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_世界旅行/[몽골-Монгол Улс]

김박 2016. 10. 13. 23:03



‘내가 총을 쐇을때 총에 맞아 죽는 사람은 어차피 연약하고 불행한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이다. 그러니 좀 더 죄악에 찌들기 전에 아직 그나마 순결한 상태에서 그들을 죽여주면 그들은 내세에서 더 나은 생을 살게 구원해 주는 것이다.’


술집에서 보드카에 취하면 무차별 사격을 가하던 로만 폰 운게른 슈테른 베르크가 남긴 말이였다.

여운형 선생은  1936년 <월간 중앙>에 게재한 몽골종단기에서  '울겐'이  만주와 몽골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던 이태준 열사를 죽였다고 적었으나  '운게른'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    
 
전쟁광 '운게른'은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군대에서 쫒겨 났으나 1918년 러시아 내전이 발발하자 극동을 지배하던 러시아 백군 세묘노프 휘하에서 악명을 떨쳤다.


그에게 있어 적군은 ‘마라’, 즉 악의 화신이며, 자신이 죽인 적군이 내세에서는 백군으로 다시 태어나 자신의 근위대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1920년 적위군의 공세가 강화되고 '체코군단'의 배신으로 러시아 백위군이 패전을 거듭하자 세묘노프를 후원하던 영국이 지원을 중단했다. 근거지를 잃은 세묘노프는 1921년 북만주를 점령했고, 운게른은 몽골을 침공했다.


몰락이 다가오자 운게른은 종교적 광기를 더했다. 자신은 징키스칸과 부처의 환생이며, 연약하고 불행한 운명을 가진 자들을 죽이는 살인은 극락으로 보내주기 공덕을 쌓는 일이라며 '불교도기사단'을 창설한다.


하루에 한번 마리화나를 피우며 명상에 잠기는 수행을 하면서 운게른을 따르는 천여명의 러시아 백군은 영하 40도의 날씨에 우르가(울란바토르)를 점령하며 약탈과 강간, 학살을 일삼았다.


몽골 사람을 죽이는 방식도 광기가 넘쳐났다. 매일 하루에 버스 정류장 한 곳을 '환생 정류장'으로 지정하여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쏴 죽였다.


운게른은 일제의 후원을 받고 있었다. 신해혁명 후 러시아와 외몽골과 내몽골을 갈라 먹기로 합의했던 일본은 러시아 내전에도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한편 백군 부대에 군사고문을 파견하여 감독하고 있었다.
 
운게른이 몽골에서 깡패짓을 일삼았을 때 그의 일본인 군사고문이 이태준 열사를 불령선인으로 지목하며 처형을 요구했다.

지난 주 대학 선배를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만났다. 이태준 열사 이야기가 나오자 고려공산당이 그를 암살했다는 데 사실이냐고 물어 왔다.


이 지역은 고려 공산당의 영역도 아니고 러시아 내전이 한창이었던 때인데 누가 그런 말을 하냐고 물었더니 교회 목사님이 그랬단다.


법륜 스님이 성탄절에 찾아가서 축하 메시지를 전한 곳인 그 교회는 갈릴리 교회다. 목사님은 70년대 도시산업선교회로 감옥에도 가고 87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대변인도 역임했다. 대선 때는 김영삼 씨를 공개 지지했고 2006년에는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역임했다.




칭기스칸 공항에서 그를 보았다.
어머니를 닮은 그는 멀리서도 알아 볼 수 있었다. 
 
몽골 울란바토르 시내에는 이태준 열사 기념공원이 있다.



사진: 신병입대식에서 행진하는 몽골 병사들,
          칭기스칸 광장, 울란바타르(201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