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악

푸른별 2014. 6. 27. 13:13

엄정행 가곡모음 

 

 

 

   엄정행 가곡모음

 

1. 기다리는 마음 (김민부 작사 / 장일남 작곡)

2. 그리운 금강산 (한상억 작사 / 최영섭 작곡)

3. 그 네 (김말봉 작사 / 금수현 작곡)

4. 선구자 (윤해영 작사 / 조두남 작곡)

5. 비 목 (한명희 작사 / 김동진 작곡)

6. 목련화 (조영석 작사 / 김동진 작곡)

7. 동심초 (김안서 작사 / 김성태 작곡)

8. 가고파 (이은상 작사 / 김동진 작곡)

9. 떠나가는 배 (양중해 작사 / 변 훈 작곡)

10. 황혼의 노래 (김노현 작사 / 김노현 작곡)

11. 나물 캐는 처녀 ( 현제명 작사 / 현제명 작곡)

12. 그리움 (이은상 작사 / 홍난파 작곡)

13. 청산에 살리라 (김연준 작사 / 김연준 작곡)

14. 보리밭 (박화목 작사 / 윤용하 작곡)

15. 님이 오시는지 (박문호 작사 / 김규환 작곡)

16. 사공의 노래 (함호형 작사 / 홍난파 작곡)

17. 고향의 노래 (김재호 작사 / 이수인 작곡)

18. 희망의 나라로 (현제명 작사 / 현제명 작곡)

 

 

[어떻게 지내십니까] '가곡 대중화의 선도자' 성악가 엄정행

1943년 2월 12일 (경상남도 양산 출생)

 

"오 내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사랑 목련화야 …(중략)…그대처럼 우아하게 그대처

럼 향기롭게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나 값있게 살아가리라…." 가곡 대중화를 이끈 국민 성악가 엄정행(71)의 대표곡이자 국민 가곡인 '목련화'의 노랫말이다. 추운 겨울을 모질게 이겨낸 목련의 꽃눈처럼 '우아하게, 향기롭게, 값있게 살아가는' 엄정행의 요즘 세상살이와도 딱맞는 가사이기도 하다. 5년째 고향인 경남 양산에 음악연구소를 운영 중인 그를 만나러 가는 12일 차창 속 봄볕은 목련의 만개를 재촉하기에 충분하리만큼 따사로웠다. 양산 옛 시가지권에 있는 건물의 4층 한 편에 마련된 '연우(연구하는 친구)엄정행음악연구소' 사무실. 7~8명의 노인네 속에서 낯익은 중년신사가 웃음기를 띠고 기자를 맞았다.

 

5년째 고향 양산서 음악연구소 운영 / 주 3일 머물며 재능기부와 장학사업 / "좋아하는 음악과 고향친구와 어울려 / 동심 속에서 '인생 2막' 보내고 있죠"  

"모든 게 다 시기가 있지 / 지금은 내려놓을 때지 / 한평생 음악으로 사랑 받았는데, / 이제 받은 사랑 나눠줘야지"

 

나이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젊은 모습에 한번 놀라고, 탱탱한 피부에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하며 "출생신고를 잘못한 게 아니냐"는 농으로 인사를 건넸다. 그는 "좋아하는 음악과 고향 친구들과 어울려 동심 속에서 살고 있다"며 근황 겸 젊음의 비결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음악을 공부하는 어린학생들과 음악인들과의 자리를 하다가 잠깐의 시간이 날 때면 어릴 적 뛰놀던 친구들과 어울린다. 옛날 얘기하며 웃고 떠드는 평범한 마을 노인이야"라며 웃었다. '외국물 먹지 않은 토종 성악가' '가곡 대중화의 선도자' 등 갖가지 별칭을 갖고 있는 국내 대표적 성악가 테너 엄정행의 제2 인생길은 고향에서 이처럼 음악인들과의 어울림 속에서 재능기부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는 지난 2005년부터 8년째 고향을 찾아 음악인들의 후원하고 있다. 대학교수직을 정년퇴임한 지난 2008년 음악연구소를 설립하면서 1주일에 3일간은 아예 양산에서 산다. 늘그막에 시작한 원룸생활이 불편할 만도 하겠건만 그는 라면으로 가끔씩 끼니를 때우기도 하지만 '친구'와 '음악'이 있어 불편함을 느낄 겨를이 없단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그리울만도 할 것 같다고 물었다. 엄정행이 고향에서 각종 연주회 개최 등 음악봉사를 통해 아름다운 인생2막을 보내고 있다. 그는 "모든 게 다 시기가 있지. 잡을 때와 놓을 때, 지금 나는 내려놓을 때지. 한평생 음악하며 사랑을 받았는데 더 무엇을 욕심낼 수 있겠나. 더군다나 음악인이 퇴직 후에도 계속해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다는 이 자체가 복 받은 거 아니냐"는 반문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는 양산에서 음악인들에 대한 후원과 함께 장학사업도 하고 있다. 요즘은 한발

더 나아가 마을별로 노인잔치도 준비하고 있다. 이 모든 게 그동안 자신이 받은 사랑을 나눠주는 것이란다. 중·고교 시절까지 양산에서 지낸 그는 고향에 남다른 애착이 많다. 그러면서 어릴 적 고향에서의 일화도 소개했다. "6·25가 발발한 초등학교 2학년 때쯤 북한 사병이 아궁이에 휘발유로 불을 붙이다 내 다리에 심한 화상을 입혔지. 매일 자리에 누워있을 그때 음악교사였던 아버지가 음악을 들려줬어. 동요들인데 거짓말처럼 '아프다'는 사실조차 잊고 음악에 집중한 적이 있었지." 그는 "그때 성악가로의 길은 전혀 생각지 않았을 때인데 돌이켜 보면 관심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고향에서 음악인들이 모여 불편없이 연습을 할 수 있는 소박한 극장을 짓고 싶어한다. 엄정행이 고향에서 각종 연주회 개최 등 음악봉사를 통해 아름다운 인생2막을 보내고 있다.

 

70대라고는 믿기지 않는다고 하자그는 어릴적 운동선수시절을 꺼냈다. "중학교 입학하면서 선생의 권유로 배구선수가 됐는데 동래고도 배구 특기생으로 들어갔어. 그때 고된 훈련으로 기본 체력은 갖춘 것 같애. 연간 90차례가 넘는 공연을 해도 힘이 달리지 않았거든." 자연스레 그가 음악인의 길로 가게된 계기로 이어졌다. 그는 "당시 9인조 였던 배구가 6인조 국제식으로 바뀌면서 174㎝ 키로는 장신들에게 밀리더라고. 때마침 아버지가 '음악에 소질이 있으니까 이참에 음대로 진학하라' 권유하면서 경희대 음대로 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음악인으로서 길은 어땠는지 궁금했다. "노래가 밥벌이가 안될 때인데 대학 졸업 후 악기점에서 일도 하고, 신촌에서 커피점도 했지. 1968년도 결혼한 뒤 서민아파트에서 양장점을 했는데 그때는 매일 단추 구입하랴, 미싱질 하랴, 6~7년 음악과 다른 세상을 살았지." 그는 그 당시 서울대 음대출신인 부인 이미혜자 씨가 그의 뒷바라지를 위해 헌신한 것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미안해 한다.

 

그는 어느 자리를 가도 '가족은 음악과 함께 내가 살아가는 힘의 원천'이라고 얘기한다. "그러는 사이 1976년 경희대 교수가 되고, 3년 뒤에는 MBC 라디오 아침 프로그램 '안녕하십니까. 엄정행입니다'를 10년 동안 했지. 그때 가곡알리기에 앞장섰고 그로인해 '가곡전도사' 별칭도 얻게 되고...." 분위기를 바꿔 "직접 대면하니까 이웃집 아저씨 같다"고 하자 그는 "허~참, 인심 후하고 푸근해 보이는 옆집 아

저씨 이미지가 내 매력 아닌가. 그래서인지 지금도 내 공연을 듣고 싶어하는 곳이 더러 있어. 다음주는 대구에서 공연이 있고.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씩은 공연하고 있다"고 자랑섞인 답을 내놓았다. 엄정행이 고향에서 각종 연주회 개최 등 음악봉사를 통해 아름다운 인생2막을 보내고 있다. 지난 1943년 양산에서 태어난 그는 34년간 대학강단에 서면서 레코드 22종, CD 9장을 냈다. 문교부장관상(81)과 제3회 예술실연자 대상(98), 대한민국 근정포장(2008)을 수상하는 등 한국가곡 대중화를 이끌었다. 지난해에는 양산시민대상을 받기도 했다. 부인과의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딸이 음악교사다. 숱한 별칭을 가진 가곡 대중화의 선도자 엄정행. 요즘 목련화의 노랫말처럼 '값있게 살아가고' 있었다. (부산일보 2013-03.15)

 

 

 

 

 

출처 : 멀뚱박사의 사랑방
글쓴이 : 멀뚱박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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