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푸른별 2014. 9. 23. 15:10

하나라도 더 알고 죽자

1980년대 초 대학에 들어와 서양 고대 철학사 강의를 주로 거스리의 <희랍 철학 입문>으로 입문하였다. 표지가 너덜너덜하여 창호지로 덧씌워가며 열심히 읽었다. 고전을 전공하지 않는 인문 학생들을 위한 교양 강의를 책으로 만든 것이라고 했는데도 참 어려웠다. 그렇지만 강의를 따라가기 위해, 대학원 입학시험 준비를 위해, 여러 번 되풀이 읽었다. 지금 생각해도 이 책은 고대 헬라스의 철학을 탈레스부터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깔끔하게 잘 정리한 책이다. 그런데 이런 책을 우리나라 대학생들 가운데 교양으로 읽을 사람이 있을까?

 

거스리의 책이 일종의 전공서적이라면 <지중해 철학 기행>은 그야말로 인문 교양서다. 지중해 지역을 따라가면서 그 지역에 연고를 가진 철학자와 철학 사상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그리하여 공간으로는 헬라스의 밀레토스에서부터 에스파냐의 세비야까지, 시간으로는 탈레스 때로부터 16세기 르네상스까지 서양의 철학사를 서술해간다.

 

탈레스, 헤라클레이토스, 엠페도클레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아우구스티누스 등 고대와 중세 서양의 철학사를 수놓은 밤하늘의 별과 같은 철학자들의 철학 사상을 그들과 관련한 일화를 이야기하지 않고서도 이렇게 재미있게 소개하다니! 이 책을 읽고 얻은 것이 무척 많지만 두어 가지만 집중적으로 이야기하려고 한다. 이 책의 부제(副題)처럼(원서에서는 원래의 제목인) '모든 길은 플라톤으로' 통하니까 말이다.

 

이 책의 저자는 무뚝뚝하게 자기 할 말만 했지만 소크라테스에 얽힌 일화 하나가 떠오른다. 친구에게서 전해들은 이야기이다. 소크라테스는 서양 철학을 상징하는 철인답게 웬 일화가 그렇게도 많은지. 일화의 성격상 진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런 이야기다.                                ▶소크라테스(기원전 470경~399)

 

소크라테스가 사형 판결을 받고 사형을 기다리다가 마침내 그날 아침이 되었다. 같이 사형을 받기로 되어 있는 사형수 한 사람이 참 구슬프게도 자기 고장의 노래인지 시인지를 읊조렸다. 너무나 의미심장하고 애절한 내용에 감동을 받은 소크라테스가 다시 한 번 읊어달라고 졸랐다.

 

그래서 사형수가 심드렁하게 무엇 하러 그러느냐고 물었겠지. 소크라테스 왈, 너무도 좋은 내용이라 배워보려고 그런다고. 어이가 없어진 사형수 왈, 참 댁도 딱하시오. 금방 죽을 사람이 배워서 무엇 하게요? 그러자 우리의 소크라테스가 이렇게 말했단다. "죽기 전에 하나라도 더 알고 죽으려고요."

 

참 우스개인지 일화인지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촌철살인이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한 말은 참 경건하고 진지한 공자님 말씀이다. 그러나 죽기 전에 하나라도 더 알고 죽으려 한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은 빙충맞아 보이기도 하고, 가끔씩은 현실적인, 너무도 현실적인 마누라한테 바가지도 긁히고 구정물도 뒤집어쓰고, 아름다운 미소년과 미소녀를 보면 사족을 못 쓰고 달려가 구경하고, 낫살이나 먹고 점잖지 못하다는 핀잔에 머리를 긁적거리며 의뭉을 떠는, 딱 소크라테스의 말이다. 그런데 철인이란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다 통하는가? 도가 통한 사람들끼리는 과연!

 

왜 헬라스에서 철학이?

아마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랬지? '사람은 나면서부터 알고자 한다'고. 헬라스 사람들은 앎 자체를 알려고 했단다. 그렇지. 공자도 배우고 때마다 익히면 즐겁다고 했지만, 배움이라는 것,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는 말씀하지 않으셨지. 그리고 그걸 알려고 하지도 않으셨고. 그런데 헬라스 사람들은, 배움,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려고 하고 궁금하게 여겼단다. 그리하여 고대 헬라스에서는 마침내 학문(철학)이라는 것이 생겨났단다.

 

헬라스에서 학문이 생겨난 아주 중요한 까닭 가운데 하나로서 이 책의 저자는 고대 언어 가운데서 이 언어에만 독특한 정관사에서 찾는다. 물론 다른 요인도 여러 가지 들고 있지만. 정관사나 부정관사는 인도유럽어에 속하는 언어에는, 몇 나라 말을 제외하고는 대개 발달해 있다. 그런데 처음으로 이런 정관사를 고안해낸 사람들이 고대 헬라스어를 쓰던 사람들이었단다. 정관사를 발명한 언어에 주어진 공로의 월계관이 바로 학문(철학)의 발생이었던 셈이다.

 

왜 정관사는 철학이 태어나는 데 산파 역할을 했을까? 정관사는 어떤 말 앞에 붙어서 그 말을 명사로 만든다. 그리하여 정관사가 붙은 말은 실체가 된다. 쉽게 말하자면 정관사가 붙은 말은 무엇이든 간에 그 무엇으로 불릴 수 있다. 자립적인 존재자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 장미꽃은 붉다'거나 '말이 달린다'고 할 때 '붉다'는 장미의 속성을, '달린다'는 말의 동작을 나타내는 말로서 자립적인 것이 아니지만 장미와 말은 자립적인 것이다.

 

우리말로는 특별히 어느 하나를 한정해서 가리키지 않는 한 장미와 말 앞에 아무런 말이 덧붙지 않지만 영어를 비롯한 인도유럽어에 속하는 대부분의 말들에서는 the rose(la rose, la rosa, die Rose), the horse(le cheval, il cavallo, das Pferd)처럼 반드시 관사가 붙는다. 관사가 붙는 말은 명사이다. 학문은 바로 이 명사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속성을 나타내는 말에도 정관사가 붙으면 명사가 된다. 바로 이렇게 명사가 아닌 것을 명사로 탈바꿈하게 하는 것이 관사이다. 자립적 존재자가 아닌 것도 관사가 붙으면 자립적인 존재자, 추상명사가 되는 것이다. 장미꽃의 속성을 나타내는 말이었던 '붉다'에 관사가 붙어 '붉음(the red, le rouge, il rosso, das Rot)'이 됨으로써 '붉음'은 추상명사가 되고 학문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말 '붉음'은 형용사 '붉다'에 명사화접미사 'ㅁ'이 붙어서 명사가 된 것이지만 서양 언어에서는 그냥 앞에 정관사만 붙어서 그 모양 그대로 명사가 된다. 헬라스 사람들은 정관사 덕택에 처음으로 명사가 아닌 것을 자유로이 명사로 만들 수 있었단다. 이렇게 만들어낸 추상명사는 연관된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 설명하고 규정할 수 있고, 개념화할 수 있다. 그리하여 속성을 개념화함으로써 학문이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라파엘로 ‘아테나이 학당’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나이 학당'의 중앙에서 플라톤은 왼손에는 <티마이오스>라는 책을 들고 오른손으로는 하늘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 옆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역시 왼손에는 <윤리학>을 들고 오른손으로는 바닥을 땅으로 향한 채 앞으로 뻗고 있다. <티마이오스>는 플라톤의 우주론을 담은 책이다. 이 책에서 플라톤은 인간의 삶이 우주적 질서에 동화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은 인간이 이 땅에서 어떻게 잘 살아갈 것인가를 다룬다. 그래서 이 그림은 관념과 이상의 세계를 추구하는 플라톤과 현실과 경험을 중시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영원한 대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라고 한다. 그런데 플라톤은 이데아의 세계, 저 예지의 세계만 쳐다보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에만 머물러 있었을까?

 

▲‘아테나이 학당’ 부분. 철학의 두 거장 플라톤(왼쪽)과 아리스토텔레스(오른쪽)가 철학자들의 무리를 이끌며 진지하게 토론하고 있습니다. 이상주의자로 만물지식의 근원인 ‘이데아’를 이야기하듯, 플라톤은 손가락을 하늘로 향하고 있으며, 추상적 형이상학에 관한 그의 저작인 <티마이오스>도 세로로 들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시면, 한쪽 발도 들고 있는 것도 보이실 거예요. 현실주의의 시초로 알려져 있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손바닥을 평평하게 하여 땅으로 향하게 하고 있으며 그의 저서인 <윤리학> 역시 수평으로 든 채 '무엇을 하든 우리는 땅에 발을 붙이고 있어야 한다' 는 그의 사상을 몸짓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플라톤과 달리 그는 양쪽 발을 모두 바닥에 붙이고 있습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흔히 생각하듯 그렇게 대립적이고 대조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에서 20년 동안이나 수학을 했으니 나중에 아무리 스승을 비판하고 스승과 갈라져 나가서 따로 독립했다 하더라도 플라톤의 사상에서 지대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심지어 아리스토텔레스는 죽고 없는 플라톤을 마음껏 두들기며 연습을 하여 철학의 대가가 되었다는 것이 아닌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공동생활에서 최선의 공동체를 찾는 데 가장 큰 관심을 두었다.                                   ▶플라톤(기원전 427~347)

 

두 사람은 모두 인간의 정치적 공동생활에서 무엇이 중요한가 하는 물음에서 출발하였다. 그런데 두 사람이 얻은 답은 각각 달랐다. 플라톤은 공동생활의 성공 여부는 정의와 이를 통해 보장되는 공동체의 평화에 달려 있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유를 최고가는 정치적 선으로 보았다. 이리하여 두 사람의 개성은 이후 유럽의 정치 질서를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놓았다. 두 사람의 긴장과 갈등과 대립과 타협이 이후 정치사를 수놓았다. 곧 자유와 평등 가운데 어느 것이 우선권을 갖는가? 자유와 정의는 조화할 수 있는 것인가?

 

플라톤의 <폴리테이아>는 바로 정의로운 공동체를 주도면밀하게, 시인의 입을 함부로 놀리지 못하도록 겁을 주고, 여자를 비롯한 모든 소유물을 공유하게 하면서까지, 구성하고 있다. 플라톤이 설계한 국가는 그야말로 유토피아, 있지 않는 곳이다. 그러니까 소크라테스로 분장한 플라톤이 이런 나라는 실제로 있는 나라는 아니라고, 그저 나라의 '뽄'으로서 생각해보자고 하는 것이 아닌가! 도덕주의자는 근본주의자이다. 근본주의자는 혁명가이다. 이 책의 저자 선생님이 플라톤을 서술하는 논리를 따라가 보면 그렇다. 플라톤은 정의롭지 않은 사회를 통렬하게 혁파하기 위해 정의로운 공동체를 아주 곧이곧대로 설계해보았던 것이다.

 

확실히 현실적인 아리스토텔레스는 공동체의 목적이 단순히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삶', 곧 잘 사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인간이 자유롭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것이 공동체의 목적이지 단순히 생존만을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이 그렇게도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바, 덕을 갖춘, 가장 탁월한 자(들), 철학자가 다스리는 가족적 구성을 가진 공동체를 거부한다.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철학자가 왕이 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없단다. 플라톤에게서는 척도에 따른 공동체를 구축하는 최고 전문가인 철인제왕이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는 인간의 모든 삶을 규제하고 도덕을 평가하는 심판관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삶이 규제된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런 규제는 철인제왕의 선량한 양심에 의해 승인되기까지 한단다. 완벽하게 조직된 정의는 억압과 부자유를 초래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는 시민 각자의 자유가 정치 질서의 중심이다. 공동체를 구성하는 모든 시민은 동등한 자유를 누려야 한다. 헬라스는 바로 이 가치를 지키려고 페르시아와 맞서 싸웠던 것이다. 공동체의 구성과 운영은 전문가의 소관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책무이다. 그러므로 이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공동체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갖가지 상황을 적절하게 평가하고 올바른 결론을 끌어내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런데 지금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논쟁을 멈추지 않고 있다. 사회는 여전히 정의(평등)와 자유 사이에서 요동치고 있기 때문이다.

 

남은 궁금증

그러고 보니 이 책에는 아르케란 말이 없잖은가! 거스리의 책을 비롯하여 거의 모든 철학 개론과 서양 철학사 책에서는 만물의 아르케를 묻는 데서 철학이 출발했다고 했는데 말이다. 이웃한 대학 철학과에 유학 온 고향의 동창생 녀석이, 당시 시골에서 올라온 대학 신입생들 사이에서는 학보 보내기가 유행했는데, 내게 자기 대학 학보를 보내면서 보내는 사람 이름에 아르케(Arche)라고 떡 적어서 보내지를 않았었나!

 

그만큼 철학을 공부한다 하면 거의 맨 먼저 배우는 말이 아르케였다. 그런데 이 책은 아르케라는 말은 한 마디도 안 쓰고서 고대 헬라스 철학을 이야기한다. 아르케 대신에 요소(stoicheion)라는 말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여기저기서 헬라스 원어를 이것저것 쓰면서 정작 아르케라는 말은 왜 안 썼을까?

 

또 한 가지! 이 책의 제목은 분명히 <지중해 철학 기행>이다. 그런데 지중해를 둘러싼 여러 지역과 연관 있는 철학자의 철학 사상은 알차고 재미있게 서술되어 있는데 아무래도 기행이 빠진 것 같다. 내가 제대로 읽지 못해서 그런 것인가? 그렇구나. 지중해를 중심으로 하여 철학을 여행한 것이지 지중해 지역을 여행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아! 내가 잘못 읽었구나! [프레시안: 기사입력 2010-06-05 오후 2:55:17]

 

 

‘아테나이 학당’에 등장하는 주요인물을 살펴보면, 1. 플라톤 2. 아리스토텔레스 3. 크세노크라테스=플라톤의 충실한 제자로, 철학을 최초로 논리학, 자연학, 윤리학 3부분으로 나눈 것으로 알려진 크세노크라테스가 하얀 망토를 입고 팔짱을 끼고 있습니다. 4. 소크라테스=들창코에 뚱뚱하고, 앞머리가 벗겨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 모습을 그대로 표현한 소크라테스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주장들을 헤아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5. 알렉산드로스 대왕=20대에 이미 (알려진) 세상을 정복하고 헬레니즘 시대를 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파란 망토를 입고 입구요. 6번부터 8번까지는 소크라테스의 제자들로 스승의 주장에 심취되어 있는 듯합니다. 군인이자 정치가였던 7. 알키비아데스, 그 옆의 작은 사람이 6. 크세노폰, 소크라테스의 열성적인 제자였던 8. 아이스키네스가 스승의 가르침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하려는 듯 오른손을 들어 누군가를 부르고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9. 고르기아스=대표적인 소피스트로 뒤쪽에 얼굴만 살짝 나온 사람입니다. 10. 제논=스토아 학파의 창시자로 녹색 모자를 쓰고 있네요. 11. 에피쿠로스=월계관을 쓰고 있는 에피쿠로스, 인생의 목표를 쾌락의 추구로 알려져 있는 에피쿠로스 학파의 창시자인데, 감각적이고 방탕한 즐거움을 추구한다는 많은 사람들의 오해와는 달리, 그는 소박하고 금욕적인 쾌락을 주장하였습니다. 14. 피타고라스=우주의 만물은 수의 형태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 최초의 사람으로, 약간 대머리의 모습으로 책에 무엇인가를 열심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피타고라스의 등 뒤에 웅크리고 앉아 무언가를 베껴 적는 듯한 사람은 13. 아낙시만드로스, 그 뒤쪽에 검은 피부로 고개를 빼들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이슬람의 학자 12. 아베로에즈 15. 아낙사고라스=피타고라스에게 작은 칠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6. 히파티아=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 그리스 철학에 대한 강의를 하였는데, 이단적 학문을 전파한다는 이유로 기독교인들에게 납치당하여 비참한 최후를 당하였다는 여성 수학자 히파티아가 하얀 로브를 입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당대 최고의 여성 수학자로 인정받았고, 철학에도 능통하였으며, 뛰어난 미모와 훌륭한 강의로도 유명했다고 합니다. 사실 라파엘로는 그녀를 숭배하여 그림의 중간쯤 잘 보이는 곳에 배치하려고 했지만, 여자이면서 이단으로 죽었던 그녀를 싫어했던 가톨릭 주교의 반대로 다른 학자들 틈에 미소년의 모습으로 교묘하게 숨겨 넣었다고 합니다. 17. 파르메니데스=존재론과 인식론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철학자로서 히파티아의 오른쪽에서 상체를 비틀고 서 있습니다. 18. 헤라클레이토스=맨 앞쪽에서 대리석 탁자에 턱을 괴고 앉아 만물의 끊임없는 변화에 대해 사색하고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같은 강을 두 번 건너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고, “인간의 성격은 인간의 운명이다”라는 그의 통찰력 깊은 말은, 2000년이 더 지나 프로이트가 응용, 발전시켰다고 합니다. 19. 디오게네스=명예와 부를 천시했고, 알렉산드로스 대왕과의 일화로 유명한 디오게네스가 무소유를 상징하듯 반나체의 모습으로 계단에 비스듬히 걸터앉아 있으며, 그의 위치와 자세가 그림의 구도에 질서와 안정감을 더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20. 테오프라스토스=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이며, 식물학의 창시자(노란색 망토). 21. 아리스티포스=키레네 학파의 창시자(뒤를 보고 있음). 23. 프톨레마이오스=뒷모습을 보이며 지구의를 들고 있습니다. 24. 조로아스터(차라투스트라)=천구를 들고 있습니다. 25. 에우클리드=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흑판 위에 컴퍼스를 돌리고 있네요. 22. 라파엘로=라파엘로는 동시대 화가들을 모델로 고대 철학자의 얼굴을 그렸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수염이 덥수룩하게 덮인 플라톤은 실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얼굴이며, 헤라클레이토스는 미켈란젤로의 얼굴, 에우클리드는 성 베드로 성당의 건축가였던 브라만테의 얼굴을 그렸다고 합니다. 선배이자 경쟁자였던 그들에 대한 경의와 존경의 표현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얼굴을, 그리고 그림 오른쪽 구석에서 순백의 옷을 입고 유일하게 정면을 응시하며, 관객과 눈을 맞추고 있는 사람은, 라파엘로 그 자신이랍니다.

 

 

<지중해 철학 기행> 내용 목차

 

Ⅰ. 밀레토스에서 펠라까지(기원전 6세기 ~ 기원전 4세기)

 1. 밀레토스 - 학문은 어떻게 발생했는가?

 2. 에페소스 - 근·현대 철학의 원류, 헤라클레이토스

 3. 엘레아와 파에스툼 - 파르메니데스와 형이상학의 등장

 4. 아크라가스 - 요소들을 성찰하다

 5. 델피 - 그리스 신들은 어디로 사라졌나?

 6. 올림피아 - 플라톤에게 향하는 길

 7. 에피다우로스 - 철학과 비극

 8. 시라쿠사이 - 소피스테스에 대한 플라톤의 투쟁

 9. 마라톤 -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격돌

10. 아테나이 - 데스포테스의 출현을 경계하라

11. 아테나이 - 논리학의 아버지, 아리스토텔레스

12. 펠라 - 교육자 아리스토텔레스와 윤리학의 탄생

 

Ⅱ. 페르가몬에서 이스탄불까지(기원전 4세기~6세기)

13. 페르가몬 - 승승장구하는 그리스 교육

14. 에페소스 - 헬레니즘 시대의 학문과 근대

15. 로마 - 스토아철학과 양심의 발견

16. 폼페이 - 에피쿠로스는 살아있다

17. 로마 - 공화국이란 무엇인가?

18. 알렉산드리아 - 플라톤주의와 플로티노스

19. 카르타고 - 기독교 사상의 출발지를 찾아서

20. 밀라노 - 아우구스티누스와 악의 문제

21. 히포 레기우스 - 기독교는 로마를 어떻게 변화시켰나?

22. 라벤나 - 종말을 고하는 고대의 철학적 삶

23. 이스탄불 - 그리스 철학과 동방 기독교 사상

 

Ⅲ. 피렌체에서 세비야까지(14세기~16세기)

24. 피렌체 -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

25. 피렌체 - 인간을 위한 예술의 단초를 보다

26. 피렌체 - 마키아벨리의 고백

27. 로마 - 르네상스 사유의 깊이-니콜라우스 쿠사누스

28. 리오 틴토 - 콜럼버스 항해의 정신적 배경

29. 살라망카 - 신성 제국에서 제국주의로

30. 세비야 - 인간 존엄성을 향한 철학적 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