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야기/고대.르네상스미술

금동이 2019. 7. 31. 04:30




Italian painter, Venetian school
(b. ca. 1480, Venezia, d. 1556, Loreto)

 


1480 이탈리아 베네치마- 1556 이탈리아 로레토
로토의 조금 낮설고 독창적인 스타일은 이탈리아 전역의 후원자들을 매혹시켰다. 조르조네와 함께 벨리니 형제의 제자가 될 뻔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의 삶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없다. 작품 대부분은 종교적인 주제를 다룬 것이지만, 거기에는 대부분 자신만의 독창적인 무언가가 덧붙여졌다. 그의 해석은 예술의 역사에서 가장 개인적인 해석께 속한다고 할 수 있는데, 특히 인물화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말년에는 한쪽 눈이 멀고 빛더미에 쪼들려 로레토 근처의 수도원에 평수사로 들어갔으며,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로토 [Lorenzo Lotto, 1480~1556]

베네치아 출생. 처음에는 안드레아 프레비다레에게 배우고, 이어 알비세 비바리니에게서 배웠다. 그러나 1509년 로마로 나온 후부터 베르가모(1526) ·트레비소(1532) ·마르케(1535) ·안코나 등 각지를 방랑하면서 활약을 계속하고, 때때로 고향인 베네치아에도 들렀다. 1509년부터 12년 동안 로마 교황 율리오 2세를 위해 일하였을 때 라파엘로의 영향을 받아 이에시미술관의 《그리스도 강가(降架)》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은 16세기의 새로운 이상에 불타는 작풍을 발휘하였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최성기의 화가 조르조네의 작풍(作風)도 받아들여 명암의 색채효과를 추구하여 양식상에 새로운 변화를 보였다. 그것은 베르가모에 있는 성 바르톨로메오교회, 성 베르나르디노, 상트 스피리트교회 등의 제단화에 환상적인 채색법과 다이내믹한 구도법으로 나타났다. 작품은 라파엘로, 코레조, 뒤러와 함께 후년에는 조르조네, 팔마베키오 등의 영향을 받아 매우 복잡하나, 개성이 명확히 드러나 있어 독특한 은회색조 바탕 안에 세부에는 조금도 구애되지 않는 소박한 기운이 느껴지는 독자적 양식을 전개하였다.

초상화에 그와 같은 우수한 작품이 있다. 대표작으로 런던의 내셔널미술관 소장의 《줄리아노의 초상》《루크레치아로 분장한 귀부인상》 등이 알려져 있다. 이 외에 베네치아 아카데미 소장의 《서재의 청년》, 브레라미술관 소장의 《조각가 오도니》《라우라 다 폴라상(像)》 등이 있는데, 모두 인물의 깊은 심리묘사를 추구하는 동시에 은색조의 아름다운 색채를 빛내고 있다. 만년에는 영혼의 고뇌에 견디지 못하고 1554년부터 로레토의 산타 카사수도원에서 수도사로 지내다가 2년 후 그 곳에서 사망하였다. 주요작품으로 베르가모 성 바르톨로메오성당의 《성모와 성인들》(1516), 베네치아 아카데미 소장의 《청년상》(1524), 안코나 회화관 소장의 《마리아의 피승천(被昇天)》(1550) 등과 만년작인 《늙은 신사》《그리스도의 십자가형》 등이 있다. 
   







[수태고지 ]Annunciation
c. 1527, Oil on canvavas, 166 x 114 cm
Pinacoteca Comunale, Recanati


 

수태고지 (受胎告知 Annunciation)

잘 알려진 예수 탄생의 이야기로, 천사가 나타나서 마리아가 처녀의 몸으로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한 것을 알리는 수태고지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수태고지와 예수탄생에 관한 이야기는 가장 먼저 성립된 마가복음에는 없고 나중에 성립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등장한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나중에 창작되었거나 혹은 신도들 사이에 퍼지고 있던 이야기를 기초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저자가 써 보탠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수태고지의 양상이 아주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마태복음에서는 천사가 요셉의 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을 하고 같이 살기 전에 잉태한 것이 드러났다. 요셉은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낼 생각이 없었으므로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마음 먹었다. 요셉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주의 천사가 꿈에 나타나서 "두려워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의 태중에 있는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라고 일러 주었다."

이 정경은 "요셉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로마네스크 시대의 조각 등에 이따금 등장한다.

누가복음에서는 천사가 직접 마리아에게 이른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수태고지 이야기는 누가복음의 성격을 잘 반영하고 있으며 더욱 극적이고 인간적이다.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은총이 가득하신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함께 계신다" 하고 인사하였다. 마리아는 몹시 당황하며 도대체 그 인사말이 무슨 뜻일까 하고 곰곰히 생각하였다. 그러나 천사는 다시 "두려워하지 말라. 마리아, 너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 말을 듣고 마리아가 "이 몸은 처녀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자 천사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성령이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싸 주실 것이다."
이것이 협의의 수태고지이다. 그림의 제재로서는 마태복음에 의한 "요셉의 꿈"보다 누가복음에 의한 "수태고지"가 주로 사용되어 왔다. 이것은 마리아 신앙이 점점 깊어진 것과도 관계가 있다.

우피치 미술관에 있는 시모네 마르티니"수태고지"는 그의 최고 걸작이다. 마찬가지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수태고지"도 그의 젊은 날의 대표작이다. 이밖에도 수태고지의 테마는 수많은 명화를 남겼다.
청순한 처녀가 하느님의 이르심이라는 말을 듣고 두려워 떨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감격에 잠기는 극적인 정경이 예술작품으로서 다빈치가 그린 "수태고지"의 핵심이다. 천사가 그림에서는 여자처럼 보이지만 물론 남자다. 청순의 상징인 흰 백합, 올리브, 그 밖의 꽃을 손에 들고 있다. 무릎을 꿇고 구애하는 남자의 모습이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간단한 이야기의 이미지를 차츰 부풀려서 화가들은 어느 사이에 위와 같은 정형을 만들어냈다. 마리아의 집은 아주 조촐한 시골집이었을 텐데 호화로운 대저택처럼 그려지고 마리아의 복자도 마치 왕후 귀족의 딸처럼 그려져 있다.
 




Lorenzo Lotto의 성모영보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인 로렌초 로토(1480~1556)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출생해 티치아노, 라파엘로 등과 동시대를 살았다. 그는 베네치아 출신이었지만 당대 거장 티치아노 등의 명성에 가려 고향에서는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주로 북부 지방 등지서 활동했다.

로토의 작품은 S.보티첼리, S.U.라파엘로와 나아가서는 독일 화가인 A.뒤러 등 여러 화가들의 영향을 받아 매우 복잡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개성은 명확히 드러나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그는 독특한 은회색조 바탕 안에 세부에는 소박한 기운이 느껴지는 독자적 양식을 전개한 작가다. 이러한 작품의 특징은 초상화에서 더욱 잘 드러나는데, 은회색조의 아름다운 색채를 빛내는 초상화들은 주인공 내면의 모습, 불안함 같은 감정을 작가 특유의 통찰력으로 잘 표현한다.

고종희 교수는 그의 저서 ‘르네상스 초상화 또는 인간의 빛과 그늘’에서“로토의 작품에는 르네상스의 모든 성과가 들어와 있다”며“그의 작품은 더 이상 그리지 못할 그림이 없다는 듯, 데생과 색채 빛의 사용에 있어서 완벽함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덧붙여“로토는 라파엘로의 소묘와 벨리니의 빛, 티치아노의 색채, 뒤러의 정교함을 모두 갖춘 화가”라고 평가한다.

로토는 말년에는 영혼의 고뇌를 견디지 못하고 로레토의 산타 카사 수도원에서 수도사로 생활했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베르가모 성바르톨로메오성당의 ‘성모와 성인들’을 비롯해 ‘그리스도의 십자가형’ ‘늙은 신사’등이 있다.


제목 : 성모자와 성인들 (1506)talian

작가 : 로렌죠 로또( Lorenzo Lotto : 1480- 1556)

크기 : 83X 105cm 목판 유채화

소재지 : 영국 에딘버러 (Edinburg) 미술관


작가의 기량과 신앙이 조화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은데, 로렌죠 로또는 그의 신앙과 작품성이 맞아 떨어지는 작가였기에 , 그의 작품은 바로 자신의 신앙고백으로도 볼 수 있다.

작가는 베네치아가 르네상스 예술이 전성기를 이루던 시대 베네치아에서 활동하다가 그의 말년엔 성가정의 유적을 보존하고 있는 로레토 성지에 가서 삶을 마무리 할 만큼 신심과 예술성이 조화되던 작가였다.

이 작품은 15세기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성스러운 대화(Sacro conversazione)라는 화풍으로 성모자와 성인들을 등장시키는 양식이다

이것은 성인들이 성모자를 향한 사랑이 영적 결혼처럼 긴밀한 것임을 강조하는 양식으로서, 대표적인 것이 아기 예수와 알렉산드리아의 성녀 카타리나가 반지를 교환하면서 영적합일의 경지를 드러내는 것이며, 시대를 흐르면서 그 지역에서 특별한 공경을 받던 성인들이 성모자의 양편에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이 작품은 당시 작가의 고향인 베네치아 성인공경에 대한 신심표현을 확인하기에 좋은 것이다


성모자 오른쪽으로는 성 예로니모와 성 베드로가 계신다

모두 머리가 벗겨진 노년기의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들의 영적 지혜와 권위를 표현하는 것이다

성 예로니모는 베네치아에서 특별히 공경받던 성인이신데, 신구약 성서를 당시 언어였던 라틴어로 번역하신 성서학자이시며 불같은 믿음으로 알려진 분이신데, 보통 추기경 복장으로 등장하시는데 여기는 성 베드로와 같이 충분히 인생을 살아가면서 지혜가 영글은 노인의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 옆에 성 베드로 사도 역시 예로니모와 마찬가지로 아기 예수를 바라보고 계신다. 보통 성 베드로 사도는 천국 열쇠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자주 등장하는데 여기에선 성 예로니모 사도와 함께 아기 예수님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베네치아의 수호 성인은 성 마르코이나 , 성 베드로 사도 역시 베네치아에서 대단한 존경을 받던 성인이었기에 베네치아 대성당의 주보는 성 베드로이다.


베드로 사도를 대성당의 주보 성인으로 모신 사연은 신앙 이전에 베네치아 시민들의 자부심을 표현이라 볼 수 있다.


지방문화가 서로 다르게 발달한 이태리에서 베네치아 공화국은 피렌체 공국과 함께 자기 처지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특히 그들의 경제적인 힘과 탁월한 예술성은 이태리에서 자기들이 가장 우월하다는 자부심에 빠지기도 했기에 베드로 사도를 대성당의 수호성인으로 모신 것은 자기들의 처지가 로마에 비길 수 있다는 은근한 과시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성모님의 무릎에 서 계신 아기 예수님은 예로니모 성인이 내민 가죽 뭉치를 응시하고 계신다.

아기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기 보다 마리아의 아들처럼 앙징스러우면서도 자연스러운 아기의 모습으로 가죽뭉치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계신다.

이 가죽 뭉치는 예로니모 성인이 번역한 성서의 필사본으로 볼 수 있으며 두 성인이 주님께 바치는 나름대로의 인생 전체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

사도 베드로나 성 예로니모는 서로 다르긴 하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께 바친 성인이기에 이들의 믿음과 정성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대견스럽게 이들이 내민 가죽 주머니를 응시하고 계신다.

예수님은 당시의 말씀을 세상에 전한다는 사명으로 일생을 성서 번역에 바친 다 바친 예로니모와 허약한 가운데서도 주님을 전하기 위해 노력했던 베드로를 등장시키면서 당신을 충실히 따랐던 사람들을 각별히 사랑하신다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천국 열쇠를 쥐고 교회의 으뜸으로 통하던 베드로 사도나 항상 추기경의 복장으로 통하던 성 예로니모는 여기서 너무 소박한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

아기 예수님 역시 성모님의 품에 안겨 있는 아기 이지만 손을 들고 관객들을 관객하는 표현이나, 동방 이콘에서처럼 아기가 아닌 충분히 성숙한 모습의 어른으로 나타나는 것과 대조적으로 복장을 보나 태도로 보나 당시 서민 가정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어린이의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서 작가는 자기의 신앙표현을 하고 있다.

당시 베네치아는 해외 무역으로 경제적으로 상당한 수준이 됨으로서 사치가 대단하고 전성기 르네상스는 이것을 부채질 했기에 당시 베네치아는 비록 성화라도 호화스러운 인상을 풍기는 것이 대종이었다.



아기 예수님이 성 예로니모와 사도 베드로를 향해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성모님은 중세 교회를 크게 쇄신했던 탁발 수도회 창설자인 성 프란치스꼬와 성녀 글라라를 바라보고 계신다.


예수님이 두 성인을 대견하게 여기시는 것 같이, 성모님께서는 당신 아들 예수를 너무도 사랑하고 닮았기에 제 2의 그리스도로 불리던 성 프란치스코를 보시며 그의 가슴에 새겨진 십자가의 흔적을 손으로 짚어보신다.


성녀 글라라는 프란치스코의 모범에 감화를 받아 수도생활을 시작했고, 항상 성 프란치스코의 지도를 받는 영적인 오누이의 삶을 살면서 영적으로 침체된 중세 교회에 복음적 생기를 불어 넣은 성인들로서 당시 이웃 나라와의 무역 등으로 부유함의 극치를 누리던 베네치아 사람들에게 복음적 가난의 삶으로 남다른 감동을 주던 성인들이었다.


인간이 부유한 처지에 머물게 되면 부유함이 삶의 타락의 함정으로 이어지는 삶을 살게도 되나 반대로 부유함의 허상을 발견한 사람들은 복음적인 삶으로 방향을 돌리게 되는데, 당시 베네치아에서 성 프란치스코와 성녀 글라라의 위상은 세상 수준의 고귀한 삶이 아닌 영적 수준의 고귀함을 제시하는 모델이 되었다.


성모님은 주님 사랑의 표식으로 받은 가슴의 상처를 가르키는 프란치스꼬를 자애로운 눈으로 바라보시면서 그에게 각별한 사랑을 표현하신다.


성모님의 허리에는 성 프란치스코가 띠고 있는 탁발 수도자의 상징인 허리띠를 매심으로 프란치스코와의 극도의 친밀감을 표현하고 있다


성 프란치스코 역시 어느 성인들 보다 성모님께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현하셨는데, 그 이유는 우리 죄인을 구원하실 구세주를 우리에게 보내 주신 어머니로 공경했기에, 성모님과 프란치스코의 사랑은 예수님을 사이에 두고 이룰 수 있는 신뢰와 우정의 극치임을 드러내고 있다.


성 프란치스코는 생전에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드리는 인사"라는 기도에서 다음과 같이 성모님을 향한 자신의 감회를 표현했다.

"거룩한 부인이요 여왕이시여, 하느님의 성전이 되신 동정녀여,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

하늘에 계신 지극히 거룩하신 아버지께서 당신을 간택하시어,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시며 사랑하시는 아드님과 협조자이신 성령과 함께

당신을 축성하셨나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초기작이기에 후대에 비겨 훨씬 검박한 인상을 풍기고 있으나 베네치아 회화의 특성을 성모님의 망토를 통해 유감없이 표현하고 있다.

성모님의 망토는 다른 작품과 달리 감청색으로서 유난히 크다.


당시 감청색 안료는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에서만 생산되어 값비싼 것이었기에 성모님께만 사용하는게 관례였으나 , 작가는 다른 작품과 비길 수 없이 넉넉한 분량을 사용함으로서 성모님의 고귀함을 더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미술 사학자인 베렌슨은 베네치아 회화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베네치아와 쌍벽을 이루던 피렌체의 회화를 보면 미켈란젤로나 다빈치에 의해 완성되었던 원근법이나 인체 해부학적인 표현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되나 , 베네치아 화풍은 화려한 색상의 배합을 통해 영글어진 그림 자체를 즐기는 것만으로 충분한, 관람객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을 특징으로 잡았다.


이런 베네치아 화풍에 작가는 자기 신앙을 담았기에 다른 작가의 작품처럼 화려한 것 인상 보다는 성 프란치스코가 풍기는 소박함의 모습을 담았다


성 예로니모와 성 베드로는 성 프란치스코와는 전혀 다른 교회 지도자의 힘있고 화려한 모습으로 드러나는게 관례인 것과 대조적으로 작가는 성 프란치스코의 모습에 두 성인을 맞춤으로서 나름대로 교회 개혁의 의지를 표현했다


교회의 지도자는 세상의 권력자들을 닮은 모습이 아니라 갈릴레아 출신의 예수의 모습을 닮아야 함을 작가는 작품을 통해 표현했다


하느님의 아들이기 이전 인간 성모님의 아들 예수님은 여느 가정의 어린이처럼 귀엽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

제도적인 교회가 소홀히 하기 쉬운 예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금관의 예수와는 거리가 먼 인간 예수의 모습이다.

깊은 사랑을 표현하시는 성모님의 모습을 통해 경건한 분위기속에서도 마음을 평안하게 만들고 있다.

작가는 탁발의 영성이야 말로 베네치아의 사치를 극복하게 만드는 것이라 여겨 당시의 다른 작품과 전혀 다른 정서로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당시 르네상스 운동의 부작용으로 신자들이 사치와 향락을 인간다움의 표현으로 생각하며 신앙에서 멀어지고 있는 일부의 모습을 보면서 신앙을 일깨우기 위한 경각심을 이 작품을 통해 표현했다.


즉 가난한 교회의 모습을 지향하며 일생을 산 성 프란치스코와 글라라를 새로운 심볼 마크로 제시한 것이다. 

화려하고 산뜻한 색체 처리의 베네치아 그림과 전혀 다른 소박하다 못해 투박한 모습의 양쪽 성인들을 성모자 곁에 등장시킴으로서 르네상스의 열기에 들떠 복음의 핵심에서 멀어지고 있는 신자들에게 한 폭의 멋진 시각적인 강론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