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별 분류/바로크음악

금동이 2018. 12. 8. 04:00



Giovanni Battista Pergolesi 조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시 (1710 - 1736)


Pergolesi - Stabat Mater, P.77
페르골레시 - 스타바트 마테르
(성모애상)

조반니 바티스타 드라기
(Giovanni Battista Draghi)는 페르골레시(Pergolesi)
혹은 조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시(Giovanni Battista
Pergolesi)로 보다 많이 알려져 있는 이탈리아의
작곡가이며 바이올린 및 오르간 연주자였다. 그의 성(姓)은
원래 드라기(Draghi)였으나 페르골라(Pergola)에서
예시(Jesi/Yesi)로 옮겨온 후에는 '페르골라 출신의'라는
뜻을 지닌 페르골레시라는 성으로 고쳐 불리게 되었다.
그는 장중한 바로크 음악 양식으로부터 명쾌한 고전주의
양식으로 전환하는 시기에 활약하고 27세의 나이로
단명한 천재적 작곡가로 오페라 부파(opera buffa/
희곡 오페라comic opera)의 한 양식으로 코메디아 인
무지카(음악 안에 코메디) 또는 "코메디아 페르 무지카"
(음악을 위한 코메디를 뜻하는)의 중요한 초기 작곡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되며 당시 일반적인 오페라
세리아(opera seria)와 달리 예리한 풍자와 웃음으로
신흥 시민계급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는 오페라
부파는 이어 곧 오페라 세리아로부터 부파가 독립하는
계기가 된다.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Alessandro
Scarlatti, 1660-1725)를 잇는 초기 나폴리 음악의 천재
작곡가로 그의 2막에 막간극 오페라
'마님이 된 하녀'(La serva padrona)는 18세기 가장
뛰어난 극음악 중 하나로 손꼽아진다. 1710년 당시에
로마 교황령인 오늘날 안코나(Ancona) 지역에 속해
있는 예시(Jesi)에서 태어났으며 1725년에 나폴리에 도착한
그는 1726년부터 포베리 디 제수 크리스토 음악원
(Conservatorio dei Poveri di Gesù Cristo)에서
가에타노 그레코(Gaetano Greco, 1657-1728)를
비롯하여 프란치스코 페오(Francesco Feo, 1691-1761),
레오나르도 빈치 (Leonardo Vinch,1690-1730),
프란체스코 듀란테(Francesco Durante, 1684-1755)
등으로부터 음악을 사사하기 전까지 예시에서
프란체스코 산티니(Francesco Santini)라는 지방
음악가에게 음악을 배웠다. 나포리에서 음악 공부와
아울러 성가대원과 바이올린 연주자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짧은 음악 생애 대부분을 왕자 페르디난도
콜론나 스티글리아노(Ferdinando Colonna Stigliano)와
마르치오 4세 마달로니 카라파(Marzio IV Maddaloni
Carafa) 공작 등과 같은 귀족 후원자를 위해 보냈다.
1732년 나폴리 스티글리아노 콜로나 공의 궁정 악장에
임명되었으며 나폴리의 오페라 부파 연애하는 수도사
(Lo frate 'nnamorato)와 미사곡 1곡(F장조 미사곡으로
추정하는)을 작곡해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1733년 자신의 오페라 세리아(opera seria)
콧대 높은 죄수(Il prigionier superbo)가 초연되었으나
정작 성공을 거둔 것은 이 작품 막간에 삽입된
마님이 된 하녀(La serva padrona)였으며 그에 사후
1752년에 이 작품이 파리에서 상연되자 장-밥티스트
릴리(Jean-Baptiste Lully)와 장-필리프 라모
(Jean-Philippe Rameau)를 지지하는 진지한 프랑스
오페라와 새로운 이탈리아 희극 오페라 지지자 사이의
이른바 '부퐁 논쟁/Querelle des Bouffons(프랑스와
이탈리아 음악의 우열논쟁)을 촉발 되면서 그의 최대
걸작임과 동시에 18세기 후반 오페라 부파의 전성기를
가져온 계기를 만든 역사적인 작품이다. 1734년 2월
24세의 젊은 나이로 나폴리 시의회 예배당의
악장대리(차석)에 지명되었으며, 1735년경부터
지병인 폐병이 악화되기 시작하자 1736년 2월에
의사의 권유로 나폴리를 떠나 인근에 있는
포추올리(Pozzuoli)의 프란체스코 카프킨 수도원
(Capuchin Abbey)으로 요양을 떠났으나 불과 한달여
후인 3월 중순에 26세라는 젊은 나이에 폐결핵을
극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으며 자신의 생애
마지막 작품인 여성 합창을 위한 스타바트 마테르
(Stabat Mater)를 완성했다. 그는 오페라와 종교
작품 외에도 바이올린 소나타와 바이올린 협주곡을
비롯해 많은 세속 기악작품을 작곡 했다.


카톨릭 전례의 하나인
찬미가 '스타바트 마테르'
(Stabat Mater)는 '슬픔의 성모' 또는 슬픔의 성모께서
일어서시니(서계시니)라는 뜻에 스타바트 마테르
돌로로사(Stabat Mater Dolorosa)라고도 한다.

십자가에 못박히는 예수를 바라보는 성모 마리아의
슬픔을 노래 한 중세(13-14세기)의 기도문에
붙인것으로 18세기까지 점차적으로 전례에 도입된다.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생애를 마감한
조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시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여성 음역을 위한 스타바트 마테르는 나폴리의
산타마리아 성당의 의뢰로 생을 마감하기전 2년여의
기간동안에 구성한 그의 대표적인 음악으로
소프라노, 알토(또는 카운터테너)의 독창과 2대의
바이올린, 비올라와 첼로와 오르간으로 구성한
통주 저음을 동반하는 소규모의 앙상블과 두 성악가를
위한 스타바트 마테르는 비탄에 잠긴 어머니 서 계시네
(Stabat Mater Dolorosa)를 시작으로 제 육신이
쇠잔하더라도...아멘<Quando corpus morietur -
Amen (Duetto)>으로 종결되는 전체 12개의 부분으로
구성된 찬미가이다. 그의 스타바트 마테르는
여성(女聲)의 음역(音域)을 가진 남성 가수 카스트라토
(castrato)나 가성(假聲)창법을 뜻하는 팔세토
(falsetto)를 위해 씌여진 비발디의 스타바트 마테르와
후대의 벨칸토(bel canto)낭만주의 이탈리아 오페라를
꽃 피웠던 작곡가 조아키노 로시니(Gioacchino Rossini,
1792~1868)의 스타바트 마테르와 19세기 체코의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작 (Antonín Dvořák,
1841-1904)의 스타바트 마테르(Stabat Mater,
Op.58)등과 함께 대표적인 작품으로 알려진 곡이다.
Stabat Mater dolorosa
Juxta crucem lacrimosa
Dum pendebat Filius.
 

 





조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시(이탈리아어: Giovanni Battista Pergolesi, 1710년 1월 4일 ~ 1736년 3월 16일)은 이탈리아작곡가이자 바이올린 연주자, 오르간 연주자였다. 그는 장중한 바로크 음악양식으로부터 명쾌한 고전파양식으로 전환하는 시기에 활약하고 27의 나이로 단명한 천재적 작곡가로 오페라 부파의 초기의 중요한 작곡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생애

중부 이탈리아 출신으로 소년 시대에 현저한 재능을 보였기 때문에 영주의 경제적 원조를 얻어 나폴리에서 본격적으로 음악을 배웠다. 그는 바이올린에 뛰어났으며 특히 교사들이 감탄해 마지 않는 즉흥 연주 솜씨를 지니고 있었다. 1731년 21세로 음악원을 졸업하였다. 오페라 및 종교음악의 작곡가로서 데뷔했으나 그 뒤 불과 5년간 작곡가로 활약한 데 지나지 않았다. 한동안 나폴리 귀족의 악장으로 일했으나 그 동안 나폴리의 오페라 극장에도 진출하여 1733년에 발표한 막간극(幕間劇) <마님이 된 하녀>의 성공으로 페르골레시의 이름은 곧 전 유럽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가 죽은 후 파리에서 상연된 <마님이 된 하녀>가 루소를 중심으로 이른바 '부퐁 논쟁'을 야기시킨 일은 유명하다. 1734년 2월, 24세의 젊은 나이로 나폴리시의 예배당 악장 대리에 취임했다. 그러나 1735년경부터 지병(持病)인 폐병이 악화되어 다음해 2월 의사의 권유로 전지요양을 떠났으나 3월 16일 26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작풍은 장대한 구성력이 부족다는 평이 있지만 멜로디의 매끄러움, 신선한 아름다움과 풍부한 화성의 뉘앙스, 그리고 섬세함으로 걸출하다. 특히 성악의 텍스처(書法)는 광채를 느낄 수 있다.

  • 마님이 된 하녀
그의 일생일대의 걸작일 뿐만 아니라 18세기 후반에 볼 수 있는 오페라 부파의 전성 계기를 만든 역사적 작품이다. 등장 인물은 불과 세 사람이고 게다가 한 사람은 벙어리여서 전혀 노래를 하지 못한다. 오케스트라도 현악기만으로 된 소규모이다. 전부가 2막으로 되었다. 나폴리의 부호 우베르트는 하녀인 세르피나가 너무나 횡포를 부려, 결혼하여 세르피나를 내보내려고 결혼상대를 구해 오라고 세르피나에게 명령한다. 세르피나는 한 계략을 생각하여, 벙어리 하인 베스포네의 힘을 빌려 멋지게 우베르트의 부인으로 들어앉는다는 줄거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