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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이 2014. 2. 22. 12:52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보스니아어: Zlatan Ibrahimović, 1981년 10월 3일, 스웨덴 말뫼 ~ )는 스웨덴 축구 선수로 크로아티아-보스니아 혈통이다. 이브라히모비치는 파리 생제르맹 FC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고 있다.

 

 

 

클럽 경력

이브라히모비치의 축구 인생은 많은 이적이 있었으나, 그는 그를 영입한 팀에게 뛰어난 경기력으로 보답하며 여타 다른 저니맨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특히 03-04 시즌이후로 연속으로 리그우승을 이끌면서 우승청부사 라는 별칭을 얻게되었다.

말뫼 FF

이브라히모비치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발칸 반도에 뿌리를 둔 그는, 스웨덴 이민자인 보스니아인 아버지와 크로아티아인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걸출한 재능을 나타낸 그는 1995년 스웨덴 굴지의 강호이며, 자신이 태어난 지방의 클럽이기도 한 말뫼 FF와 계약했으며, 1999년부터 정식으로 팀에서 활약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 시즌에 말뫼 FF는 2부 리그 강등이라는 큰 아픔을 겪었고, 팀의 주력 선수들이 이적해 주전의 기회를 얻은 이브라히모비치는 다음 시즌에 주전으로 활약할 수 있었다. 그는 말뫼에서 26경기 12골이라는 성적을 내, 팀의 1부 리그 복귀에 큰 공헌을 하였다.

그러자 이같은 활약을 지켜본 아약스아스널 등의 빅클럽들이 이브라히모비치의 영입에 나섰다. 특히 아스널아르센 웽거 감독이 스스로 등번호 9번을 보증하는 등 열심히 영입을 시도했으나, 최종적으로 10대 선수의 이적료로는 파격적이고, 팀 사상 최대의 780만 유로라는 이적료를 제시한 아약스로 이적하게 되었다.

아약스 FC

그는 한 때 아약스에서 활약했던 마르코 판 바스턴이나 파트릭 클라위버르트, 은완코 카누 등 쟁쟁한 선수들이 짊어졌던 영광의 등번호 9번을 계승하였다. 그러나 그는 경기장 안팎에서 문제를 일으켜, 인상적인 활약보단 문제아의 모습이 더 눈에 띄게되었다. 이브라히모비치는 2001-2002 시즌 네덜란드컵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리는 등 점차 팀의 주력으로 성장해갔으며, 2002-2003 시즌에도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4골, 에레디비시에서 10골을 기록하며 주전 자리를 꿰찼다. 다음 시즌에는 다리 부상으로 3개월 결장했지만, 복귀 후에 16경기에서 13득점을 기록하며, 뛰어난 발군의 결정력을 입증하였다. 또 PSV 에인트호번으로부터의 왕좌 탈환에 기여하면서, 이 해에 파비오 카펠로를 감독으로 임명한 유벤투스 FC에 1900만 유로라는 금액에 이적하며, 활동 무대를 세리에 A로 옮기게 된다.

유벤투스 FC

당초,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다비드 트레제게의 뒤를 잇는 세 번째 공격수로 주목받고 있었고, 2004-05 시즌 세리에 A 개막전 브레시아와의 경기에서 데뷔해 조속히 골을 넣음으로서, 트레제게와 델 피에로의 부상으로 고민하던 카펠로 감독의 신뢰를 얻기 시작한다. 그는 이들의 복귀 이후에도 팀의 상징이었던 델 피에로를 밀어내고 유벤투스 공격진의 기둥이 되어, 35경기에서 16골을 넣는 성과를 올렸고, AC 밀란으로부터의 세리에 A 왕좌 탈환에 크게 기여했다. 2005-2006 시즌에도 다비드 트레제게와 환상의 배합을 선보이며 유벤투스세리에 A 선두 독주에 공헌했다. 그러나 2006-07 시즌, 유벤투스 FC가 경기 조작 의혹으로 세리에 B로 강등되자, 그는 2460 만 유로라는 이적료에 팀 동료 파트리크 비에라와 함께 또 다른 세리에 A의 강팀인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로 이적하였다.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인테르로 이적한 이브라히모비치에게 있어서 2006-2007 시즌은 큰 성공을 거둔 해가 되었다. 그의 독창적인 플레이는 투박하였던 인테르의 공격에 창의성을 불어넣었다. 그의 세리에 A 데뷔 시즌 때의 16 골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15골을 기록하였고,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의 15번째 스쿠데토 수상에도 기여하였다. 그리고 3시즌을 뛰며 인테르의 스쿠데토 3연패에 기여했다. 특히 그의 마지막 시즌인 2008-2009 시즌에는 25골로 득점왕을 차지하며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의 우승에 기여했다. 그는 인테르에서 총합 117경기 66골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그의 리그에서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챔피언스리그 트로피는 들어올릴 수 없었다. 이것은 곧 그가 바르셀로나로 이적하게 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FC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는 2008-2009 시즌 트레블을 달성했지만 주제프 과르디올라는 팀의 꼭지점에 좀 더 연계 능력이 있는 선수를 불러오기를 원했다. 이런 그의 레이더에 잡힌 것이 이브라히모비치였다. 2009년 여름 미국투어 도중 FC 바르셀로나와 협상을 위해 스페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첼시와의 프리시즌 경기가 인테르나치오날레에서의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2009년 7월 26일 인테르는 5000만유로(약 717억원)와 사뮈엘 에토를 트레이드하는 조건으로 이브라히모비치의 이적에 동의하였으며, 다음날인 27일 메디컬 테스트를 받을것이라고 발표하였다. 이후 이브라히모비치는 캄프 누에서 60000여명들의 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클럽 역사상 최고 이적료를 갱신하며 공식 입단식을 가졌다. 이적 이후 이브라히모비치는 스페인 슈퍼 컵에서 바르셀로나 데뷔전을 가졌고 리오넬 메시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성공적인 데뷔전이란 평가와 함께 2009-10 시즌을 시작하였다. 리그 데뷔전부터 5경기 연속 득점을 기록했고 엘 클라시코 결승골을 통하여 유용한 득점자원임을 증명했다. 그렇지만 프리롤을 맡아 중앙까지 동선을 늘린 리오넬 메시에 밀려 바르셀로나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 하였다. 특히 그는 챔피언스리그 4강전에서 친정팀 인테르를 상대로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인테르가 트레블을 달성하는 것을 쓸쓸히 지켜봐야했다. 결국 2009-10 시즌이 끝나고 AC 밀란으로 임대가게 되었다.

AC 밀란

그리고 그는 이적 후에도 이탈리아에서 뛰었던 전과 마찬가지로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리그 29경기 14골 11어시스트). 이러한 활약을 토대로 AC 밀란에서도 우승을 하면서 세리에 A 빅3에서 모두 우승을 경험하였다. 시즌 종료 이후, AC 밀란이 임대후 완전이적 옵션을 사용함에 따라 4년 계약을 맺고 밀란으로 이적하였다.


파리 생제르맹 FC

그러나 밀란에서 1시즌만 활약 한 뒤, 2012년 7월 18일 당시 유럽 축구의 떠오르는 큰 손인 프랑스파리 생제르맹 FC과 3년 계약을 채결하였다. 2012/13시즌 파리생제르맹FC 는 이브라히모비치의 활약을 힘입어 리그 우승을 일구었다.

 

 

 

국가대표팀 경력

이브라히모비치는 U-21 대표팀을 거쳐, 2001년 1월, 페로 제도와의 스웨덴 대표팀 데뷔 경기를 가졌다. 2002년 FIFA 월드컵에선 젊은 나이에 스웨덴 대표팀에 발탁되었지만, 아르헨티나와의 조별 리그 경기와 16강전 세네갈과의 두경기에서 단 30분밖에 출전하지 못했다.

그러나, 유로 2004에서는 주전 선수로 기용되면서 불가리아와의 첫 경기에서 페널티골을 성공시켰다. 이탈리아와의 두 번째 경기에선 훌륭한 기술로 멋진 골을 넣으면서 팀의 조별 리그 통과에 기여했다. 네덜란드와의 준준결승전에선 승부차기로 승패가 갈렸는데, 그는 이 승부차기에서 실축하여, 스웨덴은 네덜란드에게 패하고 말았다.

2006년 FIFA 월드컵 유럽 예선에서도 8경기 8골을 넣는 최고의 활약으로, 팀의 본선 진출을 이끌었다. 그러나, 대표팀 경기 전의 국가 제창 중에 다른 선수들이 노래하고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추잉껌을 부풀리고 있는 장면이 텔레비전으로 방송되어 국민들로부터 반감을 사는 등, 대표팀에서도 악동으로 군림했다. 그는 2006년 FIFA 월드컵 본선에서도 활약을 할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그는 무득점을 기록, 팀은 16강전에서 독일에게 패해 16위에 머물고 말았다. 2006년 9월 유로 2008 예선 기간에는 크리스티안 빌헬름손, 올로프 멜베리 등과 함께 규율을 어겨, 대표팀에서 추방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이후 2007년 3월, 다시 대표팀에 복귀하였다. 그러나 클럽에서 활약에 비해 국가대표에서는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여 국가대항전에서의 꾸준함이 이브라히모비치의 과제로 남는다.

2014년 FIFA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에서는 조국인 스웨덴독일, 아일랜드, 오스트리아와 한조가 되는 악재가 겹쳤다. 그러나 막상 이 조 최강팀이라 평가받는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최고의 기량을 보여줬다. 독일은 스웨덴을 상대로 전반전에 이미 3-0으로 앞서나가는 데다가 스웨덴이 후반전을 시작한지 얼마 못가 한골을 더 허용당해 독일이 4-0으로 앞서나가며 승부를 사실상 쐐기를 박은 상태였으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는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메주트 외질, 토마스 뮐러, 필립 람 등을 차례로 따돌리고 스웨덴의 첫 골을 넣음으로서 추격의 불씨를 살려놓았다. 특히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는 이 경기에서는 전반전에는 다소 활약이 있었으나 후반전이 되면서 완벽하게 지워졌다. 이후에도 이브라히모비치는 동료 선수들에게 어시스트를 계속하였고 그 결과 정규경기시간이 종료되는 시점에서 3-4까지 따라잡았다. 이후에도 계속 그라운드를 진두지휘하며 인저리타임에 한골을 추가하여 독일과 4-4로 무승부를 일구는데에 크게 일조하였다. 전반전에만 이미 3골을 넣어 3-0으로 앞서고 있는 데다가 후반 56분 메주트 외질이 추가골을 넣어 4-0이 되어 완승이 기정사실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후반 60분 부터 30분 이내에 4골을 허용하고 무승부를 당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은 경기종료 직후 패닉 상태에 빠졌다.[1] 이 경기는 독일 축구 서포터 이외의 모든 축구팬들이 지역예선이 아니라 본선이였으면 더 좋은 경기였을 것이라며 크게 아쉬워했다.

2012년 11월 15일 스웨덴 프렌즈 아레나에서 열린 스웨덴과 잉글랜드의 친선 경기에서 즐라탄은 혼자 4골을 넣으며 4-2 대승을 이끌었다. 특히 그는 후반전 경기종료 직전에 조하트가 걷어낸 공을 그대로 오른발 시저스킥을 날려 환상적으로 득점에 성공했다.

그러나 2013년 10월 유럽 지역예선이 모두 끝난 결과 스웨덴은 독일에 이어 2위가 되어 플레이오프로 밀렸다. 추첨 결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이끄는 포르투갈과 상대했으나, 포르투갈에서 열린 1차전은 호날두가 결승골을 넣으며 1-0으로 패배하고 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 1차전에서 하지 못 했던 골을 2번이나 기록했지만 호날두 역시 이 경기에서 헤트트릭을 기록하며 3-2, 종합전적 4-2로 포르투갈에게 브라질행 티켓을 넘겨줘야했다.

 

 

 

일화

  • 그는 브라질의 축구 선수 호나우두의 열렬한 팬으로 유명하다.
  • 그는 어린시절 아버지의 영향 으로 무술을 좋아하였으며 특히 태권도를 좋아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태권도 선수와 축구 선수 중에 무엇이 될지 무척 고민하다가 결국 축구 선수가 되었다. 그가 어린시절 태권도를 한국인에게 배웠으며 최근 이탈리아에서 공식 3단 유단자가 되었다.
  • 또한 FC 바르셀로나의 일원으로 대한민국에 투어차 왔을 때 매너있는 모습으로 대한민국에서 그의 모습은 더더욱 호감형이 되었다.
  • 이전 AFC 아약스 시절 팀 동료였던 라파얼 판 데르 파르트와의 불화로도 유명한데, 이는 당시 친선 경기에서 이브라히모비치가 고의적으로 그에게 부상을 안겨주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 특이한 점이라면 스웨덴 대표팀골키퍼안드레아스 이삭손과 생년월일이 같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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