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푸른별 2014. 9. 20. 23:09

종교사상, 평화와 구원으로 가는 길: 김수환과 법정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머리에서 가슴으로”… ‘사랑’ 실천한 김수환 추기경

“물질에서 영혼으로”… ‘무소유’ 일깨운 법정 스님

사상의 가장 오랜 벗은 종교다. 아니 종교는 사상의 어머니다. 서양의 기독교든, 동양의 불교든 종교는 우리 인류가 갖게 된 최초의 본격적인 사상이다. 근대사회가 도래하면서 종교와 사상은 분리되기 시작하고, 사상은 다시 철학사상ㆍ사회사상ㆍ과학사상으로 나뉘어 발전해 왔다. 하지만 이런 사상의 발전 과정에서 종교는 중대한 영향을 미쳐 왔다. 예를 들어, 기독교적 민주주의, 유교적 자본주의, 불교적 생태주의는 구체적인 사례들이다.

종교사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사회학적으로 종교는 초자연적 관념의 현실을 창조해 절대적 의미와 목표를 제공하는 믿음과 의식(儀式)의 문화 제도라고 정의된다. 인간이라면 부딪치게 되는 근본적 질문들, 즉 왜 사느냐, 어떻게 사느냐, 무엇을 위해 사느냐에 종교는 믿음이 수반된 인식 틀을 부여한다. 주목할 것은 종교에서 믿음의 가치판단과 인식의 사실판단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점이다.

바로 이 점이 종교사상을 다루는 데 어려움을 안겨준다. 무엇인가를 믿는다는 것은 믿지 않는다는 것과 끝없이 구별하는 이분법을 작동시킴으로써 배타적 속성을 갖게 한다. 하지만 동시에 믿음과 인식이 긴밀히 결합돼 있는 종교사상은 그 어떤 사상보다 우리 인간의 삶에 근본적인 의미를 선사한다. 인간은 본디 연약하고 외로운 존재다. 삶의 위안과 평화와 구원은 인류의 역사가 지속되는 한 사상이 가져야 할 가장 소중한 덕목 가운데 하나다.

우리 역사에서 주목할 종교사상가들은 결코 적지 않다. 원효ㆍ지눌ㆍ휴정ㆍ경허로 이어지는 불교사상은 물론 최제우와 최시형의 동학사상, 강일순의 증산교 및 박중빈의 원불교사상, 그리고 김교신과 함석헌의 기독교사상은 우리 사상의 모험을 풍요롭게 해 왔다. 이제 나는 두 종교인의 삶과 사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두 사람은 기독교와 불교를 대표해 국민 다수에게, 무엇보다 영혼이 외로운 이들에게 위안과 평화를 안겨준 종교인들이다.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法頂) 스님이 그들이다.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

김수환, 사랑의 기독교사상

우리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지식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다산 정약용이다. 정약용은 한때 천주교도였다. 안드레아가 그의 세례명이었다. 자찬묘지명에서 그는 천주교로 향한 마음을 끊었다고 말했지만, 천주교인 서학이 그의 사상의 한 원천을 이뤘던 것으로 보인다. 서학은 우리 사회 모더니티의 상징 가운데 하나였다. 천주교를 포함한 기독교는 개인적 신앙생활에서 대학과 민주주의를 포함한 사회제도에 이르기까지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해방 이후 가장 주목할 기독교인을 꼽으라면 나는 함석헌과 김수환을 들고 싶다. 함석헌은 1970~80년대 민주화운동의 구심점을 이뤘다. 김수환 역시 민주화운동에 기여했지만, 동시에 오랫동안 ‘국민적 멘토’의 역할을 맡았다. 김수환은 언제나 사회적 약자들의 벗, 무엇보다 마음이 가난한 이들의 정신적 스승이었다. 2009년 그의 선종을 추모하기 위해 모인 40만의 시민 행렬은 그가 우리 사회에 드리운 정신적 영향의 그늘을 새삼 돌아보게 했다. <김수환 추기경의 친전> 표지.

김수환은 1922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일본 조치대학, 성신대학(현 가톨릭대), 독일 뮌스터대학에서 공부했다. 1951년 사제를, 1966년 주교를 서품 받았고, 1968년 대주교로 승품해 서울대교구장에 올랐으며, 1969년 당시로는 최연소로 추기경에 서임됐다. 이후 그의 활동은 눈부셨다. 그는 늘 감성과 이성을 포괄한 영성의 가치를 중시했고, 백 마리 양떼보다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소중히 여기는 기독교적 사랑을 실천했다.

김수환이 남긴 글과 강론들은 2001년 팔순과 사제 서품 50주년을 기념하여 <김수환 추기경 전집> 18권으로 나왔다. 그가 남긴 말들을 엄선한 책이 <김수환 추기경의 친전>(2012)이다. 차동엽 신부가 엮은 이 책은 기독교의 사랑을 일생을 통해 증거해 온 그의 삶과 사상을 압축해 놓고 있다. ‘친전(親展)’은 편지를 받는 사람이 직접 펴 보라고 편지 겉봉에 적는 말이다. 이 책은 김수환이 우리에게 보내는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칠십년이 걸린’ 사랑의 편지다.

그의 종교사상을 한마디로 요약하기는 어렵다. 사회학 연구자로서 두 가지를 주목하고 싶다. 첫째, 그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누구보다 깊게 통찰하고, 사랑과 희망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믿음의 사상가였다. 둘째, 그는 마더 테레사가 말한 적이 있는 ‘한 번에 한 사람만을’ 껴안으려고 한 진정한 실천의 사상가였다.

그가 선종한 다음 우리 사회가 정신적 주인을 잃었다는 느낌을 가진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누구는 말년에 그가 남긴 정치적 발언을 아쉬워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개인의 삶과 사상은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 평가돼야 한다.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이 없어라/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 그의 묘비명이다.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Pro Vobis et Pro Multis)’는 그의 추기경 문장(紋章)에 적힌 말이다. 우리와 모든 이들을 위한 우리 시대의 목자는 다름 아닌 스테파노 김수환이었다.

법정, 무소유의 불교사상

한때 불교를 공부한 적이 있다. <금강경>과 <벽암록>을 읽고, 경허에 대한 글을 쓰기도 했다. 동양에서 불교사상은 대승불교와 소승불교, 교종과 선종, 임제종과 조동종의 발전에서 볼 수 있듯이 오랜 역사를 갖는다. 근대 이후 우리 불교를 돌아봐도, 경허를 위시해 만공, 한암, 동산, 효봉, 성철, 그리고 만해는 결코 잊을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 표지.

이들 가운데 사상의 측면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은 경허와 성철이다. 경허가 휴정 이후 쇠락해온 우리 불교를 일대 중흥시켰다면, 성철은 ‘돈오점수냐, 돈오돈수냐’의 논쟁을 점화시켜 그 사상에 깊이를 더했다. 이들과 함께 내 시선을 끈 또 한 사람은 법정이다. 그는 책과 법문을 통해 우리 시민들과 늘 소통해 왔다. 불립문자(不立文字)는 선종의 핵심 교리다. 하지만 올바른 깨달음은 불립문자의 구속조차 벗어나는 ‘말 없는 말’의 메시지를 전하는 데 있다. 법정은 이 말 없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워준 탁월한 스승이었다.

그는 1932년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났다. 대학 재학 중인 1955년 효봉 스님을 만나 출가했고, 1959년 통도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한편으론 경전 편찬에, 다른 한편으론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그는 1975년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수행을 이어 나갔다. 1994년 시민단체 ‘맑고 향기롭게’를 만들어 이끌었고, 1997년 서울 성북동에 길상사를 열어 포교에 힘쓰다가 2010년에 입적했다.

법정이 성철과 함께 ‘스님의 대명사’가 된 까닭은 무엇보다 그의 책들에 있다. <영혼의 모음>(1972)과 <무소유>(1976)로 시작해 <아름다운 마무리>(2008)에 이르기까지 늘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그의 책들은 불교 교리를 쉽고 분명하게 전달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삶과 사회를 돌아보는 데 커다란 마음의 평화와 통찰을 안겨줬다.

<무소유>는 법정의 대표작이다. 이 책이 ‘국민적 수필집’으로 널리 읽히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이 책은 소소한 일상에 담긴 불교의 깨달음을 더없이 유려한 문체로 전달한다. 본래부터 한 물건도 없다는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에서 한겨울 눈이 쌓이면 꺾이는 깊은 산속 설해목(雪害木)에 이르기까지 그가 펼쳐 놓은 이야기들은 ‘영원한 영혼의 모음(母音)’, 다시 말해 어머니의 목소리를 떠올리게 한다.

더불어 이 책은 그의 무소유(無所有) 사상을 전달한다. 책 맨 앞에 놓인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이라는 그의 말은 이기와 탐욕으로 얼룩진 우리 사회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를 지배하는 최고의 신인 물신(物神)의 숭배가 강제하는 일체의 구속에서 벗어나 마음의 진정한 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그는 역설한다.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것은 생각보다 실천이다. 법정의 삶이 빛났던 것은 언제나 스스로 먹을 것을 만들고 땔감을 구했던 더없이 청빈한 무소유의 실천에 있었다. 내가 법정을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사상의 깨달음뿐만 아니라 실천의 모범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삶과 세상을 보는 생각의 틀을 잉태하게 했다는 데 있다. 그는 사상의 분별력과 실천의 진정성을 동시에 보여준, 동구 앞 누구나 쉬어 갈 그늘을 드리운 고향의 오래된 느티나무와 같은 우리 시대의 보기 드문 종교사상가였다.

종교사상의 미래

사회학자들은 현대 종교의 이중적 경향을 지적한다. 종교의 비중은 전통 사회보다 분명 감소했다. 하지만 동시에 종교는 미국 등 선진국들에서 볼 수 있듯이 개인적 및 사회적 차원에서 여전히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우리 사회의 경우 국민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불교ㆍ개신교ㆍ천주교 등을 종교로 갖고 있고, 이러한 추세는 계속 유지돼 왔다.

‘신은 죽었다’고 말한 이는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다. 그러나 구원에의 갈망이 더 커져 온 게 우리 시대가 보여주는 또 다른 자화상이다. 그 까닭은 정체성의 위기에 있다. 관료화가 가져온 소외든, 양극화가 가져온 절망이든 오늘날 넘치는 지상의 비명들은 정체성의 위기를 낳았고, 이는 기독교적 사랑이든 불교적 해탈이든 정체성의 존재론적 평화를 소망하게 만들어 왔다.

‘우리 시대 사상의 풍경’에서 그 사상의 주체는 지식인들인 동시에 이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보통 시민들이다. 종교사상은 이러한 시민들의 마음의 문을 열고 사회의 창을 열게 해야 한다. 물질문명이 아무리 고도화된다 하더라도 평화와 구원에의 갈망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 마음의 문을 열고 사회의 창을 열어 존재론적 평화와 구원으로 가는 길 위에서 우리 사회는 김수환과 법정을 언제나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의 ‘우리 시대 사상의 풍경’ 경향신문 2013.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