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文章/[冊&房]

김박 2016. 10. 13. 21:48

소설 『끝에서 두번째 여자친구』

" 『끝에서 두번째 여자친구』는 타이완을 무대로 한 소설이지만, 대한민국 대도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는 전혀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다" - 소설가 정이현 -

하지만 나는 상당한 이질감을 느꼈다. 정이현은 2006년 『끝에서 두번째 여자친구』와 비슷한 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를 조선일보에 연재한 바 있다. 대도시 젊은이의 사랑과 결혼에 관한 트렌드 소설이었다.

우선, 화자들의 이름에 "그레이스", "키키", "조니", "잭"과 같은 영어 별칭을 혼용해서 쓰는 타이완 도시 문화가 낯설었다.

그리고 뭔가 허전했다. 가령 이런 구절이다.

"생각해 봤냐? 우리가 이렇게 힘들게 공부하는 게 무엇 때문인 것 같아?" 밍홍은 계속 물었다. "좋은 대학에 가고, 유학하고, 돌아와서는 나라에 보답하고, 그리고?"

즈핑이 트림을 하자 라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난 공부해서 나라에 보답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 난 그저 좋은 대학에 가면 여자 꼬시기가 좀 쉬울 거라고 생각해."

유학생들을 보면 대개 일본, 남한, 타이완 학생들이 초반에 쉽게 어울린다.

패션이나 팝송, 아메리칸 영화 등 문화적인 측면에 대한 공감대가 넒기 때문이다. 세 나라는 일제 식민지 시대 문화유산을 공유하고 있고, 미국의 하위동맹국으로서 아메리칸 팝 문화의 강한 영향력에 있다.

그러나 타이완 유학생은 중국학생과 달리 중국이나 중국문화를 대표한다는 의식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했다.

앵글로 색슨 문화가 근간을 이룬 홍콩 유학생과도 다르다.

또한 자의식이라는 측면에서 타이완 학생은 한반도 적자를 자부하는 남한이나 아시아 강자 의식이 깔려 있는 일본과 다르다.

아마도 타이완은 중국도 홍콩도 아닌 모호한 역사적 지점에 서 있다.

영원한 맹방일 것 같았던 미국도 끝내는 중국을 택하고, 일본이나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저우치가 말했다.

"전 남친의 결혼식이 날 힘들게 하지 않아요. 단지 날 힘들게 하는 건, 내가 영원히 다른 사람들의 '끝에서 두번째 여자친구'라는 거죠"

트렌드 소설이 주는 가벼운 즐거움이 허전함으로 바뀌는 대목이었다.

"『끝에서 두번째 여자친구』는 동아시아 자본주의 사회의 '현재'를 사는 젊은이들은 어떻게 사랑하는가 어떤 방식으로 어른이 되어가는 가의 문제의 핵심을 향해 작가는 성큼성큼 다가선다" - 소설가 정이현-

정이현의 우호적 칭찬이 거북한 대목이다.

유감스럽게 『끝에서 두번째 여자친구』는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 처럼 동아시아 현재 문제의 핵심에 다가서지 못했다.

두 작품 모두에서 동아시아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청년들의 고민은 보이지 않았다.

저패니즈 아메리칸 스타일의 대도시 문화를 소비하고 부유할 뿐이었다.

지속적으로 변주되는 사랑과 섹스에 관한 에피소드는

어쩌면 영원히 끝에서 두번째 여자가 될 운명에 대한 불안감을 떨치기 위한 몸부림이 아닐까 싶었다.

끝에서 두 번째 여자는 분리된 섬 나라 타이완일 수도 있고, 분단된 남한일 수 도 있다.

물질적으로 부유하다는 것은 상대적이고, 일시적이다.

돈만 있고 문화적 정체성과 자부심이 없다면, 잉여와 결핍사이에서 늘 방황할 수 밖에 없다.

사진: Palanque, Chiapas, Mexi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