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별 분류/바로크음악

금동이 2019. 3. 2. 04:30





Josquin Desprez - Motets & Chansons - The Hilliard Ensemble











 죠스캥 데프레, Josquin Desprez (1440 - 27 August, 1521)



르네상스 전 기간을 통해 배출된 작곡가들 중에 가장 위대한 작곡가로 평가되고 있다. 
뒤파이와 오케겜에 의하여 개척된 모든 분야의 음악을 집대성하여 높은 수준의 음악을 많이 작곡하였다. 
부르고뉴악파가 사라지고 플랑드르 악파가 그 뒤를 이어 전성기를 형성하기 시작할 때 나타난 작곡가가 조스캥 데프레다. 

출생지와 출생 년도에 관해 많은 설이 있으나, 1440년 경 오늘날 벨기에와 프랑스의 국경지역인 콘데(Conde)에서 태어났다는 설이 가장 유력시되고 있다.
어린시절에 초기 플랑드르 악파의 거장인 오케겜에게서 음악수업을 받은 것이 조스캥 데프레의 앞날에 큰 영향을 끼쳤다. 
언제 이탈리아로 진출하였는지 확실치 않으나, 1459년에서 1472년까지 밀라노 성당에서 가수로 봉직한 것 같다. 
1474년부터 12년간 밀라노의 갈레아로 마리아 스포르자(Galearo Maria Sforzza)공작의 예배당에서 일하였으며, 그녀가 암살되자 그의 형제 중 하나인 아스카니오 스포르차(Ascanio Sforzza) 신부 밑에서 일했다.
그는 매우 구두쇠였던 것 같으며, 이때 작곡된 미사 <라솔파레미>는 밀린 급료를 달라는(Lascia fare a me)말에서 나왔다는 일화가 있다.


아스카니오가 우여곡절 끝에 1484년에 추기경이 되자 로마로 부임할 때 데프레는 그를 수행하였고, 그곳에서 그는 작곡가로서 점차 명성을 얻기 시작하였다.

1494년까지 추기경의 예매당과 로마 교황청 성당 사이를 오고간 것으로 되어 있다. 
교황청의 봉직기간이 끝나자, 프랑스로 건너가 1501-1503년 사이에 루이 12세 궁정의 가수가 되었다. 
1503년에는 페라라(Ferrara)의 에르콜레 데스테 1세(Ercole ld'Este)일가의 교회 성가대장으로 이사악을 제치고 임명되었다. 
페라라궁에서 조스캥이 남긴 작품은 <Miserere mei, Deus>와 <Virgo salutifere> 등, 2개의 모테트로 알려지고 있다. 
그 외 Missa <Hercules Dux Ferrarie>(미사 페라리공 헤라 큐레스)도 이시기에 작곡된 것으로 주장되고 있다. 
조스캥은 1503년 7월 임명 받은지 1년도 안되어 당시 페스트의 대유행으로 갑작스럽게 페라라궁을 떠나야 했다. 
오브레히트가 그를 이어 페라라궁의 악장이 되었으나 그는 1505년 페스트로 사망하게 된다. 


조스캥의 작품에서 오케겜과 오브레히트의 작곡기법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카논의 사용, 선율을 빌려와서 사용한다든지, 마지막을 향해 몰아치는 기법은 오케겜의 기법에서 온 것이다. 
조스캥은 오브레히트의 모방기법을 더욱 체계적으로 모든 성부에 적용하여 전곡을 통일하는 기법으로 사용하였다.

1504년, 고향 콘데로 돌아와 노틀담 성당 참사회장으로 일하다가 1521년 영광으로 가득찬 생애를 마쳤다. 

조스캥은 당시의 수많은 음악가로부터 '우리시대 최고의 음악가', '음악가들의 아버지'라는 칭송을 받았으며, 마르틴 루터는 그를 가장 좋아했으며 많은 작곡가들이 음의 지배를 받지만 '그는 음표의 주인', '음표는 그가 원하는데로 움직인다'...라고 격찬했다고 한다. 
조스캥은 중세와 근대의 전환점에 있는 작곡가라는 점에서 몬체베르디가 르네상스와 바로크 사이에, 헨델이 바로크와 고전파시대 사이에 있는 것과 같다. 


17곡의 <미사곡>은 르네상스음악의 한 정점을 구축한 걸작이며, 약 70여곡에 달하는 <상송도> 간결명료한 기법으로 표현된 아름다움의 극치다. 
그의 작품 중, <무장한 병사, L'homme arme Masses>, <혓바닥이여 노래하라, Missa Pange Linqua>, <라솔파레미, Missa La Sol Fa Re Mi> 등의 미사곡과, 모테트<마리아, Inviolata, Integra Et Casta Es Maria>는 불멸의 작품으로 빛나고 있다. 
그 외 100여곡의 <모테트>, 세속성악곡이 약 70곡정도 있다. 
그래서 그를 가리켜 '르네상스시대의 모차르트'라고 부르기도 한다.


■ 참고


죠스캥 데프레 - 미사 팡제 링구아 [Josquin Desprez - Missa Pange Linqua]  - 글 : 최호영 신부(가톨릭대 성심교정 음악과 교수) -

 

그레고리오 성가(Cantus Gregoria nus)의 바탕 위에 발전해 온 가톨릭 교회음악 안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다성음악(Polyphonia)이다.

이미 9세기부터 싹트기 시작한 다성음악의 초기 형태는 그레고리오 성가의 선율에 옥타브 혹은 5도나 4도 관계의 음들을 덧붙임으로써 음향적 효과를 유도한 오르가눔(Organum)이다.

이렇게 단순한 형태로 시작한 다성음악은 교회 전례 안에서 발전과 변화를 거듭하여 15~16세기에는 최고의 절정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이 시기의 음악을 '르네상스 다성음악'이라고 한다.

15세기 초 영국 음악이 대륙으로 전해지면서 초기에는 플랑드르 지방 즉, 오늘날의 네덜란드와 벨기에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하다가 점차로 이탈리아 로마로 중심지가 옮겨졌고, 로마에서 교육받은 음악가들이 고향인 스페인이나 베네치아에서 계속적으로 다성음악의 새로운 전통을 이어갔다.


조스캥 데프레(Josquin Despres, 약 1440~1521)는 플랑드르 악파의 대표적인 음악가로서 조스캥(Josquin)은 요세(Josse) 즉 요셉(Joseph)의 애칭이고, 데프레(Despres)는 Desprez 혹은 Dupre 또 라틴어로는 프라텐시스(Pratensis)라고도 한다.

그의 일생에 대하여 알려진 것은 비교적 적다.

그는 1440년경 북프랑스에서 태어났으며, 1474년 후에 이탈리아 밀라노의 귀족 스포르차(Sforza)의 궁내 성당에, 또 1478~1494년에는 로마교황청 성가대 가수로, 그리고 1495~1499년에는 캉브레(Cambrai) 대성당 지휘자로 활동했다.

1501년부터는 프랑스 루이 12세(Louis XII, 1498~1515 재위)의 궁정에서 일했으며, 1503년에는 페라라의 에르콜레 데스테 1세(Ercole d'Este I) 공작 궁정의 성가대장으로 임명됐으나 얼마 후 자신의 고향 지역인 프랑스의 콩데(Conde)로 돌아갔다.

데프레는 '시대의 최고의 천재', '음악의 거장' 혹은 '음악에 있어서 레오나르도 다빈치 혹은 미켈란젤로'라고 불릴 정도로 자신의 음악적 기량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그가 죽은 몇 해 후, 마르틴 루터는 데프레를 가리켜 "조스캥은 음들의 주인이다.

음들은 그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져야만 한다.

그러나 다른 음악가들은 음들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 준다"...라는 극찬을 남겼다.

20~30곡의 미사곡, 4권의 모테트 그리고 세속 음악 등 그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 대표적인 곡은 '미사 팡제 링구아(Missa Pange Lingua)'다.

이 미사곡은 아마도 그의 마지막 미사곡으로 추정되며, 생애의 마지막 7년 안에 작곡되었으며, 출판은 그가 죽은 후 1539년 되었을 것으로 본다.


무엇보다도 그레고리오 성가 중 '그리스도 성체성혈 대축일'을 위한 찬미가인 'Pange Lingua'의 멜로디를 음악적 주제로 하는 <Missa Pange Lingua, 혓바닥이여 노래하라>는 특히 주제 선율을 변용(Paraphrase)하여 각 성부에서 모두 노래하는 모방(Imitation) 기법으로 작곡되었다.

즉 'Pange Lingua' 라는 음악적 멜로디의 사용을 통하여 우선적으로 음악적으로 충분한 공간을 마련하고, 나아가 각 성부가 주체적으로 발전됨으로써 이 음악적 공간을 자유롭게 완성시켜 나간다.

이에 이 곡을 '그레고리오 성가를 주제로 한 판타지'(Fantasie ueber eine gregorianische Melodie)로 일컬으며, 그의 이러한 음악적 '모방기법'(Imitationstechnik)은 후기 르네상스의 음악 발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또한 당대의 다른 작곡가들은 음향적으로 충분한 효과를 얻기 위하여 5성부 혹은 6성부의 목소리를 필요로 하였지만, 조스캥은 4성부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인 멜로디를 창조해냈다.


15세기 플랑드르 지방의 황제와 귀족, 시민 등은 예술을 열렬히 후원하고 보호하는데 큰 관심을 두었다.

덕분에 이 지역에서는 루벤스와 반 아이크, 보슈 등 미술사에서도 찬란한 빛을 발한 인물들이 배출됐고 음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플랑드르 악파의 활동은 특히 교회음악 안에서 활짝 피어났고, 그들의 음악적 기법은 전 유럽에 퍼져 한세기 이상 유럽음악을 지배했다.

조스캥 데프레가 활동했던 캉브레 대성당도 유명 가수를 양성하는 곳으로 국제적인 명성이 자자했던 곳이다.

또 1500년대 들어서 활자로 악보인쇄를 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 짧은 시간 내 유럽 전 지역에 악보가 보급됐으며 덕분에 플랑드르 작곡가들의 작품도 널리 알려졌다.


앞서 '…교회음악 산책'에서 살펴본 대로 데프레는 르네상스 전 기간을 통해 활동한 작곡가들 중에 가장 위대한 작곡가로 평가된다.

데프레의 <상송>과 <미사곡>은 클래식을 그리 즐기지 않는 이들에게도 익숙하리만치 자주 연주되는 곡으로 꼽힌다.

그의 미사곡 음반은 지난 1995년, 영국의 음악 평론지 그라모폰이 창립 70주년을 맞아 선정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클래식 레코딩 100선에도 포함된 바 있다.

그러한 미사곡 중 하나인 <미사 팡제 링구아, Missa Pange Lingua>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현존하는 르네상스 음악 연주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탈리스 스콜라스(Tallis Scholars)' 아카펠라 앙상블과 지휘자 피터 필립스의 연주 음반(Gimell, 2006년)을 추천한다.

탈리스 스콜라스는 영국 10인조 혼성 아카펠라 앙상블로 내한 공연도 수차례 가져왔다.

매년 전 세계 성지와 콘서트홀 등을 찾아 순회공연을 하는 탈리스 스콜라스는 르네상스 시대 음악의 아름답고 경이로운 곡을 완벽에 가깝게 연주하는 이들로 평가받는다.
이 앙상블의 설립자이자 음악감독 겸 지휘자인 피터 필립스도 일생을 르네상스 교회음악 연구와 연주에 공헌한 인물로, 주로 다성음악을 전문적으로 지휘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