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야기/명화감상

금동이 2020. 3. 4. 02:23

구스타브 모로(1826-1898)





 

전통적인 아카데미즘의 교육을 받은 그는 1850년대부터 살롱전에 출품하므로 화가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866년 이후로는 전시회를 가진 일이 없다.

 

모로는 공부를 많이 하는 화가였다. 문학, 철학, 고고학, 시지학, 카톨릭, 고대 신화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였다. 이와같은 지적 탐구를 바탕으로 그린 그림을 신비하고, 이국적이며, 정교하게 그렸다. 그의 그림은 고전주의 양식인 아카데미즘이 바탕이지만 내용에서는 확연히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그의 그림은 죽음, 고통, 그리움 등의 인간이 겪고, 고뇌하는 분위기를 짙게 느끼도록 해준다. 또 미래의 환상을 불러일으키는데 성공하였다. 이와같은 작품의 호소력으로 상징주의자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모로는 회화는 문학적이어서 안되고 회화적이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의 그림은 문학적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데카당하고, 요부적인 여성의 이미지는 당시 상징주의 작가들이 많이 다루던 주제였다. 이들은 특정한 여인보다는 살로메, 세멜레, 메데네아 같이 집념적인 사랑과, 결국은 파멸로 치닫는 숙명적인 여인(femme fatale) 의 이미지를 즐겨 그렸다. 비록 신화나 성경, 역사 속의 여성 이미지라 하더라도 여성의 아름다움은 난폭할 수 있다는 것과, 미의 유혹이 남성에게 복수와 욕망, 거세와 죽음으로 이끌어 갈 수 있음을 상징하였다.

 

이와같은 여성의 이미지는 당시 거세게 일어나던 여성운동과는 배치된다. 하지만 당시의 반여성주의 운동의 시선을 갖고 있던 남성의 시선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모로가 제작한 살로메는 요부의 이미지를 하나의 전형으로 보여준다. 이 작품들의 주제는 낭만주의 기법으로, 표현은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분위기는 상징적이다.

 

모로는 말하기를 ‘사진적 이미지는 기록에 불과하고, 하나의 정보일뿐이다. 나는 보이지 않는 것과 느끼는 것만 믿는다.’라고 하였다. 공상과 이미지를 추구한 그의 그림은 이후에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공감을 얻는다.

 

이후에 모로는 그림의 표면에 물감을 아주 거칠고, 두껍게 칠한다. 그의 표현주의에 가까울 정도이다. 이러한 기법은 제자들에게 전수된다. 마티스, 조르쥬 루오가 그들이다.

 

1826년에 건축가인 아버지와 음악가인 어머니 사이에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대체로 자유로운 편이었다. 어머니는 세심하게 보살피는 유형이었다. 초등학고, 중학교 때부터 데생에 소질을 나타냈다. 1846년에 에콜 드 보자르에 입학하여 아카데미즘의 미술 수업을 받았다. 로마상에 도전하였으나 실패하자 학교를 그만 두었다.

 

1870년에는 보불전쟁에 참여하였다. 모로는 병약한 편이었다. 재대도 나약한 몸 때문에 의가사 제대를 하였다. 그러나 모로는 군에 갔다 온 후에 상장히 자신감을 가지고 적극적인 활동을 하였다.

 

1884년에 어머니가 죽었다. 평생을 독신으로 지낸 모로는 어머니의 보호아래 살아오댜시피 하였다. 이로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가 작품에 설명을 세세하게 붙이는 것도 귀가 먹은 어머니를 위해서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그림이 표현한 것은 어머니의 사랑과는 다르게, 여성의 사악함을 표현하였다.

 

1892년에는 에콜 드 보자르의 교수로 임명되었다. 제자들의 재능을 최대한 인정하여 화가로 지도하는 교수로서 그의 능력은 뛰어났다, 그의 제자에는 유명한 화가들이 많다. 마티스,. 마르케, 카모, 만귀느, 르네, 레판, 사바테, 부뤼네 등이 있다.

 

1903년 위암으로 사망하였다.



옛 그리스의 보이오티아(Boeotia) 지방에 테바이(Thebae)라는 도시가 있었다. 그런데 이 도시에는 골치 아픈 문제가 있었다. 도시로 들어오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에 괴물이 자리 잡고 앉아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괴물은 사람을 해치기 전에 꼭 수수께끼를 냈다. 게다가 괴물은 생김새도 요상했는데 몸은 사자, 날개는 독수리, 꼬리는 뱀의 모습을 했고 얼굴은 아름다운 여자였다. 정체성이 묘연한 이 괴물이 지나가는 나그네를 불러 세워 놓고 질문을 던진다. “두 발로도 걷고 네 발로도 걸으며 또한 세 발로도 걷는다. 이 생물의 이름은 하나다. 땅 위를 걷거나 공중을 날거나 물속을 헤엄치는 모든 것 중에 이것만이 형상을 바꾼다. 그러나 네 발로 걸을 때가 가장 느리다. 그것이 무엇인가?”

도둑이나 강도가 출몰할 것 같은 인적이 드문 길목에서 이렇게 생긴 괴물이 갑자기 나타나 길을 막고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 당시 멀고 험한 여행을 주로 하던 사람은 아마도 거의 모두 남자였을 테니 이 괴물의 아름다운 얼굴에 먼저 마음을 빼앗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괴물의 목소리는 어땠을까? 외모가 이러니 목소리도 여러 겹이 아니었을까? 사자처럼 으르렁거리며 뱀처럼 교태가 넘쳐흐르고 독수리 눈처럼 날카로운 목소리였을 거다. 어쨌든 이 여자 괴물은 항상 지나가는 사람의 길을 막고 묻는다. 한편으로는 무섭고 한편으로는 신비스러운 모습에 이미 넋이 반쯤은 나간 나그네는 십중팔구 답을 못 했을 게 틀림없다. 넋이 빠져 우물쭈물하고 있는 나그네를 지켜보던 괴물은 순식간에 그를 덮쳐 날카로운 발톱으로 몸을 갈기갈기 찢어 굶주린 사자처럼 뜯어먹었을 게다. 주변에는 이전에 먹잇감이 된 불쌍하고 어리석은 나그네들의 잔해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을 테고 말이다.


이 무섭고도 아름다운 괴물에 대한 소문은 주변 마을로, 도시로 바람에 실려 흘러 다녔다. 물론 괴물을 마주친 자들은 모두 죽었을 것이므로 괴물이 수수께끼 내기를 한다는 사실보다는 길목에서 마주치게 되면 잡아먹히게 된다는 이야기만 돌아다녔을 게다. 아무도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채로 먹잇감이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그런데 영원한 승자는 없는 모양인지 승승장구하던 그녀의 명예에 먹칠을 하는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오이디푸스(Oedipus)라는 이상한 이름을 가진 자가 나타나 수수께끼를 풀고 만 거다.

오이디푸스란 ‘부은 발’이란 뜻이다. 그는 테바이와 이웃해 있는 코린토스(Korinthos) 왕의 업둥이 왕자였다. 물론 많은 업둥이가 그러하듯이 그는 자신이 업둥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로 성장한다. 이런 이름을 얻게 된 것은 친부모가 그를 버리면서 상자에 넣은 채로 발에 못을 박아 강물에 띄워 보냈고, 양부모가 그를 발견했을 때 발이 심하게 부어 있었기 때문이다.

친부모가 그를 버린 이유는 자식이 태어나면 자신들에게 무서운 재앙이 닥친다는 예언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몹쓸 예언은 결국 실현되고 말지만 말이다. 친부모가 두려워한 예언은 자식이 태어나면 제 아비를 죽이고 제 어미와 몸을 섞게 된다는 거였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업둥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로 이 예언에 대해 알게 된다. 그가 코린토스를 떠나 테바이로 가게 된 것도 실은 무시무시한 저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였다. 저주를 피하려면 부모로부터 멀리 떠나는 것이 상책이었으므로. 그런데 무언가를 피한다는 것이 결국은 그것으로 끌려가게 되곤 한다. 오이디푸스도 그랬다.

코린토스를 떠나 방황하고 있던 젊은 청년 오이디푸스는 길거리에서 어떤 노인과 시비가 붙었다. 좁은 길목에서 서로 길을 비키라고 실랑이를 벌이게 된 거였다. 아직 철이 없던 오이디푸스는 자신에게 내려진 불길한 운명을 생각하느라 심란하고 우울했고 그러다가 화가 난 참이었다. “도대체 왜 나한테 이런 운명이 내려진 거야? 내가 뭘 잘못했길래? 그 망할 놈의 신탁 때문에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포기했어. 신탁만 아니었으면 나는 코린토스의 왕자로서 나라를 이어받았을 거고 장차 왕이 돼 아무 문제없이 이 나라를 다스릴 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 방랑자의 꼴이 되다니. 쳇!”

신탁이 아직 실현되진 않았지만 마음은 영 불안했다. 도대체 누구를 탓해야 할지도 몰랐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불특정 다수, 말하자면 세상에 대해 화를 낸다. 나만 빼고 모든 사람이 멀쩡한 것 같고 남들은 불행이 뭔지도 모르고 고뇌가 뭔지도 모르는 채로 아무 탈 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으로만 보인다. 좁은 길목에서 모르는 노인과 실랑이가 붙었을 때 오이디푸스의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차에 마차 안에 앉아 있던 노인네가 갑자기 튀어나와 들고 있던 지팡이로 오이디푸스의 머리를 탁탁 치며 이렇게 말했다. “요즘 젊은 것들은 정말 버르장머리가 없다니까! 보아하니 행색도 변변치 않은 꼴이 별 볼 일 없는 놈인 것 같은데 저리 비키지 못할까!” 불난 곳에 기름을 부은 꼴이다.

성질이 불같이 치솟은 오이디푸스는 들고 있던 몽둥이로 노인을 마구 두들겨 팼다. 주변에서 말리려는 수행원들에게도 가리지 않고 몽둥이를 휘둘러 댔다. 그렇게 끓어오르는 울분을 한껏 풀고 정신을 차려 보니 노인을 비롯해 일행 모두 죽어 있었다. 사실 노인이 그의 친부였으니 예언이 실현되고 만 꼴이다. 물론 그도 그의 아비도 그 사실을 모른 채 말이다. 그때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짓을 반성하지도 후회하지도 않았다. 그저 지나가다 벌어진 재수 없는 사건이라 생각하고 얼른 자리를 피해 도망쳤다.

그가 ‘질문하는 괴물’ 스핑크스(Sphinx)와 마주친 것은 이런 일이 있은 후였다. ‘스핑크스’란 이름은 ‘묶는다’란 뜻이다. 그래서 그녀는 때로 ‘교살자’로 불리기도 했다. 그녀는 당시의 여자 괴물들이 그러하듯이 지나가는 나그네를 유혹해 덫에 빠트리는 존재였고 그 덫이 바로 수수께끼였다. 거의 모든 사람이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채로 그 덫에 빠져 목숨을 잃었지만 오이디푸스는 수수께끼를 풀었기 때문에 덫에 걸려 버린다. 그가 걸려든 덫은 바로 ‘오만’이라는 또 다른 덫이었다. 오만이 어떻게 덫이 될 수 있을까?

그리스인들이 가장 경계한 것 증에 하나가 바로 오만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의 주인공이 몰락하게 되는 원인이 ‘오만’이라고 말한다. 그는 오만을 일종의 성격적 결함으로 보았다. 오이디푸스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분노에 이글거려 길거리에서 만난 노인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죽일 수 있던 것도 바로 오만한 성격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성미가 불같은 젊은이였다고 한다. 자기 길을 막는 자는 모조리 밀쳐내 버리고 자기 외에 다른 이는 안중에도 없는 것, 이것이 그의 오만이다. 게다가 아무도 풀지 못하던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었다는 자신감은 그를 더욱 오만한 인간으로 만들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소포클레스가 쓴 《오이디푸스 왕》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오만은 폭군을 낳는다. 오만은 합당치도 이득도 되지 않는 부에 허망한 포만을 느끼고 드높은 성벽에 오르면 비참한 운명에 빠지고 허우적거리며 헤어나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승자는 오이디푸스가 아닌 스핑크스라 할 만하다.

오만의 덫을 놓은 자는 다름 아닌 스핑크스다. 그녀는 오이디푸스가 수수께끼를 풀자 벼랑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고 알려진다. 그러나 스핑크스는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녀는 괴물로 그려지지만 엄연한 신족이다. 신은 모습을 바꿀 뿐 완전히 사라지는 법이 없다. 다른 장소에서 다른 모습으로 다시 등장한다. 신은 우주에서 생겨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에너지의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스핑크스 역시 어디에선가 다른 모습으로 또 다른 오이디푸스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우주의 불가해한 완전성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사람 얼굴에 사자의 몸, 독수리의 날개, 뱀의 꼬리를 지닌 스핑크스의 모습은 당시 하늘의 네 귀퉁이를 지키는 별자리를 상징한다. 봄 · 여름 · 가을 · 겨울, 또는 춘분 · 하지 · 추분 · 동지, 또는 동서남북을 의미하는 이 네 자리는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알려 주는 좌표라고 할 수 있다. 스핑크스는 이 네 방향의 기준점이 하나로 통합된 자리를 표현한다. 네 방위, 네 장소는 각각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하나의 우주를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태양이 하늘의 네 귀퉁이를 지나갈 때마다 천체는 다른 모습을 연출한다. 이 변화하는 모습이 바로 시간을 통해 우리에게 나타난다. 스핑크스는 봄에는 사람의 모습으로 여름에는 사자의 모습으로 가을에는 독수리의 모습으로 겨울에는 뱀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난다. 그런데 이 네 가지는 하나의 우주를 표현한 다른 모습일 뿐이다. 장님이 코끼리 더듬듯이 우리는 별개의 모습만을 알고 기억한다. 그녀의 서로 다른 모습이 하나의 우주를 다르게 표현한 것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시간과 서로 다른 공간이 아무런 연관 없이 제각각 움직이고 있다고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서로 분리되어 있어야 마땅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한꺼번에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낼 때 우리는 당혹감에 길을 잃곤 한다. 갑자기 불행에 빠진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하필이면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 거지?” 그때 나란 존재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불행한 일들과는 아무 관련이 없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존재다. 하지만 세상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그런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누군가에게는 일어나야 하는 일일 때도 많다. 이 이해할 수 없는 삶의 수수께끼와 마주하는 순간이 바로 스핑크스와 조우하는 순간이다.




트로이 성벽 위의 헬레나]Helen on the Walls of Troy,1885 


백조로 변신한 주신(主神) 제우스와 레다(혹은 네메시스) 사이에 태어났다. 그리스의 여러 왕후(王侯)들로부터 구혼을 받은 끝에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가 되었으나,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는 여신 아프로디테의 도움을 받아 헬레네를 유혹하여 남편이 없는 틈을 타서 그녀를 트로이로 데려갔다. 일찍이 그녀에게 구혼하였던 자들은 일제히 메넬라오스와 협력, 곳곳에서 군사를 일으켜 트로이로 진격함으로써 마침내 10년 동안이나 계속되는 트로이전쟁이 일어났다. 파리스가 전쟁에서 목숨을 잃자 메넬라오스와 함께 스파르타로 돌아온 헬레네는 평온한 생활을 보내다가 두 사람 모두 행복의 땅인 엘리시온으로 갔다고 한다.

그러나 헬레네에 얽힌 신화에는 이설(異說)이 많아, 헬레네는 남편이 죽은 뒤 스파르타에서 쫓겨나 로도스섬으로 도피하여 비참한 최후를 마쳤다고도 하고, 또는 트로이로 데려간 것은 그녀의 모습과 닮게 만들어진 구름에 불과하고, 사실 이집트에 머물러 있었다는 전설도 있는데, 고대 그리스의 비극시인 에우리피데스의 작품 등은 이 전설에 따르고 있다. 어쨌든 헬레네는 매우 오래된 여신이면서도 신화 속에서 점차 신격(神格)을 잃고 가장 인간적인 여신이 되어 버린 전형이다.

서양 여성의 이름인 헬렌(Helen:영국)·엘렌(Hélèn:프랑스)·헬레나(Helena,독일)·엘레나(Elena:에스파냐·이탈리아) 등은 모두 이 여신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다.

 

신화란 것은 원래 믿을 것이 못된다. 그러나 시인이나 음악가, 화가들도 앞다투어 신화를 소재로한 작품들을 많이 만들어 왔고 또 신화에서 소재를 얻고 거기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만들어 왔다.

왜 사람들은 신화를 즐겨해 왔을까.  내가 생각하기엔 신화에는 이세상에서 있어왔고 앞으로도 있을 수 있는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인기가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해 봤다.

위그림으로 돌아가서 상징주의 화가 구스타브 모로가 '트로이 성벽위에 서있는 헬레네'를 그린 그림이다. 

그림을 살펴보니 먼저 헬레네의 발 밑에 많은 주검들이 보이는데 이는 헬레네를 되찾기 위한 트로이 전쟁에서 전사한 군인들의 주검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헬레네의 오른쪽 팔과 허리,목, 머리에  많은 보석을 걸치고 있는데 이는 헬레네가 그리스를 떠나올 때 보석을 챙겨가지고 나온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 꽃 하나를 들고 있는데 서양화에서는 꽃은 부질없다거나 허무 등을 표현하는 상징물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파리스가 [파리스의 심판]을 통해서 얻은 미인은 부질없는 것이었슴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림같은 그림을 그리는 아카데미류의 그림에 비해서 사실적인 표현은 떨어지지만 강렬하고 화려한 색 표현을 통해서 그림을 환상적이고 유쾌하게 표현하는 매력이 돋보인다.

구스타브 모로의 작품을 아래 게시판에서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디프스와 스핑크스



오르페우스


 젊은 트라키아 여인이 살해된 오르페우스를 내려다 보고있는 이 장면에서
죽음, 고통, 그리움의 묘한 분위기가 짙게 느껴진다.
당시의 다른 아카데믹한 화가들과 비교해 볼 때 이러한  미지의 환상을 자아내는데 성공한 작품이다



살로메




춤추는 살로메




살로메의 춤
모로가 <살로메>의 테마를 다루기 시작한 것은 1870년 독일과의 전쟁에서의 패배와 파리 코뮨의

극적인 영향력 아래에서입니다.

따라서 <살로메>는 매우 시사성을 띠고 있습니다. 유약한 헤롯왕은 나폴레옹 3세와 비교되고,

살로메는 쿠테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동방풍의 장식 때문에 일대 물의를 일으킨 바 있기도 한 이 작품은 금과 보석으로 치장한 살로메가

동방의 궁전에서 요사스러운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환영


환영(The Apparition) 1876

 

위의 작품은 <구스타프 모로>의 그림이다. 그는 1826년 프랑스 파리에서 건축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72세의 생애를 살았다. 그는 19세기 상징주의 미술의 대표적 화가다. 상징주의는 당시 실증주의와 과학만능주의, 그리고 예술의 퇴락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예술사조다. 

 

한마디로 상징주의는 인간의 내면의 사고와 꿈의 세계를 표현하고자 했다.  그래서 모로는 명화를 정의하길,  "영원히 남게 될 그림은 생각과 꿈 그리고 마음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지 손재주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신화적 주제를 집중적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위의 그림은 신약성경 마태복음 14장 전부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은 것이다.

이야기인즉슨,  예수님 당시 유대왕 이던 헤롯이 폭정을 일삼고,  게다가 동생의 아내를 취하자 요한이 헤롯왕을 질타했다.  그런던 어느날 헤롯의 생일에 헤로디아의 딸이 춤을추어 헤롯을 기쁘게하자,  그녀의 청을 들어 주기로 한다. 

 

헤로디아의 딸인 살로메는 요한의 목을 청한다. 그러자 헤롯은 요한을 잡아 목을 베, 머리를 소반에 담아 그녀에게 준다.  그렇지 않아도 요한은 헤롯의 눈엣가시였으므로 그를 죽일 명분을 찾고 있던 차였다. 그렇게 헤롯이 요한의 목을 베길 두려워 했던 까닭은 "민중이 저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민중의 두려워 하였더니" <마14:5>하였다.

 

영국의 사회주의 정치가 토니 벤은 말하길,  "왕들은 권력(Power)을 가졌고 예언자들은 원칙(Principles)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권력은 수시로 변동하나 원칙은 항구적인 것이다.  권력에게 있어서 대원칙은 민중이다.

 

이걸 현실정치에 엮어보면 '원칙'도 민중의 힘을 업어 '권력'이 되는 순간 한결같이 부패했다.  노무현, 한명숙 이들은 한때 우리들의 원칙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밀어 권력이 되게 했다.  그러나 그들은 '권력'을 잡는 순간 '원칙'을 버리고 옛날의 권력을 뒤따랐다.  그리고는 궤변만 늘었다.

 

헤롯의 '권력' 은 세례요한이라는 '원칙' 앞에 한낱 아침에 떳다 없어지는 안개와 같을 뿐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언자들의 전통에 따라 '원칙'을 자기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헤롯의 딸 살로메는 관능적인 춤을 추고 나서 헤롯에게 요한의 목을 요구하였다. 요한은 죽는다.

살로메가 요한에게 사랑을 거절당한 것이 이유라고 한다.

<살로메>는 오스카 와일드의 시극으로서 마태복음에 나오는 내용을 소재로 하였다. 형수(헤로디아스)를 부인으로 맞았지만 그녀가 데리고 온 의붓딸 살로메에게 마음을 뻬앗기고 있었다. 유혹하였으나 살로메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살로메는 민중에게 설교하는 요한을 보고 한 눈에 반하였으나 요한은 꿈적도 않았다. 이때 살로메가 언젠가는 입을 맞추리라고 선언하였다. 헤롯이 살로메에게 춤을 청하자. 하나의 약속만 하면 추겠다고 하였다. 춤을 추고 나서 요한의 목을 요구하였다. 헤롯이 처음에는 거절하였으나 결국 요한의 목은 쟁반에 받쳐저서 살로에에게 주어졌다. 살로메는 쟁반을 들고 어두운 방에 들어가서 입을 맞추었다.






주피터와 세멜레
세멜레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주신 디오니소스의 어머니로 주피터(제우스)의 사랑을 받아

그의 아이를 배게 됩니다.

그러자 주피터의 아내 헤라는 그녀를 질투하여 주피터에게 신의 모습을 보여달라고 하라고

세멜레를 속입니다.

세멜레의 청을 거절하지 못한 주피터는 신의 모습인 번개로 그녀에게 나타나 세멜레는 번갯불에

타죽게 됩니다.

그 뒤 주피터는 태아를 꺼내 자신의 넓적다리에 넣고 꿰멘 후 낳았다고 합니다.

이 작품은 한 컬렉터가 1901년 모로 박물관 개관 기념으로 증정했다고 합니다.



삼손과 데릴라


일반적으로 삼손의 뿌리는 헤라클레스라고 한다.

데리라는 삼손의 머리를 깎으므로 힘을 제거한다.

모로에게 여자는 부정적으로 표현하였다. 살로매. 스핑크스, 데리다 등 요부적인 요소가 강한 여인이다.

남자들이 목숨을 잃을 만치 빠지는 여자는 이런 요부라 고 하였다.






관리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댓글입니다