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별 분류/하이든

금동이 2016. 12. 4. 04:00


하이든 - 현악 사중주 다(C)장조, Op. 76, No. 3, 황제



무려 30년 동안 에스테르하지 후작의 궁정음악가로서 전형적인 18세기 음악가의 삶을 살아야 했던 하이든이 인생의 결정적 전환기를 맞이한 것은 그의 나이 58세 때인 1790년의 일이었다. 하이든이 모시던 니콜라우스 에스테르하지가 세상을 떠난 후 니콜라우스의 뒤를 이은 파울 안톤 에스테르하지는 음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에 궁정악단도 해산하고 하이든에게도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사실상 자유의 몸이 된 하이든은 그의 음악을 원하던 런던의 음악애호가들을 위해 런던을 두 차례 방문해 12곡의 ‘런던 교향곡’을 발표했다. 12곡의 ‘런던 교향곡’은 하이든에게 국제적인 성공과 금전적인 이익, 최고의 명예를 가져다주었다. 1795년에 하이든이 빈으로 돌아왔을 때 모차르트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베토벤은 아직 신인이었다. 유럽을 통틀어 하이든에 필적할 만한 음악가는 없었다. 이제 하이든은 전 유럽을 통틀어 현존하는 최고의 음악가로 존경과 찬사를 한 몸에 받게 된 것이다.


다가올 낭만주의 음악을 예견한 대가의 현악 4중주


하이든이 다시 에스테르하지 후작 가문으로 되돌아왔을 때도 운명은 여전히 그의 편이었다. 하이든이 런던에 다녀오는 사이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수장은 니콜라우스 1세의 손자인 니콜라우스 2세로 바뀌어 에스테르하지의 궁정악단이 재조직되긴 했으나 궁정악장 하이든의 책임은 예전보다 한결 가벼웠다. 그는 매년 여름에 2~3개월 아이젠슈타트에서 궁정악장으로서의 의무를 수행하고 니콜라우스 2세의 부인인 마리아 헤르메네길트를 위해 미사곡을 작곡하는 것 외에는 거의 빈에 머무르며 작곡을 하고 음악회에 참석하는 것으로 일과를 보냈다.


이 시기에 하이든이 남긴 작품들의 수는 많지는 않지만 그 음악 양식은 매우 새롭고 혁신적이다. 작품 하나하나에서 평생 동안 새로운 음악 양식을 개발하며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은 하이든의 근면함과 진취적인 정신을 느낄 수 있다. 이 시기를 빛낸 대작들로는 두 곡의 장려한 오라토리오 <십자가 위의 일곱 말씀>(1796), <천지창조>(1798)와 <사계>(1801), 그리고 니콜라우스 2세를 위한 여섯 곡의 미사곡이 있는데, 이들 작품에는 이미 두 차례의 런던 여행을 계기로 런던에서의 대규모 대중음악회의 생생한 경험을 쌓은 하이든의 무르익은 음악성이 녹아 있다. 생애 말년에 이르러서도 성숙하고 침착하며 장엄한 후기 양식과 청년기의 실험적 양식을 혼합한 새로운 음악 양식으로 다가올 시대를 예고했던 하이든은 진정 혁신적인 음악가였다.

하이든의 혁신은 그가 일생에 걸쳐 진지하게 몰두했던 현악 4중주 분야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찍이 두 대의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가 함께 연주하는 현악 4중주라는 음악 장르를 통해 빈 고전주의 음악의 균형미를 보여준 하이든은, 런던에서 돌아온 후 2년이 지난 1797년에 여섯 곡의 ‘에르되디 4중주’를 완성해 고전주의 음악의 순수성과 형식미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요제프 에르되디 백작의 의뢰로 작곡된 까닭에 ‘에르되디 4중주’라는 별명을 얻은 여섯 곡의 현악 4중주곡은 하이든이 완성한 현악 4중주 연작 가운데 마지막 작품이다. 하이든은 이 작품 이후 세 곡의 현악 4중주곡을 작곡했을 뿐이고 그나마 마지막 곡은 미완성이다. 여섯 곡의 ‘에르되디 4중주곡’들은 64세의 노대가가 새롭게 개발해낸 음악적 아이디어로 넘친다. 현악 4중주 3악장의 미뉴에트 춤곡은 좀 더 빠르고 날렵해지면서 베토벤의 빠른 스케르초와 비슷해지고, 느린악장에 담아낸 감정적 깊이는 다가올 낭만주의 음악을 예고하는 듯하다. 각 악장마다 확신에 찬 어조와 대담한 기법이 빛난다.


오스트리아의 국가가 사용된 유명한 2악장 선율

‘황제’라는 부제로 잘 알려진 현악 4중주곡은 ‘에르되디 4중주’를 구성하는 여섯 곡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에르되디 4중주곡’이 Op.76에 해당하고 ‘황제’ 4중주곡은 그 중 세 번째 작품이므로, ‘황제’ 4중주곡의 정확한 작품번호는 Op.76 No.3이 된다. 이 작품에 ‘황제’라는 부제가 붙은 것은 2악장에 오스트리아의 국가인 ‘신이여 황제를 보호하소서’(Gott erhalte Franz den Kaiser)의 선율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이 선율 덕분에 하이든의 4중주곡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 되었다. 하이든은 2악장에 단지 ‘황제 찬가’의 선율을 넣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 주제로 바탕으로 한 네 곡의 변주곡을 작곡했는데, 하나하나의 변주곡들은 오스트리아의 황제 프란츠 2세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듯 경건한 분위기로 가득하다.



2악장에 중요한 선율이 사용되었기에, 상대적으로 ‘황제’ 1악장의 비중은 조금 덜한 편이다. 보통 4악장으로 구성되는 현악 4중주곡에서 음악적으로 가장 중요한 악장은 1악장이기 마련이지만, 리드미컬하게 시작되는 1악장 알레그로(Allegro, 빠르게)는 다른 4중주곡의 1악장에 비해 무게감이 덜하고 찬란하고 밝은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2악장 포코 아다지오 칸타빌레(Poco adagio: cantabile, 조금 느리고 노래하듯이)가 시작되면 처음에 오스트리아의 국가인 ‘황제 찬가’의 선율이 위엄 있게 연주된다. 노래하는 듯한 황제의 주제는 네 곡의 변주곡에서도 계속 선율의 원래 형태를 유지하며 반복되는데, 이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영원무궁한 발전을 암시하는 듯하다. 음악이 진행되는 동안 원래의 ‘황제 찬가’ 선율을 네 곡의 변주곡에서 조금씩 변형되기는 하지만 주제 선율 자체의 성격은 변하지 않고 항상 위엄을 갖춘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오스트리아의 영원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는 듯하다.

3악장 미뉴에트는 알레그로(Allegro, 빠르게)의 다소 빠른 템포로 경쾌하게 연주되며 프랑스 궁정의 옛 춤곡이었던 미뉴에트의 허세나 권위의 가면을 벗어던진다. 미뉴에트의 주제는 비교적 간단한 멜로디이지만 음정의 도약을 통한 활력이 느껴져 처음 들어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4악장 프레스토(Presto, 매우 빠르게)는 2악장과 더불어 이 작품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는 음악으로, 도입부에서부터 강한 느낌을 주는 세 개의 코드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이든은 시작 부분을 어둡고 격정적인 단조로 시작해 마지막 부분에서 밝은 장조로 마무리하며 오스트리아의 밝은 미래를 암시하고 있다.

 

최은규(음악평론가)


Haydn - string quartet op.64 no 3

String quartet in B flat major, op.64 no 3
Amadeus Quartet


  



하이든의 현악 4중주 ‘종달새’는 모든 현악 4중주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일 것이다. ‘종달새’란 별명은 1악장 도입부의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이 새소리와 비슷해서 붙여진 것이다. 이 곡에는 ‘종달새’란 별명 외에도 ‘혼파이프’란 별명이 하나 더 있는데, 이는 빠른 4악장이 마치 영국 선원들이 추는 ‘혼파이프’(hornpipe, 동물의 뿔로 만든 파이프혼으로 반주하며 추던 영국의 활발한 춤)라는 춤곡처럼 끊임없이 계속되는 빠른 음표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두 가지 별명 모두 하이든 자신이 붙인 것은 아니지만 이 작품의 핵심적 성격을 잘 드러내는 말이다.
‘종달새 4중주곡’은 Op.64로 출판된 6곡의 현악 4중주곡 중 제5번이다. Op.64의 현악 4중주 세트는 하이든이 에스테르하지 궁정에서 보낸 30년간의 궁정음악가 생활을 마무리하고 인생의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던 중요한 시기에 작곡됐다. 하이든의 후기 작품이니만큼 Op.64의 6곡에는 하이든의 노련한 작곡 기법이 잘 나타나 있다.


현악 4중주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작품


하이든은 에스테르하지 궁정에서 그가 모시던 니콜라우스 후작이 세상을 떠난 1790년 9월에 현악 4중주 Op.64의 작곡에 착수해 그해 말에 완성했다. 그리고 이 작품을 에스테르하지 궁정 오케스트라의 제2바이올린 수석주자였던 요한 토스트에게 헌정했다. 하이든은 이미 그의 현악 4중주 Op.54의 3곡과 Op.55의 3곡을 토스트에게 헌정했기 때문에 그 이후에 다시 헌정한 Op.64는 ‘제2 토스트 4중주’라 불린다. 
하이든이 무슨 이유로 토스트에게 그의 현악 4중주 Op.64를 헌정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대부분의 음악학자들은 하이든이 토스트의 뛰어난 바이올린 연주 실력에 감탄해 이 곡을 헌정한 것이라 설명하고 있지만, 어떤 학자들은 토스트가 하이든이 없는 틈을 타 출판업자에게 이 작품이 자신에게 헌정된 것이라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심지어 이 4중주곡이 토스트가 아니라 토스트의 부인인 마리아 안나 폰 옐리세크에게 헌정될 뻔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의 설명에 따르면 하이든이 에스테르하지 궁정 가정부로 일했던 마리아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현악 4중주 Op.64를 그녀에게 헌정하려 했으나 토스트가 중간에 끼어드는 바람에 결국 토스트에게 헌정되었다는 것이다.
현악 4중주 Op.64의 헌정을 둘러싼 수많은 추측이 난무하는 것은 아마도 이 곡을 헌정 받은 요한 토스트의 독특한 캐릭터 때문인 듯하다. 요한 토스트는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 그는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일 뿐만 아니라 사업가 기질이 다분했다. 1783년에 에스테르하지 궁정 오케스트라에 입단해 수석주자로서 제2바이올린을 이끌던 토스트는 궁정악장 하이든의 작품들이 큰돈이 될 거란 사실을 알아챘다. 그는 하이든의 출판되지 않은 작품들을 몰래 판매하면 이익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은밀히 복사 사업을 했다. 
1788년에 이 일이 발각되어 문제가 되자 그는 에스테르하지 궁정 오케스트라를 그만두고 파리로 갔다.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악보 판매 사업에 뛰어든 토스트는 하이든의 현악 4중주 Op.54와 교향곡 88번과 89번의 악보를 출판업자 지베르에게 매각했다. 그러나 이때 그는 하이든에게는 거래의 정확한 조건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1790년에 다시 오스트리아로 돌아와 에스테르하지 궁정 가정부인 마리아 안나 폰 옐리세크와 결혼한 토스트는 의류 상인으로 크게 성공했고, 모차르트에게 현악 5중주 K.593과 K.614를 주문하는 한편 슈포어에게 작곡을 의뢰하기도 했다.


하이든의 노련한 작곡 기법이 발휘된 걸작

1악장: 알레그로 모데라토
토스트에게 헌정된 하이든의 현악 4중주 Op.64 중 제5번 ‘종달새’는 Op.64의 전 6곡에서 가장 뛰어나며 하이든의 전 작품들 가운데서도 걸작으로 손꼽힌다. 1악장에서 새소리를 연상시키는 제1바이올린의 굽이치는 선율도 아름답지만 제2주제의 바탕이 되는 싱커페이션(syncopation, 음악적 강세의 위치가 바뀌는 것)과 반음계적 화성은 매우 대담한 느낌을 준다. ▶1악장 도입부의 바이올린 선율이 새소리 같아서 ‘종달새’란 별명이 붙여졌다.
2악장: 아다지오
느린 2악장은 사색적인 성격이 있으며 어딘지 애수 띤 분위기를 자아낸다. 네 대의 악기 중에서도 특히 주요 선율을 연주하는 제1바이올린의 역할은 매우 중요해 마치 바이올린 협주곡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향수에 젖은 듯 그리움을 담은 바이올린의 멜로디는 점차 복잡한 음형을 발전해가지만 결코 우아한 기품을 잃지 않는다. 2악장 말미에 제1바이올린이 장식적인 바이올린 멜로디를 연주하는 부분은 협주곡에서 독주자 홀로 연주하는 카덴차라 해도 좋을 만큼 제1바이올린이 홀로 두드러진다.
3악장: 미뉴에트. 알레그레토
3악장 미뉴에트는 전통적인 고전 현악 4중주 3악장의 전형적인 형식에 따라 미뉴에트로 시작해 중간 트리오 부분을 거쳐 다시 처음의 미뉴에트로 되돌아온다. 이 미뉴에트는 못갖춘마디의 약박으로 시작하는 까닭에 탄력 있게 튀어 오르는 느낌을 강하게 전해주며, 음표 앞에 짧은 장식음이 붙어 있어서 매우 흥겨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어떤 이들은 이 장식음을 잡아채듯 연주하는 소리를 가리켜 딸꾹질하는 소리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딸꾹질 같은 재미난 장식음 덕분에 점잖은 미뉴에트는 위트 넘치는 춤곡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4악장: 피날레. 비바체
4악장은 ‘혼파이프’라는 별명을 얻은 빠른 음악으로 16분음표가 빠른 템포로 쉬지 않고 연주되고 있어 이 곡을 일종의 ‘무궁동’(moto perpetuo, 단일한 형태의 음형들이 빠르고 연속적으로 연주되는 음악)이라 보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이 곡은 단순히 빠르고 연속적으로 진행되는 음악이 아니라 중간 부분에 4대의 악기들이 서로의 주제를 모방하며 복잡한 푸가를 연주하고 있어 일반적인 무궁동보다는 훨씬 복잡한 음악이다. 
4악장에선 연주자들에게 매우 높은 수준의 기교가 요구되며, 다른 악장과 달리 네 대의 악기들 모두 동등한 중요성을 갖고 조화를 이룬다. 음악학자 켈러는 이 악장의 뛰어난 점을 지적하면서 이 곡은 “음악애호가나 연주자에게나 똑같이 만족감을 주는 음악이며, 그 안에 대단한 음악적 내용을 숨기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