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야기/고대.르네상스미술

금동이 2019. 7. 30. 09:00

티치아노 베첼리오

Tiziano Vecellio








1488/90 베네치아 피에베디카도레~ 1576. 8. 27 베네치아.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베네치아파 화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전성기를 이끈 베네치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 라파엘로, 미켈란젤로와 동시대 화가로 그들 못지않은 실력을 뽐내며 수많은 걸작을 남겼다. 카를 5세, 프랑수와 1세, 교황 바오로 3세를 비롯해 여러 군주들의 초상화를 그린 ‘군주의 화가’로 불린다.

1488년에서 1490년 사이에 베네치아 근처 도시 피에베 데 카도레에서 태어났다. 열 살 즈음 형과 함께 베네치아에 있는 삼촌 밑에서 견습 화가로 일했다. 이때 베네치아의 미술계를 이끌던 화가인 젠틸레 벨리니와 지오반니 벨리니에게 차례로 그림을 배웠다. 이외에 베네치아에서 촉망받는 젊은 화가였던 지오르지오네의 조수로 일하면서 작품 세계 형성에 영향을 받았다. 비평가들은 조수 신분이었던 티치아노의 작품에 강한 인상을 받았고, 지오르지오네와 함께 베네치아의 회화를 이끌어갈 재목으로 지목했다.

1510년 전염병으로 지오르지오네가 사망했고, 1516년 티치아노의 스승이었던 지오반니 벨리니도 사망했다. 그러나 이 시기 이미 티치아노는 벨리니와 지오르지오네의 양식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양식을 구축하고 있었다.

1516년 산타 마리아 데이 프라리 교회의 제단화 제작을 요청받고 〈성모승천〉을 제작했는데 이것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베네치아에서 독보적인 화가가 되었다. 이 그림을 그린 이후 여러 교회에서 같은 주제로 그려달라고 의뢰했을 만큼 큰 화제를 모았다. 실제로 안코나와 브레시아에 있는 교회에 같은 주제의 작품을 그렸다. 후원자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보통의 화가들과는 달리 티치아노는 직접 후원자를 선택할 만큼 대단한 명성을 누렸다. 해외에까지 이름을 떨치면서 베네치아 화가 중에서 국제적으로 활약한 첫 화가가 되었다.

티치아노는 그의 고향 카도레에서 이발사의 딸과 1525년 결혼식을 올리고 행복한 삶을 살았으나 1530년 아내가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무척 상심이 컸다. 이런 정서가 이 무렵 작품에 반영되어 한동안 어둡고 묵직한 느낌을 주는 그림을 그렸다.

같은 해 티치아노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를 알현하고 궁정 화가로 활약하며 그의 초상화를 여러 점 그렸다. 이외에도 프랑스의 왕 프랑수아 1세, 교황 바오로 3세를 비롯해 여러 군주들의 초상화를 그렸으며, 베네치아에 새로 취임하는 총독의 초상화도 맡아 그리게 되면서 ‘군주들의 화가’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의 초상화를 매우 마음에 들어 했던 카를 5세는 그에게 기사 작위를 주었고, 그의 아이들 또한 귀족의 신분으로 상승시켜 주었다. 실제로 카를 5세를 그린 〈황제 카를 5세의 기마상〉은 티치아노의 대표작일 뿐만 아니라 역사상 최고의 초상화로 손꼽히며 루벤스, 벨라스케스 등 17세기 바로크 시대 화가들에게 초상화의 교본으로 받아들여졌다.

1550년대 이후 주로 스페인의 펠리페 2세의 초상화를 그렸다. 이 시기 그는 자신의 작품을 엄격한 잣대로 판단했다. 어떤 작품은 10년 동안 매달렸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기법들을 시도했다. 펠리페 2세를 위해서는 초상화 말고도 신화를 소재로 한 작품도 많이 그렸는데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100》에 실린 〈디아나와 악타이온〉, 〈디아나와 칼리스토〉는 바로 이 시기에 제작된 것이다.

티치아노는 초상화, 풍경화는 물론 종교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걸작을 남겼다. 그의 작품은 르네상스 시기는 물론 이후의 서양 미술에 큰 영향을 주었다. 역사가들은 그를 ‘별들 사이의 태양’을 비유하며 그의 업적을 기렸다. 대략 여든 살 즈음인 1576년 베네치아에 유행한 전염병에 걸려 사망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100위 순위권 내 작품(2014년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