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야기/고대.르네상스미술

금동이 2019. 7. 26. 09:00

매너리즘 미술

매너리즘이란 용어는 1520년대부터 1590년대 바로크가 나타나기 전까지 유럽을 지배했던 양식을 말한다. 이 양식은 전성기 르네상스 거장들의 작품을 얄팍하게 모방했다는 점에서 창조성을 의심받았지만, 금세기에 들어와 고대와 자연을 주관적인 통찰력으로 이상화시켰다는 점에서 재평가받고 있다.


매너리즘(Mannerism) 미술은 16세기 초반에서 후반까지 피렌체와 로마를 중심으로 르네상스 미술의 전형적 형식에서 벗어나려는 흐름을 의미한다. 종교개혁과 이에 대응한 가톨릭 개혁이 전개되는 시기와 겹친다는 점에서 직 · 간접적 영향을 예상할 수 있다. 매너리즘 미술이 등장하는 배경은 여러 면에서 검토 가능하다.

첫째, 미술 내적으로는 한 세기 가까이 지배해 온 르네상스 양식의 피로도가 축적되었음을 들 수 있다. 르네상스 미술이 추구한 엄밀하고 이상적인 신체 비례, 명암법을 이용한 입체감, 원근법을 통한 공간감 실현 등이 도식처럼 굳어져가던 상황에 반발하여 나타난다. 예술가의 지위가 높아지고 개인의 창조성 욕구에 가속도가 붙는 상황에서 양식으로 고정화되는 경향을 보이던 르네상스 미술은 점차 극복 대상이 되었다. 이에 따라 반(反)르네상스적인 새로운 도전과 실험이 줄을 잇는다.

매너리즘 미술의 혁신은 주로 형식의 변화를 추구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끝없어 보이는 자연의 한 지점을 소실점으로 잡고 투시화법을 적용함으로써 무한한 공간감을 실현하던 것에서 밀폐된 공간으로, 수학적 엄밀성을 지닌 인체 비례에서 비례의 왜곡으로, 안정되고 정돈된 구도에서 혼란스러운 구도 등으로 변화한다. 전체적으로 볼 때 사실주의 요소를 훼손하면서 표현주의 요소를 가미하는 방향이다. ‘루터와 칼뱅의 존재론과 인식론’에서 본 틴토레토의 〈최후의 만찬〉도 매너리즘적 요소를 다분히 지니고 있다. 안정된 구도와 사실성을 중시한 르네상스와 달리 혼란스러운 구도, 인물의 순간적 묘사 등이 보인다. 천장을 뒤덮으며 날고 있는 천사들도 사실성을 무시하고 불빛에 비치는 환영처럼 실루엣으로만 묘사했다.

둘째, 종교개혁으로 조성된 사회 분위기의 반영을 살펴보는 것이 가능하다. 종교개혁은 로마 교황가 중심인 중세의 위계질서를 흔들어버렸다. 종교개혁 요구는 물론이고 계층의 갈등과 민족의 갈등이 맞물리면서 사회 전체적으로 요동을 쳤다. 매너리즘 미술의 혼란스러운 구도와 표현은 불투명한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기도 했다. 교회와의 관계에서는 이중적인 면이 있다. 로마 교회는 종교개혁파와 싸우기 위해 적극적으로 미술을 이용했다. 종교개혁파에서 비판하는 마리아 숭배, 성찬식 등의 정당성을 회화적으로 구현하고 대중의 동의를 이끌어내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신비주의 요소를 지닌 매너리즘 미술이 가톨릭교회의 이해와 일치하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매너리즘 미술의 지나친 형식적 실험에 가톨릭 측이 계속 불만을 제기하면서, 이후 사실주의적 요소를 더욱 강화한 바로크 미술을 지원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예수를 십자가에서 내림〉

피오렌티노, 1521년

                

피오렌티노(Fiorentino, 1494~1540)의 〈예수를 십자가에서 내림〉은 초기 매너리즘 미술의 실험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틴토레토의 〈최후의 만찬〉과 마찬가지로 혼란스러운 구도다. 십자가의 예수를 끌어내리는 데 서로 각각 다른 동작을 보여주는 네 사람을 배치하고, 십자가를 중심으로 세 개나 되는 사다리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놓여있어서 매우 산만하다. 사다리 맨 위에 있는 두 남자의 망토는 바람에 뒤집혀 있고, 예수의 몸을 제대로 붙들고 있으라고 소리치는 모습이 오히려 불안감을 높이고 있다. 예수의 몸을 붙들고 있는 두 남자의 자세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다. 아래는 아래대로 슬픔에 쓰러지려는 성모를 부축하려는 여인들과 얼굴을 손에 파묻고 절규하는 남자 등 전체적으로 화면이 복잡하다. 어디 한군데 눈을 고정할 수 없는 불안함이 지배하고 있다. 그동안 이런 종류의 그림에서 예수를 향하던 중심점이 사라졌다.





〈예수의 시신을 눕힘〉

폰토르모, 1528년



폰토르모(Pontormo, 1494~1557)의 〈예수의 시신을 눕힘〉은 또 다른 면에서 실험적이다. 두 남자가 예수를 들고 있고, 뒤쪽으로 성모가 실신하는 모습은 라파엘로의 〈예수의 매장〉과 상당 부분 같은 형식이다. 라파엘로는 원근법을 적용하고 앞과 뒤의 명도와 채도를 달리하면서 전체적으로 안정된 분위기와 예수를 향한 집중점이 유지되었다. 하지만 폰토르모는 거의 모든 부분에 비슷한 명도와 채도를 적용하여 같은 평면에 놓인 모든 상황이 나열된 듯하다. 질서가 무너지고 혼란한 상황의 연출인데, 심지어 왼쪽 위 구름조차도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위에 떠 있는 느낌이다. 무엇보다도 특징적인 것은 색채의 구사다. 청색 · 청보라색 · 분홍색 · 주황색 · 붉은색 등 화려한 색채가 형태보다 먼저 우리 눈을 자극한다. 화가가 메시지보다는 색의 유희를 보여주고 싶어 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현실성을 벗어난 인위적인 색채 실험인 듯하다.




〈성모 승천〉 부분

코레지오, 1526년



코레지오(Correggio, 1489~1534)의 〈성모 승천〉은 형태상의 실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교회의 둥근 천장을 장식하고 있는 그림으로, 부분도가 아닌 전체를 보면 구름과 천사들이 소용돌이 모양을 그리며 점차 하늘로 향한다. 아래에서 천장을 보면 그림을 따라서 함께 하늘로 올라갈 것 같은 분위기다. 르네상스 미술을 대표하는 천장화인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는 천장을 이용했을 뿐 정면 벽화 형식이었다. 하지만 코레지오는 천장이라는 틀에 맞는 새로운 형식을 개발했다. 〈성모 승천〉 부분도를 보면, 밑에서 올려다보는 방식의 단축법과 원근법을 전체적으로 적용하여 위로 빨려 올라가는 듯한 역동성을 부여한다. 보는 이들이 성모 승천에 동참하는 듯한 환영을 만들어낸다.

그는 단축법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만테냐의 제자였다. 셀 수 없이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데도 단축법과 원근법을 적용함으로써 번잡함과 단조로움을 줄였다. 단축법을 이용한 코레지오의 역동적 구도 실험은 이후 바로크 양식에 영향을 준다. 이 시기에 교회 천장에 성모 승천을 자주 담는데, 이는 회화를 통한 성모숭배를 비판하는 종교개혁파를 반박하는 성격을 지녔다.





〈목이 긴 성모〉

파르미지아노, 1540년경


파르미지아노(Parmigianino, 1503~1540)의 〈목이 긴 성모〉는 매너리즘 미술의 한 경향인 인체 비례의 왜곡을 잘 보여준다. 수적인 비례와 조화에 입각하여 이상적이고 완전한 미를 추구하던 르네상스 미술에 반발하여 인체를 늘이는 과장된 표현 방식이 나타난다. 머리는 작고, 목은 지나치게 길어서 머리가 얹혀있는 느낌이다. 성모의 몸과 아기 예수의 몸도 전체적으로 길게 늘어나 있다. 인체의 우아함을 극대화하기 위해 비례의 미가 아닌 변형의 미를 추구한 결과다. 또한 뒤쪽의 기둥은 정체가 불분명하고 밑에 있는 수도자는 너무 작아서 작가가 회화의 합리성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르네상스 미술의 핵심 가치였던 사실 재현과 합리적인 화면 구성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




〈예수의 옷을 벗김〉

엘 그레코, 1577년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는 변형의 미와 함께 환영의 미를 동시에 추구한다. 〈예수의 옷을 벗김〉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직전에 병사들이 예수의 옷을 벗기려는 장면을 그렸다. 파르미지아노와 마찬가지로 예수의 몸이 길게 늘어나 있다. 그가 그린 그림 대부분은 현실성을 왜곡하여 예수의 신비로움을 강조한다. 다른 한편으로 환영에 가까운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환영을 강화하기 위해 눈과 색채, 배경 등을 자주 사용한다.

〈예수의 옷을 벗김〉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의 눈은 세속의 표정을 담고 있는 다른 등장인물의 눈과는 달리 몽환적이다. 눈은 하늘을 바라보게 하고 동공을 희게 처리함으로써 현실에서 이미 벗어난 상태임을 표현하고 있다. 다음으로 색채의 강렬함이다. 폰토르모가 파스텔 톤의 연하고 화려한 색으로 색채 실험을 했다면, 엘 그레코는 붉은색 · 노란색 · 녹색 등을 다른 색과 섞어 중화시키지 않고 강렬한 원색 그대로 사용함으로써 현실성의 틀을 깨고 감각적인 환영을 연출한다. 마지막으로 기괴한 배경을 통해 몽상적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 그림에서도 뒷배경이 무엇인지 잘 알 수가 없다. 산의 모습이기보다는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느낌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인 〈겟세마네의 기도〉에서는 하늘과 바위와 땅이 마치 꿈속에서 소용돌이치듯 섞여 있는 배경을 구사함으로써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다른 매너리즘 미술가보다도 미술의 심미적인 면에 더 주목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