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별 분류/바로크음악

금동이 2019. 3. 24. 04:30




Telemann, Georg Phillipp (1681-1767 G)
의 2개의 혼 협주곡
Concerto for 2 Horns (from Tafelmusik)
를 감상하겠습니다.

바하와 같은 시대의 독일 작곡가인 텔레만은 작품도 다방면에 걸쳐서 대단히 많아서 600곡의 모음곡, 170편의 협주곡, 600편의 서곡, 44곡의 수난곡 (受難曲), 40편의 오페라 이외도 수 많은 칸타타와 실내악 등이 있으며, 근년에는 LP로 취입된 것도 대단히 많습니다.
대부분의 모음곡은 메누에트, 가보트, 부레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협주곡에는 거의 갖가지 종류의 관악기나 현악기를 위하여 또한 솔로뿐만 아니라, 2중, 3중의 협주곡도 있으며, 개중에는 4인용의 현악을 위한 협주곡도 있는데, 이것이 바로 현악 4중 주인 것입니다.
다음의 그의 협주곡에 있어서의 형식인데, 협주곡이라고 하면 비발디 시절부터의 전통인 빠르게-느리게-빠르게의 3악장이 상식이었으나, 텔레만에게는 빠르게-느리게-빠르게-느리게의 4악장이 많다는 점입니다.
즉, 옛 교회 소나타 (실내 소나타, 트리오 소나타) 또는 헨델 시절의 바이올린 소나타와 같은 형식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Concerto for 2 Horns (from Tafelmusik)

1 mov. Maestoso
2 mov. Allegro
3 mov. Grave
4 mov. Vivace

G.P.Telemann - Concerto for 2 Horns (from Tafelmusik)



Concerto in F Major for Two Horns, TWV 52 F3 G.P. Telemann






Telemann, Georg Phillipp (1681-1767 G)


바하와 같은 시대의 독일 작곡가인 텔레만은 작품도 다방면에 걸쳐서 대단히 많아서 600곡의 모음곡, 170편의 협주곡, 600편의 서곡, 44곡의 수난곡 (受難曲), 40편의 오페라 이외도 수 많은 칸타타와 실내악 등이 있으며, 근년에는 LP로 취입된 것도 대단히 많습니다.
대부분의 모음곡은 메누에트, 가보트, 부레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협주곡에는 거의 갖가지 종류의 관악기나 현악기를 위하여 또한 솔로뿐만 아니라, 2중, 3중의 협주곡도 있으며, 개중에는 4인용의 현악을 위한 협주곡도 있는데, 이것이 바로 현악 4중 주인 것입니다.
다음의 그의 협주곡에 있어서의 형식인데, 협주곡이라고 하면 비발디 시절부터의 전통인 빠르게-느리게-빠르게의 3악장이 상식이었으나, 텔레만에게는 빠르게-느리게-빠르게-느리게의 4악장이 많다는 점입니다.
즉, 옛 교회 소나타 (실내 소나타, 트리오 소나타) 또는 헨델 시절의 바이올린 소나타와 같은 형식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세속음악과 종교음악을 모두 작곡했지만 독창자·합창단·관현악단을 위한 소규모 칸타타로부터 대규모 작품에 이르는 교회음악 분야에서 뛰어난 작곡가이다(→ 교회음악, 성악).

프로테스탄트 성직자의 아들로 태어나 훌륭한 교육을 받았지만 실질적인 음악교육은 받은 일이 없었다. 어려서부터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보였지만 가족들은 그가 직업적인 음악가가 되는 것을 반대했는데 당시 음악가는 그다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직업도, 보수가 많은 직업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독학으로 뛰어난 작곡 능력을 얻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바이올린, 리코더, 오보에, 비올라 다 감바, 샬뤼모, 클라비어 등 다양한 악기를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1701년 라이프치히대학교의 법률 학도가 되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법률 공부보다 음악 활동에 더 치중하여 남은 생애 동안 음악에 전념하게 되었다. 라이프치히는 텔레만의 음악 활동에 디딤돌이 되었다. 시 당국은 그의 음악적 재능과는 별도로 이 젊은 선동가가 조직의 구성에 있어 엄청난 정력·재능·근면성이 있음을 간파했다. 그들은 그를 토마스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인 요한 쿠나우를 도와 격주로 주일마다 연주되는 칸타타를 작곡하도록 했으며, 아울러 대학 부속 교회인 노이엔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 자리를 주었다. 텔레만은 학생들의 음악단체인 콜레기움 무지쿰을 재편성하여 공공 연주회를 갖는 유용한 아마추어 관현악단으로 만들었으며 라이프치히 오페라단의 감독이 되어 이 오페라단을 위한 작품을 썼다. 텔레만은 두 공국 궁정에서의 직책을 가졌는데 조라우(1704~08)에서 궁정 관현악단의 지휘자로 있다가 아이제나흐(1708~12)에서 수석 바이올린 연주자를 거쳐 나중에 지휘자가 되었다. 연주·지휘·연구·작곡 활동을 통해 나중에 그가 프랑크푸르트암마인(1712~21)과 함부르크(1721~67)에서 음악감독으로 있으면서 활용한 음악적 지식, 실제적 경험, 작곡기법을 얻었다.


그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두 교회의 음악감독을 지내면서 그 도시의 음악을 담당했다. 라이프치히에 있을 때는 학생들의 콜레기움 무시쿰을 재편성하여 그들과 함께 연주회를 열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음악 출판을 시작했는데 이때문에 그는 독일에서뿐만 아니라 해외까지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당시 음악가들이 가장 선망하는 지위의 하나였던 함부르크의 음악감독으로 그는 5개 주요교회에 음악을 제공했고 함부르크 오페라단을 담당했으며, 자신이 음악교사로 있었던 함부르크의 유명한 인문주의 학교인 요하네움에 칸토르로 봉사했다. 함부르크에서도 콜레기움 무시쿰을 지도해 공공 연주회를 열었다. 1729년 러시아 궁정에 독일 관현악단을 조직해 달라는 요청을 거절했으며, 그 이전1722년 쿠나우에 이어 토마스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로 와 달라는 라이프치히 시 당국의 제안도 거절했다. 이 자리가 이미 17년 전에 쿠나우가 죽을 경우 그가 계승하도록 시 당국과 약속되어 있었다는 것은 젊은 텔레만의 높은 명성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가 거절한 이 직위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에게 돌아갔다. 함부르크에서의 모든 활동 외에도 계약에 의해 프랑크푸르트 시는 물론 아이제나흐와 바이로이트 궁정을 위한 음악도 작곡했으며 계속 자신의 작품을 출판했다.


그 시대의 독일·이탈리아·프랑스의 주요양식들을 섭렵했던 대가인 그는 그 어떤 양식의 작품도 쉽고 유연하게 작곡할 수 있었으며 폴란드와 영국 음악의 영향도 받아들였다. 그는 오페라와 연주회를 위한 작품은 물론 교회를 위한 작품도 같은 비중으로 작곡했다.


그의 음악은 자연스러운 선율, 대담한 화성, 쾌활한 리듬이 특징이며 악기 편성 또한 나무랄 데가 없다. 심오한가 하면 기지에 차 있고 가벼운가 하면 진지하며 결코 다양성을 잃지 않고 있다. 출판된 작품 가운데는 유명한 선곡집 〈테이블곡 Musique de Table〉(1733 출판, 관현악 모음곡 3곡, 협주곡 3곡, 4중주 3곡, 3중주 3곡, 소나타 3곡 포함), 최초의 음악 정기 간행물인 〈충실한 음악거장 Der getreue Music-Meister〉(1728~29, 70곡 포함), 〈조화로운 예배의식 Der harmonische Gottesdienst〉(1725~26, 72곡의 교회 칸타타), 하프시코드를 위한 판타지아 36곡이 있다. 그를 열광적으로 맞아주었던 프랑스를 잠시 여행(1737~38)한 것을 제외하고 결코 독일을 떠난 일이 없었다.


그는 2번의 결혼을 통해 8명의 아들과 3명의 딸을 두었다. 첫번째 부인은 출산하다 젊은 나이로 죽었고, 2번째 부인은 그에게 3,000달러의 빚을 남긴 채 스웨덴 장교와 달아났다. 텔레만은 다작하는 작곡가이면서 예리한 문필가이기도 했으며 1718, 1739년에 나온 2권의 자서전은 비교적 사실을 잘 기록한 책이다. 첫번째 아내가 죽자 그는 긴 시를 출판했으며 그의 성악 작품 가운데 상당수는 그가 직접 쓴 가사가 붙어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그가 그의 음악 선곡집에 쓴 서문인데 거기에는 그의 음악(동시대 작곡가들의 작품은 물론)을 어떻게 연주해야 하는가에 대한 방대한 분량의 실제적인 충고가 포함되어 있다. 바흐와 헨델의 친구였던 그는 바흐의 아들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의 대부이기도 했는데, 카를 필리프 에마뉴엘 바흐는 텔레만이 86세의 나이로 죽은 후 함부르크의 음악감독직을 이어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