노래극 등으로 연출해, “남도의 역사를 몸으로 써왔다”(이윤선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소 HK연구교수)는 평가를 받는다.

마당극 <섬사람들>(2004년)은 360년에 걸친 하의도민과 토지의 역사를 다뤘고, <문순득 표류기>(2010년)는 조선시대 두 차례 표류해 일본, 필리핀, 마카오, 중국 등지를 다녀왔던 신안 홍어장수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극화했다. 캐나다·베트남·일본 등 국제무대에도 진출해 남도 문화를 알렸던 갯돌은 이제 “호남의 문화 장두”로 성장했다. 지이화(48) 갯돌 사무국장은 “서남해안권 농어촌을 찾아 풍물을 가르치는 등 지역의 문화학교 구실을 해왔다. 그동안 벌였던 강습회와 축제 기획을 통해 시민 300여명이 후원회원으로 참여하면서 독자적인 생존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마당극 집단인 갯돌은 창단 20돌을 맞은 2001년 9월 목포에서 전국 우수마당극 제전을 열면서 새로운 돌파구를 열었다. 손 감독은 “창단을 축하하러 온 전국 마당극 패들이 페스티벌 제전으로 키우자는 의견을 내놓았던 것이 계기가 됐다. 우리도 살아남고 마당극 문화운동의 정신을 계승·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하고 목포세계마당페스티벌을 꾸려왔다”고 말했다. 마당극 배우들이 도시의 건물과 역사를 ‘마당’ 삼아 전국의 연희패들을 질서 있고 흥미롭게 배치하는 페스티벌 기획자로 나선 점이 이색적이다. 올해 페스티벌을 열면서도 시·도의 보조금과 후원금 외에도 자체 기금을 7000만원쯤 투입하고, 단원들은 인건비를 받지 않는다.

갯돌은 갯바닥에 구르면서 연마된다. 단원들은 월 100만원 안팎을 받으면서도 “민중의 살과 한을 푸는 예인”, “사람을 껴안고 사회를 춤추게 하는 광대”(채희완 부산대 교수)의 삶을 묵묵히 걷고 있다. 단원 13명 가운데 2쌍이 부부다. 김선종(38)씨는 “나는 원래 연극을 했고, 아내는 마당극을 하다가 2006년 갯돌에 합류했다. 서로 잘 아니까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반면, 사생활이 없다는 점이 단점”이라며 웃었다. 목포시립극단에 있다가 지난해 11월 갯돌로 옮긴 막내 단원 김건우(27)씨는 “갯돌의 행위 자체가 실험적이고, 굿과 민요 등 전통 연희와 관련된 부분이 많아 생동감 있는 모습에 매료됐다. 좋은 마당극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목포/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