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회 부산국제영화제

무거운 빈가방 2019. 10. 12. 14:05

와스프 네트워크 (2019) Wasp Network

 

스릴러/범죄/미스터리프랑스, 스페인, 벨기에, 브라질 123

(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

(주연) 페넬로페 크루즈, 에드가 라미레즈

 

줄거리 :

90년대 초, 쿠바 본토를 공격하는 반 카스트로테러리스트 조직에 침투하기 위해 마이애미에 스파이 단체를 만들었던 소수의 쿠바 사람들의 이야기.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이 페넬로페 크루즈, 에드가 라미레스,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을 캐스팅해 그만의 스타일로 긴장감 넘치는 시대극을 선보인다.

(2019년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쿠바가 화염에 쌓여있다.  테러가 일어났다.


    미국으로 탈출한 비행기 조종사들은 환영 받는다. 이들은 탈출한 쿠바를  공격하는데 가장 유용하기 때문이다.

    물자는 풍부한데 조종사가 부족하다.



              망명자들의 가족 모습. 부부는 아니다.  

             와스퍼 내트워크 운영자  안토니오 게레로’(아래 실제 사진이 있다) 와 르네 부인(페넬로페 크루즈)


            이 결혼식은 나중 마음이 쓰리다.  이러면 안되는데 개인적 취향을 어이하랴! 카스트로도 말리지 못한다.




 영화에서는  이들을 판단하지 않는다. (아래에 실제 사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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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공산화 이후

쫓겨난 사람들 중심으로 민주주의 쿠바동맹을 만든다..

이들은 쿠바를 탈출하는 사람들을 구하는 게 주목적이다.

경비행기 조종사 르네는 쿠바를 탈출하여 미국으로 간다. 먹을 것이 없고 기름도 날마다 체크하는 모든 생칠품이 부족한 국가에 진절미가 난다고 하소연하고 제공된 햄버그를 매우 줄겁게 맛있게 먹는다. 풍족한 사획 미국이라고.

망명 허가이후 반쿠바 동맹(CANF)의 대표인물인 <루이스 포사다 카릴레스>가 르네에게 접촉한다. 비행기를 몰면 돈을 주겠다고 난민을 같이 구하자고 .

쿠바에서 미국으로 넘어오는 난민을 구하기 시작하지만 이들이 벌이는 일은 이것 뿐만 아니디. 마약 밀수, 쿠바내로 들어가서 사건을 일으키는 등 점점 더 많은 일을 벌린다. 르네는 나중에 오직 난민 구하기만 하겠다고 한발 물러선다. 물론 미국엔 르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비숫한 조종사들, 일반인들도 망명하였고 이들은 모두 먹고살기 위해 반쿠바 세력들에게 협조 하는 사람들이 많다.

 

쿠바에 둔 아내와 딸은 배반자 가족이란 낙인 때문에 힘들다.

아이는 주변 아이들과 늘 싸운다. 아내는 남편이 미국으로 오라는 요청을 거절한다.

남겨진 가족과 망명한 자의 운명은 어이될까?

 

냉전 시대에 쿠바는 쏘련의 미국에 대한 전초기지였고 쏘련의 원조덕으로 넉넉하게 산다. 그리고 3세계 공산투쟁에 지원도 많이한다.

그런데 쏘련이 무너졌다. 물자 부족으로 쿠바는 엄청 시달린다(이건 북한도 마찬가지이다.) 이제 쿠바는 곧 망할 것이다는 기대에 부푼 세력들은 금방 망할 것 같은 쿠바가 무너지지 않고 잘도 나름 버티니 오히려 다급해 진다.

이 시기 쿠바의 유지 자금은 거의 관광산업이었다. 그래서 관광산업만 무너뜨리면 쿠바는 숨통이 끊어진다.

경비행기로 수시로 아바나 등지로 가서 삐라를 뿌리고 관광지에 총질을 하니 관광객들이 동요하고 쿠바 정부도 골머리다. 급기야 호텔 등에 폭탄 테러를 감행하니 그 피해 또한 막급이다.(그 중 가장 악명 높은 것이 바로 73명이 사망한 1976년 민간 여객기에 폭파사건이다.)

물론 미국의 묵인하에서다.

 

쿠바는 이런 테러단체의 동행 파악과 정보를 위해 미국내 비밀조직을 만들고 난민 중심으로 스파이를 심는다. 이 이름이 와스퍼 네트웍이다.

<와스퍼 네트워크>(감독 : 올리비에 아사야스 ,2019) 는 쿠바 미국을 오가며 테러와 반테러의 움직임과 가족들의 모습을 담는다. 그리고 이에 대처 하는 정부의 의견을 보여준다.

소설을 영화화 했지만 일어난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만들었다. 그런데 감독은 어디에도 결코 치우치지 않는다. 그냥 그들의 생각. 미국과 쿠바의 이야기를 담담히 담아낸다. 사건 중심으로 담다 보니 가족애나 이들의 삶, 사랑, 어려움 등을 다루는 데는 약간 부족함을 보인다. 그래도 넘치는 긴박감이나 반전 등은 제법 땀을 쥐게 만든다.

 

감독은 묻혀져 버리는 사건에 대한 알리고 싶은 마음이 큰 모양이다. 드라마적 요소 보다 사실을 알리려는 노력에 더 배치를 한 이유일 것이다. 그러니 영화적 재미는 좀은 떨어지지만 우린 알지 못하고 그냥 넘어갔던 사실들이 이 영화를 통해서 하나 더 알고 미국의 정책에 대해서도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빌클린턴 대통령의 뉴스가 세계 언론을 타고 나온다. 반대로 세계 언론을 탈 수 없는 카스트로 의장은 미국 기자와의 인터뷰를 한다. "우리가 네트워크를 운영하여 쿠바에 테러에 감행하는 자들을 많아 막았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스파이를 가지고 있고 운영하는 미국이,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작은 단체를 만든 것을 비난하니 이것은 정말 적반하장이다.‘

이 두 장면은 세계적 힘의 차이와 쿠바에 대한 미국의 모습도 잘드러난다.


참조 : 이 영화에서 나오는 반쿠바혁명 단체

CANF(Cuban American National Foundation) : The Cuban American National Foundation (CANF) is a Cuban exile organization. Established in Florida in 1981 by Jorge Mas Canosa and Raúl Masvidal, CANF is an organization with numerous members in the United States and other countries.[1] Following the death of its founder[which?] in 1997, CANF began to lose its ideological cohesion provided by Mas Canosa, which led a substantial segment of its membership to split and form the Cuban Liberty Council in 2001.

쿠바 미국 국립 재단 (CANF)은 쿠바 망명 조직이다. 1981년 호르헤 마스 카노사와 라울 마스비달에 의해 플로리다에서 설립된 CANF는 미국 및 기타 국가에서 수많은 회원을 보유한 단체입니다. [1] 1997년 창립자[어느]가 사망한 후, CANF는 마스 카노사(Mas Canosa)가 제공한 이데올로기적 응집력을 잃기 시작했으며, 이로 인해 2001년 쿠바 자유 평의회를 분할하고 결성하는 데 상당한 회원국이 되었다.



 

인터넷에서 찾은 글로 마무리한다.


http://blog.daum.net/raelianwaltz/6746115

 

테러 막으러 미국 간 쿠바 5, 10년째 옥살이

 

미국의 이중 잣대...테러 막았더니 '종신형'

     

변정필 기자 bipana@jinbo.net / 200809121738

      

912일은 '쿠바 5'이라고 불리는 제라드도 에르난데스(Gerardo Hernandez), 안토니오 게레로(Antonio Guerrero), 라몬 라바니뇨(Ramone Labanino), 페르난도 곤잘레스(Fernando Gonzalez), 르네 곤잘레스(Rene Gonzalez)가 미국의 고등 보안범 감옥에 갖힌지 꼭 10년이 되는 날이다.

 

오늘 세계 109개국 미 대사관 앞에서는 이 '쿠바 5'에 연대하고, 석방을 촉구하는 집회와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공동행동의 날인 12일에 앞서 한국에서도 11일 미 대사관 앞에서 쿠바5인 석방 및 미국의 쿠바 테러 지원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12일 공동행동에 하루 앞서 한국에서도 기자회견이 열렸다. 17개 정당, 노동조합, 사회단체 및 11명의 개인은 기자회견을 통해 미국 정부의 쿠바5인에 대한 즉각 석방 및 반쿠바테러조직에 대한 지원과 비호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후 항의서한을 미 대사관에 전달하고 있다

    

'쿠바 5' 사건은 테러에 대한 미국의 '이중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상징적 사건이다.

    

쿠바 정부는 1990년대 초 쿠바에 대한 테러공격을 예방하기 위한 정보 수집을 목적으로 이 5인을 미국으로 보냈다. 반쿠바 테러리스트들이 수시로 쿠바의 항구, 호텔, 야간에 고속정을 이용한 해안 마을을 습격했고, 이로 인한 사망자가 수천명에 달했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악명 높은 것이 바로 73명이 사망한 1976년 민간 여객기에 폭파사건이다. 5명의 주 임무는 바로 이런 테러공격의 정보를 쿠바 정부에 전송하는 것이었다.

    

테러에 대한 미국의 이중적 태도

 

쿠바 정부는 미국 정부에 협력을 요청하기 위해 그들의 기록을 미연방수사국(FBI)에 보냈다. 그러나 그것이 실수였다. 미연방수사국(FBI)"간첩행위 모의", "국가안보위협"이라는 죄목으로 즉각 이들을 체포했다.

 

노엄 촘스키는 이 사건을 두고 "완전히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다. 노언 촘스키는 "쿠바는 미국에게 테러와의 싸움에서 협력하자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미국도 사실상 쿠바에 관련 정보를 얻기 위해 사람을 보내면서도, 그 다음에 한 일은 테러 조직에 잠입했던 쿠바인들을 체포하는 것이었다"고 비난했다.

 

검찰은 이들에 대해 26가지 혐의로 기소했다. 이 중 24가지는 가명사용, 정식으로 외국 정보원 등록을 하지 않고 정보활동을 한 혐의였으며, 나머지 두 가지는 살인예비 음모와 테러예비 음모였다.

 

그러나 119권에 달하는 재판기록, 15건의 사전 심문기록, 800여점의 증거물품이 제시되었고, 두 명의 퇴역 미군 장성 및 백악관 대통령 고문을 비롯한 70여명이 넘는 증인들이 증언대에 섰다.이 증거에는 미중앙정보국(CIA)이 확보한 2만여 페이지에 달하는 교신기록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이들이 미국에 '테러'를 가할 '음모'를 꾸몄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10년 동안 미국에 수감되어 있는 '쿠바5' [출처: www.freethefive.org]

    

그리고 반 쿠바 정서가 팽배한 마이애미에서 열린 재판에서 에르난데스와 안토니오 게레로, 라몬 라바니뇨는 종신형, 르네 곤잘레스와 페르난도 곤잘레스는 각각 징역 19년형, 15년 형이 내려졌다.

  

자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정보수집을 했던 '쿠바 5'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20075월 테러혐의로 법정에 섰던 루이스 포사다 카릴레스의 석방과 대조된다. 루이스 포사다 카릴레스는 1961년 쿠바 카스트로 정권 전복을 위한 픽스만 작전, 73명이 사망한 76년 쿠바 민간비행기 폭파사건을 비롯해 니카라과의 악명 높은 콘트라 전쟁을 직접지원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부당한 인권유린의 10

 

'쿠바 5'은 체포되고 나서 재판이 열리기까지 17개월 동안 독방에 갖혀 서로간의 교신은 물론이고, 가족과의 접견이 완전히 차단되었다. 심지어 재판의 향방에 있어 결정적 시기인 1심 선고 공판 전 48일간과 항소심을 준비하던 20033월에는 재차 독방에 수감돼 변호인의 접견마저 차단 당했다. '국가 안보상'의 이유를 내건 미국 정부의 '특별행정조치'에 따라서다.

 

여기에 대새 국제인권단체인 엠네스티 인터내셔널은 20071월 미 국부무부에 보낸 서한에서 "이런 조치는 불필요하게 가혹한 것이며, 수감자들에 대한 인도적 조치를 위한 기준과 가족 생활을 보호할 국가의 의무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20053월에도 '자의적 구금에 관한 유엔 워킹그룹(United Nations Working Group on Arbitrary Detention)'이 쿠바 5인에 대한 구금이 자의적인 것이자 시민적, 정치적 자유에 관한 국제협약 14조를 위반한 것이라며 미국 정부의 수정 조치를 요구하는 결정을 내린바 있다.

 

끈질긴 법정 안팎의 싸움 끝에 20086월 연방항소법원은 '쿠바 5'에 대한 혐의는 그대로 인정하고, 대신 5인 중 종신형을 받은 3인의 형량을 무효화했다. 연방항소법원은 '최고급 정보를 모으거나 전송한 바가 없다'고 결론내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쿠바 5인 석방을 위한 전국 위원회'는 그들의 혐의가 인정된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쿠바 5인 석방을 위한 전국 위원회'의 글로리아 라 리바는 "이 다섯명은 무죄다. 그들은 테러를 막아 생명을 구했다. 그들은 무기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미국의 국민들에게 어떤 해도 입히지 않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안토니오 게레로의 최후진술

안토니오 게레로 [출처: www.freethefive.org]

 

CIA가 반혁명적인 요원을 모집하고, 돈을 주고 훈련 시키는 것, 피그만 침략, 몽구스 작전, 군사개입을 위한 근거들, 국가 수장들에 대한 암살 기도, 무상 그룹의 침투, 사보타지, 공해 침공, 정찰 비행, 화약 약품 뿌리기, 해안선과 빌딩에 총을 쏘는 것, 호텔과 다른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여행 중심지에 폭탄 터트리기, 모든 종류의 잔혹하고 사악한 도발 행위등이 (쿠바에 대한 공격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결과는 이렇습니다.

 

34백명 이상이 사망했고, 2천명 이상이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장애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생활의 원천인 경제에 실질적으로 해를 입었고, 수십만의 쿠바인들이 가혹한 봉쇄조치와 적대적인 냉전 분위기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있습니다. 테러와 어려움, 고통은 전체 쿠바인들이 겪고 있습니다...

 

이 나라(미국)은 이것을 막기 위해 무엇을 했습니까? 실제로 아무것도 아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공격은 멈춰지지 않았습니다. 오늘 이런 행동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자유롭게 마이애미 거리를 활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라디오 방송국과 다른 언론은 쿠바 민중에 대한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쿠바민중을 증오합니까?

쿠바가 다른 길을 가고 있어서입니까?

우리가 사회주의를 원하고 있어서입니까?

문맹을 퇴치해서 입니까?

무상교육을 해서입니까, 아니면 무상의료를 해서입니까?

아니면 어린이들에게 새로운 여명을 열어주고 있기 때문입니까?

 

쿠바는 한번도 미국을 위험에 빠뜨리거나 테러행위를 한 적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