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껄임

gingery 2014. 8. 26. 17:29

"부르조아들의 잔혹함은 16세기 말에, 그리고 17세기에는 더욱 심해졌다.

이들이 가진 문제의식은 빈민들이 자신들에게 피해를 입히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일상생활의 구조. 상.91쪽

 

"디종의 시 당국은 1656년에 시민들이 개인적으로 자선행위를 하거나

가난한 자를 유숙시키는 것을 금지시키기도 했다."-1-1. 92쪽

 

"모든 사치는 낡아빠지게 되고 유행은 지나가게 된다.....

사치는 사실 그 어느것으로도 메울 수 없는 사회적 수준의 차이를 반영하는 것이며,...

이것은 곧 영원한 '계급투쟁'이다."-253쪽

 

"대체로 시골에서의 변화란 도시의 사치의 반영이거나 혹은 그 결과"

"도시가 축적한 돈이 너무 많으면 곧 근접한 시골에 돈을 이전하여 투자한다."-397쪽

 

 

 

"로마의 유산인 목욕탕은 중세까지만 해도 유럽 전역에서 일반적이었다."

"그 곳에서 남녀가 나체로 난잡하게 섞여 있었던 것이다."-465쪽

 

 

"화폐는 또한 자신의 땅에서든 남의 땅에서든 남을 착취하는 방법이며

그 착취를 가속시키는 방법이기도 하다"-일상생활의 구조, 하. 634쪽

 

"로마 시대의 하층으로서 세금이 면제된 계급을 가리켰다.

그 어원은 '아이를 낳는 사람', 즉 단지 아이를 많이 낳음으로써밖에

 국가에 공헌하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켰다."-700쪽 각주

 

"상업 자본주의, 산업 자본주의, 금융 자본주의 하는 식으로 단계별 발전 또는 연속적인 도약으로 파악하는 것은 오류이다......

 

예전의 대'상인'들은 결코 전문화하는 법이 없었으며 상업, 은행업, 금융업, 증권투자, '산업'생산

등을 차별없이 동시에 연속적으로 수행했다......

 

여러 행태의 자본주의적 공존은 13세기의 피렌체, 17세기의 암스테르담, 18세기 이전의 런던

등지에서 이미 볼 수 있었던 현상이다."

출처 :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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